183. 교정을 거닐다
#183
“내 부관이 할 말이 있다는군. 그날 벌어진 일과 관련해서 말이지.”
자이파가 소령의 어깨를 두드렸다. 로난은 아데샨의 호흡이 가빠진 것을 눈치챘다. 뒤늦게 그녀의 트라우마를 떠올린 로난이 속삭이듯 물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할까요?”
“아니, 괜찮아.”
아데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맞서는 사람처럼 두 명의 수인을 직시했다. 성큼성큼 다가온 네메아 소령이 고개를 숙였다. 이 사자도 몸집이 상당해서 거대한 벽이 앞에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이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군요. 죄송합니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태도였다. 학살극 당시 로난을 보고 경기를 일으켰던 점에 대한 사과였다. 로난이 말했다.
“괜찮아요.”
“아뇨. 그때는 너무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그런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평정을 유지했어야 하는 건데···제가 미숙했던 탓입니다.”
네메아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가 로난을 보고 기겁한 이유는 습격자들의 눈동자 색이 로난과 닮아 있어서였다.
로난의 추리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습격자들의 정체는 다르만과 아지에, 폭류검 크로덴이었다. 네메아는 주홍색 눈동자가 번쩍일 때마다 동료들이 피를 뿌리며 죽었다고 설명했다.
‘빌어먹을.’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자신을 제외한 부대원이 전멸하는 경험을 해 본 그는 소령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한지 알고 있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로난이 손사래를 쳤다.
“진짜 괜찮으니까 고개 들어요. 나 같아도 정신이 나갔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네메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따위 일을 겪고도 남에게 사과할 생각이 들다니 역시 전 황실 기사단 출신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그녀를 올려보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다른 용건도 있는 거죠?”
“···네. 몸도 편찮아 보이시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날 습격자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습니다.”
“네?”
“빗소리에 흐려져 있었지만 분명히 들었습니다. 잡담이 대부분이었지만 심상찮게 들리는 내용도 종종 들려오더군요.”
그녀가 청력이 뛰어난 웨어라이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메아는 그들이 특정 장소에 대해 언급했다고 말했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다음 행선지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정보였다.
네메아는 자신이 들은 것을 조만간 문서로 작성하여 보내 주겠다고 했다. 파르잔에서 유일하게 살려 놓은 아지에가 로돌란에 호송됐으니 그녀에게서 뽑아낸 정보도 취합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을 마친 그녀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몸조리 잘 하시기를.”
“고생해요.”
두 수인이 방을 나섰다. 자이파는 병문안 선물이랍시고 만년설화 증류주 한 병을 협탁에 놓아 두고 갔다. 여기가 필레온 아카데미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정신 나간 호랑이 같으니.
어쩐지 자이파와는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불현듯 옆에 있던 아데샨이 한숨을 내쉬었다. 로난이 걱정스레 물었다.
“참, 괜찮아요?”
“후우우···이제 많이 좋아졌어.”
아데샨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이파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할 따름이었다. 자이파는 누가 뭐래도 그녀의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으니까.
그와 허물없이 지내는 로난은 자이파가 송곳니의 밤을 일으킨 북부 수인 대연합의 수장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는 했다. 로난은 아데샨이 다시 호흡을 바로잡을 때까지 손을 잡아 주었다. 머지않아 완전히 평정을 되찾은 그녀가 배시시 웃음 지었다.
“응. 이제 진짜로 괜찮아. 손이 더 커졌네.”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오러를 개화했다면서, 어떤 능력이야?”
“어···여기서는 좀 힘들고 나가서 보여줄게요.”
로난이 벽에 기대진 라만차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실내에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감이 있었다. 아데샨이 말했다.
“참. 너희 부원들은 다같이 동아리 활동 나갔어. 아마 내일이면 돌아올 거야. 에르제베트는 여명 마탑에 연수받으러 갔고.”
로난이 없어도 특급 모험 동아리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이번 활동은 인명 피해를 낸 그리폰의 둥지를 견학(습격)하는 것이었다. 로난이 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학생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정신 나간 짓거리였다.
“다들 바쁘게 살아서 좋네요.”
로난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양호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면면이 연달아 들어왔다. 슐리펜과 나비로제, 그리고 이릴. 로난과 눈이 마주친 누이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우리 동생, 드디어 일어났구나!”
“누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응?”
한달음에 달려온 이릴이 로난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뺨에는 이미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거 또 걱정을 끼친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이릴이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슐리펜 님. 동생을 구해줘서.”
“할 일을. 했을 뿐이오.”
