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음악방송 (2) >
[BJ음공천마]
구독자: 2명
단출하다.
심지어 두 명밖에 없는 구독자마저도 저기 제주도에서 한달살이하고 계시는 부모님이 눌러주신 거다.
그래도 뭐 어떤가.
몇 명이든, 누군가와 음악을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방 제목을 만들고, 부푼 마음을 안고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실시간 l 신입 BJ 음공천마 - 노래 들려드려요.]
0명 시청 중
시작: 1시간 전
그런데,
1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청자가 오면 어떤 말을 할지, 무슨 노래를 부를지 고르고 있던 나는 당황했다.
‘...왜 안오지?’
기다림에 지친 나는 시계를 봤다.
벌써 저녁 6시. 이제 슬슬 사람들이 퇴근하고 있을 시간이다.
'뭐, 시간이 지나면 들어오겠지.'
아마 퇴근길에서 미뤄둔 뉴스, SNS 소식, 구독한 영상 등을 보기에 바쁠 것이다.
신입의 라이브 방송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겠지.
괜히 기타를 튕겨보기도 하고, 전자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보기도 하며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한 번씩 건드려보았다.
그렇게 7시가 되고, 8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시청자 수는 그대로였다.
아, 중간에 2명 정도 들어오기는 했다.
[‘꼬꼬꼬3’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어, 왔는가! 그래 보자. 꼬꼬꼬3 님은 어떤···.”
[‘꼬꼬꼬3’님이 나갔습니다.]
내가 인사하자마자 바로 나가기는 했지만.
“...싸가지 없는 새끼.”
조금, 아니 꽤 많이 빡치기는 했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무공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리며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심결을 중얼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천마음공의 구결을 읊고 있는데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꼬로로록
시청자를 기다리느라 밥을 안 먹은 게 생각났다. 한번 밥을 걸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더 배가 고파온다.
"밥이나 먹고 해야지."
지구로 온 이후 첫 끼. 뭘 먹을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바삭한 치킨부터 뜨끈한 국밥, 매콤 쫄깃한 닭발 등등.
순식간에 수많은 음식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다.
‘무림에 있을 때 라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금방 끓인 꼬들꼬들한 라면.
교주가 됐을 때는 숙수를 시켜서 현대 음식을 비슷하게 즐겼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바로 라면이었다.
자연 조미료를 이용해 만들어도 건강한 맛만 났지,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스프맛을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그래. 라면을 먹어야겠다.
마침 찬장에는 라면이 구비되어있었다.
언제 시청자가 들어올지 모르기에 나는 가스버너를 가져와 책상에 올려놓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70년이 지났지만 라면 끓이는 법은 잊지 않았다.
라면 수프를 먼저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을 넣는다.
공기가 닿도록 가끔씩 면발을 들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기분 좋은 매콤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면이 거의 다 끓어갈 때쯤, 미리 준비한 그릇에 면을 옮겨 담는다.
그리고 국물에 계란 네 개를 터뜨려 넣어준다. 라면 네 봉지를 끓였으니 계란도 네 개 넣어주는 게 국룰.
계란을 젓가락으로 잘 저어서 풀어주고, 그걸 꼬들하게 익은 면 위에 부어주면···.
“...크!”
70년간 기다려온 맛이 입안을 감싼다.
매콤하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이 도는 면발이 내 입에 가득 들어찬다.
계란을 풀어 부드럽고 고소해진 국물이, 면 사이사이에서 스며들어 스르륵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나는 스트리밍 중이라는 것도 잊고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한 젓가락에 한 봉지씩.
정신없이 면을 들이키던 순간, 처음으로 채팅창이 올라왔다.
[‘해리코털’님이 입장하셨습니다.]
[해리코털]: ···여기 먹방인가요?
“어어?”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마침내 첫 시청자가 들어왔다!
나는 먹던 라면을 후루룩 삼켜버리고 입을 쓱 닦았다.
“코털 님. 반갑네···아니, 반가워.”
