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320화 (320/333)

< 외전4. 꿈을 마시는 새(3) >

#A4

“동물을 사람으로 폴리모프 시키는 마법입니다.”

“설마 그걸 지금 쓰실 생각인가요?”

바렌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 서 있던 발루스가 당혹성을 내뱉었다. 벙찐 채 눈을 끔뻑이던 로난이 입을 뗐다.

“음···동물을 사람으로 폴리모프 시키는 게 딱히 대단한 발명은 아니지 않나요?”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이건 모든 생태학자들이 꿈에 그리던 마법입니다. 얼마나 갖은 고생 끝에 만들었는데요!”

“아니 그게, 이미 고약한 마법사들은 사람을 개구리로 변신시키기도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 아니에요?”

생각보다 별 게 없어서 맥이 탁 풀렸다. 상대를 동물이나 사물로 변신시키는 마법은 아예 필레온 마법과의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대감은 한껏 조성해 놓더니 겨우 이런 거였나. 로난의 표정을 읽은 바렌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거랑은 전혀 다릅니다. 드래곤이 즐겨 하는 폴리모프를 동물에게 적용한다 생각하시면 편하겠군요. 단순히 외형만 바꾸는게 아니라, 대상의 자아를 기반으로 신체를 재구축하는 겁니다. 무려 ‘말’도 할 수 있게 되죠.”

“오.”

로난이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건 확실히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설마 시타의 입에서 뺘 말고 다른 소리가 나오는 걸 들을 수 있다니.

“일단 직접 보시는게 이해가 빠를 겁니다. 지금 바로 해봐도 될까요?”

“뭐, 저는 재밌을 거 같네요.”

로난이 끄덕거렸다. 어차피 마법이 풀리면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해볼 가치는 충분한 것 같았다. 그가 시타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시타. 괜찮겠냐?”

“뺘잇!”

시타가 회답하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자기도 기대가 되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던 바렌이 스크롤을 펼쳤다.

“그럼 결정됐군요. 자, 시타. 거기서 움직이지 마세요.”

상황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시타를 마주 보고 선 바렌이 알아듣지 못할 문장 몇 마디를 읊조렸다. 파아아아···!  기하학적인 마법진에서 터져 나온 빛무리가 시타의 몸을 뒤덮었다.

“뺘?!”

시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점점 강해지던 빛은 이윽고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윽.”

로난과 발루스가 눈을 가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요란한 마법이었다. 마나의 소용돌이에서 기인한 바람에 집무실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들이 경박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공격 마법 아냐?”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됩니다!”

참다 못한 로난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바렌이 막 대답하는 찰나였다. 콰아앙! 섬광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세 사람을 덮쳤다.

“커어억!”

“으악!”

바렌과 발루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넘어지지 않은 것은 로난 뿐이었다. 그때 시야야를 가리던 빛무리가 단번에 사그라졌다. 로난의 미간이 좁아졌다.

“엉?”

시타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대신하듯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웬 꼬맹이 한 명이 서 있었다. 정수리가 로난의 허리춤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껏해야 열 살배기로 보이는 아이였다.

“우아, 우아아아···!”

꼬마는 자신의 손발을 번갈아서 쳐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로난의 입에서 악의없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세상에 씨발. 시타?”

아이의 정체에 대한 부연설명은 필요 없었다. 종족은 변했지만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폭신폭신한 깃털은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되어 있었고, 네 장의 날개는 신기하게 생긴 로브가 되어 몸에 걸쳐져 있었다. 로난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셀 뺨치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도 새하얀 것이 성별을 분간할 수 없었다. 만약 남자라면 아셀의 강력한 호적수가 될 터였다. 몸을 벌떡 일으킨 바렌이 쾌재를 불렀다.

“오오, 성공입니다! 설마 꿈새한테까지 통할 줄이야!”

“세상에, 정말로···!”

발루스도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때 손바닥에서 시선을 뗀 시타가 로난을 쳐다보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안녕.”

괜히 무안해진 로난이 손을 흔들었다. 일단 본론부터 꺼내야겠지.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입을 뗐다.

“그, 만나서 반갑고···혹시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하냐? 좀 말해 주면 고맙겠는데.”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로난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선이 워낙 강렬한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평소에는 잘만 삐약거리는게 왜 저런담. 로난이 뭐라 말을 이으려던 찰나, 집무실의 문이 벌컥 젖혀졌다.

“무, 무슨 일이죠?! 폭발이라도 일어난 건가요?”

“에르제베트 양? 옆의 그분은···.”

낯익은 면면에 바렌이 눈썹을 으쓱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보기 좋게 찰랑거리는 검보라색 머리카락이었다.

때마침 같은 건물에 있던 에르제베트였다. 한층 성숙해진 그녀의 옆에는 슐리펜과 몹시 닮은 소녀가 서 있었다.

“사, 사자다···.”

바렌과 마주친 소녀가 에르제베트의 뒤로 숨었다. 조막만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슐리펜의 여동생인 시온 시니반 데 그랑시아였다.

사이가 좋은 것은 여전한지 에르제베트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데샨의 졸업식 날 에르제베트의 무릎에 앉아서 과자를 집어먹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앗, 바렌 교수님···! 여기 시온 양에게 필레온을 소개시켜 주고 있었어요. 올해 입학하거든요.”

“아아, 그랬군요. 교장님께서 한번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랑시아 가의 영애 분이군요.”

“네. 여명 마탑의 수습 과정을 삼 년이나 일찍 마쳤거든요. 탑주 아운 필라님께서도 재능을 인정했어요. 후후, 대단하죠?”

에르제베트가 시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주책 맞은 것이 꼭 딸 자랑을 하는 학부모 같았다. 문득 난장판이 된 집무실을 본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맞아. 그나저나 무슨 소리였죠? 왜 집무실이 이렇게···.”