슐리펜이 고장난 기계처럼 대답했다. 영문 모를 소리에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구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를 그란 파르잔까지 업고 달린 것이 슐리펜이다. 지금에야 괜찮지만 당시의 네 상태는 조금 심각했지. 전형적인 마나 과부하 현상이 일어나서 열이 펄펄 끓더군.”
나비로제가 치매에 걸린 슐리펜을 대신하여 대답해 주었다. 린의 힘으로 잠재력을 미리 당겨온 로난은 나름대로의 중태에 빠졌었는데, 슐리펜이 한 시간 만에 그를 날라다 주는 덕에 빠른 응급조치가 가능했다는 소리였다. 로난은 몹시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슐리펜을 돌아보았다.
“신세 졌네. 고맙다.”
“무겁더군.”
슐리펜이 툭 내뱉었다. 시선은 여전히 이릴에게 고정되어 있는 채였다. 한결같은 모습에 로난이 피식 웃었다. 나비로제가 모습이 변한 라만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성검이 된 건가.”
“그쵸.”
“대단하군.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건만.”
로난의 말을 들은 그녀가 순수한 감탄을 흘렸다. 나비로제는 알로긴을 포함하여 그날의 생존자가 전원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들은 파르잔에서 벌어졌던 일에 관하여 제법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막 대화가 일단락지어지려는 차였다. 아데샨이 방을 나서려는 나비로제의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저기, 아까부터 여쭙고 싶었는데요···.”
“음?”
“이거···로난 외투 아닌가요? 이걸 왜 교관님이···.”
아데샨이 말꼬리를 끌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에서는 어쩐지 불안함이 느껴졌다. 나비로제가 눈썹을 으쓱였다.
“아하. 이거 말이냐.”
폭류검과의 싸움에서 옷이 찢긴 나비로제를 위해 로난이 준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던 그녀가 별안간 말을 끊었다. 로난과 아데샨을 번갈아서 쳐다보던 나비로제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뭐, 별 거 아니다. 내가 헐벗은 게 가여워서 벗어준 걸 입었을 뿐이니까.”
“네? 허, 헐벗다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그날의 이 녀석은 완전히 짐승이었지. 기운이 넘치는 것이 내 소싯적을 떠오르게 하더구나.”
진실이기는 한데 어딘가 왜곡된 설명이 나비로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데샨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이파를 마주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가쁜 숨을 내쉬던 그녀가 로난을 돌아보았다.
“너···!”
“아니 시발 잠깐만요. 주어를 빼먹는 것도 정도가 있지.”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아데샨의 눈가에는 벌써 물기가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큭큭거리던 나비로제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농담이다 농담.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마. 입학식이 머지않았으니 무리하지 말고 푹 쉬도록.”
나비로제는 그 말을 남긴 채 양호실을 떠났다. 외투는 여전히 벗지 않은 채였다. 그때 외투의 바깥 주머니로 담뱃대의 머리가 삐져나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저것도 돌려받아야 하는데. 로난이 막 몸을 일으키려던 차였다.
“어디 가.”
“선배?”
“안정을 취해야지.”
아데샨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석궁이랑 채찍을 하도 휘둘러 대서 그런가 악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로난은 손짓까지 해 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설마 저따위 말을 믿는 건 아니죠? 본인도 농담이라고 했잖아요.”
“응. 그런데 설명은 들어야 할 것 같아. 조금 상세하게.”
갑자기 담담해진 태도가 오싹했다. 동요로 흔들리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거부한다면 정신 지배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로난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는 성지 파르잔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조목조목 설명해야 했다.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락받은 것은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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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 로난은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거진 한달만에 돌아왔음에도 그의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전속 메이드인 루시 덕이었다. 로난은 시타와 공놀이를 해 주고 있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루시.”
“세상에, 로난 님! 아직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신 거에요?”
“아직 할 일이 많걸랑요. 이거 받아요.”
로난은 루시에게 월급에 가까운 팁을 쥐어준 뒤 방에서 내보냈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가 이런 걸 받을 수는 없다며 쿵쿵 문을 두드렸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젠장,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까 글씨가 개판이구만.”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파르잔에서 벌어졌던 일을 요약해서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전령 역할을 맡은 시타는 고작 오 분 만에 황궁까지 보고서를 전달하고는 돌아왔다. 임무를 마친 시타는 지난 한 달간의 부재를 보상받으려는 듯이 로난의 뺨에다가 맹렬하게 얼굴을 부벼댔다.
“뺘! 뺘아아아!”
