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207화 (207/333)

207. 북부의 왕(1)

#207

더운 피가 솟구쳤다. 몸과 분리된 제이거의 팔다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덮쳐온 격통에 제이거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머지않아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흐, 흐, 흐끄아아악!”

“제, 제이거 님!”

수인들이 털이 곤두섰다. 균형을 잃은 제이거가 자신의 팔다리 위로 엎어졌다.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한 절단면으로 새하얀 뼈가 드러나 보였다. 로난의 성공을 확인한 아데샨이 나지막한 웃음을 흘렸다.

“···역시.”

기력을 바닥까지 쥐어짜낸 탓인지 시야가 흐릿했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하관이 코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닦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곤란하네.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데샨의 머리가 푹 숙여졌다. 동시에 수인들을 억류하고 있던 정신 장악이 풀렸다. 갑작스레 자유를 되찾은 수인들이 소란스레 떠들었다.

“우, 움직인다! 뭐가 어떻게 됐던 거지?”

“저 인간 여자가 한 짓 같아.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잡아, 잡아 죽여!”

몇몇 수인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리한 직감을 타고난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겪은 마비 증세의 주체가 아데샨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무리 중 일부가 그녀를 덮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콱! 로난이 엎어져 있는 제이거의 등을 짓밟았다.

“끄어어억!”

“거기 털뭉치들. 동작 그만.”

제이거의 비명을 들은 수인들이 멈춰섰다. 고개를 돌리자 버둥거리는 제이거와 그의 등에 올라타서 검을 겨누고 있는 로난이 눈에 들어왔다. 붉게 물든 칼끝은 당장에라도 제이거의 목을 썰어 버릴 것 같았다. 움직이는 놈이 없는 것을 확인한 로난이 말을 이었다.

“그 여자한테 털 하나라도 묻혀 봐. 니들 대장 머리를 포도 꼭지처럼 똑 따 버릴 테니까.”

“비, 비겁하다···!”

“오십 명이 달려든 주제에 비겁은 개뿔이. 다들 저쪽 벽에 붙어서 손들고 있어.”

로난은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반대쪽 벽을 가리켰다. 수인들은 머뭇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영 시원찮은 반응을 본 로난이 제이거의 꼬리 끄트머리를 검으로 베었다. 서걱! 엎드려 있던 그의 입에서 다시금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악! 해라! 시키는 대로 해!”

“젠장, 제이거 님···!”

효과는 확실했다. 머뭇거리던 수인들이 하나둘씩 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로난이 시키는 대로 벽에 붙은 채 양팔을 들어올렸다. 바득바득 이를 가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좋아. 그대로 있으라고.”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로난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허튼 짓 하면 바로 검기로 제이거의 머리를 날려 버리겠다고 다시 한 번 경고를 한 뒤 아데샨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굳어 있었다. 아데샨을 한쪽 어깨에 들쳐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요.”

“후후···고마워···.”

아데샨이 속삭이듯 대답했다. 예상 외로 의식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로난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긴 팔다리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그녀가 수치심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무겁지.”

“전혀요. 그런데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요?”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다행히도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은 듯했다. 아데샨을 조심스레 눕혀 놓은 로난은 제이거의 책상 앞으로 이동했다. 아까부터 생각해 둔 탈출 수단 때문이었다.

호화스러운 책상 아래쪽에는 다섯 단으로 구성된 서랍이 하나 놓여 있었다.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던 로난이 손가락을 튕겼다. 공간 이동 마법이 각인된 스크롤 하나가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렇지.”

“그, 그걸 어떻게···!”

제이거가 경악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둔 여분의 공간 이동 스크롤이었다. 로난을 방심시킨 뒤 저걸로 탈출하려 했는데 이렇게 발각당할 줄이야. 스크롤을 챙긴 로난이 낄낄거렸다.

“너 같은 놈들이 생각하는 게 다 뻔하지 뭐. 어디 다른 칸도 볼까?”

“머, 멈춰라. 그 이상 뒤지지 마!”

제이거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했다. 문득 로난은 서랍의 맨 아래칸에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안 마법이 몇 개씩이나 적용된 자물쇠는 어디 은행에서나 쓸 법한 물건이었다.

“뭐야. 뭘 이렇게 꽁꽁 숨겨 놨어?”

“어, 어차피 열쇠를 잃어버려서 못 연다. 거기서 손 떼!”

