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제이거(3)
#203
소녀의 정체는 아셀이었다. 멀리서 본 데다 예쁘장하게 생긴 탓에 그만 여자로 헷갈리고 말았다. 그의 염력이 해제됨과 동시에 수인으로 이루어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억!”
“사, 살려줘!”
비명과 충돌음이 연쇄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들은 짐마차에, 성벽에, 어느 병사가 들고 있는 창끝에 처박히며 불구가 되거나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괴상망측한 폭우를 맞이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흩어졌다. 뒤늦게 그들의 추락을 감지한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히이익! 슬로우 존!”
아셀이 다급하게 주문을 영창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반구형 장막이 인근 공간을 넓게 둘러쌌다. 해당 범위 내에 있던 수인들의 추락 속도가 급격하게 늦춰졌다. 아직 지면에 몸이 닿지 않은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 살았다!”
“이 개자식들. 내려가는 대로···커억!”
물론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푹! 호랑이 경비조장이 던진 창이 안도하던 웨어디어의 가슴을 꿰뚫었다. 울컥이며 터져 나온 핏물 또한 느릿하게 떨어져 내렸다. 새 창을 집어든 경비조장이 도시가 흔들릴 정도의 크기로 소리쳤다.
“절호의 기회다! 호시탐탐 도시를 노리는 제이거의 끄나풀을 모두 죽여라!”
“우와아아아!”
병사들이 뒤따라 환호했다. 그들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느릿하게 낙하하고 있는 제이거의 부하들에게 창칼을 던지거나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버둥거리는 것이 고작인 그들은 병사와 용병들의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캬아악! 쏘, 쏘지 마!”
“항복, 항복하겠다!”
수인들이 자비를 구걸했지만 룬달리안 수비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피의 비가 느릿하게 쏟아졌다. 세상 참신한 학살극을 지켜보던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살다살다 이런 꼴은 또 처음 보네.”
“으응. 그러게.”
아무래도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마르야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로난 일행도 가세에 나섰다.
인간의 것과는 비교하기도 힘든 우렁찬 단말마가 산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로난과 마르야는 각각 세 명을, 아데샨은 다섯 명을 해치웠다.
모든 수인이 바닥에 내려오기까지는 오 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대다수가 내려오는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들은 포로로 사로잡히거나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슬로우 존 마법이 해제되자 허공에 잔류하고 있던 핏방울이 동시에 쏟아졌다. 쏴아아- 붉은 장대비가 사태의 일단락을 알렸다. 로난은 눈으로 스며드는 피를 닦아내며 마르야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후우···당장 구할 수 있는 재고를 확보하러 한철 광산에 들렀는데 갑자기 저 수인들이 습격해 왔어. 혹시 아는 놈들이야?”
“대충은. 알고 싶은 놈들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지만.”
알아듣지 못할 소리에 마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은 제이거와 위태로운 북부의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세크리트의 철수 권고를 전달받은 마르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철수는 좀 곤란한데···지금 상단을 돌리면 너무 손해가 극심해. 운영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용병을 추가로 고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글쎄다. 반군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해서.”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세크리트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북부에서 상단을 끌고 다니는 건 알몸의 미녀가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머릿수에 압도당해 험한 꼴을 당할 터였다.
‘일이 아주 빠르게 마무리된다면 또 모를까.’
로난이 턱을 매만지며 침음을 흘렸다. 카라벨 상단이타격을 입는 것은 그 또한 원치 않는 일이었다. 장차 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조직이기도 하거니와, 마르야는 내 친구였으니까.
그들이 한창 방법을 강구하던 와중이었다. 창고 지붕 위에 있던 아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아무래도 학살이 일단락된 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그는 머지않아 두 사람의 앞에 착지했다. 로난이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셀.”
“아, 안녕 로난. 마르야에 학생회장님까지···여긴 어쩐 일로 온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인마. 니가 왜 여기 있어?”
“그, 그게···그러니까···.”
아셀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로난이 가볍게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화들짝 놀란 아셀이 뒷걸음질치며 외쳤다.
“흐약! 그, 그러니까 수행을 하러 왔어. 응!”
“수행?”
“마, 마녀님이 얼음 마법에 숙달되기 위한 훈련은 눈이 내릴 만큼 추운 환경에서 하는 게 좋다고 하셨거든. 그런데 지금은 여름이고···눈이 내리는 곳은 북부밖에 없어서···.”
아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요컨대 염력에 비해 부족한 얼음 마법을 수행하기 위해서 왔다는 소리였다.
점점 북부로 올라오던 아셀은 불과 한 시간 전에 룬달리안에 도착했고, 소란이 나서 가 보니 웬 도적처럼 보이는 수인들이 인간의 상단을 공격하길래 도와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외투 안주머니에 꽂힌 바쥬라에서 마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이니라!】
큼직한 배낭 짐과 말투로 미루어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살다 보니 별 우연을 다 겪는군. 입속말로 그리 중얼거린 로난이 아셀의 한쪽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래도 인마, 북부로 올 거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같이 왔으면 좋았잖아.”
