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253화 (253/333)

253. 강림(1)

#253

새벽 공기가 무거웠다. 이질적인 기류가 부서진 벽면 내부로 흘러들고 있었다. 하늘에 수놓아진 별무리마저 평소와는 어딘가 다른 기괴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관절이 쿡쿡 쑤시는 것이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막연한 불길함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서 퍼덕이고 있는 용왕과 그 부하들이 현재 상황에 집중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용왕과 그의 부하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를 산 채로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던 놈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용왕은 하늘 한복판에서 날갯짓만 하고 있었고, 수하들은 배고픈 까마귀처럼 그의 주변을 멤돌고 있었다. 다만 허튼수작을 부리려고 한다면 즉시 공격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르세는 다친 몸을 그대로 뉘인 채 기력을 회복하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로난이 아셀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그 여자가 왜 너희랑 같이 있는 거야? 상처는 어떻게 된 거고?”

“도, 도중에 갑자기 합류했어. 광선에 맞아서 날개 한쪽이 날아가는 부상을 입었고.”

“광선? 저 삼대가리의 브레스를 말하는 거야?”

“으, 으응.”

아셀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로난과 슐리펜이 뛰어내린 이후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나란소니아의 하극상 소식을 들은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용왕을 공격했다고? 이 여자는 삼대가리의 오른팔 아니었냐?”

“나,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그런데 용왕이 이상해진 건 맞는 것 같아.”

아셀은 나란소니아가 다른 사람처럼 변해 가는 자신의 주군을 제지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같은 뜻으로 그녀를 따르는 드래곤이 스무 마리 정도 있었는데, 나란소니아와 함께 용왕을 제지하다가 모조리 살해당했다고 했다. 자신의 주군이 내뿜는 광선에 맞아서.

“완전히 돌아 버렸군.”

로난이 혀를 쯧쯧 찼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그 지경까지 갔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나란소니아의 시도가 끝내 성공했는지에 대해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산호처럼 색을 잃어가는 용왕의 모습이 절망적인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룡 오르세마저도 그를 꺾지 못했다. 용왕과 싸우던 기억을 되짚던 아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리고 용왕은 너무 강해···갈수록 강해지고 있어. 우, 우리는 다 죽을 거야···.”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널 잡아먹겠다. 마법사.】

“히에에엑···!”

오르세의 협박을 들은 아셀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러니 저러니 싸우는 도중에 좀 친해진 것 같았다. 불현듯 침묵을 지키던 용왕이 입을 열었다.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

【너희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말이지. 나바르도제와 그 자식의 심복을 인질로 삼는다면 전략적인 측면에서 제법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세 번째 머리가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물고기 취급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칼자루를 움켜쥔 로난이 턱을 쳐들며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나오셨나?”

【그래.】

세 번째 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형으로 지껄이는 걸로 봐서 다음으로 할 말을 대충 알 것 같았다.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로난과 아셀, 슐리펜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역시 너희는, 쓸모가 없을 것 같군.】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시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동시에 용왕의 세 입이 벌어졌다. 고오오···! 시뻘건 목구멍 안쪽에서 빛나는 덩어리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검기로 베면서 돌파할 거니까 착 붙어서 따라와.”

로난이 말했다. 준비를 마친 그가 막 앞으로 치고 나가려는 차였다. 콰아아아앙! 병자처럼 웅크리고 있던 오르세의 몸이 용왕을 향해 쏘아졌다.

【네 멋대로 될 것 같으냐!】

“오르세?!”

일행의 눈이 커졌다. 네 장의 날개를 모두 접은 채 쇄도하는 오르세의 모습은 검은 작살을 연상케 했다. 나란소니아와는 달리 아직 그의 등에 타 있던 아셀이 비명을 내질렀다.

“히야아아악!”

가공할 속도였다. 하지만 상대 측에서도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것 같았다. 용왕의 주변을 선회하던 드래곤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브레스를 발사했다.

【포기해라!】

화염과 벼락을, 눈보라를, 독과 으깨진 바위를 담은 숨결이 오르세를 향해 쏟아졌다. 블링크로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브, 블리자드 아머!”

그때 아셀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주문을 영창했다. 촤아악! 오르세의 몸 위로 두터운 얼음 갑옷이 자라났다. 머리부터 꼬리까지를 완전히 덮는 갑옷에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나 있었다.

【그거다. 마법사.】

“사, 사람 살려어!!”

오르세가 웃었다. 그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드래곤들을 향해 돌진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위협을 느낀 용들이 후퇴하려 했지만, 오르세는 이미 그들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룡이 드래곤의 벽에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퍼억-! 급진적인 파열음과 함께 공중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다. 찢겨나간 날개나 다리, 내장을 비롯한 신체 부위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커어어억!】

【나, 날개가···!】

【놈을 막아라-!!】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르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불구가 된 드래곤들이 낙엽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왕에게까지 닿기에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저 힘만 센 멍청이가···!”