저도 모르게 포권을 취할 뻔했지만 급히 현대식 인사를 장착했다.
[해리코털]: 아니 코털이라니··· 그냥 해리라고 해주세요.
[해리코털]: 음악방송이래서 들어왔는데 먹방인가요?
처음으로 시청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다른 스트리머들이 하던 걸 떠올리며 친근하게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먹방은 아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본좌의 노래를 들려주는 방이지.”
[해리코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본좤ㅋㅋㅋㅋ
[해리코털]: 컨셉 특이하네
[해리코털]: 무슨 노래를 들려줄 거죠?
해리코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본좌’라고 지칭한 걸 깨달았다.
하지만 컨셉으로 봐주니 밀고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채널도 BJ음공천마니까.
“어떤 노래든 상관없어. 그쪽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내가 적절한 곡을 선택해줄 테니까.”
4시간 동안 시청자가 하나도 없었기에 어쩌면 조금 초조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첫 시청자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뭐라도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내 마음은 곧 의지가 되었고, 자연스레 깃든 내공을 통해 내 의지가 마이크 저 너머까지 흘러들었다.
[해리코털]: 뭐야 그게.
그리고 채팅을 남긴 해리코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간 건가?’
방을 나갔다는 알림은 없었는데.
재촉을 해보고 싶은 마음과, 천마로서의 위엄을 지키려는 마음이 부딪혔다.
결국 천마의 위엄이 패배하고 내 입이 마이크로 다가가는 순간, 해리코털의 채팅이 봇물 터진 듯이 올라왔다.
[해리코털]: 직장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 얼마 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됐는데, 이게 잘 안 풀리더라고요. 덕분에 잠도 잘 못자고 아침에도 영 개운하지 않고. 그러니까 일은 점점 더 꼬여가고. 힘드네요.
“그럼 때려쳐.”
[해리코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카드빚···
음. 갑자기 숙연해진다.
그러고 보니 나도 70년 전에 장비를 사느라 할부를 좀 때렸던 거 같은데, 이따 확인해봐야겠다.
“...카드빚은 갚아야지. 그래서 무슨 일 하는데?”
[해리코털]: 어, 그건 비밀인데. 여튼 결과물을 갖다 주잖아요? 그런데 상사가 계속 빠꾸 먹인다ㅋㅋㅋ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뭐가 마음에 안 드냐고 물어보면 다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해오래요.
“그거 개새끼네. 그럴 거면 자기가 해보던가.”
[해리코털]: 그러닊가!
“하,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직장 내 상사와의 트러블은 짜증 나는 문제이다.
마교의 정식 무인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혈혼추살대에서 근무했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혈혼추살대의 주 임무는 마교 내의 범죄자를 쫓는 곳인데, 당시의 상관은 나와 다른 계파의 사람이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지 사소한 거로 트집 잡고 심지어 자기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운 일도 있었는데.
결국 내가 더 강해져서,
“...목을 확 따버렸지.”
[해리코털]: ???
“아. 그런 새끼는 목을 따버려야 한다고. 솔직히 그런 상상 맨날 하잖아.”
[해리코털]: 앜ㅋㅋㅋㅋㅋㅋㅋㅋ
[해리코털]: 그니까ㅋㅋㅋㅋㅋㅋ
[해리코털]: 여튼 스트레스가 진짜ㄸㄷ
[해리코털]: 오늘은 잠이라도 잘 잤으면 좋겠네요ㅠㅠ
돌고 돌아, 문제는 잠이다.
음공을 쓰면 해리코털도 금방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음공이 무선으로도 전달이 되나?’
심음을 쓰면 해리코털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내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처음으로 내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온 사람이 털어놓은 문제이다.
해결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민을 하던 중, 문득 상태창이 마지막 보상이라며 줬던 게 떠올랐다.
[시공간적 제약 및 에너지 손실 없이 음공을 펼칠 수 있습니다.]
밑져도 본전이다.
혹시 모르니 한번 음공을 펼쳐보기로 했다.