“미, 미안해애···방학하고 한참 뒤에 정한 일이라···.”
“그렇다고 미안해할 건 없지. 네 덕분에 모두 안 다치고 끝났으니까. 잘했어.”
볼에서 손을 뗀 로난이 아셀의 머리를 부드럽게 헝클어트렸다. 님버튼에서 이 자식을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노력하는 천재. 게다가 고운 심성까지. 답답할 정도로 소심한 것이 옥의 티였지만 그딴 것은 이미 결점도 아니었다. 딱 한 가지 분야에서만 제외하고.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온 마르야가 그를 폭 끌어안았다.
“맞아. 우리 귀염둥이 덕분에 살았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우읍···! 으, 은혜라니. 안 그래도 돼, 마르야.”
두 사람의 모습은 사이가 매우 각별한 동생과 누나 같았다. 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상을 목표로 삼아야 할 아셀에게는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저 등신.’
신세를 진 것에 대해 보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야의 포옹이 끝나기를 기다린 로난이 아셀을 불렀다.
“아셀. 잠깐 나 좀 따라와 봐.”
“으, 으응? 어디 가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이리 와.”
그와 강제로 어깨동무를 한 로난이 걸음을 옮겼다. 점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던 로난은 어느 짐마차 뒤편에 도착해서야 멈춰 섰다.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낀 아셀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로, 로난. 왜 이래?”
“아셀. 잘 들어. 내가 볼 때는 지금이 기회야.”
“기, 기회라니···?”
“귀여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말로 좋아한다면 남자로서 부딪혀야 해. 그리고 내가 볼때는 지금이 그 적기야.”
로난이 아셀의 한쪽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셀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등신아. 마르야 이야기야. 너 걔 좋아하잖아.”
“헉···!”
헛숨을 들이킨 아셀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머리카락 밖으로 드러난 그의 귀가 새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마차 바깥쪽을 힐끔 바라본 로난이 말을 이었다.
“네가 마르야랑 정말 잘 되고 싶으면 이제부터는 이성적인 매력을 보여야 해. 지금의 관계에 만족하고 안도했다가는 지옥을 보게 될 거야. 내 말 알아 들어?”
“지, 지옥이라니?”
“좋아, 예시를 하나 들어 주지. 아주 끔찍한 걸로 말이야. 네가 여느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로 왔는데, 닫혀 있어야 할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거야.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직감한 너는 문틈새로 눈을 가져다대지. 그런데 씨발, 저 안쪽에서 마르야랑 브라움이 키스를 하고 있는 거야. 그것도 혀로 서로의 이빨 건강을 확인해주는 존나게 진한 키스로.”
“그, 그, 그게 무슨···!”
“상상력을 발휘해 봐 아셀. 너는 그 지옥 같은 광경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쳐다보는 거야. 네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두 사람은 계속해서 다음 행동을 이어나가겠지. 귀도 좀 빨아 주고, 목에도 좀 입을 맞춰 주고 하면서. 그리고 손은 점점 아래로···아 시발, 좆같네.”
절망적인 미래를 묘사하던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하필이면 못생긴 브라움이랑 이어 놔서 기분이 더러웠다. 새하얗게 질려 있던 아셀이 울먹거리며 물었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단순한 가정이었음에도 아셀의 심장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브라움이 아닌 로난을 마르야의 상대로 대입해서 머릿속에 그린 것이 더욱 치명타로 작용했다. 지금껏 자신이 봐 온 마르야의 행동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건 정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아셀. 마르야가 다른 놈팡이의 여자가 되어도 좋아?”
“아으···그, 그건 마르야가 결정할 일···.”
“그건 당연한 거고 인마. 나는 지금 네 의사를 묻고 있는 거잖아.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 줘야 정신을 차리겠어?”
“아, 아니! 하지 마!”
아셀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의 이야기가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혼자서 뭐라고 웅얼거리던 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싫어. 절대로, 싫어.”
“좋아 아셀. 바로 그거야. 이제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다시 아셀에게 어깨동무를 건 로난이 뭐라 뭐라 속삭였다. 아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머지않아 이야기를 마친 그들이 마차 앞쪽으로 나섰다. 저 멀리서 마르야와 아데샨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까지 했어요? 솔직히 말해 봐요 언니.”
“어, 어디까지라니···?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흐음, 눈빛만 보면 키스 정도는 했을 거 같은데. 그냥 저 믿고 한 번만 저질러 보라니까요?”
“그, 그런···.”
마르야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데샨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당췌 알아듣지 못할 소리에 로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저렇게 신난 건지.’
여자들도 나름대로의 재미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내 신경을 끈 로난이 아셀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바짝 위축되어 있던 그가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 마, 마, 마르야!”