“난 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로난은 자물쇠 위에 칼날을 올린 뒤 가볍게 잡아당겼다. 각인된 보안 마법이 절단됨과 동시에 자물쇠가 반으로 갈라졌다. 제이거의 턱이 빠질 것처럼 벌어졌다. 이윽고 맨 아래 칸을 확인한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자리몽땅한 말뚝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과거에 로난이 흡혈귀들을 사냥할 때 사용하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째 묻어 나오는 기운이 영 꺼림칙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말뚝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서늘하고 역겨운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말뚝의 정체를 눈치챈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시발.”

굵은 핏줄 하나가 이마에 불거졌다. 자신이 세운 가설 중 하나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함으로서 제이거를 카페트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늘어났다. 제이거.”

로난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제이거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그가 말뚝 하나를 챙겼다.

‘침착해야 해.’

한두 명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 만큼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다시 아데샨을 들쳐멘 로난이 제이거에게 다가갔다.

“너는 나랑 같이 간다.”

“어,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크억!”

로난은 저항하는 제이거의 뒷목을 발뒤꿈치로 내리찍었다. 팔다리가 각각 하나씩 남은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옮겨야 할 것을 확인한 로난이 수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잘 있어라. 털뭉치들.”

로난이 스크롤을 펼쳤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균열처럼 생긴 차원문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거, 거기 서라!”

“제이거 님!”

수인 몇 명이 벽에서 몸을 떼고 달려들었다. 허나 공간의 균열은 이미 세 사람을 삼킨 뒤였다. 머지않아 차원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제이거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만이 남아 적색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

“으음···으윽···.”

신음하던 제이거가 눈을 떴다. 가죽을 이어붙여 만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체된 공기가 그가 있는 곳이 실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 여기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천장의 구조를 보아하니 웬 천막집 같았다. 벽면 한쪽에는 아치형으로 뚫린 입구가 나 있었다. 등 아래에는 부드러운 털가죽이 깔려 있었다. 불현듯 격렬한 통증을 느낀 그가 몸을 움츠렸다.

“으윽?!”

속살을 불로 지지는 것처럼 끔찍한 감각이었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온몸에서 느껴지고 있었는데, 특히 팔다리의 통증이 심각했다. 잠깐, 팔다리라고? 오른팔을 들어 올린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부, 붙어 있어?!”

놀랍게도 잘려나갔던 왼팔과 오른다리가 붙어 있었다. 시험 삼아 힘을 줘 본 손발가락도 이전과 다름없이 움직였다. 혹시 내가 꿈을 꿨던 걸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그가 혼란을 겪던 와중이었다. 뒤쪽에서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냐.”

“커헝! 너, 너희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제이거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가죽옷 차림의 로난과 아데샨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로난이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말을 이었다.

“탈출 지점을 멀리도 지정해 놨더라. 설마 투칸 고원까지 날아올 줄이야. 뭐, 덕분에 바로 추격당할 걱정은 덜었지만.”

제이거의 탈출용 스크롤은 그들을 투칸 고원까지 데려다 놓았다. 말을 타고도 사흘은 걸릴 거리를 건너뛴 셈이었다. 그는 본거지에서 탈출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는 점을 알려 주었다. 제이거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뭐, 뭐냐. 나한테 무슨 짓을, 아니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일단 팔다리 붙여 놓은 것부터 감사해야지 인마. 다시 잘라 주랴?”

담담하면서도 위압적인 말투에 제이거가 헛숨을 들이켰다. 내심 품고 있던 저항 의지가 단박에 사그라졌다. 이 두 인간을 상대로는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그래. 고맙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내 친구가 붙여 줬어. 너 때문에 제도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으니까 감사하라고.”

“친···구?”

영문 모를 소리에 제이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바로 옆에서 웬 기척이 느껴졌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제이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허억···!”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 하나가 선반 위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와 온몸을 덮고 있는 검은 깃털이 더할 나위 없이 불길했다. 눈을 깜빡거리던 시타가 갑자기 네 장의 날개를 확 펼쳤다.

“뺘!”

“끄아아아악!”

다리에 힘이 풀린 제이거가 털가죽 위에 주저앉았다. 시타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거의 어린애만해진 시타를 바라보던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솔직히 팔다리까지 붙일 줄은 몰랐는데. 언제 저렇게 커졌냐.”

“유령마보다 훨씬 빨랐어.”

아데샨도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커진 덩치만큼이나 속도와 회복 능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로난의 부름을 받은 시타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여기 투칸 고원까지 날아왔다. 검의 제전에서 돌아온 이후 어디서나 호출할 수 있는 마도구 발찌를 채워 두기 잘한 것 같았다.

