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원금 배틀 (2) >
차선우에게 팩트로 두들겨 맞은 후, 이승호는 바로 BLACKSHIP 대표에게 통보했다.
듣보 뉴튜버 따위에게 곡을 받아오는 강해리와는 더이상 작업을 못 하겠다고.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좋지도 않은 곡을 자기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인다고.
'내가 그렇다는 데 별수 있겠어?'
대표는 일단 강해리와 얘기를 해보겠다고 한 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승호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총괄 프로듀서를 말 한마디로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TRICKER는 성적이 좋았던 그룹이다.
발언권이 강한 편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강해리가 고분고분해지는 효과는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승호!!!!!!"
다음날 대표에게서 걸려온 전화. 이승호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가 수화기 너머 울리는 호통에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이 멍청한 새끼야. 너 노래는 제대로 들어보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이승호는 눈을 끔벅거렸다.
'설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가?'
대표의 반응은 이승호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표의 호통을 고분고분하게 듣고 있기에는 이승호도 억울했다.
'겨우 노래 하나 깠다고 대표님이 나한테 이렇게 군다고?'
심지어 제이맨의 곡도 아니고, 고작 듣보 뉴튜버가 가지고 온 곡 때문에?
"아니, 대표님. 그 새끼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래. 해리한테 다 들었다. 노래한다는 새끼가 자기관리도 못 한다는 소리를 했다며. 맞는 소리 했구만."
"대표님!"
이승호가 항의하려고 했지만, 대표가 한 박자 빨리 치고 들어왔다.
"닥쳐. 좋은 곡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서 하는 소리야? 너 솔직히 말해. 곡 제대로 안 들어봤지?"
"...끝부분은 들었는데."
"야!!!!!!"
이승호는 귀에서 전화기를 잠시 뗐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엄청난 잔소리가 밀려들어 온다.
"군대도 갔다 온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복이 굴러와도 못 알아차리는 이 화상을 내가 어떡하냐. 응?"
이어 대표의 잔소리가 4절까지 진행된 후,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이승호가 말했다.
"대표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이맨이랑 하면 안 될까요? 독립 레이블이라고 해도 한솥밥 먹는 사이인데."
"아이고. 이승호야, 승호야. 지금 제이맨은 새 걸그룹 프로듀싱 들어가서 너의 곡을 봐줄 시간이 없어요. 언제까지 땡깡이나 쓸거냐. 그리고 솔직히 제이맨은 너랑 어울리는 스타일의 곡을 만들지는 않아."
사실 그건 그렇다. 제이맨의 곡은 힙합 베이스의 펑크한 음악인 데 반해, 이승호는 둥글고 섬세한 보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알아들었지? 그러니까 당장 그 작곡가에게 가서 사과하고 곡 받아와. 돈은 얼마가 들던 상관없으니까."
으름장을 끝으로 대표는 전화를 끊었다. 이승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 작곡가한테 곡을 받아오라고?"
가기 싫었다.
쪽팔렸다.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그 어린놈한테 고개를 숙일 순 없지.'
무엇보다 그 애송이에게 들은 팩트가 아직까지도 아프다. 이승호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목소리가 개판이구나?
- 그럼 노력을 해. 그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병신아.
솔직히, 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마음속으로라도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차선우는 20살 애송이가 아니라, 마치 음악계에서 20년은 구른 선배 같았다.
'하 씨. 어떻게 하지.'
서로 얼굴을 붉힌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갑게 인사하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게다가 차선우의 연락처도 모른다.
그래서 이승호는 강해리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강해리 프로듀서님. 오늘 낮에 작업실에서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적당한 사과와 변명을 붙인 후,
- 차선우 씨에게도 사과드리고 싶은데, 제가 연락처도 모르고 그쪽에서 언짢아할 수도 있을 듯해서요.
- 혹시 다리를 놔주실 수 있을까요?
사과의 의미로 백화점 상품권 기프티콘도 첨부했다.
그리고 바로 진동이 울렸다.
이승호는 재빠르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답장은 강해리가 아니라 대표에게서 왔다.
- 나 해리랑 같이 있다. 괜히 해리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너 알아서 해결해라.