“응?”
마르야와 아데샨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셀의 얼굴은 이미 자신의 머리카락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색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로난이 뒤에서 칼자루에 손을 얹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간 그가 마르야의 앞에 멈춰섰다.
“무슨 일이야, 귀염둥이?”
“다, 다른 게 아니라 요, 요, 용병을 더 구한다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그게 왜?”’
“그, 그게···그러니까. 그게···.”
마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아셀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 것 같았다. 그는 제자리에서 심호흡만 반복하며 중요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 돼. 역시 나는 여기까지야.’
적당히 둘러대고 돌아서려는 찰나, 조금 전에 로난이 해 주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번득였다. 동아리, 반쯤 열린 문. 다른 사람과 있는 마르야. 상상하는 것만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극. 마침내 심호흡을 멈춘 아셀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켜줄게. 너희 상단과 동행해도 될까?”
“그렇지.”
지켜보던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개미만한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게다가 말까지 더듬지 않다니, 다르만의 목을 베었을 때와 버금가는 희열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눈을 깜빡이던 마르야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우리 귀염둥이가 나를 지켜 주는 거야? 갑자기 왜?”
“후, 훈련은 북부라면 어디서나 할 수 있고···내가 그러고 싶어서! 와,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아니, 충분해. 이거 정말 든든한데?”
별안간 말을 끊으며 들어온 마르야가 아셀의 볼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데샨과 나란히 그 장면을 감상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좀 잘 해보면 좋겠는데. 안 그래요?”
“으응. 그러게. 둘이 정말 잘 어울려.”
“하여튼 저 둘은 눈치 없는 짓 그만하고 얼른 사귀면 좋겠어요. 답답해서 원.”
“눈치···응, 그렇지.”
그의 옆얼굴을 힐긋 쳐다본 아데샨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왜 답답할 때 술을 마시는지 알 것 같았다.
큰 일을 넘긴 로난이 기지개를 켰다. 이제 뭘 해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헤이란까지 가기 전에 제이거 일당의 수뇌부를 치워 버려야 하는데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쳐들어가면 다 도망칠테고, 행적을 모르니 암살도 불가능했다.
“음?”
그때 저 구석에 쇠사슬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수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로로 잡힌 제이거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추락의 고통에 신음하며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제이거 님이 우리를 죽일 거야. 이번에도 실패하다니···.”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부터 해. 조금만 버티면 분명 동료들이 올 거야.”
“아마 조금은 아닐걸. 본부 인원은 거의 다 파견 나갔잖아.”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대화로 미루어 보건데 의외로 본거지가 그리 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문득 한 줄기의 섬광이 로난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긴 그가 입을 열었다.
“선배. 나 좋은 생각 났어요.”
“응?”
“놈들의 본거지로 잡입할 방법 말이에요. 그런데 선배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내 역할이? 뭔데?”
로난은 자신이 계획한 바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과연 그녀가 아니고서야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아데샨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저, 정신을 장악해서 본거지까지 가자고? 우리가 포로로 사로잡혀서?”
“네. 이만큼 확실하게 침투하는 방법도 없잖아요.”
“그야 그렇기는 한데, 너도 알다시피 아직 사람을 조종하기에는 내 능력이···.”
아데샨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난밤에 처음으로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건 갖가지 우연이 겹쳐서 일어난 행운에 불과했다.
하지만 차마 무리일 것 같다는 의견을 표하지는 못했다. 지금껏 로난과 여정을 해 온 그녀는 불가능하다 여겨진 일이 현실이 된 것을 수도 없이 봐 왔다. 조금 전에 말을 더듬지 않는 아셀처럼. 심호흡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해야지.”
“좋아요. 그럼 바로 시작하죠.”
로난은 먼저 웨어타이거 경비조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포로 몇 명에게 생체실험을 해도 되냐는 비인도적인 질문이었다. 로난 일행의 활약상을 지켜본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런 걸로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뒤탈만 안 나게 해 주시오.”
“시원시원해서 좋네요.”
로난이 조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어째 이 호랑이가 제이거보다 강할 것 같았다. 이제 본거지까지 안내해줄 포로를 정할 일만 남아 있었다. 아데샨이 말했다.
“누가 좋을까?”
“음. 아무래도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놈이면 편하겠죠.”
조직에서의 명망이 있을수록 잠입이 용이해질 터였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이 털북숭이들이 순순히 불 지가 의문이었다. 한 명씩 손톱이라도 뽑아 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별안간 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웨어베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주 받아라, 열등하고 더러운 인간들아! 북부는 수인들의 것이다! 이 움카노 백인대장님이 죽어서도 네놈들의 목을 물어뜯을 테다!”
너무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의 이목이 온통 쏠렸다. 로난과 아데샨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다시 움카노라는 놈을 돌아본 그가 픽 웃었다.
“정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