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2화 (12/191)

< 총관이 필요해 (3) >

나는 수수깡··· 그러니까 옥수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오···! 대단한데?’

마치 천마신교에 있을 때 총관을 보는 듯했다.

장단점을 정확하게 집어주면서 오목조목 따지고 드는데···, 굉장히 전략적이고 체계적이며 뭔가 그럴듯해 보였다.

옥수진과 만나기로 결정한 건 잘한 일이었다.

덕분에 주먹구구식이던 방송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그냥 내 밑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

어쩌다 보니 채팅창 관리에서 영상편집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 개발까지 맡게 생겼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대로 고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이따가 한번 이야기 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옥수진의 말을 듣는데, 갑자기 이상한 놈이 튀어나왔다.

뺀질뺀질하고 미끈한 뱀장어같이 생긴 놈.

“회사가 여기 근처라서 와봤는데 이렇게 딱 마주칠 수가! 역시 작곡가님과 저랑 통하는 게 있다니까요?”

이승호였다.

말을 한 이승호는 은근슬쩍 옥수진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하다가,

“야, 이야기하는 거 안 보이냐?”

“에?”

내 눈빛을 보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옥수진이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저보다는 이승호 씨가 바쁘실 텐데 먼저 이야기하셔도 되는데···.”

옥수진 쟤는 나랑 얘기할 때는 똑부러지더니 왜 갑자기 물렁이가 됐냐.

나는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중요한 회의 중이니까 좀 비키지?”

이승호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가 결국 머쓱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당연히 우리 작곡가님 일이 우선이죠. 그럼 저는 저쪽 테이블에서 기다릴 테니까 일 끝나시면 불러주세요.”

말을 마친 이승호는 저쪽 구석으로 가버렸지만 옥수진은 굉장히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이승호면 트릭커 멤버인데···. 이래도 되나요? 그쪽 팬덤이 꽤 큰 편이거든요.”

팬덤이 커서 뭐 어쩌라고.

“내 알반가? 저런 놈은 신경 끄시고, 새로운 콘텐츠 얘기나 계속 해보죠.”

“그게 썰방은 주 3회가 적당할 거 같고, 매주 주말마다 시청자 참여 콘텐츠를 하는 건데요···.”

옥수진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내가 듣기에도 신박하고 재미있어 보인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친 얘기가 다 끝나고 이제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잠깐만요. 작곡가님. 저는요?”

이승호가 급히 따라붙었다. 나는 이승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음. 내가 넣어둔 기운은 잘 있네.

나는 물어봤다.

“너 근데 몸은 안 불편하냐?”

“몸이요? 작곡가님 저 걱정하시는 겁니까? 에이, 저 군대도 잘 다녀왔고 멀쩡합니다.”

연습을 했으면 분명 이질감을 느꼈을 텐데.

멀쩡한 거 보니까 아직도 정신머리가 하늘에 있나 보다.

“그래. 너는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라.”

“···? 네?”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

옥수진을 영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BJ음공천마 채널은 꽤 화제가 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영상까지 올라오니 사람들이 확 붙었다.

예전에 스트리밍만 했을 때는 늘 보던 사람들만 들어왔었는데, 영상을 올린 이후 내 채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통계가 다앙해졌다.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지만 옥수진의 대단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통 음방하는 비제이들이 여기에서 녹음을 많이 하더라구요."

음방을 10년 동안 팠다던 그녀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옥수진은 다른 음악 비제이들이 곡 작업을 한다는 녹음실로 나를 안내했다.

‘꺼져 개새끼야’라는 제목을 가진 곡은 옥수진이 예약한 전문 녹음실에 가서 제대로 녹음을 할 수 있었다.

그 녹음실에서는 뉴튜브용 영상 촬영도 같이 해줬는데, 앞으로 올라온 음악 중에 괜찮은 것들은 이런 식으로 따로 작업할 거라고 했다.

단순히 사람들과 얘기를 하며 음악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나의 뉴튜브 채널에, 점점 체계가 잡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이 다가올 때쯤 영상 조회수는 1만을 넘었고, 구독자는 두 배로 폭증했다.

나는 훌쩍 늘어난 구독자를 보며 흐뭇해했다.

