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음악방송 (1) >
십만 마교인의 정점에 있는 존재.
천마.
무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도 천마의 패도적인 기세와 웅혼한 무공은 첫 손에 꼽힌다.
그러나 이번 대의 천마는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32대 천마, 차선우.
그의 성명절기는 검법이나 권법, 하다못해 독공도 아니었다.
바로 음공.
차선우가 현을 뜯으면 사람들은 환상을 보았다.
차선우가 노래를 부르면 심지가 굳다는 정파인도 현혹되어 천마에게 무릎 꿇었고,
차선우가 고함을 내지르면 사황성의 무인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러나 누구도 천마 차선우를 막을 수 없었다.
차선우는 최초로 천하를 일통하는데 성공하며, 음공으로 무림에 우뚝 섰다.
하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대업을 이룬 차선우의 표정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후우."
차선우의 한숨 소리가 방안을 진득하게 울렸다. 옆에 서 있던 총관의 마음도 덩달아 불편해졌다.
‘또 시작이시군.’
무림일통을 이룬 후부터 천마는 계속 침울한 상태였다.
매일같이 한숨을 쉬고, 때로는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기를 한 달.
몇 번을 물어봐도 천마는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차선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총관. 내 꿈이 뭔지 아는가?"
뜬금없는 질문. 총관은 갸웃했다.
"무림일통이 아니셨습니까?"
차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내 꿈은 말이야. 천하일통 따위가 아닐세."
단전이 파괴되어 각혈하던 검성이 들었으면 관짝을 박차고 나올 말이었다.
"아니, 그럼 무림일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옵니까?"
차선우는 아련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 감동을 나누는 것. 그게 내 꿈일세"
예상치 못한 답에 총관은 눈을 깜빡였다.
"노래요?”
"그래. 노래 말일세."
"아니, 십만 교도들이 교주님의 음공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아십니까? 교주님께서 검성과 사황의 협공을 음공으로 박살 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그 모습만 생각하면 아직도 교인들은 교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닐세. 내 말을 말아야지."
"교주님. 교주님의 음공은 천하제일입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총관은 답답한 마음에 덧붙였지만 차선우는 이미 몸을 돌린 채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휴, 저 무공밖에 모르는 새끼들.'
32대 천마 차선우.
그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넘어온 가수 지망생이었다.
*
차선우는 가수를 꿈꾸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취미는 바로 무협지를 보는 것.
그날도 연습을 끝내고 밤늦게까지 무협지를 읽던 도중,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읽고 있던 무협지 속이었다.
할 줄 아는 게 노래뿐이던 차선우는 이리저리 치이다 악단에 들어갔다.
그러던 와중 천마신교 교주의 축하연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천마신교의 장로이자 음공 고수의 눈에 띄어 그 제자가 된다.
'근골은 굳어있으나 목소리가 뛰어나 음공을 익히기에 딱 좋겠구나.'
스승을 따라 천마신교의 입교한 차선우는 본격적으로 음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거 근데 너무 주먹구구식인데?'
현대에서 살던 차선우가 보기에, 무림의 음공은 너무 체계가 없었다.
정확한 표기법도 없어서 음표와 박자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도 않았다.
그저 어떠어떠하다 라는 느낌만이 불분명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
답답해서 돌아버릴 뻔한 차선우는 본격적으로 현대 음악 이론과 음공을 접합시켰다.
그 결과,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났다.
전무후무한 음공이 탄생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음공을 창시한 차선우는 끝없이 강해졌고, 우여곡절 끝에 천마에 자리에 오른 뒤 무림을 일통해버리는 쾌거를 이룬다.
천하를 오시하는 차선우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허전하기만 했다.
그는 음악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노래를 들려주고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목표이자 꿈이었는데.
'무슨 노래만 하면 그놈의 무공을 갖다 붙이냐.'
그가 실력을 발휘하려 하면 수십 명이 몰려들어 무공이 어떻다는 등, 수법이 고매하다는 등.
모든 걸 무공과 연결시켰다.
아 참. 그의 노래를 들을 일반 교도들은 엄청 감동을 받은 것 같기는 했다.
'내가 그 모습을 북한 지도자 생일잔치에서 봤었던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교주님을 외치는 모습은 천마인 차선우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끼 많고 타고난 관종인 차선우는 천마라는 자리에 올라 지엄한 척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답답하다.'
차선우는 한숨을 쉬었다.
몇 번 말해 보았지만 총관은 그의 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있는 호법은 무공에 미쳐서, 노래 얘기만 하면 다음 경지를 밟고 계시는 중이냐며 호들갑만 떤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차선우는 그렇게 아티스트로서의 꿈은 접어둔 채, 천마의 삶을 살았다.
세월은 흘러 차선우도 나이를 먹고,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네.'
천마로서의 삶. 나쁘지 않았다.
무공이라는 것도 배우고,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무림을 질타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이 순간에도 노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음공이 아니라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32대 천마 차선우는 그렇게 긴 잠에 빠졌다.
