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5화 (15/191)

< 천마가 심폐소생 해줌 (2) >

미니롱은 촬영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촬영 스케줄은 전적으로 옥수진에게 맞췄다.

가을학기 졸업이라던데 그래서 최근에 바빠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촬영 당일.

나와 옥수진은 미니롱의 작업실로 향했다.

미니롱의 작업실은 신림동에 있었는데, 본인 소유의 작업실이 아니라 월세를 내면서 빌려서 사용 중이라고 한다.

김민지는 카메라를 보면서 작업실을 소개했다.

“그래도 여기 있을 건 다 있어요. 그리고 여기 임대 주시는 분이 친절하셔서 가끔 악기도 중고로 사서 넣어주시거든요.”

송민지도 끼어들었다.

“맞아요! 여기서 작곡레슨도 해요!”

그렇게 옥수진이 ‘미니롱’이 누군지 소개하는 영상을 따고있을 때, 송서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우리 치맥해요!”

옥수진이 당황해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30분이다.

“···이 시간에요?”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요!”

김민지는 어딘가 해탈했다는 표정으로 '정말 원래 이렇다'라고 해주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름지기 술이 들어가야 진정한 예술이지.”

그리고 잠시 뒤, 정말로 치킨과 맥주가 작업실로 도착했다.

둘은 신나서 치킨을 뜯으며 맥주를 마셨고, 내 손에도 맥주잔을 들려주었다.

원래 잘 취하는 편도 아니고 취기 정도는 내공으로 얼마든지 누를 수 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무림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다.

함께 음악에 대해 고민을 하며 술 한잔을 하는 일.

정말로 바라던 일이다.

몇 잔 때려넣자 알코올이 돌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소박하고 좋네.’

미니롱 두 사람은 맥주를 들고 작업실 구석에서 열심히 회의하고 있다.

나에게 곡을 보여주기 전 최종 점검을 한다는 모양이다.

작업실은 작았다.

미니롱과 나, 그리고 옥수진이 들어가니 가득 찬 느낌.

좁은 작업실 벽에는 각종 악보와 작업물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내가 무협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몇 년 뒤에 이런 모습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손때 묻은 낡은 악기들을 보자니 둘이서 어떤 생활을 해온 것인지 느껴져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사람은 씩씩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어쭙잖은 동정심을 가지는 건 이들이 버텨온 세월을 무시하는 거겠지.

그냥 내 곡으로 얘네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치킨을 뜯으면서 김민지가 말했다.

“일단 제가 만들어놓은 곡을 들려드릴게요.”

김민지는 스피커를 연결해 지금까지 작곡해왔던 곡을 들려주었다.

물론 다 들은 건 아니고, 1절까지 완성했던 노래 중에서 괜찮다 싶은 걸로 추렸다.

그마저도 양이 상당했다.

전반적으로 건반악기 중심으로 아코디언이나 실로폰 등을 얹은 미니멀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가끔은 스트링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안개에 휩싸인 숲 같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노래가 주된 테마이다.

나는 손가락에 묻은 치킨 양념을 빨면서 집중했다. 그렇게 몇 곡이 지나가고 유난히 귀를 잡아채는 멜로디가 들려왔다.

[maybe it’s like a candy

something sweet something soft

but I am sour candy

that will be sweet someday]

‘괜찮은데?’

다른 곡을 다 들어봐도 이만한 노래가 없었다. 그제서야 미니롱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보고 알아채라고 일부러 완성도가 낮은 노래 사이에 이런 걸 밀어넣었구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미는 곡이 있었네.”

송서아가 멋쩍은 듯 헤헤 웃었다.

“티가 났나요?”

김민지가 변명처럼 말했다.

“딱히 천마 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저희도 그 곡이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몰라서 다른 곡도 준비해봤습니다.”

본인도 이 노래가 제일 괜찮다면, 더 들어볼 것도 없지.

채택된 노래는 ‘sour candy’

미니롱이 원하는 건 이 노래를 좀 더 대중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김민지는 자신만의 색채도 중요하지만, 그걸 대중성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바꿔나가고 싶다고 했다.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앞선 앨범들에서 그걸 많이 느낀 모양이었다.

“대중성이라···.”

