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송 (1) >
나는 이틀 차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하루 만에 구독자도 늘어났다.
무려 다섯 명으로!
구독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게 마치 무공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숫자라는 지표가 구체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보이니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방송을 키고 보니 뭔가 방송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시간 l 신입 BJ 음공천마 - 노래 들려드려요.]
'너무 고루한 느낌이군.'
나는 고민하다가 방송 제목을 조금 현대스럽게 바꿨다. 다른 뉴튜브 제목을 참고한 결과였다.
[실시간ㅣ#음악들려드림 #고민 #상담 #신입BJ #음공천마]
제목을 바꾼 게 주효했는지, 이번에는 방송을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시청자가 벌써 여섯 명이나 되었다.
‘아무래도 스트리밍에 재능이 있나 보군.’
공손했던 어제 새벽의 시청자인 ‘수수깡’은 방송을 키자마자 들어왔다.
- 천하!
“오, 다시 왔네?”
뭔가 수수깡이 내 방송이 켜지기만을 기다린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 10시에 방송 시작하나요?
“딱히 시작시간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보통 그렇지.”
- ㅇㅎ
- 그럼 정해지면 공지 좀 올려주세요.
공지?
그러고보니 다른 뉴튜버들이 커뮤니티 코너에 공지를 띄워놓던 게 기억났다.
확실히 방송시간을 고정해놓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음, 알겠다. 그럼 방송시간 정해지면 올려놓지.”
그렇게 나는 수수깡을 비롯한 시청자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새로운 사람들도 여럿 유입되었다.
-상담 방송? 고딩 같아보이는데ㅋ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래를 듣자마자 즉시 태세를 전환했다.
-ㅅㅂ노래 미쳤네.
-왜 좋냐 이게···. 구독 박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사람이 등장했다.
[G0LYX]: 고민 상담해주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오, 또 신입!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사연을 말해주면 내가 딱 맞는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G0LYX]: ?
[G0LYX]: 노래는 필요 없고 그냥 상담받으려고 온건데···?
약간 빼는 뉘앙스가 보인다. 한 사람도 아쉬운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어허. 본래 고민이 있을 때는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절반이 해결되는 법이지. 당연히 상담도 해줄 테니 편하게 말해보라고.”
수수깡도 지원사격을 했다.
- 저도 어제 상담받았는데 ㄹㅇ이건 찐입니다
- 사실 노래가 킬링 포인트인데
- 상담만 받으셔도 좋을듯해요
그러자 G0LYX···이름이 기니까 지영으로 하겠다. 여튼 지영이 입을 열었다.
[G0LYX]: 사실 짝녀? 썸녀?가 있는데요.
어라 이건?
오랜만에 맡는 말랑풋풋한 사랑 냄새가 아닌가!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어떤 상황인지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한번 듣고 판단해주지.”
으레 노인네들이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젊은이들의 사랑놀음은 재미있는 법이다.
나는 은근히 목소리에 내공을 싣고 이야기를 재촉했다.
밑에 긴 채팅이 올라왔다.
지영은 대학생이고 같은 과 후배를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어느 정도 관계에 진전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게 자기만의 짝사랑인지 아니면 썸인지 확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에 과에서 MT를 같이 갔거든요. 실수인지 모르겠는데 옆자리에 앉아서 술게임을 하다가 손을 두번정도? 잡았어요.
-그 이후에는 답장도 빠르게 해주고, 항상 옆자리에 앉아서 종종 장난도 치고 있어요.
‘...이거 기만질인가?’
그게 시작이었다.
- 지난주에는 과제 때문에 밤에 연락을 하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한 시간씩 통화해버렸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도 자기 전에 종종 한두 시간씩 통화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일주일에 몇 번 밥도 같이 먹었는데, 학식 말고도 근처 맛집 찾아가서 먹을 때도 있었어요.
-제가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데 어쩌다 보니 주말에 만나서 쇼핑에 따라가게 됐는데, 그건 그냥 우연히 시간이 겹쳐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핑크색 블라우스가 이쁘다고 했는데 어제 학교에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고 왔더라고요ㅎㅎㅎ
이거 어이가 없네.
“이 새끼··· 너 염장 지르러 왔냐?”
그리고 다들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ㅋㅋㅋㅋ답정너네
-그냥 가서 고백만 하면 되는 걸 뭘 물어봐
-천마님 솔로라서 화나셨네. 빨리 사과하세요ㄱㄱ
-아니 이건 짝녀가 아니라 썸녀잖아···.
폭격을 받은 지영은 잠깐 말이 없더니 조심스럽게 채팅을 쳤다.
[G0LYX]: ㅠㅠ근데 같은 과라 괜히 고백했다가 어색해질까봐 고민이라서···.
나는 이 우유부단한 답정너를 빨리 치워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번에 전자피아노 앞에 앉았고 마이크의 위치도 조종했다.
채팅창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빽빽 질렀다.
-오오 천마님 또 노래하신다
-이번에는 고백송인가요?
-아니면 군가일 수도 있고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하 중에 그런 놈이 있었다. 괜히 그런 관계를 오래 끌던 놈.
결국 화딱지가 난 여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잡혀 살았지. 음.
물론 현대는 무림과 연애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이 새끼의 등을 떠밀어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달달한 분위기의 노래를 불렀다.