‘역시 옥수진을 영입하길 잘했다니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

얼마 전 카페에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나는 옥수진에게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힝, 헹, 훙, 힉'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조심스럽게 나한테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제안을 먼저 했는데 그걸 왜 또 물어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옥수진은 알았다고 했다.

지금 수익이 일정하지 않으니 월급보다는 편당으로, 그리고 조회수에 비례해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

물론 이 방식도 옥수진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옥수진의 정식 직함은 PD.

기획과 편집과 관리를 뭉뚱그려 표현할 직함이 그거밖에 없었다.

어쨌든 피디가 된 옥수진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컨텐츠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주간곡소리].

[주간곡소리]는 옥수진이 내 작곡 실력을 보고 기획한 코너로 매주 작곡을 하나씩 한다.

단, 시청자들과 함께!

나는 시청자가 원하는 장르, 주제, 컨셉, 가사, 악기를 이용해서 1절짜리 짧은 곡을 만든다.

무려 실시간으로.

당연히 어떤 게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만들어 본 건 처음이라 나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

닉네임 [이승호 마누라]는 대학생이다.

4월 중순,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중간고사 공부를 하던 그녀는 머리도 식힐 겸 뉴튜브를 틀었다.

현생에 치이느라 이승호 팬 활동도 거의 못 하고 있다. 당연히 천마도 잊고 지냈다.

뉴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을 보던 그녀는 어느새 책상에서 침대로 이동해있었다.

‘이것만 보고 다시 공부해야지.’

그렇게 3시간이 지났고, 대학생의 머릿속에서 중간고사는 사라졌다.

‘공부는 주말에 하면 되지.’

대학생은 인기 동영상을 보다가 문득 천마가 생각났다.

‘그때 노래가 되게 좋았는데.’

하지만 항상 라이브 방송으로만 보는 게 쉽지 않아서 자주 들어가지 못했다.

생각난 김에 들어봤더니 구독자 수가 폭등해있었다.

-구독자: 889명

“어? 뭐야?”

얼마 전에 그녀가 봤을 때는 분명 두 자릿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대학생은 곧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이제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구나.’

사실 스트리밍은 일반 사람들에게 접근성이 좋지 않다.

시간에 맞춰서 들어와야지만 볼 수 있고, 라이브로 진행이 되니 원하는 부분만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그 모든 게 귀찮았던 일반인들이 영상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신 업로드한 영상은 2개.

그중 하나는 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고민상담소ㅣ예신에게 제가 모르는 아이가 있는 거 같아요]

“헐?! 미쳤다 미쳤어.”

대학생은 홀린듯이 클릭했다. 10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최근에 올라왔던 사연을 편집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신혼집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예비신부가 어떤 사람에게 쓴 편지지를 발견했고, 거기에 자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는 것.

그 사연이 구구절절해서 보는 사람이 다 빡칠 지경이다.

“미친 거 아니야? 당장 파혼해야지!”

그녀는 화를 내며 욕을 박으려고 댓글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댓글창에는 사연에 대한 욕보다는 다른 내용이 더 많았다.

천마가 부른 노래에 대한 내용이었다.

- 아니 이거지ㅠㅠㅠㅠㅠㅠ

- 마참내! 드디어!!!!!!!!

- 소리 올라가는 거 미쳤냐고 하나님도 듣겠따

- 그래서 이거 노래 제목이 뭔가요?

ㄴ꺼져 개새끼야

ㄴ노래 제목을 물은건데. 말이 좀 심하시네요.

ㄴ노래 제목이 꺼져 개새끼야 입니다. 방송 보시면 나와요

ㄴ?????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갑자기 웬 노래?

잠시 천마의 방송 스타일을 잊고 있었던 대학생은 이윽고 이유를 깨달았다.

천마는 썰을 풀고난 후 노래를 들려주는데, 사람들이 그 노래에 꽂힌 모양이었다.

‘얼마나 잘 불렀길래?’

대학생은 궁금해져서 댓글을 좀 더 찾아봤다. 역시나 타임라인을 적어둔 댓글이 나왔다.

-8:22 여기서부터 노래 시작

그 밑에는 대댓이 하나 더 있었다.

-노래영상만 따로 올라왔어요. 그게 음질도 더 좋음.

“으잉? 이제 노래 영상도 있었어?”