- 참고로 그 작곡가 연락처는 해리도 모른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대신 대표는 차선우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 채널명이 'BJ음공천마'라던데 채팅이라도 해봐.
"···젠장."
이승호는 뉴튜브 채널에 들어가 봤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독자의 수.
[BJ음공천마]
-구독자: 41명
"역시 하꼬 중의 하꼬네."
고작 41명이다.
본인의 채널의 구독자가 아마 수십 만 명은 넘었을 거다.
그런데 그 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수치가 있었다.
- 영상: 0개
"······?"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영상은 0개인데 왜 구독자는 41명?
아니, 이거 뉴튜버라면서 영상을 안 올리면··· 제대로 활동은 하는 놈인가?
뭐하는 새끼인가 싶은 마음과, 뭐라도 되는 놈이긴 한가? 라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대표가 닦달을 해대니.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일대일 채팅을 남겼다.
하지만.
'답장이 없네?'
저녁이 지나 밤이 되도록 답장이 없었다.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이승호는 혹시나 다른 아이디로 채팅을 보냈을까봐 확인을 해봤다.
분명 본인의 공식 채널이 맞다.
짜증이 났다.
팬들 몰래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이렇게 답장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딱히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제 방법은 하나.
거의 자정이 다될 즈음에 이승호는 라이브방송에 들어가 보았다.
[S.HO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채팅창의 분위기가 장난 아니다.
타임라인을 거슬러 읽어보니 자기보다 먼저 음공천마라는 놈을 찾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무려 한태영이 공개적으로 의뢰를 하는 중이었다.
'한태영이 이 새끼한테 곡을 의뢰해? 아니, 그것보다 한태영이 컴백을 한다고?'
한태영은 TRICKER보다 1년 먼저 데뷔했다. 연차는 비슷하지만 개인적인 인지도 면에서는 한태영이 훨씬 높다.
한태영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솔로 가수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한태영이 곡을 의뢰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컴백 시기가 겹칠 것 같다.
'대표님은 이런 것도 안 알아보고 뭘 하시는 거야.'
이승호는 괜히 짜증이 났다.
동시에 방금까지는 느긋하던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강해리와 대표, 한태영까지 매달리는 작곡가.
이쯤 되니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뭔가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좋은 곡이었던가?’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 들었을 때 후렴구가 조금 끌리긴 했던 것 같다.
[S.HO 님이 1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TRICKER의 이승호입니다. 어제 뵀었는데 이렇게 다시 인사드리네요.
이승호는 바로 입찰 경쟁에 나섰다.
*
나는 황당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TAE0 님이 100,700원을 후원했습니다.]
TAE0: 하하하. 이승호 님도 컴백 준비하시는구나. 그런데 이 노래는 저한테 더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만.
[S.HO 님이 100,800원을 후원했습니다.]
S.HO: 사실 천마님이 저 주려고 저희 회사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로채시면 안 되죠.
[TAE0 님이 100,900원을 후원했습니다.]
TAE0: 회사까지 갔다가 다시 사클에 올린 걸 보면 얘기가 잘 안됐나 봐요?
뭐야? 왜 내 채널에서 둘이 싸워?
그렇지 않아도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갑자기 구독자와 시청자가 폭발한 것이다.
- 쑤님 글 보고 왓어여
- 진짜 영상 1도 없넼ㅋㅋㅋㅋ실화냐
- 와 근데 노래는 진짜 좋다.
- 영상은 왜 안 올려줘요?
요약하자면 쑤님이란 사람의 글을 보고 유입됐다는 건데.
'쑤님? 그런 시청자가 있었나?'
누군지는 몰라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사람들이 늘어나니 사연도 다양해졌다.
재미있는 것들로 골라 받으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한태영의 후원이 터졌다.
이에 질세라 이승호도 후원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진짜 가수 한태영이라고?’
한태영은 내 기억 속에도 있는 가수다.
예전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만들었는데 그게 히트해서 아직도 크리스마스에는 한태영의 노래가 들리곤 한다.
그걸 크리스마스 연금이라고 부르면서 부러워했었는데.
나도 무림에 있을 때 한태영의 캐럴을 몇 번 불렀었다.
