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관이 필요해 (2) >
BJ음공천마 채널의 애청자인 수수깡.
그녀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 천마의 채널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천마가 유명해지다니.'
예전에 커뮤니티에 추천글을 작성했던 것도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 한태영과 이승호가 들어와서 후원금 배틀을 날렸던 게 인터넷 연예 뉴스에 나왔던 게 컸다.
‘더이상 나의 작은 천마가 아니게 됐지만···. 뭐, 그래도 좋은 일이지!’
섭섭하지만 괜히 뿌듯하달까.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마가 워낙 컨셉이 특이한데 노래도 잘 부르고 거기에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분명 천마는 성공할 수 있었을 거다.
오늘도 늘어난 시청자들과 재미있게 방송을 보던 수수깡.
하지만 금방 그녀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분탕 새끼들 또 왔네!”
방송을 보며 졸업과제 편집을 하던 수수깡은 빡침을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쾅 내리쳤다.
동시에 화면 속의 천마도 키보드를 쾅 내리쳤다.
- 확 젓갈을 담가다 비벼 먹을 새끼들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깊은 빡침에 수수깡은 화들짝 놀랬다.
‘아 깜짝이야.’
오늘도 천마는 급발진했다. 잠깐의 포효가 지나간 후, 수수깡은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됐다.
동시에 얼어붙은 채팅창의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 이 분위기 어쩔거야.'
어제도 방송에서 분탕러들 때문에 갑분싸가 된 걸 생각하면···한숨만 나온다.
물론 그 싸늘하고 정적만이 가득했던 채팅창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건 천마의 급발진이지만, 열혈 애청자인 수수깡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다 분탕 새끼들 때문이야.'
시청자 유입이 갑자기 많아진 만큼, 어그로 또한 눈에 띄게 늘었다.
‘한태영과 이승호가 싸워서 어그로가 끌린 거겠지.’
그리고 천마가 둘 중에 한태영을 선택하고 이승호를 까는 모양새가 돼버려서, 아마 이승호의 팬들은 엄청 짜증이 났을 거다.
그러니 만만한 하꼬 BJ를 건드린 것이다.
물론 어제 그 [승호1호팬]이란 놈은 이승호의 팬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대놓고 사칭인 느낌이 나긴 했다.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을 닉에다가 쓰면, 아이돌 욕 먹이지 않기 위해서 나름 수위를 조절하는데. 그놈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한태영의 소속사는 어쩌다가 잡힌 이 흥미로운 해프닝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할 게 뻔했다.
한태영이 신곡을 낼 때까지, 천마의 채널은 당분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고 분탕러들을 채널에서 만나게 될 건 뻔했다.
젠장.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수수깡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근데 천마는 채널 관리를 안 하나?’
몇 명만 블랙 먹이거나, 규칙을 정해서 실시간으로 관리해주면 좋을 텐데.
그럼 지금 분탕질 치는 놈들의 절반은 조용해질 거다.
하지만 천마는 관리는커녕 같이 치고받고 싸우니···.
'그거 어려운 거 아닌데, 그냥 내가 해주고 싶다.'
불만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니, 대체 왜 영상을 안 올리는 거야! 내가 조회수 올려준다니까!’
영상만 올라온다면 클립을 어떻게 만들 건지 이미 구상까지 해놨다.
하지만 방송을 한 지 일주일이 넘었건만 아직까지도 영상은 0개이다.
당장은 화제가 되었으니 라이브 방송에 시청자들이 바글바글할지는 몰라도, 최종적으로 채널이 성장하려면 영상이 필요하다.
“그 좋은 곡들을 왜 안 올리는 거야 진짜!”
생각하다가 빡친 수수깡은 결국 육성으로 화를 냈다.
고백송을 올린다면 백만 조회수도 달성할 게 뻔한데!
물론 그 노래는 한태영이 싱글을 내기 전까지 봉인돼야겠지만, 그것 말고도 좋은 노래 많은데!
여튼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해진 수수깡은 결국 졸업과제를 하다말고 폰을 들었다.
그리고 BJ음공천마의 채널에 들어가서 일대일 채팅을 눌렀다.