“그래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로난은 이제 대형견만해진 시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째 더 커진 것이 조금 있으면 사람도 태우고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답신은 굉장히 빨랐다. 황궁의 칙령만을 전하는 하얀 매는 시타가 돌아온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숙사의 창문을 부리로 두드렸다.
-톡톡. 톡톡톡톡톡.
“거 성격 더럽게 급하네. 기다려 인마.”
로난은 매의 발목에 묶인 편지를 확인했다. 보고서를 확인했고, 조만간 회의의 결과가 나올 테니 푹 쉬고 있으라는 말. 감사와 노고에 대한 치하가 황제의 자필로 적혀 있었다.
화르륵! 칙령을 모두 읽자 마법이 걸린 종이는 저절로 불타서 사라졌다. 턱을 매만지던 로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어쩔 거냐. 네뷸라 클라지에.”
앞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어렵잖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당시에 파르잔에서 살아남은 이들만 보더라도 대륙의 각계각층에서 영향을 미치는 인사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파르잔에서 겪은 해괴망측한 사건을 그대로 이야기해 줄 터였다.
‘본격적으로 세상을 적으로 돌리게 되겠지.’
뤼코포스와 겨뤄본 로난은 확신했다. 아직은 이길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강했지만 국가라는 절대적인 세력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 그들이 전면전에 돌입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강자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가던 이유가 있는 거야’
승산이 있을 때 완전히 기세를 꺾어 놔야 했다. 거인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강림 사태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급한 용무를 마친 로난이 방을 나섰다. 목적지는 크라티르의 집무실이었다.
‘이번 기회에 알려 놔야지.’
크라티르도 당연히 소식을 전해 들었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터였다. 한달만에 돌아온 필레온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봄을 되찾은 학생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다. 화단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싱그럽게 피어 있었다. 파르잔에서 벌어졌던 난장판과 참극은 모두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문득 로난의 시선이 허리춤에서 절그럭거리는 검에 닿았다. 린이 깃든 라만차는 여전히 기묘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검신의 7할 정도가 새하얀 백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 꼭 접을 붙인 나무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칼을 빤히 바라보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린.”
한참을 기다려 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로난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린은 파르잔을 떠난 이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르만에게 육신을 잃은 타격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린이 검 안에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반증하듯 린의 검집은 로난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절묘하게 엉덩이를 두드려 대고 있었다.
‘···이래서 엉덩이에 집착한 거였나.’
왜 그토록 남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다녔는지 알 것만 같았다. 교정을 거닐던 로난이 피식 웃었다. 그는 슬퍼하는 대신 자신이 검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혹시 모른다. 피를 듬뿍 먹이면 기운을 차리고 말을 하게 될지.
‘선배랑 엄청 싸우겠네.’
로난은 린이 다시 몸을 갖췄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늘 하던 것처럼 성희롱한다면 아데샨의 눈이 뒤집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난장판을 상상한 로난이 낄낄거렸다.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거닐던 그는 어느새 교장실의 앞에 도착했다. 그가 막 노크하려던 찰나였다. 닫혀 있던 문이 저절로 열리며 크라티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어쩐지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로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에 들어섰다. 크라티르는 책상 앞에 기립한 채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오랜만일세 로난 군···정말 반갑지만 반기지 못하는 이 늙은이를 용서하게나.”
“뭐야, 무슨 일 있어요?”
“아아···맙소사.”
크라티르는 대답하는 대신 침음을 흘렸다. 손을 떼어내자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근심이 깃들어 있었다.
문득 로난은 크라티르의 손에 웬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멋들어진 진홍색 종이었는데, 황제의 칙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질이 고급스러웠다.
편지를 다시 읽은 크라티르가 휘청거렸다. 그는 책상을 붙잡음으로써 간신히 넘어지는 것을 면했다. 보다 못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젠장,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미안하네...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군. 자네도 알고 있겠지. 이번에 입학하는 학생 중에 레드 드래곤 이타르간드님이 계신다는 걸.”
“알죠. 그게 왜요?”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본인이 데려온 건데 모를 리가 없었다. 종이를 내려놓은 크라티르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모친 되는 분께서 방문하신다는군.”
“···예?”
로난의 눈이 커졌다. 잘못 들은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이 영감쟁이가 결국은 뇌 질환에 걸렸거나.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닥칠 일을 또박또박 발음함으로써 자신의 머리에는 아직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니까, 나바르도제께서 직접 오신다는 말일세.”
“시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크라티르의 태도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불의 어머니 나바르도제. 전생에서 벌어진 강림 사태 당시, 유일하게 죽지 않고 거인을 잡아낸 레드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