이전에도 느낀 거지만 천마가 원래 노래는 기깔나게 했다.

예전에 라방에서 잠깐 불렀던 노래가 종종 생각날 정도였으니까.

이쪽이 음질이 더 좋다고하니 대학생은 다른 영상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면서 채널을 둘러보던 대학생은 생각했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하는 건가?’

썰방 원툴이었던 천마의 채널은 조금 더 세분화되었다.

방금 봤던 [고민상담소].

이건 기존에 사연을 듣고 노래를 불러주던 형식을 그대로 가진 메인 코너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노래를 따로 녹음한 코너가, [싱포유]이다.

대학생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싱포유]로 갔다. 거기에 아까 댓글에서 봤던 제목의 노래 영상이 하나가 있었다.

[싱포유ㅣ꺼져 개새끼야 (욕x, 사이다 부어드림)]

1분 30초 가량 되는 짧은 노래다. 하지만 강렬했다.

천마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와!!!!!”

제목대로 사이다를 한 백 잔쯤 마시는 짜릿함이 치고 올라왔다.

누가 머릿속에 샤워기를 집어넣고 막힌 찌꺼기를 씻어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공부하다가 막히는 문제가 있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술술 풀릴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느새 세 번째로 연속재생하며 손바닥으로 침대를 쾅쾅 내리쳤다.

“미쳤다 미쳤어! 이걸 왜 이제야 올려놓는 거야!”

대학생은 자신의 감상을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 댓글창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여기에는 칭찬 일색의 댓글이 쭉 달려있었다.

-와ㅠㅠㅠㅠㅠㅈㄴ개운하다ㅠㅠㅠㅠㅠ

- 혹시 이분 밴드 하는 분인가요?

ㄴ 아니요 그냥 작곡가입니다

ㄴ 작곡가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보면 되실듯

ㄴ 웬만한 가수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천마님♡ 많이 사랑해주세요

ㄴ 아 넵넵ㅎㅎ

- 목소리 듣느라 몰랐는데 반주도 미쳤네요?

- I replay this video more than 10 times. Love his video so much:)

-마지막에 그 소리 들었어요?

ㄴ????

ㄴ무슨 소리가 났나?

ㄴ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박수치고 갔는데ㅎㅎㅎ

주접떠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그녀는 낄낄거리다가 댓글을 적었다.

- 사연이 역대급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력은 레전드

어쨌든 이 노래를 듣다보니 다른 노래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싱포유] 코너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려고 하는데,

‘노래가 더 없네?’

영상은 단 2개밖에 없었다.

“아니, 왜 노래를 이것밖에 안 올리는 거야!”

내가 조회수 올려준다니까! 왜 일을 안 해!

대학생은 속이 터져하며 채널을 기웃거리다가 커뮤니티에 있는 공지를 하나 발견했다.

[새로운 콘텐츠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천마 채널 편집자 수수깡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새로운 콘텐츠 ‘주간곡소리’를 시작합니다.

시청자분들이 시키는 대로 천마가 작곡을 할 거예요.

장르도 마음대로!

주제도 마음대로!

악기도 마음대로!

컨셉도 마음대로!

천마의 곡소리 한번 들으러 와주세요♡]

“오 신박하다!”

대학생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천마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거지?

그녀는 정확한 시각을 확인했다.

일요일 9시. 꼭 들어가야지!

.

.

.

그렇게 다가온 일요일. 며칠 뒤에 중간고사가 시작되지만 대학생은 애써 무시했다.

‘이것만 보고 공부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라이브 방송에 접속했다. 그런데···분위기가 이상하다?

- 천마면 당연히 귀여운 거 가야지

- 여돌 춤 춰주세요

- 오늘 컨셉은 걸그룹이야

천마가 돌았냐고 역정을 내지만 시청자들은 꿋꿋했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학생은 생각했다.

‘걸그룹 천마? 괜찮은데? 고양이 머리띠 쓴 것도 보고싶다.’

천마의 외모에 고양이 머리띠?

이건 못 참지.

그녀는 지체없이 후원금 날렸다.

[이승호마누라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피디님! 천마한테 고양이 머리띠는 씌어주세요><

< 총관이 필요해 (3) > 끝

ⓒ 연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