노래가 몽글몽글한 게 내공을 실어서 부르면 한겨울에도 괜히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 한태영이 고백송이 마음에 든다고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사기꾼인가 생각했지만, 한번 채팅을 칠 때마다 10만 원씩 주는 걸 보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10만 원씩 주면 사기꾼이라도 용서해줄 만하지.’
중간에 난데없이 이승호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 새끼는 무시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말할 때마다 후원금이 터졌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말 몇 마디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누적 후원금액이 300만 원을 넘어갈 때 나는 슬슬 운을 뗐다.
“두 분 말은 다 했지? 그럼 제가 선택할 사람은···.”
말을 끌자 사람들이 격분했다.
- 아니 왜 말을 끌어
- 천마님 누구를 선택할 건가요?
[몬티 님이 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빨리 말해주십쇼
- 우리 승호오빠랑 같이 작업해주세요ㅠㅠㅠㅠㅠ
- 미쳣냐 고백송이 한태영 목소리랑 찰떡이지
[천마0호팬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중간중간 후원금이 터지는 걸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나는 말했다.
“일대일 채팅으로 전해드릴게. 그럼 내일 보자.”
- 야 천마 이 갯ㄱ
- 그래서 눅ㅜ···.
[BJ음공천마 스트리밍이 종료되었습니다.]
*
나는 터진 후원금 내역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원금: 3,189,900원
‘이렇게 쏠쏠할 줄이야?’
음악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돈은 필수적이다.
방금 전의 경우는 가수 두 명이 곡을 의뢰하는 특수한 상황이기는 해도, 이렇게 후원금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 강해리 작업실처럼 룸튜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전에 부모님께도 선물도 보내드려야지.’
두 분은 지금 제주도에 한달살기를 하고 계신다. 아마 3주 뒤에 오실테니 그때까지 돈을 벌어서 뭐라도 해드려야지.
이런저런 계획을 짜면서 나는 채팅방에 들어갔다.
사실 방송을 한 이후부터 종종 광고가 쌓여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스팸들 밑으로 이승호와 한태영의 채팅이 보였다.
이승호 것은 무시하고, 한태영의 메시지만 클릭했다.
- 안녕하세요. 어썸뮤직의 가수 한태영입니다. BJ음공천마 님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고백송에 대한 평가와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내용.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요 조건 등을 올려놓았다. 그중 하나는,
- 만약 곡 작업을 같이하게 된다면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은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발매될 앨범의 곡이 이미 공개된다면 흥미가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
어차피 팔려고 했던 곡, 이승호 같은 놈에게 가는 것보다는 내 곡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낫지.
나는 한태영에게 대충 알겠으니 만나보자는 메시지를 보낸 다음, 한태영의 노래를 찾아보았다.
‘만나기 전에 스타일이 어떤지 파악해두는 게 좋겠지.’
내가 아는 노래는 캐럴을 제외한 두세 개밖에 없었다. 최근 낸 앨범부터 쭉 들어보자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다.
스트링 사운드가 메인인 어쿠스틱 포크송이 많았다. 한태영이 고백송에 꽂힌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음.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겠네.’
3집, 2집 앨범으로 쭉 내려오다가 첫 앨범까지 왔다.
전체적인 느낌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질적인 노래를 하나 발견했다.
‘···뭐야 이건?’
트로피컬 사운드에 리듬감이 넘치는 댄스 팝이다.
조금 당황스럽다. 마치 발라드 가수가 클럽에 가서 춤추는 광경을 목격한 듯하다.
관련 영상을 클릭하니 한태영이 무대에서 진짜로 춤을 추는 영상까지 나왔다.
한태영은 정말 즐거워 보이는데. 문제라면 댓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
- ㅈㄴ웃긴데 라이브실력은 미쳤네ㄷㄷㄷㄷ저렇게 뛰는데 음이 안 흔들려
- 콘서트용으로는 괜찮은 듯
- 오빠 댄스곡은 좀ㅠ
- 몸치인데 목소리가 되니까 뭐. 근데 관광버스 춤 같다
- 왜 듣는 사람이 부끄럽죠
“흠···.”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한태영에 춤이라.’
< 후원금 배틀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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