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4화 (14/191)

< 천마가 심폐소생 해줌 (1) >

미니롱의 멤버는 두 명이다.

롱을 담당하는 장신 송서아와 미니를 담당하는 쪼꼬미 김민지.

둘이 5년 동안 알바를 하면서 아등바등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

김민지가 말했다.

“알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싱글을 내고 안 되면 접어야 해.”

송서아가 시무룩해졌다.

“우리 곡은 좋은데 왜 안 뜨는 거지.”

“더 좋은 곡이 많으니까. 우리는 지금 소속사도 없는 가수라고.”

원래 그들에게도 소속사가 있었지만 정산도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나왔다.

그 소속사는 그들이 나오고 몇 달 뒤에 망하더라.

어쨌든 소속사가 없는 상태로 유통사만 끼고 활동하는 것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힘이 슬슬 빠질 때쯤, 두 사람은 우연히 천마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미니롱의 작곡 대부분을 담당하던 김민지가 중얼거렸다.

“노래 진짜 좋다. 어떻게 다른 스타일의 곡을 만들면서 하나같이 대중성은 잘 챙기네.”

특히나 이번 주간곡소리에서 만든 곡은 김민지의 마음에 꼭 들었다.

본인이 추구하던 최종 목적지 같은 곡이라고나 할까?

천마와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참 노래를 듣다가 삘이 꽂힌 송서아가 냅다 말했다.

“천마한테 우리 노래도 봐달라고 하자."

"갑자기? 천마한테는 어떻게 연락하려고?"

"라방에 들어가서 후원금을 날리면서 우리 곡을 봐달라고 하는 거야! 한태영도 그렇게 받았대!”

“바보냐. 너무 막무가내잖아. 그리고 한태영이 의뢰할 때는 천마가 아직 안 떴을 때고. 만약에 천마가 씹으면 어쩔건데?”

“몰?루”

송서아가 대책 없이 어깨만 으쓱거리자, 김민지는 슬슬 빡이 쳤다.

하지만 송서아가 뭔가에 꽂혀서 저러는 건 늘 있던 일이니, 김민지는 자신이 좀 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솔직히 천마가 만든 곡이 좋기는 하지. 우리가 지금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도 아니고. 막연하게 언젠가 뜨길 바라면서 알바만 하는 것도 힘들어.’

생각해보니 지금 한태영의 싱글에 대한 소식이 나오면서 천마에 대한 관심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다.

만약 여기서 천마가 더 떠버리면 감히 미니롱은 천마에게 비벼볼 수도 없을 거다.

그리고 만약 천마와 공동작곡을 할 수만 있다면, 아니면 편곡이라도 받아볼 수 있다면.

‘우리도 한태영과 똑같은 작곡가와 협업했다고 홍보하면 좋지 않을까?’

언론사에서 짜투리 기사 몇 개만 써줘도 충분히 이득일 거 같았다.

고민 끝에 김민지가 말했다.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방송이 언제였지?”

“내일이요~ 일단 내가 일대일 채팅부터 넣을겡.”

송서아가 귀여운 척하면서 정성스럽게 채팅을 쳤다. 그녀는 흥얼거리며 말했다.

“아싸! 우리가 제2의 한태영이 되는 거야.”

물론 개무시당한 이승호의 사례도 있지만, 송서아의 머릿속에 그런 건 없었다.

내일 천마의 방송에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던 김민지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근데 우리 후원금 보낼 돈은 있나? 이번 달 작업실 월세랑 공과금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을 텐데?”

“아! 나 어제 레슨비 받았어."

"그래서 남는 돈이 얼만데?"

"어어어, 지금 딱 568,280원 남았어!"

"...이 돈이면 받아주려나?"

그렇게 미니롱의 듀오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제한된 자원으로 천마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

요즘 들어 부쩍 나에게 일대일 채팅이 많이 들어온다.

- 안녕하세요. ‘하이뮤직스’입니다. 천마 님을 저희 전속 작곡가로 모시고 싶은데···.

- 혹시 저도 곡을 받아갈 수···.

- 천마님 방송을 쭉 봤는데 탑라인을 잘 짜시는 거 같아서요. 제가 트랙을 만들어봤는데···.

보통 작곡팀이나 회사에서 영입 제안을 하는 게 많았고, 곡을 달라는 문의도 있었다. 몇몇 엔터테인먼트는 아예 가수로 데뷔하는 건 어떻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심지어 ‘꺼져 개새끼야’를 들었는지, 밴드 보컬을 구하는데 들어올 생각이 있냐고 묻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라고 불리는 기획사나 가수에게서 온 연락은 아직까지 없었다.

다들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낸 적도 없고.

어찌 됐든 나는 일대일 채팅은 잘 안 보는 편이니 상관은 없다.

그리고,

'내 라이브 방송이 있는데 왜 일대일 채팅을 해.'