로난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아무리 오르세라도 저 양은 한번에 감당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시선을 분산시켜 줘야 했다.

곰곰히 생각하던 로난이 슐리펜에게 눈짓했다. 어차피 의식을 막지 못한 이후로 계획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저 새끼의 바람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슐리펜은 로난의 정신병자 같은 제안을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시선을 교환한 그들이 하늘탑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후우웅! 두 사람이 속절없이 추락하던 와중이었다. 위쪽으로 몸을 뒤집은 로난이 손을 말아 입가에 가져다댄 채 외쳤다.

“이쪽이다! 치매 걸린 도마뱀들아!”

【음?】

몇몇 드래곤이 시선을 내렸다. 칼을 뽑아든 로난이 오러를 발동했다. 파아아···! 노을빛이 허공을 수놓음과 동시에 제자리에서 날갯짓하던 그린 드래곤 한 마리가 그의 눈앞까지 끌려왔다.

【뭐야, 이게 무슨···.】

그린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추락하던 로난과 슐리펜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각각 한 번씩 그어진 검격이 드래곤의 목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서걱! 몸통에 비해 길고 가는 머리가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터져 나온 핏물이 두 사람의 얼굴을 적셨다. 그 광경을 본 드래곤 중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에도 있다! 잡아라!】

오르세에게 달려들던 드래곤 일부가 로난과 슐리펜을 향해 강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포위망을 돌파한 오르세가 용왕과 격돌했다. 두 거룡이 내지르는 포효가 아드렌을 흔들었다.

사태가 종식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오르세와의 전투는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아침을 향해 달려가는 하늘은 어슴푸레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용왕은 폐허가 된 도시 위에 서 있었다. 불타고 짓이겨진 건물 아래로 사람들의 비명과 곡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별안간 인간 종복 한 명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폐, 폐하···! 제발 도와주십시오. 갑자기, 갑자기 하늘에서 광선이 떨어지더니 도시가···.”

그는 용왕의 뒷다리를 짚은 채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토로했다. 한밤중에 굉음이 울려 퍼지나 싶더니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잘려나간 다리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도시가···아아···.”

털썩. 말을 잇던 사내가 잔해 위에 쓰러졌다. 몇 차례 움찔거리던 몸뚱어리가 축 늘어졌다. 치이익···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잔불을 꺼트렸다.

【크으으으···.】

사내의 죽음을 확인한 두 머리가 침음을 흘렸다. 유이하게 백색으로 물들지 않은 부위였다.

이것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죽은 백성을 본 것이 세 자릿수를 넘었다.

【원하는 대로 힘을 얻었는데, 왜 그러는 거지?】

그 모습을 본 세 번째 머리가 질문을 던졌다. 비꼬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투였다.

【아드렌은 짐의 왕국이다. 세상의 어느 왕도-】

【본인이 다스리는 나라를 이렇게 파괴하지는 않아!】

한참이나 이빨을 바득거리던 두 개의 머리가 노성을 터트렸다. 애착과 탐욕, 왕관을 쓴 이의 자긍심이 그를 분노케 하고 있었다.

【짐이 원하는 건 나바르도제를 꺾는 것이지, 이런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런 건···!】

마구잡이로 쏘아지는 브레스와 광역 마법은 아드렌을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어느 순간부터 몸의 통제권을 빼앗은 세 번째 머리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세 번째 머리는 오르세를 제압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시끄럽다.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야. 남아 있는 쥐새끼들을 정리하는 대로 불의 어머니와 전쟁을 개시할 테니 잠자코 있어라.】

로난과 슐리펜은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어차피 수하들이 열심히 뒤쫓고 있으니 시간문제에 불과했지만.

문득 시선을 올린 세 번째 머리가 조소를 날렸다.

【여기가 네 한계다. 마룡.】

【빌어먹을···.】

오르세가 힘없이 으르렁거렸다. 그는 거대한 구체 안에 머리와 몸통 일부만 빼놓은 채 구속되어 있었다. 구체를 구성하는 것은 온갖 식물의 덩쿨과 금속, 바위 같은 단단한 물질이었다.

오르세는 정말로 열심히 싸웠다. 한 시간동안 죽인 드래곤의 수만 백을 넘겼으니 말을 다 한 셈이었다. 동족의 살을 찢어발기며 노호하는 그의 모습은 실로 마룡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기운 승기를 뒤집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용왕은 일종의 세뇌 마법까지 사용해 가며 부하들을 다뤘고, 아드렌에 거주하는 드래곤의 수는 오르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네뷸라 클라지에의 의식을 마친 용왕은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었다. 결국 힘을 모두 소진하고 추락한 오르세는 여기 아드렌의 한복판에 산 채로 봉인 당하고 말았다. 눈동자를 뒤로 굴린 오르세가 아셀에게 말했다.

