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금 배틀 (1) >
천마의 음악방송 애청자인 수수깡.
그녀의 가장 큰 취미는 인터넷 방송 BJ나 뉴튜버의 방송을 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분야는 라이브 음방이나 음악 스트리밍.
벌써 1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는 꾸준히 방송을 보아왔다.
워낙에 오랫동안 해온 취미라서 이제 영상 편집도 능숙하게 할 수 있다.
좋아하는 BJ의 경우에는 직접 클립을 편집해서 올리기도 하고, 잠깐이지만 서브 편집자로도 일해본 경험이 있다.
관련 커뮤니티에서 고정닉으로 활동도 열심히 하는 중이다.
커뮤니티 활동 경력도 길고 예의도 바른 수수깡이 추천하는 BJ는 믿고 본다는 말도 있을 정도.
BJ 판에서 고이디 고인 고인물. 그게 바로 수수깡이다.
모든 것을 섭렵한 고인물이 최근 하나에 빠진 채널이 있다.
그것은 바로 ‘BJ음공천마’라는 신입 뉴튜버.
채널을 개설한 지 겨우 3일 된 하꼬 중의 하꼬.
처음에는 그저 습관적으로 그 방에 들어갔다.
그녀가 처음 보는 채널이었기에.
하지만 들어가서 우연히 고민을 상담받고 노래를 들었는데, 진짜 잘 불렀다.
아니, 단순히 ‘잘 부른다’는 수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멜로디가 그대로 마음속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였다. 현실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여운이 가실 때까지는 위로받는 듯했다.
10년 동안 수많은 BJ를 보아왔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녀는 뭐라도 홀린 듯, 하루에 몇 번씩 BJ음공천마 채널에 들어갔다.
[BJ음공천마]
구독자: 5명
영상: 0개
하지만 음공천마라는 사람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듯 영상이라고는 단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진짜 어떻게 클립 하나도 안 올려주냐.’
라방이 끝나고 풀영상도 안 올렸다. 처음에는 편집을 하느라 안 올리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무편집 풀버전이라도 올라주지.’
그러면 직접 유저 클립이라도 만들어서 업로드할 수 있는데.
소스부터 없으니 뭐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현생을 살아가는 중에 천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어제 짝사랑남에게 불러준 고백송은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런데 그 영상이 올라오지 않으니 그저 하릴없이 천마의 채널에만 들락날락할 뿐이다.
‘설마 라이브 방송에 들어오게 하려고 일부러 영상을 안 올려주는 건가.’
하꼬 BJ가 벌써부터 밀당을 하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애가 타다 보니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음공천마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10시 정각.
천마가 스트리밍을 시작했다는 알림이 왔다.
“와, 시작했다. 시작했다!”
그녀는 얼른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 가득 천마의 얼굴이 들어왔다.
'폰으로 보는 건 감질맛 난다니까.'
답답한 핸드폰 화면으로 보다 커다란 모니터 스크린으로 보니까 더 좋았다.
심지어 오늘 천마는 매일 입는 잠옷이 아니라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귀엽다! 컴퓨터로 보길 잘했어!’
무엇보다 음공천마는 잘생겼다.
그래서 보는 맛이 있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데 얼굴도 잘생겼으니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녀는 바로 채팅을 쳤다.
'오늘은 잠옷이 아니네요?'
-오 수수깡님 왔어?
매일같이 찾아오는 수수깡을 천마도 기억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천마는 적당히 수다를 떨다가, 사연 하나를 듣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귀에 착 감겨오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았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시청자는 13명.
지금까지 그녀가 본 것 중 최대 시청자였다. 채팅창도 그에 따라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흠. 본좌가 고백송에 반주를 입혀봤는데 말이야.
수수깡은 눈이 동그래졌다.
‘안 그래도 어제 한번 밖에 못 들어서 아쉬웠는데!’
천마는 이번에 직접 만들었다는 반주를 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천마의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녹음기를 준비해두었는데,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 녹음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는 끝나있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천마는 마무리 멘트를 치며 방송종료 멘트를 하고 있었다.
“···와.”
방송이 끝난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 채널을 나만 알고 있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그녀는 고정닉으로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에 영혼을 담은 추천글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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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걸고 추천합니다. 간만에 대박 하나 찾았네요 ㅠㅠㅠㅠ (#상담 #음악 #라이브 #존잘)
일단 채널 링크부터 걸고 시작합니다.
링크: https://www.newtube.com/watch?v=jxtTegYI4
들어가서 영상이 0개여도 당황하지 마세요···.
저도 영상이 더 올라오면 추천 쓰고 싶었는데, 하 그새를 못 참았네요.
(천마님 이 글 보면 무편집본이라도 영상 좀 올려주세요 제발!!!!!!!)
여튼 방송 컨셉은···(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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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깡이 새벽에 올린 이 게시글은 추천을 받고 커뮤니티의 상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다음날 방송에서 나타났다.
*
수수깡이 영혼을 담은 추천글을 쓰던 시각, 8년 차 가수 한태영은 사운드클라우드를 보고 있었다.
한태영은 한때 유행했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서 데뷔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반짝 뜨고 묻히는 경우도 많았지만, 한태영은 운좋게도 한국 4대 기획사 중 한 곳과 계약할 수 있었고 지금도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태영은 이번 여름쯤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하려는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이것저것 들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새롭게 올라온 노래를 하나 봤다.