그리고,
"이게 뭐야?"
지구에 있는 20살의 차선우가 정신을 차렸다.
*
"뭐지?"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상처 가득했던 손등은 어느새 뽀얗고 부드러운 20대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분명 늙어서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의 몸뚱이 그대로이다.
그리고 옆에는 현대 기술의 산물,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화면을 켜자 읽고 있던 웹소설이 보였다.
[음공천마]
내가 들어간 무림의 배경의 되는 바로 그 소설이었다.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올리자 날짜와 시간이 보였다.
-2022년 3월 28일
분명 내가 무협지 속으로 떨어지던 그 날이었다.
그 이후 시간도 거의 흐르지 않았다.
"설마 돌아온 건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70년 전 자취방이었다.
그리고,
띠링!
[‘음공천마’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했습니다. 최종 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내가 음공을 대성하고 천마까지 될 수 있었던 건 전부 상태창 덕분이었다.
무림일통을 이루고 심음(心音)의 경지에 도달한 후, 상태창은 거의 열어보지 않은 채로 살아왔는데 오랜만에 튀어나왔다.
하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상태창은 영문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이제 시공간적 제약 및 에너지 손실 없이 음공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건 또 뭔소리야.”
다른 이들이 말하는 심검, 음공으로 따지자면 심음에 도달한 이후 나는 음공을 펼치는데 제약을 받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내 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태창이 튀어나와 뒷북을 치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음공천마’를 종료합니다.]
종료? 그럼 이제 끝이라고?
“상태창.”
조심스레 불러보았지만 상태창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허 참.
나와 70년을 함께한 상태창은 이것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던지라 조금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어찌 보면 평생을 보낸 무림에서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거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돌아온 건 좋았다.
70년의 세월을 지나 돌아온 이곳.
방 안에 놓인 물건을 보니 이전의 기억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쪽 벽면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있었다. 당시에는 돈이 없어 중고로 구입했었지만, 나는 그 내용을 모조리 외울 만큼 반복해서 읽었다. 그 지식은 무림에서 음공의 체계를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책상 위에는 손때 묻은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노트에는 틈이 날 때마다 떠오른 악상을 발전시켜 만든 자작곡들이 빼곡하게 쓰여있었다.
노트를 훑어보던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거 영 어설프네."
하지만 그 안에는 풋풋한 시절의 열정이 녹아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지금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느낌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기 안쪽 작은방에는 방송 장비가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 뉴튜브를 하겠다고 이것저것 사놨었지.”
나름 장비빨을 세워보겠답시고 알바로 벌어놓은 다 털어서 고가의 장비를 세팅해놨었다. 셀프로 방음 시공도 하고, 뒤에 벽지도 이쁘게 다시 발라놨었는데.
그렇게 채널을 오픈하고 첫 영상을 올리려고 할 때 무협지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시작해볼까.”
나는 몸을 일으켜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단련된 근육과 가득 찬 내공은 온데간데없다.
20살 청년의 평범하디 평범한 몸이다.
70년간 이룬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하지만 묘하게 흥분된다.
나는 아직 새것의 티가 나는 마이크를 쓸어보았다.
무림에서는 느낄 수 없던 까끌까끌한 스펀지의 촉감이 내 손을 간질였다.
무림에서는 내 노래를 순수하게 ‘음악’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부 무공과 연결 지어서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 드디어! 무공이 없는 세상에 온 것이다.
천마로서 쌓은 모든 경험을 가지고서.
다행히 이곳에도 기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하고는 있었다.
무림의 세계에 비하면 옅지만, 지금도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분명 기다.
'없으면 쌓으면 되지.'
수십만 무림인들의 정점을 찍었던 경험이 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다시 한번 내공을 쌓는 건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다 늙어가는 노인이 아니라 스무 살 청년이다.
이 몸으로 이뤄내지 못할 것은 없다.
게다가 당장 무림맹이나 사황성이랑 싸울 일도 없으니 천천히 회복해도 상관없고.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컴퓨터부터 켰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70년 만에 다시 기계를 만지니 모든 게 어색했다.
나는 버벅거리며 컴퓨터를 켜고 뉴튜브에 접속했다.
채널 인증 및 스트리밍 신청은 70년 전의 내가 미리 해놔서 바로 시작할 수 있기는 했는데···.
문제는 시작하기까지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장비를 연결하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스트리밍하는 준비를 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검색을 통해 어찌어찌 통과한 후, 나는 드디어 채널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영상 하나 없는 순수 그대로의 채널.
심지어 채널 이름조차 이름인 [차선우]였다.
나는 고민했다.
'뭐, 내 이름도 좋기는 하지만.'
지금의 내 정체성을 보여주기에는 아쉬웠다.
내 손이 오랜만에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BJ 음공천마]
70년 만에 귀환한 32대 천마 차선우. 스트리밍을 시작하였다.
< 천마의 음악방송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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