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야, 마음에 안들어 >
한태영은 나를 작업실로 초대했다.
어썸뮤직 본사 근처에 있는 작업실은 강해리의 작업실과 구성은 비슷하지만 그 크기는 훨씬 컸다.
그러니까 존나 멋졌다는 뜻이다.
'와··· 나도 가지고 싶다.'
오늘도 장비병이 도졌다.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내가 들어가자 한태영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실제로 보니까 되게 젊으신 느낌이네요? 방송하실 때는 좀 더 나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안의 구십 살 먹은 할아버지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괜히 겸연쩍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이제 스무 살이에요.”
“와, 저랑 열 살 차이가 나네요.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하하.”
한태영은 올해 딱 30살이 됐다고 한다.
선이 부드러운 미남으로 옅은 갈색 머리가 잘 어울렸다.
90살 자아를 가지고 한태영에게 형이라고 부르기에는 양심이 찔렸지만, 회춘한 특권을 누리기로 했다.
“알았어요. 형.”
“하하. 제가 내년에는 군대에 가야해서요. 올해 앨범에 욕심을 내고 싶더라고요.”
그러고보니 이승호도 군백기를 끝나고 컴백 싱글을 낸다고 했는데.
군백기라. 우리나라 남자 가수의 숙명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잊고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나도 군대를 가야하잖아?’
나 군대 갈 때는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어쨌든 한태영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군대 전 마지막 앨범이라고 생각하니까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이 없는 18개월 동안 팬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며 오래오래 들을 수 있는 그런 앨범을.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너무 힘을 주다보니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곡을 만들고 엎는 걸 반복하던 와중, 내 노래를 듣게 된 것이다.
한태영이 웃으며 말했다.
“젊은 분이라 그런지 확실히 풋풋한 사랑 노래를 잘 만드는 것 같아요. 경험담인가요?”
경험담이라.
나는 무림에 있을 때를 떠올렸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많았기는 했지만···.
‘···아마 풋풋함과는 거리가 멀었지?’
풋풋함보다는, 살벌함?
무공에 미친 무림인 새끼들은 사랑도 무공으로 쟁취했다.
암투가 벌어지면 누구 하나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회춘도 했겠다 설렘 가득한 청년의 사랑을 해보고 싶긴 하다.
“어··· 경험이라기보다는 이상에 가깝죠.”
“아······. 그렇군요.”
한태영은 어색하게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여튼 곡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회사에서도 천마 씨···?랑 작업하는 거, 찬성이라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그럼 형 스타일에 맞춰서 편곡을 진행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한번 불러볼까요?”
보통 회사에서 곡을 사가면 그쪽 작곡팀에서 편곡을 하지만, 한태영은 원곡자인 내가 한번 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한태영이 고백송을 부를 준비를 했다.
이미 악보는 미리 보내놨었기 때문에 한태영은 이미 곡을 숙지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멜로디가 한태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달달하고 감미로운 노래.
그런데.
“음···.”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한태영도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네. 천마 씨 느낌이 안 나오는데?”
아무래도 나랑 음색이나 발성, 그리고 음악 스타일까지 조금씩 차이가 나다보니 어제 내가 불렀을 때의 느낌이 나지 않았다.
내가 처음 고백송을 부른 건 짝사랑 기만남의 등을 떠밀어주기 위할 때여서, 썸을 탈때의 간질간질한 그 느낌을 최대한 살렸었다.
그러다보니 조금 더 발랄하고 풋풋한 감성이 있다.
하지만 한태영은 주로 동체공명을 사용하여 호소력이 짙게 불렀다.
그러다보니 성숙하고 여유있는 느낌이 났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 편곡을 하기로 했다.
“컴퓨터 좀 써도 될까요?”
“물론이죠.”
한태영의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을 열었다.
내가 쓰는 것보다 기능이 다양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한태영이 방법을 알려주니 금방 익힐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어느새 나는 편곡에 집중했다.
“비트를 조금 바꾸면 좋겠는데.”
“어떻게요?”
나는 비트 소스를 몇 개 끄집어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들기로 했다.
조금 더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니 문득 어제 들은 한태영의 댄스곡이 생각이 났다.
‘그건 좀 더 튀는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한태영과 어울리지는 않았어. 리듬감만 확실하게 살리면서 노는 분위기를 주면 좋을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악상이 떠오른다. 나는 머신을 만지면서 한태영에게 말을 걸었다.