나한테 할 말 있으면 직접 라이브 방송에 와서 해야지, 번거롭게 일대일 채팅을 주고받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옥수진이 관리를 해주면서 가끔 눈에 띄는 채팅만 추려서 보여주곤 했다.

오늘도 일대일 채팅을 관리하던 옥수진이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수수깡] : 미니롱이 자기 곡을 한번 봐달라고 하네요. 공동작업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는 거 같은데요.

[나] : 미니롱? 걔네는 또 누구?

참, 옥수진의 요청으로 나는 말을 놨다. 야자 트자고 하니까 본인은 거부하는데, 어쨌든 난 반말이 편했기에 수락했다.

옥수진이 미니롱에 대해 말했다.

[수수깡] : 인디에서 활동하는 여성 듀오인데, 예전에 곡 하나가 조금 뜨긴 했었어요. 소식이 없어서 해체한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있네요.

망한 보컬 여성 듀오라고 한다.

[나] : 할 말 있으면 방송에서 하겠지.

그런데 이름이 미니롱? 웃기는 이름이다.

이름이 재미있어 한번 찾아볼까도 싶었지만.

[수수깡] : 넹 방송은 5분 뒤에 시작할게요!

방송이 코앞이다. 미니롱에 대한 건 잊어버리고 바로 스트리밍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어떤 사연을 들고 올까.

첫 사연은 가볍게 순한 맛으로 골랐다. ‘춘삼동’이란 닉네임을 가진 시청자였다.

- 친구 관계 때문에 고민인데요. 한 친구한테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추천해줄 때마다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춘삼동이 말했다.

[제 취미가 있는 데 그게 맛집 탐방이거든요. 그래서 맛집 다녀오고 애들한테 추천해주고 그런 거 좋아하는데ㅠㅠㅠ

어떤 애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요.

걔는 대학교에서 알게 돼서 4년 정도 친구로 지냈는데,

그런데 제가 추천해준 곳을 다녀오면 불평만 늘어놓더라고요.

어디는 간이 좀 짠 거 같고, 어디는 인테리어가 별로고, 어디는 매장이 번잡하고.

심지어 지난번에는 숟가락 모양이 이상했다면서 트집을 잡더라고요.

입맛이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20번은 넘게 추천을 해줬는데, 단 한 번도 불평을 안 한 적이 없었어요 ㅠㅠㅠ

웃긴 건 맨날 불평불만을 하면서 맛집 추천은 맨날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취미로 하던 맛집 탐방이었는데, 걔가 그러다보니 자꾸 저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는 맛이 좀 짜지 않나?’

‘여기는 화장실이 좀 더럽지 않나?’

‘애들한테 추천해줬는데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애들한테 맛집을 추천해줄 때는 ‘근데 여기 너랑 안 맞을 수도 있어.’ 같은 멘트를 붙이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요.

그리고 결국 지난주에 사건이 터졌어요.

걔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춘삼아 나 남친이랑 데이트할 건데 맛집 좀 추천해줘!”

부담스럽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트집잡히기 싫기도 했고, 걔도 남친이랑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서 찐맛집을 추천해줬어요.

인별그램에 올라왔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맛있게 먹었고 같이 간 다른 친구들까지 좋아했던 숨겨왔던 맛집이었거든요?

그런데 하는 말이···ㅎ

"춘삼아, 이번에 거기 위치도 별로고 화장실도 너무 더럽더라. 나 데이트한다고 했는데 좀 제대로 된 곳 좀 추천해주지. 덕분에 남친한테 한소리 들었어 ㅠㅠ"

심지어 개인 SNS에까지 저격까지 하더라고요.

제일 어이 없는 건 그러면서 다음 주에도 남친이랑 갈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하는거 있죠?]

여기까지 읽은 나는 빡이 쳤다.

너 호구니?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내 낌새를 본 옥수진이 개인 메시지를 날렸다.

‘릴렉스 릴렉스. 급발진 하지마요.’

나는 겨우 진정하고 말했다.

“춘삼아. 그딴 그 새끼는 빨리 손절해. 시발 살다 보면 그런 좆같은 새끼들이 꼭 하나씩 있다니까. 꼭 남을 깎아내려야만 자기가 우월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부류지. 자존감 낮은 애들이 그렇더라.”

시청자들도 하나둘씩 채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 이거ㄹㅇ임 불평하려고 돌아다니는 애들이 있다니까ㅡㅡ

- 나도 춘삼이 같은 친구 갖고싶다ㅠㅠ맛집 추천해줘

- 와씨 정뚝떨의 표본이다 극혐

“다들 맞는 말 해주네. 배려를 해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고맙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면서, 불평만 하는 놈들은 확 모가지를 따버려야 해.”

나는 진심으로 말했지만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 ㅋㅋㅋㅋㅋㅋㅋ천마님 화났다

- 모가지 따는 거 진짜 좋아하시네 ㅋㅋㅋㅋ

- 춘삼아 모가지는 따지 말고 손절만 해

나는 마무리를 지었다.

