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관이 필요해 (1) >
[이승호마누라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아이디냐.’
그래도 새로운 시청자는 언제나 환영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11시인데 벌써 시청자가 150명 정도 됐다.
'연예인 빨이 좋기는 좋네.'
한태영 소속사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홍보에 쓸 건데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내 방송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나는 조금 더 다양한 고민을 들어주고,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방송을 하는 와중에도 시청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많다 보니 채팅이 빠르게 파바밧 올라갔다.
하지만 나는 내공을 돌려 안력을 돋운 후, 글자 하나하나 모두 캐치했다.
‘수수깡은 여전히 개근 중이고, 호랭도 있군. 부부관계는 어째··· 좀 원만하려나?’
반가운 초기 멤버도 보인다.
시청자가 고작 4명일 시기부터 내 방송을 봐준 고마운 사람이다.
동시에, 분탕질을 치는 새끼도 보였다.
- ㅋㅋㅋㅋ어휴이딴 새끼 때문에 승호 오빠가 까이네
- 고딩인가?
- 어린 새끼가 일은 안하고 방송질이나 하고ㅋ 형 공장에 와라 일 가르쳐줄게
이승호의 팬들도 있고, 그냥 남들 괴롭히는 걸 즐거워하는 하류 인생들도 있다.
뒷골이 슬슬 땡기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린 새끼들이···. 그냥 다 강퇴시켜버려?'
분탕 새끼들 때문에 사연에 집중이 안 되고 있다.
나는 일단 가볍게 경고를 날려주기로 했다.
"새끼들이 아까부터 쫑알쫑알. 뒤지기 싫으면 아가리 하고 있어라. 좀."
-어휴ㅋㅋㅋ얼굴 굳은 거 봐ㅋㅋㅋㅋㅋ
-지적질 했다고 정색하기는
-빻은 게 더 ㅈ같아지네
하지만 내 가벼운 경고에도 분탕 새끼들은 멈출 줄 몰랐고,
승호1호팬: 노래가 뭐가 좋다는 거지? 그냥 평범한데···.
승호1호팬: 덕분에 한태영 앨범 망하겠네ㅋㅋㅋ빨리 군대로 꺼졌으면
조금 전부터 방구석 평론가 코스프레를 하던 놈이, 내 노래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승호1호팬]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놈.
"야, 1호팬? 너 이승호 팬이냐?"
승호1호팬: 니가 알아서 뭐하게ㅋㅋㅋㅋ
승호1호팬: 음공천마? 어디 아이디도 병신같은게ㅋㅋㅋㅋㅋ
승호1호팬: 어디 노래나 함 불러봐라
승호1호팬: 못하겠지? 어휴 그냥 딴 일이나 찾아보세요
승호1호팬: 솔직히 지금까지 부른 것 중에서 제대로 된 노래라고 할만한 게 있나?
"이 씨발새끼가.”
무림맹이랑 맞짱 뜰 때, 사황성 놈들이 뒤통수를 쳤을 때도 이렇게 빡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끓어오르는 분노가 내공에 담겼다.
"갈!!!!"
갈-갈-갈-갈-
호령 소리가 방 안을 메아리쳤다.
이어지는 질펀한 욕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니가 노래를 시키면 해야 하냐? 아가리 한 번 털리면 쫄아서 질질 짤 새끼가 진짜 어이가 없네, 뭐? 그냥 딴 일이나 찾아보세요? 네 인생 저잣거리에 걸려서 펄럭이던데 그건 챙기긴 했냐? 방구석에서 손가락 놀리는 거밖에 못 하는 새끼가. 손가락 다 뽑아서 귓구멍에 박아줘야 정신을 차리지."
속이 뻥 뚫린다.
마무리로 [승호1호팬]을 강퇴시키려는데, 문득 채팅창이 눈에 들어왔다.
[승호1호팬]의 마지막 채팅 이후로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아. 좆됐다.’
뒤늦게 깨달음이 몰려왔다.
내 음공은 광역기라는 것을.
[승호1호팬] 때문에 빡쳐서 줘패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목소리에 가득 담았는데, 그게 [승호1호팬]뿐만 아니라 시청자 전체에게 전달되었다.
승호1호팬: 죄송합니다.
[승호1호팬 님이 나갔습니다.]
[7007 님이 나갔습니다.]
[멍뭉멍멍 님이 나갔습니다.]
[승호1호팬]을 비롯한 분탕 종자들은 곧바로 사과를 박고 빠르게 도망갔다.
이건 다행이긴 한데··· 유쾌하지 않았다.
이 분위기 어떻게 할 거야.
방금 전까지 활발하게 올라오던 채팅은 뚝 끊겨 황량하기만 했다.