이제 일을 할 시간이었다. 시타를 쓰다듬던 로난이 제이거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좋아, 제이거. 지금부터 질문을 몇 가지 할 건데,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순순히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지, 질문이라니. 뭐 말이냐.”

“우선 첫 번째. 조언자라는 놈의 정체가 뭐야. 자이파냐?”

로난이 질문했다. 제이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입을 벙긋거리며 뭐라 말하려던 그가 이를 악물었다.

“···대답할 수 없다.”

“그렇구만. 팔다리가 전부 잘려도?”

“아무리 협박해도 마찬가지다. 그, 그것만은···말할 수 없어.”

제이거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꼬리가 쳐진 것이 지독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주머니에서 말뚝을 꺼내들었다.

“좋아, 그럼 다른 질문을 할게.”

“그, 그건···!”

집무실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말뚝이었다. 제이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시커먼 말뚝의 표면을 타고 불길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제이거의 눈앞에서 말뚝을 흔들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저주, 너희들이 한 짓이지?”

확신에 찬 말투였다. 과거 여명 마탑에서 저주 연구를 한 로난은 이 말뚝이 저주를 걸기 위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이거의 호흡이 눈에 띄게 가빠졌다.

“허···흐어어···.”

차마 직시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얼굴 곳곳을 찡그리던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머리 하나는 잘 썼어. 북부의 동족들에게 저주를 걸고, 인간의 짓이라 속여서 증오를 부추기다니. 확실히 선동에는 이만한 게 없겠지. 원주민 대다수는 제국에게 탄압받은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

로난의 말투에서는 감탄하는 기색마저 묻어 있었다. 흉악함으로 보나 지략의 효율성으로 보나 악마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제이거를 살려 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절대 이 자식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으니까. 로난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이거, 너 이 저주가 정확히 뭐 하는 저주인지는 알아?”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직접 본 적이 있냐는 소리야. 보고를 통해서 들은 거 말고, 네 눈으로 본 적이 있냐고.”

“아니···직접 본 적은 없다.”

제이거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조언자의 말에 따라 저주의 말뚝을 곳곳에 박으라고 명령만 했을 뿐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로난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 줄 알았어.”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갑자기 로난이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제이거는 또다시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문을 시작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난은 천막의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입가에 손을 말아 가져다댄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들! 제이거 님이 깨어났어요!”

“뭐?”

로난의 목소리가 천막 안에서 메아리쳤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우르르 몰려드는 웨어울프들의 모습에 제이거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제이거 님. 일어나셨군요.”

“아아···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이, 이 자들은?”

열댓 마리의 웨어울프가 제이거를 둘러쌌다. 하나같이 행색이 꼬질꼬질한 것이 투칸 고원에 사는 원주민들 같았다. 로난이 말했다.

“이야기 나눠. 대화가 끝나고도 별 생각이 안 들면 그냥 보내줄게.”

“잠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

제이거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로난과 아데샨은 그를 무시한 채 밖으로 나갔다. 회백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과 그 아래 자리한 원주민 부족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형으로 태어난 웨어울프 두세 마리가 침을 뚝뚝 흘리며 눈송이 섞인 바람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데샨이 입을 열었다.

“잘 될까.”

“그러기를 바래야죠.”

로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투칸 고원에 자리한 웨어울프 부족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증오하지만 제이거를 구했다는 거짓말을 해서 어찌어찌 들어올 수 있었다.

“뺘아~”

하늘에서는 시타가 빙글빙글 선회하며 제이거가 들어가 있는 천막집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룬달리안에서 새로 산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새하얀 연기가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제이거 님. 저 인간들이 구해줬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실제로 뵙게 되서 영광일 따름입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괘, 괜찮다. 그래, 너희가 나를 돌봐 줬구나.”

제이거가 땀을 뻘뻘 흐릴며 손사래를 쳤다. 원주민들은 직접 만든 음식과 옷가지를 가져오며 제이거를  대접했다. 그들이 건넨 육포를 반강제로 뜯어먹던 제이거가 귀를 쫑긋거렸다.

‘이거 잘 하면 도망칠 수도 있겠는데···?’

원주민으로 보이는 웨어울프들은 하나같이 열렬한 그의 추종자였다. 본성에 있는 친위대보다 충성심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이런 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인간들을 내심 비웃던 찰나였다. 포대기를 감싸안은 웨어울프 소년 하나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제이거 님. 혹시 제 동생을 고쳐 주실 수 있나요?”