“허허, 별 일 아니었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간단한 실험 하나를 했었거든요. 이거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군요.”

바렌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에르제베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별안간 그녀의 뒤에 숨어 있던 시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라? 로난 님이에요.”

“뭐라고요?”

에르제베트가 갸웃거렸다. 졸업식 이후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옆으로 두 걸음을 옮긴 그녀가 눈썹을 치켜떴다.

“저, 정말이네? 왜 여기에···.”

거기에는 진짜 로난이 서 있었다. 바렌에게 가려져서 미처 보지 못했다. 간만의 만남에 그녀가 화색을 띠며 인사하려던 차였다.

“응? 저 아이는?”

에르제베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로난은 웬 아이를 마주보고 있었다. 올라간 눈꼬리와 새카만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예쁘장하게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인상착의가 로난을 닮아 있었다.

친척인가? 에르제베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가만히 로난을 응시하던 시타가 방긋 웃음 지었다.

“아빠!”

“···뭣이라?”

로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에르제베트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쪼르르 달려온 시타가 로난의 품에 안겼다.

“에헤헤, 아빠.”

“얌마. 내가 왜 니 아빠야?”

로난이 당혹성을 흘렸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되기는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불현듯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이 짐승···.”

“엥? 에르제베트?”

로난이 뒤를 돌아보았다. 에르제베트가 도끼눈을 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적대감을 여실없이 드러내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믿었는데···아데샨 언니가 선택한 남자라 믿었는데···바람으로 모자라 애까지···!”

“그,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절대 아니거든?”

“시치미 떼지 마세요! 자식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닮을 리가 없잖아요. 시온, 저런 불한당은 눈에 담지도 마세요!”

“우아아! 아, 아파요!”

에르제베트가 시온의 눈을 가리며 끌어당겼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시온이 팔다리를 바동거렸다. 자신과 닮았다는 말을 들은 로난이 시타를 내려 보았다.

‘···닮긴 닮았군.’

얼굴을 뜯어 살피던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했다. 이 정도면 자식이라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올라간 눈꼬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자신과 닮아 있었다. 알 상태일 때 내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아빠. 머리 만져 줘. 응?”

시타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언제나 하던 대로 자신의 가슴팍에 연신 뺨을 부벼 대고 있었다. 아들···아니, 딸이 생기면 이런 느낌일까. 벙쪄 있던 로난이 시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얌마, 상식적으로 나한테 이렇게 큰 애가 있겠냐? 일단 진정하고···”

“흐흑, 불쌍한 우리 언니!”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받은 에르제베트에게 해명을 들을 만한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녀가 흐느끼며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아, 안녕히 계세요!”

시온은 붙들려 가는 와중에도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침묵하던 로난이 발루스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발루스. 부탁한다.”

“부, 부탁이라뇨?”

“나는 지금 힘을 쓰지 않고 저 여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너는 그래도 신사니까 가서 나 대신  해명 좀 해 주라.”

“그런···!”

“마음만 먹으면 산도 통째로 태워 버리는 아가씨지만 근본은 착하니까 너무 쫄지 마. 보수는 확실하게 지급하지.”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발루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로난과 문을 번갈아서 쳐다보던 그가 방을 뛰쳐나갔다.

“에, 에르제베트 님. 다 오해입니다!”

“시끄러워요!”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금연 선언을 바로 어제 해 버린 것이었다. 하루만 늦게 했어도 오죽 좋아. 한참이나 벙쪄 있던 바렌이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만···에르제베트 양에게 오해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바렌.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일단은 진정해야 했다. 그가 심호흡을 반복하며 감정을 추스르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자신에게 뺨을 부비적거리던 시타가 고개를 들었다.

“아빠. 나랑 술래잡기 하자.”

“술래잡기?”

“응. 인간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어. 나는 몸이 커서 숨을 수가 없으니까···안 돼?”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가 나는 와중에도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 실로 파괴적이었다. 그를 내려보던 로난이 입을 뗐다.

“시타. 지금은 그럴 시간이···.”

“대신 나를 잡으면 아빠랑 바렌이 궁금해하던 걸 말해줄게.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궁금한 거지?”

“뭐?”

로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시타 본인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정말로?”

“응.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같이 놀아줄 거야?”

로난과 바렌이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원래대로라면 소리보다 빠르게 날 수 있는 시타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으로 변한 지금이라면 승산이 있었다.

오히려 두 다리로 뛰는 것은 처음일 테니 일이 굉장히 쉽게 풀릴 가능성도 있었다. 저 가냘픈 다리로 뛰어 봤자 얼마나 도망치겠는가. 애써 웃음을 참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놀아 줄게.”

“정말? 정말로? 우와!”

“그렇다니까. 일 분 세고 쫓아가면 되는 거지?”

“응!”

시타가 해맑게 웃음지었다. 한순간 영문 모를 불길함이 로난의 뒷덜미를 스쳤다. 그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로난을 등지고 달려간 시타가 창문 밖으로 도약했다.

“야, 거기는 창문···!”

“허어억! 시타!”

말릴 틈새 따위는 없었다. 바렌이 갈기를 곤두세우며 경악하는 순간이었다. 쉬익!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던 시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일 분이야! 속임수 쓰면 안 돼!”

그가 로난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느새 돋아난 네 장의 날개가 시타의 등 뒤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아주 날렵하게 형태가 다듬어진 것이 오히려 동물이었을 때보다 비행에 특화된 것 같았다.

눈웃음친 시타가 등을 돌렸다. 파아아앙-! 날개가 움직임과 동시에 그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검은 점이 되어버린 시타가 파란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막 십오 초째를 세던 로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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