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송 (3) >
나는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놈을 보았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
기억을 더듬자 조금 전 강해리가 카페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가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름이 아마 이승호였지?'
그때 인터넷에 이승호가 누군지 찾아봤었는데, 찾은 게 무대화장을 진하게 한 사진이라 못 알아볼 뻔했다.
뭔가 묘하게 얼굴이 달라졌다는 느낌도 들었고.
나는 강해리가 방송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모가지를 따고 싶다던 그 상사?”
강해리는 당황한 듯 황급히 손을 저었다.
“??”
맞는 거 같은데 왜 저러지?
나는 이승호를 바라보았다.
다소 화가 난듯한 심통난 얼굴.
나야 오늘 처음 봤으니 나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닐테고, 강해리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대놓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데.
그 사이 이쪽으로 다가온 이승호는 강해리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그 뉴튜버에요? 근데 너무 어려 보이는데.”
이 새끼 봐라?
아까는 죽일 듯이 쳐다보더니, 이제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싱글에 들어갈 곡을 듣도보도 못한 뉴튜버에게 맡긴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모양이다.
물론 내가 저 입장이라도, 첫 솔로 활동을 경력이 없는 초보에게 맡긴다고 하면 당혹스러울 것 같지만.
‘곡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저런다고?’
게다가 조금이라도 예의가 있는 놈이라면, 강해리가 왜 나와 컨택을 했는지 들어보려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아니, 강 피디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고작 뉴튜버한테 제 싱글을 맡긴다고요?”
강해리는 이승호의 태도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말했다.
“미리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해요. 저도 어제 우연히 곡을 들어서 오늘 얘기부터 나눠보고 말씀드리려고 했···.”
하지만 이승호는 강해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검증된 거 하나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제 첫 싱글인데, 이런 거나 데려오시고. 너무하시는 거 아니냐고요. 노래가 좋다고요? 좋기는 개뿔. 후렴구만 들어도 느낌 오잖아요. 촌스러운 거.”
와.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건 오랜만이라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소교주 경합을 할 때였다.
명문가의 후기지수였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저잣거리의 광대 출신이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귀만 보호하면 음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떵떵거리던 놈이 있었다.
놈이 사부님까지 들먹이며 싸잡아서 무시하길래 빡돌아버렸다
‘내가 그놈을 어떻게 조졌었더라?’
그 자리에서 뇌를 진탕시켜 백치를 만든 다음에, 평생 저잣거리에서 살게 했었다.
이승호를 보니 그 새끼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역대 천마 중에서 가장 온화하다는 평을 듣고는 했지만, 그래도 마교에서 구른 시간이 70년이다.
“야.”
강해리는 입을 떡 벌렸고, 이승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쳐다봤다.
“야?”
그는 짧게 한숨을 내뱉더니 목소리에 빈정거림을 잔뜩 담고 말했다.
“혹시 나 부른 거예요?”
조금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렇게 다시 들으니 확실히 알겠다.
“너 목소리가 개판이구나?”
“...뭐?”
목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건조하고 바싹 말라있다.
마치 텅 비어버린 녹슨 통에서 울리는 것처럼 거칠다.
나는 옷에 나는 냄새를 맡고 확신했다.
“담배를 많이 하나보네. 입에서 악취가 나는군.”
담배 연기는 뜨거운데다, 코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바로 흡수하기 때문에 고온건조한 연기가 그대로 성대에 닿는다.
매끈해야 할 성대 점막이 손상되고 말라간다. 그 상태에서 목을 쓰면, 성대가 열상을 입거나 쉽게 헐어버린다.
"심지어 최근에는 제대로 된 연습을 한 적도 없는 모양이고."
굳이 노래를 시켜보지 않아도, 예민한 귀에 느껴지는 음파를 들어보니 알겠다.
녹이 슬었다.
아직 단련되지 않은 여린 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미 닳을 대로 닳은, 풍파를 거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저 멀리 퇴보해버린 그런 목이다.