채팅을 치는 그녀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천마님. 수수깡이라고 합니다. 초창기 때부터 천마님의 노래를 듣고 방송을 봐온 구독자로서···.]
여기까지 적었을 때 수수깡은 고민했다.
‘내가 괜히 나서는 건 아니려나? 아니, 그것보다 메시지를 읽기는 하나?’
천마는 이승호와 한태영의 메시지도 깐 전적이 있다.
결국 두 사람이 라이브 방송에서 그 짓을 한 것도, 천마가 메시지를 워낙 안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 역시 안읽씹을 당할 확률이 높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그냥 눈 꼭 감고 손가락을 놀렸다.
[···이렇게 하면 좋겠고, 저렇게 하면 좋겠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을 거 같고···]
장문의 조언을 적어내고, 끝에는 자신의 욕심을 덧붙이기도 했다.
[천마님이 잘 모르시겠다면 제가 직접 만나서 알려드릴 수도 있구요.]
그리고 수수깡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저 속에 있던 말들을 풀어보자는 뜻이었지, 천마가 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채팅을 보내자마자 채팅이 ‘읽음’ 표시로 바뀌면서, 바로 상대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요? 그러면 내일 한번 보시죠.]
그렇게 후루룩뚝딱 약속이 잡혔다.
"...뭐지? 나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그날 수수깡의 방안에서는 행복에 찬 의문의 괴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
차선우는 수수깡과 만나기로 했다.
보통 일대일 채팅은 잘 안 읽지만, 마침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수수깡의 이름으로 알람이 올라왔다.
한태영이나 이승호는 몰라도, 열혈 구독자의 메시지는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수수깡의 메시지는 길고, 또 길었다.
하지만 빈약한 콘텐츠부터 난장판이 된 채팅창까지, 수수깡이 하는 말은 대부분 합당했다.
어제 [승호1호팬]이란 새끼를 보고 느낀 거지만 슬슬 채팅창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영상을 올려야 하긴 하지.’
영상 관련한 요청이 정말 많았다. 풀버전이라도 올려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지난번에 강해리를 만났을 때 조심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저작권은 창작 시점을 기준으로 형성이 돼서, 협회에 저작권을 등록하지 않고 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차선우에게 저작권이 귀속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걸 도용해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면, 따로 소명이 필요하고 정신적 시간적 물리적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러니 영상을 올리려면 먼저 협회에 저작권 신청을 한 후 올리라고 조언을 해줬었다.
차선우는 강해리의 조언을 따라, 라이브 방송이 끝나는 대로 불렀던 노래를 대강 정리해서 협회에 보냈다.
그렇게 해서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면, 이제 영상만 올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당연한 말이지만 차선우는 영상 편집을 전혀 할 줄 모른다. 미디 작곡을 배우는 것도 벅찬데 거기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지금도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내공을 쌓고, 곡 작업을 하고, 미디와 각종 작곡법을 배우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차선우는 요즘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수수깡에게 상담하기로 했다.
차선우는 예전에 강해리를 처음 만났던 카페로 갔다.
수수깡은 검은 단발머리에 발랄해 보이는 여자였는데, 동글동글한 안경을 끼고 있어서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수수깡?”
그녀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방송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방송할 때는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그냥 동안인 건가? 그런데 실물로 보니까 진짜 잘생기기는 했다.’
얼굴선이 굉장히 뚜렷해서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남자다워 보이기도 했다.
특히 코가 굉장히 오똑해서 콧날을 따라 그림자가 질 정도였다.
대놓고 얼굴을 감상하다가 차선우와 눈을 마주치고 흠칫했다.
“아, 옥수진이라고 불러주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그냥 천마라고 불러주세요.”
천마라니.
잘생기긴 했는데 컨셉 하나는 정말 특이하다.
가수든 작곡가든 래퍼든 스트리머든, 옥수진은 이 판에 오래 있었지만 예명으로 천마를 쓰는 경우는 진짜 처음이었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도 천마라는 예명으로 부르라고 하는 사람도 처음이고.