“본좌가 어제 ‘touch touch’를 들어봤거든.”
touch touch가 문제의 그 댄스곡이다. 한태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 하하. 그걸 들었어요?”
“혹시 춤 추는 거 좋아하나?”
한태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사실 제가 춤추는 걸 좋아해서 1집에 넣어본 건데 반응이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는 그냥 노래방에서만 몰래 추죠.”
나는 어제 뉴튜브에서 본 댓글을 떠올렸다.
영상 속에서 한태영은 열심히 몸을 흔들기는 했지만··· 사실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곡의 문제도 있다. 억지로 귀를 잡아채려고 만든 장치가 부담스럽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태영의 뚝딱이 춤이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댄스가 안 어울리긴 하지.”
“.......”
“대신 콘서트에서 흥겹게 놀 수 있는 느낌은 어떤가?”
순간 한태영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바꾼 비트를 틀었다.
원곡의 BPM은 96이었지만 지금은 BPM이 105로 더 빠르게 바뀌었다.
너무 빠르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훨씬 신나진 노래.
한태영이 저절로 리듬을 타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렇게 비트에 몸을 맡기던 한태영이 말했다.
“오··· 이거 좋은데요?”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음에 안 들어.”
“???”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사운드에 변화를 줘서 다이내믹한 느낌을 좀 더 살려보지.”
첫 마디인 ‘오늘 뭐해 나 좀 만나줄래’
그 뒤에 바로 악기 전체가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보컬만 드러나도록 했다.
그러자 이어지는 고백이 훨씬 강하게 상기된다.
원곡에서는 거의 없던 베이스 리듬과 드럼 필인(Fill-in)을 확 살렸다.
리듬감이 도드라지면서 흥청거리는 듯한 질감의 사운드가 됐다.
나는 다시 노래를 틀었다. 한태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지나갔다.
“처음의 노래랑 좀 많이 달라졌네요? 하지만 제 스타일이랑 좀 달라서···.”
“좋은지 안 좋은지만 말해.”
“좋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부족하단 말이지. 그냥 멜로디도 바꿔버리고···.”
“???”
뚝딱뚝딱
한태영이 말릴 새도 없이 나는 멜로디 수정에 들어갔다.
멜로디를 조금 더 간결하게 하는 대신, 특징적인 멜로디라인과 훅을 살렸다.
너무 통통 튀는 부분은 한태영과 안 어울리니까 죽여버리고, 적당히 논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곡이 너무 처지지 않게끔 후렴구에서 탄산을 터뜨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리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소풍을 가서 즐겁게 뛰어다니는 느낌.
일렁이는 청량한 기류.
그렇게 삼십 분이 또 지나고, 나는 완성된 다시 노래를 틀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신나게 바뀐 노래.
한태영은 입을 떡 벌리고는 감탄했다.
“와···. 이게 된다고? 가사만 똑같지 아예 노래가 바뀌었는데요?”
아, 가사가 있었군.
“그럼 가사도 바꿔버리지.”
조금 더 날티나게.
“???”
그러게 가사까지 휘리릭 쓰고 나니 그냥 다른 곡이 되어버렸다.
고백송의 풋풋한 느낌은 어디 가고, 당장이라도 드라이브를 떠나야 할 것 같은 신나는 멜로디가 울려퍼진다.
한태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거 한번 불러봐도 될까요?”
그의 눈빛에는 옅은 욕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
어젯밤 BJ음공천마 채널에 있었던 후원금 배틀은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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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듣보 채널에서 있었던 일.jpg
BJ음공천마라는 진짜 개하꼬 채널인데 한태영이랑 이승호 등장해서 배틀뜸
(캡처1)
(캡처2)
(캡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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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야?
- 미친ㅋㅋㅋㅋㅋㅋㅋ챗 칠때마다 십만원씩 넣언넼ㅋㅋㅋㅋ
- 아 여기 인방갤 쑤님이 추천해준데잖아
- 무슨 말이지ㅠㅠ 누가 요약좀···.
ㄴ국평오··· 이게 이해 안감?
ㄴㅅㅂ왜 지랄이세요
- 세줄요약
1. 싸클에 고백송이 올라옴 (지금은 내려감)
2. 한태영이 듣고 앨범에 넣고 싶다고 라방에 등장
3. 이승호 등장 > 후원금 배틀ㄱ
- BJ음공천마 노래가 그렇게 좋음?
ㄴㅇㅇㅇ 잘부르긴 하더라
이번 일은 연예계에 한 번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
연예 뉴스에도 짤막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한태영의 소속사인 어썸뮤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마침 한태영은 어썸뮤직의 간판 가수였기 때문에 대표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일단 한태영에게 연락했다.