나는 이승호를 조금 더 뜯어보았다. 자세히 보니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목이 문제가 아니라 몸도 망가졌네. 그 폐활량으로 콘서트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 콘서트까지 가지 않더라도 춤추면서 노래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 놈이 내 노래를 폄하한다니.
처음에는 화가 치밀어올랐는데, 지금은 그냥 코웃음만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이승호를 보았다.
이 새끼는 내 노래를 부를 자격이 없다.
차라리 어제 시청자들을 잔뜩 기만하고 간 [G0LYX]가 부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좋은 곡을 받고 싶어?”
나는 내공을 담은 검지로 이승호의 가슴을 쿡 찔렀다.
손가락에 담긴 내공이 들어가는 순간, 이승호가 크게 움찔했다.
“그럼 노력을 해. 그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병신아.”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작업실을 나왔다.
*
나는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니 일대일 채팅으로 장문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 안녕하세요 차선우 씨.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번호를 못 받았네요.
먼저, 오늘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이승호 씨에게 말을 해뒀어야 했는데···(더보기)
대충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였다, 이승호의 무례한 태도를 사과한다, 등등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내가 나간 후에 이승호가 지랄해댔을 것 같았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내 작곡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해주며 몇 가지 팁들을 알려주는 것으로 긴 메시지를 마무리 지었다.
“좋은 사람이네.”
고백송을 음반으로 내지 못한 건 딱히 아쉽지 않았다.
이승호에게 주느니 내 시청자들에게 들려주는 게 백 배 나았다.
다만 강해리가 긴 문자로 전해준 조언을 보니, 나에게도 보완할 문제가 많다는 게 느껴졌다.
"내 음악은 너무 단조로웠군."
강해리가 들려주었던 가상 악기들의 소리가 아른거린다.
만약 멜로디에 악기들을 적절히 배치할 수 있다면 훨씬 좋은 노래가 될 것이다.
무림에서 음공을 많이 발전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갈 길이 멀다.
집에 와서 예전에 깔아둔 미디 프로그램을 열었다.
강해리의 작업실에는 가상악기와 외장악기까지 다양하게 있었지만, 내 프로그램에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입문자용 버전으로 샀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샘플도 강해리의 것처럼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강해리가 알려준 여러 사이트가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올린 자료들을 참조하며 기본 소스를 활용해보았다.
‘일단 주선율을 이루는 악기를 정하고, 비트도 만들어 봐야지.’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멜로디 라인뿐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느낌을 줘야할지 대략적인 그림은 머릿속에 그려놓았다.
먼저 드럼 소스를 선택해 EQ와 컴프레셔로 만져준다.
어쿠스틱한 느낌에 어울리는 미니멀한 비트를 만든 다음, 퍼커션 샘플을 찾아서 드럼 비트에 씌운다.
‘조금 밋밋한데.’
구간별로 나누어 변화를 주기도 하고, 소스를 아예 다른 걸로 바꿔보기도 했다.
그러자 조금은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
뉴튜브랑 무료 강의를 찾아보면서 공부하면서 하니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시간 만지고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오기 시작한다.
딴 딴 다란 딴딴 다라란-
어느새 단순한 멜로디에 각종 악기들이 입혀지며 곡이 훨씬 풍성해졌다.
즐거웠다. 마치 처음 음공을 배우는 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내가 도달한 곳이 음공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70년을 해왔는데, 아직도 배울 게 이렇게나 많다니."
세상은 넓고, 음악에 끝은 없었다.
나는 더욱더 몰입했다. 미디 작곡의 세계는 넓었고, 예민하게 다듬어진 귀는 최상의 소리를 찾아간다.
‘아까 작업실에서 피아노를 하니 괜찮았었는데. 그럼 피아노로 전체적인 화성 진행을 하자.’
피아노만 있으니 심심하다. 여기에 통통 튀는 플럭 사운드를 단음에 의한 선율 형식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코러스 파트에서는 플루트를 리드 멜로디로 사용하고, 두 번째 벌스에서는 피아노만 남겨놓고 다른 악기는 다 빼볼까?’