어찌 됐든 옥수진도 평소에 천마라고 부르곤 했으니 이쪽이 더 편하기는 했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천마 님이 채널을 좀 관리하셔야 할 거 같아서요. 어제처럼 막 시청자들이랑 싸우면 나중에 논란이 될 수도 있어요.”
사실 시청자와 싸웠다기보다는 차선우 혼자 급발진한 거에 가까웠지만, 옥수진은 그런 사소한 사실은 뭉개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때 차선우가 말했다.
“나도 그 조···아니, 그 새끼들 때문에 좀 짜증나긴 하더라고요. 그냥 다 강퇴시켜버릴까요?”
옥수진은 화들짝 놀랐다.
“강퇴라뇨! 그렇게 했다가는 시청자들이 다 떠나가죠! 일단 금지어랑 금지 행동을 설정하고 그걸 위반하는 사람들만 따로 경고를 주거나 강퇴시키면 되죠.”
“금지어? 그건 뭘로 해야 하는데?”
“천마 님이 싫어하는 게 뭔데요?”
“욕하는 거, 반말하는 거, 노래 평가하는 거, 얼굴 평가하는 거···.”
차선우는 손가락을 꼽으며 싫어하는 것들은 읊었다.
그걸 다 금지했다가는 시청자들이 아무것도 못하게 생겼다.
옥수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채널 망하는 게 시간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아니면 차라리 제가 채팅창 관리할까요?”
“옥수진 님이요?”
차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옥수진은 책상을 칠 뻔했다. 그녀는 간신히 참고 말했다.
“뭐, 종종 팬들이 채팅창을 관리하기도 해요. 어려운 거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해도 옥수진은 채팅창 정도만 관리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그게 아니게 되었다.
옥수진이 말했다.
“그런데 영상은 언제 올려주실 거예요?”
“내가 영상을 올릴 시간이 없어서요.”
차선우는 자신의 일정을 말해주었다.
새벽까지 방송을 한 후, 나머지 시간에는 방송에 나온 음악에 반주를 입혀서 저작권 등록 처리를 한다.
그 외에는 내공 수련을 하고 잠을 조금 자지만, 여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듣는 것만으로도 옥수진은 황당했다.
“그럼 방송에서 불렀던 노래가 미리 써놓은 게 아니라 즉석에서 부른 거라고요?”
차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림에서 만들어놓은 노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즉석이라기보다는 그냥 생각만 해둔 거죠.”
옥수진은 입을 벌렸다.
‘···그게 그거 아닌가?’
“어쨌든 천마 님 말대로라면 영상을 올릴 시간이 없겠네요. 차라리 라이브 방송을 줄이고 영상을 올리는 건 어떨까요?”
“근데 저 영상 편집 못하는데요?”
“······.”
뭐가 이렇게 당당해.
졸업과제가 생각나서 잠깐 망설였지만, 옥수진은 고민하다가 영상 편집까지 자기가 맡기로 했다.
‘채팅창 매니저는 쉽고, 영상 편집은 자주 하던 거니까 시간 날 때 하면 되지.’
여기까지는 괜찮을 거다. 아마도.
그렇게 합리화한 그녀는 마지막 용건을 꺼냈다.
“썰방만 말고 새로운 콘텐츠 개발해보는 건 어때요?”
차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콘텐츠요?”
“천마님은 콘텐츠라고 할만한 게 너무 적어요. 지금 하는데 딱 사연을 듣고 노래 불러주는 거 하나잖아요."
"그건 그렇죠."
차선우가 관심을 보이니 옥수진은 신이 났다.
“그렇게 단순한 콘텐츠 하나만으로는 사람들이 금방 질려 하거든요. 천마님은 노래도 잘 부르시고, 사연에 맞는 곡도 즉석에서 잘 뽑아내시잖아요”
어쩌다 보니 그녀는 새로운 콘텐츠 기획까지 하게 됐다. 천마의 작곡 실력을 보고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
그렇게 썰을 풀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어, 작곡가님! 여기서 다 보네요.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 아하하하.”
TRICKER의 이승호였다.
< 총관이 필요해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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