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215화 (215/333)

215. 북부의 왕(9)

#215

아데샨이 내면의 기척을 최초로 느낀 것은 2년 전이었다. 로난과 처음 만났던 날이기도 해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비로제에게 당해 정신을 잃은 그를 간호하던 와중에 갑자기 두통이 발생했다. 빠르게 가라앉아서 망정이지,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한 고통이었다.

어쨌든 아데샨은 두통이 사라진 뒤부터 자신의 머릿속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만 느껴지는 그 ‘누군가’는 종종 아데샨에게 말을 건넸지만, 지금까지는 너무 목소리가 작아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 조금만 더.】

헌데 그것이 알아들을 수준의 크기가 되었다. 차분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아데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엥? 왜 그래요?”

“아, 아니야. 잠깐만.”

로난이 물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상황을 얼버무렸다. 다시금 아데샨의 내면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정을 억누르지 마라.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거다.】

[다, 당신은 누구죠? 왜 제 머릿속에 있는 거죠?]

【침착해라 아데샨. 시간이 머지않았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아데샨이 전음으로 질문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던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뭐지?’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장군 시절의 기세가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는 달리 어깨 위로 피어나는 마나는 여느 때보다 격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횃불에 늘어난 그녀의 그림자가 전생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털썩. 무언가에 홀린 듯이 허공을 응시하던 아데샨이 다시 주저앉았다.

“괜찮은 거 맞아요?”

“으응···금방 따라갈 테니까 먼저 쫓아가. 놓치면 안 되니까···.”

상처는 나았지만 아직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아데샨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혈계침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맞잡고 있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놓을게요.”

“부탁해.”

아데샨이 힘없는 웃음을 흘렸다. 건네받은 혈계침은 정확히 바르카가 나간 쪽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로난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침침한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비상 탈출용으로 만들어진 샛길 같았다. 쇠뇌에 맞아 생긴 핏자국이 그가 걸어간 궤적을 표시해 주고 있었다.

‘느껴져. 멀리는 못 갔다.’

혈계침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르카는 아직 이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좁고 기다란 공간 속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로는 그다지 길지 않아 금새 끝이 보였다. 저 멀리 종착점에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이미 열려 있는 석문을 벗어나는 순간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찬바람이 훅 밀려왔다.

예상대로 통로는 은신처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등 뒤로는 배의 거대한 밑바닥이 드리워 있었다. 지하를 통해 선박을 위아래로 가로지른 셈이었다. 망령 깃든 바다 특유의 드넓은 얼음 평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으음?”

별안간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아래로 거무튀튀한 덩어리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불규칙한 간격으로 늘어선 것이 빵에 박힌 건포도를 연상케 했다. 느낌이 심상치 않은 것이 바위 같은 건 아니었다. 그것이 전부 수인의 시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시발.”

실로 기괴한 광경에 로난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구는 되어 보였다. 설마 시체들을 냉동 보관하기 위해 여기 망령의 바다에 자리를 잡은 건가?

“기분 나쁜 새끼···.”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까면 깔수록 좆같은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 꼭 지옥에서 자생하는 양파 같았다.

이 많은 것을 무슨 방법으로 모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바르카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차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아라단마저 쓰러뜨린 건가···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엉?”

로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르카와 마주친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바르카는 열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너.”

“걱정하지 마라. 남아 있는 스크롤도 없고, 어차피 그 계집이 쏜 쇠뇌 탓에 멀리 가지도 못 하니까···평범한 화살이 아니더군.”

바르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그의 오른쪽 허벅지에는 쇠뇌 하나가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부어오른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이라도 바른 모양이었다. 바르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라단을 해치운 건 아니지. 놈은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결코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없으니까. 천 조각이 나도 살아나는 것이 나의 걸작 아라단 터르겅이다.”

“이 씨발새끼.”

한순간 로난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오러를 발동할 필요도 없었다. 쾅!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힌 로난이 바르카의 앞에 착지했다.

이 간격이면 어떤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벨 수 있었다. 그가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으르렁거렸다.

“남길 말은 그게 다냐?”

“아직 남아 있다. 우리 협상을 하는 게 어떤가.”

“협상?

“그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

바르카의 입가에는 다소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이따위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지껄여 봐.”

“좋아. 내가 원하는 것은 여기서 나를 그냥 보내 주는 거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주지. 내 은신처도 태우든지 제국에게 넘기든지 알아서 해라.”