-오늘 뭐해 나 좀 만나줄래
이런 말 나도 처음해봐 떨리지만
어쩌면 할 수 있을 것같아
대충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불러준 건데, ‘빨리 가서 고백이나 해라’라는 내 의지가 과하게 담겼나 보다.
지영이 급발진을 했다.
[G0LYX]: 천마님 덕분에 용기가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G0LYX]: 지금 바로 문자로 고백하겠습니다.
이게 모두 내가 노래를 부르던 사이에 일어났다. 노래를 끝내고 채팅창을 본 나는 당황했다.
“어? 지금 간다고?”
같이 당황한 시청자들이 급히 만류했다.
- ???
- 그만해!!!!!!!!!!!!!!!
- 멈춰!
- 문자로는 만나자고만 하고 대화를 해야지.
"야야. 그거, 그거 하지마. 문자로 고백하는 놈이 어딨어?"
내가 무림에서 70년을 있다가 왔어도 문자로 고백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미 가버렸는지 지영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한탄했다.
“내가 너무 급했나 보네. 분위기를 잡으라는 건지 재촉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고 몇 분 뒤, 지영이 찾아왔다.
[G0LYX]: 저희 사귀기로 했어요ㅎ
[G0LYX]: 여친이랑 통화해야 돼서 이만ㅎㅎ
[‘G0LYX’님이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할 말만 통보해버리고 나가버렸다.
- ?
- ??
- 이게 나라냐
- 될놈될··· ㅅㅂ
괜히 노래를 불러줬나 싶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그런데 고백송을 듣고 영향을 받은 건 지영 뿐만이 아니었다.
[호랭]: 그런데 노래가 진짜···개쩔어서···
[호랭]: 실수로 와이프한테 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해버렸습니다.
[호랭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호랭]: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와이프가 얼른 씻고 오라네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ㅠㅠ
[호랭 님이 나갔습니다.]
호랭은 후원금을 투척하고 가버렸다.
원래도 시청자가 얼마 없었는데 두 명이 나가자 채팅창이 더 비었다. 흐름을 탄 건지 나머지 시청자들도 나가버렸다.
-잘 들었습니다.
-ㄴㅇㅂㅈ
끝나가는 분위기에 나도 일찍 방송 종료를 하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입장했다.
[‘해리코털’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BJ음공천마 님.
“어 해리?”
아까 해리코털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별말 없이 바로 나가길래 그냥 왔다 갔나 싶었는데 또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방송을 끄려고 했는데.”
[‘해리코털’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웬 후원인가 싶었는데 해리코털이 무언가 물어봤다.
- 3시간 전에 부른 그 곡과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일대일 채팅을 드리려고 했는데 채팅이 막혀있네요.
“그래?”
내가 또 뭘 잘못 설정했나 보다. 어차피 지금 시청자가 해리코털밖에 없어서 일대일 채팅이나 다름없다. 설정 건은 나중에 확인해보기로 하고 물어봤다.
“뭘 물어보고 싶은 건데?”
- 아까 짝사랑남 사연 때 부른 노래 있잖아요. 그거 혹시 자작곡이신가요?
“아 그거? 그래. 내가 직접 만든 노래지.”
- 그러면 그 곡을 저한테 판매하실 의향은 있나요?
“...?”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해리코털이 두두두 채팅을 치며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리코털’은 BLACKSHIP 이라는 레이블 소속의 작곡가이다.
본명은 강해리.
그녀는 소속 가수의 싱글을 맡고 있는데, 곡이 안 나와서 스트레스를 받던 와중에 내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내 곡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수가 원하는 방향성과 내가 가진 곡의 느낌이 딱 일치하는 상황.
강해리가 제안했다.
-물론 자세한 사항은 회사랑 얘기를 해봐야 해요. 그런데 저는 천마 님의 노래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거예요. 한번 얘기를 나눠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생각해보고 연락하지.”
-감사합니다.
이제 진짜로 방송 종료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천마님.
“음? 또 왜?”
[‘해리코털’님이 3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제가 오늘도 잠이 안 와서 그런데 어제 그 노래 한 번만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
강해리는 어제 자장가를 듣고 딥슬립에 빠졌다고 한다.
3만 원이나 후원을 받았으니 나는 특별히 내공을 듬뿍 담아 수면용 노래를 불러주었고, 이번에도 강해리는 대답 없는 시청자가 되어 사라졌다.
진짜로 방송 종료를 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곡을 구매하고 싶다니···.’
내가 만든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고, 그걸 사람들이 듣는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좋은 기회인 것 같다.
평생 BJ만 할 것도 아니고, 다른 쪽으로 다양하게 루트를 뚫어놓는 것도 좋은 듯했다.
거기에 잘되면 돈도 벌 수 있는 거고.
물론 강해리의 그 짜증 나는 상사와 소속사 측에서도 내 노래를 좋아해 줘야지 하겠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과연 사람들이 내 노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이다.
무림에서부터 내가 만든 노래는 오직 나만이 불렀다.
강해리는 내 노래에 담긴 내공 때문에 좋게 평가를 했겠지만, 내 노래를 부를 가수에게는 내공이라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내 노래의 음악성만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
내가 70년간 만들어온 음악들이 대중들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조금 고민하던 나는 강해리가 지적한 일대일 채팅 설정을 바꾼 후, 강해리에게 채팅을 남겼다.
-제안에 대해서 더 듣고 싶은데, 그럼 일정은 그쪽에서 잡아주시죠.
아무래도 강해리를 만나봐야겠다.
< 고백송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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