그러니 브레이크 다운 같은 효과가 생기며 곡에 긴장감이 생긴다. 그런 후 프리코러스부터 점점 고조되면서 마지막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렇게 주 악기 편성을 마치고 들어보니,
“음. 그럴듯한데?”
나쁘지 않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마지막 후렴구는 조금 더 신났으면 좋겠어서 리드 악기를 바꿔보기도 하고, 비트 소스를 변경해보기도 하며 이것저것 건드렸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느낌을 다듬은 후에 틀어보았다.
“오오!”
산뜻하고 어쿠스틱한 느낌의 고백송이 완성됐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가 다 되어간다. 곡 하나를 만드느라 5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너무 오래 걸렸군.”
강해리가 들으면 기겁할 소리였다.
이제는 슬슬 방송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어제 수수깡의 조언을 듣고 바로 커뮤니티에 10시에 방송을 시작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휴방 공지를 올릴 수는 없지.
나는 집에 있는 녹음 장비를 이용해서 대충 녹음까지 마친 후, 간단한 제목을 지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
[고백송 - BJ음공천마]
전적으로 강해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저는 사운드클라우드를 종종 이용하는 편인데 천마님도 한번 이용해 보실래요?
-아, 그리고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협회에 신청도 해놓으세요.
저작권 문제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강해리의 말이 맞았다.
누가 내 음악방송을 듣고 멜로디를 훔쳐 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나는 강해리의 조언에 따라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10시에 딱 맞춰서 방송을 틀었다.
-ㅎㅇ
-천하~
-오늘은 잠옷이 아니네요?
“응. 밖에 나갔다와서.”
수수깡부터 시작해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방금 곡을 만들었으니 누군가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지금까지는 MR 없이 내 목소리로만 방송을 했는데, 처음으로 반주까지 곁들인 자작곡을 만든 것이니 더욱 그랬다.
적당히 시청자들이 모였을 때쯤, 나는 운을 뗐다.
“흠. 본좌가 고백송에 반주를 입혀봤는데 말이야.”
그렇게 음악방송이 시작되었다.
지금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
그 시각.
레이블 BLACKSHIP의 대표는 강해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표는 강해리와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유명 작곡팀에 있던 그녀를 빼내서 BLACKSHIP으로 영입했다.
대표는 오늘 차선우와 있었던 일을 듣고 껄껄 웃었다.
“그 이승호가 비제이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다고?”
“그 사람 기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막 찍어누르는 거 같은데, 어휴. 이승호도 꼼짝을 못하더라니까요.”
“흠. 그런 사람이 승호를 잡아줘야 하는데. 겉멋만 잔뜩 들어서 말이야. 재능이 애를 망쳤지, 쯧.”
“그러게 말이에요.”
맥주를 마시고 있던 강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좋은 멜로디였는데 놓친 게 너무 아쉽다.
반주를 입혀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려보라고 하기는 했는데···.
습관적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들어간 강해리는 신규 글에서 어딘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응?”
[고백송 - BJ음공천마]
‘설마 벌써 곡을 완성했다고?’
조금 전에 봤을 때는 프로그램을 다루기는커녕 퉁소니 가야금이니 하는 소리만 늘어놓았는데.
강해리는 맥주를 내려놓고 급히 음악을 클릭했다. 스피커를 통해 차선우가 갓 만든 따끈따끈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깊이감 있는 피아노 선율에, 현을 뜯는 소리가 통통 울려퍼진다.
그 위에 잘 어울리는 차선우의 목소리가 얹혔다.
- 오늘 뭐해 나 좀 만나줄래
이제 몇 번 들어서 익숙한 가사가 순식간에 가슴을 파고든다. 계속 들어서 더욱 깊게 남는 감정이었다.
강해리가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 대표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승호가 이 노래를 깠다고?”
그 목소리가 퍽 음산해서 강해리는 움찔거렸다.
.
.
.
그러나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온 고백송을 들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8년 차 싱어송라이터 한태영.
그도 차선우의 노래에 꽂혀버렸다.
< 고백송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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