“목숨 구걸이었나. 그럼 너는 뭘 내놓을 수 있지?”

“북부 전역에 내린 저주를 풀고 아라단을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해 주겠다. 네뷸라 클라지에와 관련된 정보도 아는 대로 말해 주지. 이래뵈도 나는 북부 교구의 주교고, 이 멍청한 집단에서도 탈퇴할 예정이니까.”

마지막 조건을 들은 로난이 흠칫거렸다. 워낙에 개새끼인 탓에 이 자식이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있었다. 턱을 매만지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거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닌데.”

“후후···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잠시 저쪽을 보겠나?”

히죽 웃은 바르카가 북쪽으로 눈짓했다. 거센 바람이 시체가 박혀 있는 얼음 평원을 쓰다듬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소리를 감지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르륵.”

“끼에에엑···!”

바람결에 묻어나는 괴성이 익숙했다. 로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가 난 방향을 살폈다. 1km쯤 떨어진 곳에서 수인들의 시체가 얼음을 깨부수며 일어나고 있었다. 로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거 설마···.”

“그래. 은신처에 들어오면서부터 제어를 해제했지. 내일 밤이면 여기 있는 모든 시체가 얼음을 부수며 깨어날 거다. 그들은 내 명령에 따라 북부를 지옥을 만들 수도, 아니면 얌전히 다시 잠이나 청할 수도 있겠지.”

바르카는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시체의 수가 일만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모두 자신의 강화 시술을 거친 정예병이라는 사실도. 언젠가 제국을 완전히 갈아엎을 때 사용할 병력이었다.

“게다가 지금 북부 전역에 걸어 놓은 저주는 네놈들의 능력으로는 절대 해주할 수 없는 저주다. 단순해 보이지만 개조하는 데만 십 년을 넘게 투자한 거거든. 내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모든 저주를 폭주시킬 생각이다.”

바르카는 아예 양 팔까지 벌려 가며 말하고 있었다. 하는 짓거리가 꼭 마지막 순간에 악당에게 한 방을 먹인 지능형 주인공 같았다. 그가 웃음기 섞인 질문으로 말을 맺었다.

“어때, 이 정도면 거부하지 못할 제안 아닌가?”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과연 거부하지 못할 제안이라 주둥이를 나불거릴 자격이 있었다. 지금까지 바르카가 보여준 능력으로 추측하건데 허언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는 거다. 북부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면 우매한 나의 동포들은 너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겠지.”

달콤하게 유혹하는 바르카의 목소리에서는 흥겨움마저 느껴졌다.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좋아, 결정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로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으음···좆까.”

“뭐?”

바르카의 눈이 커졌다.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촤아악! 한순간 사라졌던 라만차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의 몸통과 팔다리가 깔끔하게 분리되었다.

“크악! 크아아아아!!”

뭐라고 항변할 틈도 없었다. 오뚜기가 된 바르카가 바닥에 뒹굴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망령의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내, 내 말을 못 들은 거냐! 내가 죽으면 여기 있는 시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만 명의 병사를 모두 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까짓꺼 해보지 뭐.”

“저, 저주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나를 죽인다고 사라지지 않아! 수십···아니, 수백만의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 넣을 셈인가!”

“그건 그 치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로난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바르카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이, 이런 빌어먹을···!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네놈 때문에 북부는 멸망할 것이다!”

버둥거리던 그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바르카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나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하수구의 폐수처럼 구역질 나는 기운은 망령의 바다를 넘어 지평선까지 퍼져 나갔다. 로난이 그의 목에 칼 끝을 겨누며 말했다.

“그냥 지금 멈춰. 최소한 고통 없이 죽여줄 테니까.”

“이미 늦었어. 어찌어찌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네놈을 기다리는 것은 지옥일 뿐이다!”

얼음 깨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시체들이 일어나는 소리였다. 머리를 한 번 긁적거린 로난이 칼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원시적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아무리 고문해도 달라지는 것 없을 거다!”

바르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주문을 자신에게 걸었다고 설명했다. 굉장히 추잡한 싸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낀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양 눈을 뽑고 로돌란으로 데려가야 하나. 그가 이송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다.

“로난. 기다려.”

“···아데샨?”

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연구실을 빠져나온 아데샨이 여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꼭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녀가 바르카의 앞에 멈춰 섰다. 아데샨을 올려다본 바르카가 코웃음을 쳤다.

“하, 그 괴상한 술법으로 내 정신을 건드려 볼 생각인가? 그게 안 통하는 건 이미 확인했을 텐데?”