[고백송 - BJ음공천마]
솔직히 말해서 왜 이 노래를 재생했는지 모른다.
특이한 닉네임과 성의 없는 제목에 어그로가 끌린 게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어?”
후처리를 하지 않아서 날것의 느낌이 가득한 노래.
의외로 너무 좋았다.
봄에 연인에게 고백하는 어떻게 보면 진부한 가사이지만, 멜로디와 특히 보컬이 돋보였다.
이후에 다른 노래도 들어보았지만 BJ음공천마의 멜로디가 계속 귓가를 맴돈다.
한태영은 자기도 모르게 고백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노래를 앨범에 담으면 좋을 거 같은데.’
지금까지 앨범은 거의 직접 프로듀싱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이런 문제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어차피 수록곡 전부를 작사 작곡하지는 않는다.
타이틀곡과 메인이 되는 몇몇 곡들을 제외하고는 작곡팀에 의뢰를 하기도 하고 회사를 통해 곡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BJ음공천마에도 연락해보고 나중에 회의에서 정해도 될 듯했다.
일단 중요한 건, 음공천마가 뭐하는 놈인지 알아내는 것.
한태영은 구글에 BJ음공천마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그 구글에서도 BJ음공천마에 대한 정확한 결괏값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뉴튜브 채널 하나와, 어떤 유저가 쓴 추천글.
나머지는 전부 '천마'가 나오는 웹소설에 관련된 내용뿐이다.
채널을 클릭하니 스트리밍은 이미 끝났고, 채널에는 아무런 영상도 없다.
공지에는 밤 10시에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일단 일대일 채팅을 한번 보내볼까.’
- 안녕하세요. 어썸뮤직의 가수 한태영입니다. BJ음공천마 님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뭐 금방 답장이 오겠지?'
무려 공식 계정을 통해서 보낸 채팅이다.
한태영은 답장이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단 시간이 늦어 자고 일어났다.
회사에도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를 보내줬더니, 노래가 아주 좋다고 컨택하는 걸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음공천마라는 사람이 아직도 채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자고 있나?’
그럴 수 있다. 새벽까지 방송을 하는 모양이니 점심 느지막이 일어나겠지.
한태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안읽음’ 문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운드클라우드에 들어가 보니 어느새 천마가 올린 게시글에 코멘트가 몇 개 달려있었다.
물론 모두 호평일색이다.
‘설마 다른 곳에서도 컨택을 했나?’
조바심이 났다.
음공천마가 만든 노래를 가지고 싶었다.
하루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멜로디.
이번 앨범에 꼭 넣고 싶었다.
결국 한태영은 밤늦게 천마의 방송에 들어갔다.
[TAE0 님이 입장했습니다.]
[시청자 32명]
“뭐지?”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이렇게 많다고?
그는 일단 채팅을 올리지 않고 흐름을 좀 보았다.
대부분 새로 유입된 시청자였는데 줄어들기는커녕, 천마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한태영은 천마의 노래를 듣고 당황했다.
‘작곡가인 줄 알았는데 가수였나?’
결국 참다못한 한태영은 채팅을 작성했다.
- 안녕하세요. 혹시 가수이신가요?
그러나 빠르게 묻혔다. 몇 번 채팅을 쳤지만, 천마는 상담글이 아니면 그냥 무시했다.
한태영은 고민했다.
방송을 좀 보다 보니 천마의 성격을 조금 알 것만 같았다.
정말 고민 상담과 음악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외골수.
영상을 올리지 않는 것을 보면 유명해지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어쩌면 일대일 채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걸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천마와 대화할 타이밍은 지금 이 방송 안에서밖에 없는데.’
그러면 자신이 한태영이라는 걸 밝히고 공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고민하던 그는 생각했다.
‘이런 해프닝도 홍보로 쓸 수 있으니 한번 말을 걸어보자. 시청자들도 재밌다고 느낄 수도 있고.’
끊임없는 채팅의 물결에서 존재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작업이 필요했다.
한태영은 가볍게 채팅을 올렸다.
[TAE0 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어썸뮤직 소속 가수 한태영입니다.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주로 시청자 쪽에서.
- ㅋㅋㅋ사칭이넼ㅋㅋㅋㅋㅋ
- 그래도 십만 원이 어디야
- 별 어그로가 다 있네
그러나 몇몇 부지런한 시청자는 프로필 사진을 누르고 채널에 들어갔다. 그 채널에는 진짜 한태영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 ???
- 찐인데?
- 야 채널 들어가 보니까 진짜야
- 와 한태영이 여길 왔다고?
- ㅁㅊㄷㅁㅊㅇ
한태영은 약간 뿌듯해졌다. 이렇게 컨택해서 화제성도 모으고 나쁘지 않은 듯했다. 잘되면 곡을 받을 수 있고, 안 돼도 다음 앨범을 홍보할 수 있다.
[TAE0 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일대일 채팅으로 연락드렸는데 답장이 없으셔서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고백송’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TAE0 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이 곡을 제 다음 앨범에 넣고 싶은데 의향이 있으실까요?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 ㄴㅇㄱ
- 아니 진짜 여기서 이런다고?
- ?!??!?!?!?!?
각종 문장부호와 단어조차 되지 않은 음절로 도배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채팅창이 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S.HO 님이 1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TRICKER의 이승호입니다. 어제 뵀었는데 이렇게 다시 인사드리네요.
BJ음공천마의 채팅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후원금 배틀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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