“좋아. 너한테 딱 맞는 노래를 정했다. 잠잘 때 듣기 딱 좋은 노래야.”
[해리코털]: 뭐야ㅋㅋㅋㅋ
[해리코털]: 자장가 불러주게요?
[해리코털]: 아, 그럼 신청곡 받나? 듣고 싶은 노래 있는데.
“아니, 신청곡은 안 받는데.”
내가 수면용으로 작곡한 노래 13가지.
그리고 지금 부를 곡은··· 사부님의 담금주를 훔쳐먹을 때 만든 곡이었다. 담금주 주위를 둘러싼 호위를 잠재우기 위해 만든 것.
살상력은 높지 않지만, 사람의 신경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음파로 구성되어있어 듣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잠에 들 수 있는 노래다
나는 한 줌 남아있는 내공을 목소리에 담았다.
사실 노래라고 하기에는 민망한게, 가사가 딱히 없고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대로 붙여 부르는 노래이다.
이번에도 부르고 싶은 대로 불렀다.
처음에는 흥얼거리기만 하다가 점점 신이 난 나는 손끝에 내공을 실어 기타줄까지 튕겼다.
목소리 위에 기타음이 얹어지며 그럴듯한 자장가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자작곡을 완창하고,
"어때? 내 노래가?"
처음으로 내 노래를 들어준 관객에게 물었다.
그런데,
“뭐야?”
상대 쪽에서 반응이 없다.
시청자 1명은 계속 떠 있기는 한데, 설마 진짜 자는 건가?
*
닉네임 [해리코털], 그러니까 강해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머리맡에서 휴대폰 알람이 진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5분 단위로 10개를 맞춰놓은 알람 중에 마지막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 이렇게 깊게 잠든 적은 처음이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폰을 켜보니 어제 보다가 잠든 뉴튜브가 틀어져 있었다.
[BJ 음공천마]
[실시간 스트리밍이 종료되었습니다.]
방송은 사라져 있었지만, 기억은 생생했다.
어제도 힘든 하루였다.
일주일 동안 밤새며 만든 또다시 작업물을 엎어버리고, 상사에게는 한소리를 듣고.
스트레스와 분노 수치가 급상승한 상태였다.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냥 일찍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 뉴튜브를 보았다.
음악 쪽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종종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소위 심해탐사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심해탐사를 하던 그녀는 ‘BJ음공천마’를 보게 되었다.
시청자는 0명인데 3시간째 방송 중.
'제목만 봐도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겠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봤는데 라면을 먹고 있더라.
다행히 스트리머는 멀쩡한 사람이었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종종 본좌라는 이상한 단어를 쓰는 것만 빼면.
게다가 얘기를 계속하다 보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기도 했다.
거기에 끌려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보니 하소연을 하며 회사 욕도 하고, 천마가 자장가랍시고 노래도 불러줬다.
‘그런데 진짜 잠들었네?’
심지어 불도 안 끄고 기절해버렸다.
어젯밤 9시를 조금 넘겨서 잤으니, 오늘 아침 7시까지.
무려 10시간 가까이를 깨지 않고 잠든 것이다.
수면제를 먹을 때는 자고 일어나면 정신이 몽롱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개운 상쾌 그 자체였다.
“와, 이거 뭐야 진짜? 대박이네.”
천마가 불러준 자장가가 정말 수면제만큼의 효과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회사 욕도 하고 그러니까 긴장이 풀려서 잠이 들었나 보지 싶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잠들기 전 얼핏 들은 기분 좋은 허밍 소리와 마음을 잔잔하게 울리는 기타 소리.
천마라는 사람의 노래는 강해리의 마음속에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오늘도 방송 하려나? 그러면 좋겠다.’
이따가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강해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늦게 일어났으니 오늘 화장은 포기한 채로 그대로 출근.
그렇게 강해리가 출근한 곳은, 유명 레이블인 ‘BLACKSHIP’이다.
강해리는 그곳의 작곡가였다.
< 천마의 음악방송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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