【도망쳐라. 마법사.】

“어, 어떻게 제가 그런···! 일어나야 해요!”

아셀은 오르세의 목과 몸통이 이어지는 부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다행히도 구조상 공간이 남아서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탈출할 수 있었다. 오르세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늦었다.】

【잘 알고 있구나.】

불현듯 세 번째 머리의 아가리가 쫙 벌어졌다. 일대의 마나가 모여들며 그의 목구멍 안쪽에 작은 태양 하나가 피어났다. 지겹도록 보아온, 닿은 모든 것을 재로 돌려버리는 광선 공격이었다.

【패배자의 최후란 그런 것이지. 나바르도제에게는 내가 안부를 전해 주마.】

세 번째 머리가 조소하듯 말했다. 오르세가 픽 웃었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입속의 태양이 뭉그러지며 광선의 형태로 쏘아지려는 차였다. 울먹거리던 아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

갑자기, 하늘이 밝아졌다.

【으음?】

용왕의 세 머리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드렌 전체를 삼키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수십 겹의 동심원 안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문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폐하께서 발동한 마법인가?”

고통에 신음하던 생존자들이 고개를 들었다. 마법진 너머의 하늘은 당장에라도 뇌우를 쏟아낼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세 번째 머리가 목을 쳐들었다. 마법진의 중심이 천천히 벌어지며 무언가 하얀 것이 내려오고 있었다.

【···인간?】

구름 아래로 드러난 다리는 틀림없는 인간의 것이었다. 다만 덩치가 몇 배 정도 거대했다.

저게 뭐지? 세 번째 머리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는 차였다. 밤하늘을 흐르던 구름이 단번에 흩어지며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화아아악! 마법진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광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바람이···!】

곳곳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비행하던 드래곤들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아예 튕겨 나가 하늘탑에 처박힌 이도 속출하고 있었다.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팔을 휘두를 때마다 도시 곳곳에 솟은 첨탑들이 하나둘씩 부러지고 있었다. 바깥에 나와 있던 행인들은 가로수나 우체통을 붙잡으며 버티고 있었다.

【큭···!】

태산 같은 덩치와 무게를 자랑하는 용왕에게도 몹시 거슬리는 강풍이었다. 가까스로 바람을 이겨낸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다리의 주인이 어느새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지?】

세 번째 머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새하얗고 거대한 인간, 등에 두 쌍의 날개를 단 인간이 마법진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군.’

저것이 뭐 하는 존재인지 알 수는 없었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린 세 번째 머리가 머금고 있던 브레스를 거인에게 발사했다.

【썩 꺼져라!】

콰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빛의 급류가 목표물에 적중했다. 산이 뿌리째 뽑혀나가는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쪽 하늘을 완전히 빛으로 뒤덮어 버릴 정도의 폭발이 작렬했다. 곧이어 몇 초가 지나고, 거인을 가리고 있던 연기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뭣이···!】

용왕의 얼굴이 굳었다. 정체불명의 거인은 상처 하나 없이 건재했다. 그의 몸을 감싼 구형의 역장이 기괴한 색채를 뿌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아마도 광선은 저기에 막힌 것 같았다.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에 당황한 용왕이 곧바로 두 번째 브레스를 준비했다.

주변 풍경을 천천히 둘러보던 거인이 팔을 뻗었다. 펼쳐진 그의 손바닥 가운에로 빛의 입자가 모여들고 있었다.

【저건?】

오르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잡혔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정체불명의 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지않아 본인의 신장보다 다섯 배는 기다란 장창이 거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자, 잠깐만요···저거 뭔가···.”

본능적인 불길함을 감지한 아셀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쉭! 거인의 오른팔이 한순간 사라졌다. 직선으로 뻗어 나간 한 줄기의 섬전이 아드렌을 가로질렀다.

푹! 빛으로 이루어진 장창은 용왕도, 오르세도 아닌 하늘탑의 한복판에 처박혔다. 화려한 연출과는 달리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용왕과 오르세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해하는 차였다. 콰아아아아앙-!!  벽면 깊숙이 박힌 장창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천 개의 벼락이 동시에 내려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용왕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비현실적인 에너지의 팽창은 외벽을 모조리 날려 버린 것으로 모자라 뼈대에도 극심한 손상을 주었다. 쿠구구구···세상이 종말하던 날까지도 버틸 것 같은 하늘 위의 고탑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하, 하늘탑이 무너진다!”

곳곳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가 달과 별을 삼키고 있었다.

『두아루가 형을 집행한다.』

용암이 흐르는 동굴처럼 깊고 낮은 목소리가 아드렌의 상공에 울려 퍼졌다. 다시금 모여드는 빛의 입자가 거인의 손에 새로운 창을 쥐여 주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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