“응. 아까는 그랬지.”

“우습군. 지금은 또 된다는 건가? 그런 덜떨어진 놈들이나 걸리는···”

바르카가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갑자기 무릎을 굽힌 아데샨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한순간 바르카의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허억···!”

지켜보던 로난이 흠칫거리며 물러섰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렬해진 그림자의 마나가 아데샨의 어깨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원래 성장 속도가 빠르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급진적이었다. 다인하르에서 슐리펜이 오러를 각성하던 순간을 연상케 했다.

“걸리는···걸리는···걸리는···.”

바르카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눈은 이미 먹구름이 낀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정신 장악이 제대로 먹혔음을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가만히 그를 노려보던 아데샨이 입을 열었다.

“바르카. 네가 퍼뜨린 저주를 전부 해제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말투를 비롯한 태도 전반이 귀부인을 대하는 농노처럼 정중해져 있었다.

그가 뭐라 웅얼거림과 동시에 마나의 파장이 다시 한 번 지평선 너머로 퍼져 나갔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파장에서는 아까와는 달리 맑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맙소사.”

본능적으로 저주가 사라졌음을 직감한 로난이 감탄성을 흘렸다. 이 정도면 거의 전생과 비견되는 장악 능력이었다. 아데샨이 말을 이었다.

“바르카. 시체를 일으키는 것을 멈춰.”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이미 일어난 시체들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상관없어.”

고개를 주억거린 바르카가 다시 뭐라 웅얼거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던 얼음 깨지는 소리가 확 잦아들었다. 이미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시체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활동을 멈춘 것 같았다.

아데샨은 그 뒤로도 몇 가지를 더 요구했다. 캐낼 수 있는 정보를 캐내고, 아라단을 속박하고 있는 저주를 풀어 달라 요구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르카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요구 사항에 응했다. 네뷸라 클라지에와 관련하여 충격적인 정보가 몇 개 나왔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기에 반응할 새는 없었다. 마침내 문답을 마친 아데샨이 바르카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냈다.

“바르카. 이제 눈을 뜨고 나를 봐.”

“그렇게 하겠습니다···허어억?!”

바르카의 목소리에서 나른함이 사라졌다. 제정신을 차린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지,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바르카. 마지막 기회를 줄게. 지금까지 네가 저지른 악행으로 고통받은 이들에게 사과해.”

“웃기지 마라, 빌어먹을 벌레야! 내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당장 말하지 못해!”

바르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정신을 장악당한 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물론 팔다리가 잘려 있었기에 전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를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보던 아데샨이 로난에게 말했다.

“로난. 나랑 약속했던 거, 기억나?”

“약속···? 아.”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얼음굴에서 했던 약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로난은 바르카를 죽일 권리를 양도하겠다고 말했었다.

“기억나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고마워.”

아데샨이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 속에 엇비치는 달빛처럼 스쳐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했다. 다시 정색한 그녀가 바르카를 내려보았다.

“뭐, 뭐야···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가라앉은 눈빛은 마주치는 것만으로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낀 바르카가 버둥거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아데샨이 입을 열었다.

“바르카. 지금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숨을 쉬면 안 돼.”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냐. 내가 왜 그런 말에···허억.”

바르카의 말문이 틀어막혔다. 어째서인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목구멍이 물 한 방울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넓이로 닫혀 버린 것 같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난이 낄낄거렸다.

“비루해서 마음에 드네요. 사지를 찢어버리는 것보다 나은 것 같기도.”

“고민했어. 원래는 신체 구조상 불가능하지만, 이 능력이면 가능할 것 같아서···.”

아데샨이 주억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바르카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잿빛 눈동자가 하얗게 질려 죽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네가 이뤄낸 건 전부 사라질 거야. 지옥이 있다면 네 영혼은 틀림없이 거기서 불타겠지.”

“커억···! 커어어억!”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너는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한 채 죽는 거야. 마지막까지 왕 비슷한 것도 되어 보지 못한 채.”

“카아아아악! 컥, 커헉!”

바르카는 팔다리 없는 몸뚱이를 뒤틀어 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죽어가는 그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데샨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평화를 되찾은 북부에서는 다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질 거야.”

“······!”

오 분 정도가 지나자 움직임이 멎었다. 숨이 끊어진 바르카의 얼굴은 완연한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슬렁거리며 다가간 로난이 목을 짚었다. 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갔어요. 완전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