채팅창의 싸한 분위기가 피부로 전달되며, 본능적으로 지금 이걸 살리지 못한다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눈에 띄는 고민글을 읽었다.
‘응응’이란 닉네임을 가진 시청자였다.
응응: 안녕하세요. 결혼식 몇 달 앞둔 예비신랑입니다. 어제 예신이랑 일이 터졌는데···조언 좀 부탁드려요ㅠㅠㅠㅠ
이렇게 시작한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혼집을 마련하고 여자 쪽에서 먼저 들어왔다.
그 뒤에 응응이 신혼집에 들어와서 짐을 정리하다가, 서랍에서 'ㅇㅇ에게'라고 적힌 편지를 본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ㅇㅇ은 분명 남자의 이름이었지만, 첫줄부터 느낌이 싸했다.
'우리의 6주년을 맞이해서 오랜만에 편지를~' 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응응]: 그런데 저희가 만난 지 3년째거든요.
편지가 길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사랑한다는 둥, 행복하게 잘살아 보자는 둥, 그에게 해주지 않았던 온갖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응응]: 우리 애기 잘 키워보자, 셋이서 같이 잘 살자. 이런 식으로 적혀있었습니다.
바로 여자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당황하면서 '애기'가 키우던 강아지를 말하는 거라고 변명하더랬다. 강아지를 안 키워봐서 그렇지, 다들 자식처럼 키운다며···.
[응응]: 저도 본가에서 강아지를 키워봐서 알아요. 자식처럼 키운다는 거. 그런데 그 뉘앙스를 보면 알잖아요? 분명 강아지가 아니라 자식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여러 번 여자친구한테 캐물어 봤지만, 여자친구는 되려 못 믿는 거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신혼집도 이미 마련했고, 곧 있으면 결혼식인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며 글이 마무리가 됐다.
여기까지 읽은 나는 복창이 터졌다.
너 병신이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일단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응응’의 사연을 요약해서 얘기해준 다음 말했다.
"이거 딱 보니까 답이 나오네. 너 당한 거야. 강아지 잘 키우자고 편지 쓰는 게 어디 있냐. 솔직히 응응이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
[응응] :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결혼이 진짜 얼마 안남아서요 ㅠㅠㅠ 청첩장도 다 돌리고 인사도 드렸는데···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이혼보다는 파혼이 쉽다. 평생 이혼남 딱지 붙이고 살 바에는 그냥 잠깐 쪽팔리는 게 낫지. 응응아, 인생 길다. 얼른 손절하고 도망가."
그리고 응응의 사연을 들은 시청자들도 하나둘씩 채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조상님이 도우셨네요
-신혼집에 전남친 편지를 가지고 간다고? 주작 아님?
-퐁퐁이형··· 도망쳐···
-이거 파혼도 잘 해야 될 듯. 여자 측에서 님이 괜히 의심해서 파혼했다고 주장할 거 같은데요. 귀책 사유 확실히 하세요
이제야 분위기가 돌아온 것 같네.
고맙다 응응아.
나는 단호하게 정리했다.
“중요한 건 너 지금 그 결혼 하면 평생 후회한다. 사기 결혼 당할 뻔했는데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확실히 알아보고 빨리 결정해. ”
‘응응’은 조언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분위기는 훈훈해졌다.
그때 수수깡이 말했다.
- 그러면 응응이를 위한 선곡은?
노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노래로 분위기를 띄울 때가 됐으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부르는 노래가 있단 말이야. 이거 듣고 머리 싹 비운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봐.”
고음을 끊임없이 지르는 노래로, 무림에서 빡칠 때마다 산에 올라가서 부르곤 했다.
“제목은 ‘꺼져 개새끼야’”
이번에도 제목은 즉석에서 대충 만들어 붙였다.
이어 허접한 제목과는 다른, 뇌를 씻어낼 정도로 시원한 노래가 시작되었다.
*
이승호의 팬이자 닉네임 ‘이승호마누라’는 음공천마의 노래를 듣고 감탄했다.
“와···. 노래 진짜 잘 부른다.”
솔직히 이승호 악성개인팬이 나올 때만 해도 조금 화가 났다.
'저딴 새끼는 우리 오빠 팬이 아닌데.'
그저 팬을 사칭하면서 이승호를 욕 먹이는 종자일 뿐이다.
그리고 천마가 갑자기 호령을 내지르며 욕설을 퍼부을 때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회사에서 부장도 아니고 이사도 아니고 사장이 직접 와서 혼낼 때의 느낌이랄까?
몸이 얼어붙어서 채팅을 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연을 듣고 천마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정통 락 스타일의 느낌으로 끊임없이 고음을 내지른다.
듣기 불편하게 악쓰지도 않는데, 가슴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고음.