“중요한 건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너도 그 사람에 대해서 불평하게 되면서 너도 모르게 닮아간다는 거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속 시원하게 잘라버려.”

[춘삼동 님이 3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춘삼동] : 감사해요 천마님. 조언대로 손절하겠습니다!

춘삼동은 고맙다며 3만 원을 보내줬다.

요즘에는 만원 단위로도 쏠쏠하게 후원이 들어오는 편이었고, 많으면 몇십만 원이 한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 삼만 원 고마워.”

- ㅋㅋㅋㅋ리액션 ㅈㄴ 영혼 없네

- 원래 지 하고싶은대로 하잖아ㅋㅋㅋㅋㅋ

- 천마님 그럼 답가 한번 가시죠?

그 대신으로 최근에 무림에서 불렀던 곡을 정리하다가 만든 노래 하나를 불러준 다음, 이제 다음 사연을 찾기 위해서 채팅창을 훑었다.

종종 곤란한 발언을 하는 새끼들이 있었지만, 그건 옥수연이 칼같이 경고를 먹이거나 차단했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채팅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미니롱 님이 568,28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마님. 미니롱이라고 합니다. 어제 일대일 채팅을 남겼는데 답장이 없으셔서 이렇게 연락드려요. 천마님의 영상을 줄곧 봐오면서 뛰어난 작곡 실력과 보컬에 반해서, 천마님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한번 연락드립니다··· (중략)···.

장문의 채팅이 이어졌다. 자기가 1집부터 어떻게 활동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음악을 하게 된 사연까지 구구절절한 내용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이 하이라이트였다.

- ···저희가 돈이 모자라서 그런데 채팅을 더 치려면 혹시 돈을 더 내야 할까요?

‘아니, 뭔데 이렇게 짠해?’

- ㅋㅋㅋㅋㅋㅋ웃프다 진짜

- 전재산 다 털었냐고ㅋㅋㅋㅋㅋㅋ 채팅 더 쳐야할까봐 한번에 다 보낸 것좀 봐

- 천마야 이건 좀 봐줘라

- 근데 미니롱이 누구임?

- 나 알아. 개망한 여성듀오

- 본인 앞에서 개망했다고 한건 너무한거 아니냐 ㅋㅋㅋㅋ

시청자들도 재미있는지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옥수진은 개인 메시지로 ‘이거 편집하면 재미있겠는데요? 좀 더 얘기해봐요’ 라며 나를 부추겼다.

‘용기가 가상하네.’

그리고 미니롱은 내 마음에도 들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상황과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절박해 보이기도 하고.

괜히 그런 애들한테 꼭 마음이 쓰이는 게 있었다.

“알았어. 이따가 일챗드릴게. 근데 뭐 조금 더 할 얘기 없나?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운데.”

[미니롱 님이 120원을 후원했습니다.]

[미니롱] : 앗 정말 감사합니당! 근데 저희가 진짜 돈이 없어서요 ㅠㅠ 이따가 일대일 채팅으로 말씀드리면 안될까요?ㅠㅠㅠㅠㅠ

- 얔ㅋㅋㅋㅋ 120원은 뭐냐?

- 아까 진짜 전재산 보낸거임???

- 짠하다 짠해ㅋㅋㅋㅋㅋㅋ

···끝까지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

다음날, 나는 미니롱과 약속을 잡았다.

강해리와 옥수진과 이승호를 만났던 그 카페였다.

내가 아는 카페는 여기밖에 없거든.

시간에 맞춰 카페에 갔는데, 두 사람은 미리 나와 있었다.

170cm는 넘어 보이는 송서아와, 150cm 겨우 되어 보이는 김민지.

하지만 두 사람은 이상하게 잘 어울려 보였다.

오기 전에 미니롱의 노래를 조금 들어봤는데, 동화 같은 느낌의 몽환적인 곡이 많았다.

내가 다가가자 두 사람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우와 천마님이다! 진짜 잘생기셨어요.”

그러자 김민지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그게 아니라 인사를 드려야지.”

“아 맞다. 안녕하세요!”

각자 음료를 주문하고 내가 물었다.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고?”

그러자 김민지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 저희가 천마님 노래를 쭉 들어봤는데 곡의 개성을 그대로 살리시면서도 대중적인 방향으로 곡을 편곡하시더라고요. 제가 작곡한 곡이 몇 개 있는데 그걸 같이 봐주셨으면 해요."

“좋아. 편곡은 문제없는데, 대신 조건이 있어.”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건이요?”

“혹시 돈을 드려야 할까요?”

나는 옥수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너희 곡 제작하는 과정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영상을 업로드하려고.”

나는 이번 기회에 아예 코너 하나를 신설하려고 한다.

이름하여 [컴백일지].

그 첫번째 게스트로 미니롱을 선택했다.

< 천마가 심폐소생 해줌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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