“음? 동생?”

“네. 이것 보세요, 저번 주에 태어났어요.”

“허억···!”

소년이 포대기를 들췄다. 제이거는 저도 모르게 기겁하며 물러섰다. 포대기 안에 들어있는 것은 차마 웨어울프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괴물이었다.

팔다리의 관절은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고, 이마 한구석에는 눈이 하나 더 달려 있었다. 송곳니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입에서는 기괴한 신음이 새나오고 있었다. 소년이 동생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런데 많이 아파요. 옆집 아주머니네 아기도 팔이 하나 더 달린 채 나왔어요. 근래 태어나는 아기들은 거의 다 죽거나 이상하게 태어나요.”

“언제부터···그런 일이 벌어졌지?”

“일 년 정도 전이에요.”

제이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 년 전이라면 정확히 그가 조언자의 말에 따라 북부 곳곳에 자주 말뚝을 박으라 지시하던 시기였다.

그의 시선은 소년의 품속에서 꼬물거리는 기형아 웨어울프에게 머물러 있었다. 보고받은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모습이었다. 조언자도 분명 가벼운 장애만 앓게 될 거라고 말했었는데. 사정 있는 원주민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저희 누나도 얼마 전에 병에 걸렸어요. 주술사 할아버지가 아무리 기도를 드려 봐도 낫지 않아요. 이대로라면 곧 죽을 거에요.”

“엊그제 저희 아들이 나준 산맥으로 자원 입대를 하러 갔습니다. 송곳니의 밤만 기다리고 있어요. 부디 원하는 만큼 쉬다가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제이거 님. 얼른 사악한 인간들을 물리쳐 주세요. 여기 제 보물도 드릴게요.”

어느 웨어울프 소녀가 그에게 인형 하나를 내밀었다. 털을 모아서 만든 지독히도 못생긴 웨어울프 인형이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제이거가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손을 떼는 순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화들짝 놀란 웨어울프들이 가까이 몰려들었다.

“제이거 님! 괜찮으세요?!”

“으, 음식이 잘못됐었나? 제이거 님!”

그들이 뭐라 뭐라 외쳤지만 제이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말뚝을 박으라 명령하던 기억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저주가 내려진 부족은 그가 알기로만 백 개가 넘었다. 결국에는 속을 한 번 게워낸 제이거가 입을 열었다.

“나, 나는···.”

.

.

.

“로난, 질문 하나만 해도 돼?”

“뭔데요?”

“비인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정신 장악을 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어? 정보를 얻을 목적이었으면 이게 훨씬 편했을 텐데.”

아데샨이 말했다. 제이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문하거나 정신 장악으로 원하는 정보를 캐낼 수 있었지만 로난은 그러지 않았다.

“별 건 없고, 아주 글러먹은 새끼는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줄담배를 태우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제이거가 말뚝이 들어간 서랍을 보지 못하게 하려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족에게 저주를 건 행위에 대한 죄책감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로난은 거기서 갱생의 가능성을 보았다. 사실 정보를 캐내고 쓱싹 죽여버리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북부는 한동안 혼란에 빠질 터였다. 제이거가 야욕을 버리고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반발도 훨씬 덜할 터였다. 담뱃재를 털어낸 로난이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그리고 눈은 그냥 하얄 때가 제일 예쁘잖아요.”

피와 눈물로 젖은 눈은 아름답지 않았다. 설원의 아름다움은 티 없는 백색에서 우러나오는 법이었다. 그가 아데샨을 돌아보며 말했다.

“슬슬 들어갈까요.”

“응.”

로난과 아데샨은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들을 떠난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다행히도 별다른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민들이 떠난 천막 안에는 제이거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멍하니 벽에 기대고 있는 그의 모습은 꼭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다.

“그래. 느낀 바가 좀 있으셨나.”

제이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간 채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없으면 뭐 약속대로 해야지. 돌아가도 좋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로 등을 돌려 걸어가는 로난의 모습에 아데샨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가 다시 천막을 나가려던 차였다. 뒤쪽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라.”

그 자리에 멈춰선 로난이 몸을 돌렸다. 제이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꼬리로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하얀 털이 부슬부슬한 손에는 원주민 꼬마가 준 인형이 쥐어져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놈의 이름은 바르카. 바르카 터르겅이다. 자이파 님의 형제이자···송곳니의 밤을 계획한 실질적인 주모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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