머릿속에 사이다를 한 바가지 때려 부은 듯했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 구석구석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마치 샤워를 방금 하고 온 듯한 개운함이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채팅창에는 감탄 연발이 이어졌다.
- 와··· 저게 저렇게 올라간다고?
- 고음을 진짜 편안하게 쭉 올린다 시몬스창법인줄
- 발라드만 할 줄 알았는데 락도 잘 어울리네요.
- 혹시 자작곡인가요?
- 천마님 노래는 전부 자작곡이에요
- 헐ㄷㄷㄷㄷㄷㄷ어려보이는데 천잰가?
- 제발 영상 좀 올려줘요ㅠㅠㅠ돌려듣게ㅠㅠㅠㅠㅠㅠㅠ
- 음원으로 내주세요ㅠㅠㅠㅠㅠㅠ
마지막 말에 그녀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걸 음원으로, 아니 하다못해 영상으로 올려준다면 직장상사가 꼽줄 때마다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텐데.
하지만 BJ음공채널의 영상은 0개.
라이브 풀버전조차 올려주지 않는 걸로 유명한 BJ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
천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 시간에 맞춰 라이브방송을 찾아 들어오는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레 구독 버튼과 알람 설정까지 맞췄다.
‘혹시 라방을 들어오게 하려고 조련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괜스레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다.
방금 노래가 좋았던 그녀는 후원금을 쏘면서 한 번 더 들려달라는 채팅을 올렸다.
물론 빠르게 올라가는 다른 채팅에 묻히긴 했지만.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천마는 온화한 얼굴로 조곤조곤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서일까? 고민을 들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또 고민을 듣고 같이 지랄을 떨어줄 때는 호쾌하기 그지 없다.
아까 욕을 하는 걸 보면 한 성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보니까 얼굴은 좀 생긴 거 같네.’
눈이 시원하게 트여있고, 콧날과 턱선이 뚜렷해서 강한 인상을 준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굵은 저음이라 깊숙하게 들어오는 느낌이다.
‘뭐, 우리 승호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BJ음공천마 채널에 구독을 눌렀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 오빠랑 협업하면 좋겠는데, 한태영에게 기회를 뺏겨서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
‘이승호마누라’가 사랑하는 그 오빠는, 지금 대표에게 깨지는 중이었다.
대표가 삐딱한 시선으로 이승호를 쳐다보았다.
“곡은 어떻게 됐어?”
“···못 받았습니다.”
“후··· 너는 진짜 군대를 갔다 와도 애가 철이 들질 않냐.”
이제 이승호도 자신이 엄청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이승호는 직원의 계정을 빌려서 천마의 방송에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 천마가 부르는 락을 듣고 곧바로 후회했다.
고백송과 어제 부른 ‘꺼져 개새끼야’라는 곡은 장르적으로 따지면 극과 극에 놓여있다.
그런데 그 곡 모두 너무 좋았다. 자작곡이라고 하는데, 앨범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천마는, 정말로 유능한 사람이었다.
강해리와 대표가 저렇게 나오는 게 이해가 갔다.
이번에 친분을 쌓아두면 두고두고 곡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라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다른 곡으로 가야지. 참, 해리도 너랑 같이하기 싫다더라.”
“네? 갑자기요?”
“너가 먼저 까놓고 ‘네?’는 무슨. AR팀이 가진 곡을 전부 보내줄 테니까 네가 곡을 들어보고 알아서 결정해.”
대표의 방에서 쫓겨난 이승호는 집에 와서 곡을 모두 들어봤다.
하지만 별로였다.
‘이거다!’하고 와닿는 노래가 없었다.
심지어 강해리가 만들어준 곡보다도 못했다.
계속 천마의 그 고백송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렇게 하룻밤 꼬박 고민한 이승호는 결심했다.
‘씨발. 자존심이 문제냐.’
그 길로 명품관에 가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가방을 하나 사들고 강해리의 작업실에 찾아갔다.
강해리는 떨떠름하게 이승호를 바라봤다.
“...승호 씨가 여기는 웬일이에요?”
이승호가 넉살 좋게 웃었다.
“에이, 우리 작곡가님께서 힘드실 것 같은데 위로차 방문했죠.”
“우리가 막 서로 위로해주고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돌아가세요.”
강해리는 여전히 못마땅해하며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이승호가 빠르게 명품백을 꺼냈다.
“위로는 원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해리는 명품백을 받아들었다. 뭔가 묵직하다. 백을 열어보니 안에는 유명 브랜드 화장품도 있었다.
이승호가 여우같이 웃었다.
“작곡가님이 늦게까지 애써주시니까 피부가 상하는 거 같아서. 하하.”
“···들어와요.”
이승호는 눈물의 똥꼬쇼 끝에 강해리에게서 천마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승호는 천마의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 총관이 필요해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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