마침 차선우와 작업을 끝낸 한태영이 전화를 받았다.
- 네, 대표님.
“어. 태영아. 그 작곡가님이랑은 잘 돼가?”
- 방금 돌아갔어요.
“뭐? 벌써?”
- 방송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아···.”
대표는 조금 당황했다. 뉴튜버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태영과 작업할 기회인데 이렇게 칼같이 돌아갈 줄이야. 방송 한 번쯤은 미뤄도 되지 않나?
그런데 한태영의 목소리는 마냥 밝았다.
“그런데 곡 작업이 거의 끝났거든요.”
벌써?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한태영이 말을 이었다.
“편곡하다가 완전히 다른 곡이 탄생했는데 이 느낌도 좋은 것 같아요. 천마 씨가 돌아간 후에 녹음하고 가믹싱까지 했는데 한번 보내드릴게요.”
대표는 천마의 어마어마한 작업 속도에 다시 한번 당황했다.
‘분명히 오늘 오전에 만난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오후 7시밖에 되지 않았다.
곡 작업이라는 게 빠르면 삼십분만에 뚝딱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하꼬 뉴튜버가 빨리 결과물을 내놨다고 하자 의심부터 들었다.
대표는 의아해하며 한태영이 회사 클라우드에 올린 노래를 받아 틀었다.
그런데,
잘 빠졌다.
봄나들이를 갈 때 들을 법한 드라이브송 같다.
후렴구에서는 원곡에 있던 가사를 다 빼고, 베이스로 리듬감을 살리면서 나나나나-하는 단순한 챈트가 반복된다.
트로피칼 팝이다. 하지만 꽉 쪼여 밀어붙이는 느낌 없이 곳곳에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덕분에 시원한 여름 노래가 아니라 어쿠스틱한 봄노래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리듬감이 강해 춤을 춰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현란한 댄스가 아닌 가벼운 율동 느낌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산을 끝낸 대표가 말했다.
“이거 다음 달에 맞춰서 내야할 거 같은데?”
4월 말, 날이 슬슬 풀리면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나들이를 나갈 때쯤 내면 좋을 듯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계절송이다 보니 시기가 중요할 거 같거든요.
하지만 원래 그들은 여름을 노리고 있었지만, 한 달 반 정도 빨리 타이틀곡을 싱글로 낸 다음 정규앨범으로 컴백해도 상관없다.
다만 문제라면,
“그러면 지금 3주밖에 남지 않는데 괜찮겠어?”
- 곡도 다 나왔는데 상관없죠. 그런데 대표님 진짜 이 곡 괜찮아요?
한태영의 웃음기 어린 말을 들어보며 대표는 생각했다.
이 자식, 또 떠보는구나.
“작곡가님이랑 계약서부터 써야겠네. 마침 화제도 됐으니 이참에 홍보도 같이하면 좋고.”
흔쾌한 승낙이다.
물론 그러려면 일주일 만에 곡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뮤비도 찍어야 해서 실무진들이 갈려나가야겠지만.
그건 늘 있었던 일이니 대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한태영의 곡을 확인한 대표.
그의 지시를 받은 어썸뮤직의 홍보팀에서 본격적으로 나섰다.
- 이승호 vs 한태영, 승자는?
- BJ 천마가 한태영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 한태영, 봄에 신곡으로 돌아온다
연예 뉴스에서 잠깐 올라왔던 ‘후원금 배틀짤’은 홍보팀의 손에서 재생산되었다.
깔끔하게 편집까지 끝난 그 장면은 공공재가 되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썸뮤직 홍보팀은 이 화제성을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들었지만, 이승호의 팬들은 그 꼴을 볼 때마다 빡이 치고 있었다.
이승호의 홈마는 기사를 읽고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한태영 띄우려고 우리 오빠를 이용해?”
심지어 두 사람이 배틀을 벌인 채널도 유명작곡가도 아니고 듣보 뉴튜버, 채널명도 중이병 같은 BJ음공천마였다.
홈마는 별 이상한 놈 때문에 이승호가 재수없게 엮였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궁금해지기도 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우리 오빠랑 한태영이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하는 거지?’
마침 시간은 밤 11시.
음공천마의 라이브 방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다.
홈마는 망설이다가 클릭했다.
‘그냥 탐색만 하는 거야. 탐색만.’
[이승호 마누라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아니야, 마음에 안들어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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