나는 대중성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70년 동안 무림에 있으면서, 정말 유명한 곡이 아닌 이상 전부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림에서 대중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봤던 것도 아니고.

지금이야 작곡할 때마다 여러 장르의 노래를 들으면서 참고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작곡가들에 비해 장르의 폭이 좁은 편이다.

어쨌든 대중에게 먹힐 만한 곡을 콕 집어서 만들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노래를 어떻게 하면 가장 듣기 좋게 발전시킬지는 알고 있다.

수백, 수천 개의 곡을 작곡하면서 생긴 나만의 빅데이터.

이번 미니롱과의 협업에서는 그걸 활용할 예정이다.

“좋아. 어디 한번 건드려볼까.”

미니롱이 가지고 있던 몽환적인 느낌.

사람들이 친숙해지기 어려워했던 특유의 매력을, 통통 튀고 리드미컬한 트랙에 붙였다.

다음으로는 미니롱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보컬을 고려했다.

송서아는 음역대가 아주 높은 편이다.

다만 힘이 꽉 차서 단단한 고음이 아닌, 여리고 청아한 느낌이 강했다.

김민지는 중저음역대에 최적화된 단단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송서아가 메인 멜로디를 노래한다면, 김민지는 거기에 화음을 넣어준다.

이 두 목소리를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고치기 시작했다.

곡 전체에 짙게 깔린 서정적인 색채를 덜어내고, 가벼운 동화 같은 요소를 참가했다.

대신 평소 스타일보다는 조금 더 활기차게.

알코올이 들어가서일까? 내 작업속도는 과감해지고 빨라졌다.

뚝딱뚝딱

나는 어느새 완성된 1차 편곡 시안을 들려주었다.

송서아가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환호했다.

“우와 너무너무 좋아요! 역시 천마님한테 맡기기를 잘했어요!”

김민지도 맥주캔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마 님입니다. 바로 이렇게 편곡을 하시다니···!”

“아니 마음에 안 들어.”

“네?”

나는 앞부분부터 뜯어고쳤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정원을 사뿐사뿐 걷는 느낌으로.

그리고 두 사람에게 한번 불러보게 시켰다.

[maybe it’s like a candy

something sweet something soft]

김민지의 편안한 보컬이 공간감을 채운다.

이어서 조금 높은 송서아의 목소리가 화음을 만들어내며 고조시킨다.

[너가 원한 건 어떤 사탕이야?

어른스러운 커피 소녀 같은 딸기

하지만 난 아직 sour candy]

그렇게 1절을 끝까지 부른 후 김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완벽해진 것 같습니다. 역시 천마 님은···.”

“이게 완벽하다고? 아직이야.”

“???”

프리코러스로 올라갈 때 음이 조금 뻣뻣해진다. 갑자기 힘이 확 들어간다고 해야할까.

나는 다시 수정을 가했다.

김민지의 저음이 묵직하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송서아가 그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춤출 수 있도록.

숲속 정원에서 소녀가 가볍고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옆에서 두 사람이 속닥거렸다.

“나는 조금 전에 고칠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손을 대니까 더 좋아지네?”

“그러니까. 디테일을 조금씩 바꾸는 것만으로도 확확 달라져.”

“나중에 우리 원곡은 남아있을까?”

“음···.”

그렇게 미니롱의 노래는 차근차근 개조당했다.

*

영상도 안 올리고 그저 라이브 원툴이던 천마의 채널은, 어느새 콘텐츠가 4개로 늘어났다.

가장 마지막에 생긴 콘텐츠, [컴백일지].

첫번째 게스트 미니롱과 함께 찍은 영상이 오늘 업로드되었다.

커뮤니티에는 관련 공지를 올렸고, 구독자들은 오늘도 흥분했다.

-천마가 드디어 일한다ㅠㅠㅠㅠ 시발 존나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

-새로 온 피디님 일 잘하시네요.

ㄴ ㄹㅇ천마야 얘 놓치지 마라

-헐? 미니롱? 나 대학 축제 때 얘네 왔었는데 노래 좋았음. 그때 이후로 몇 번 찾아들었는데 아직도 활동하시는줄은 몰랐네요

송서아는 자기가 언급된 댓글을 보고 신나했다.

“우와! 우리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응. 가뭄에 콩 나듯 있네.”

팬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김민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6시간 전에 올라온 컴백일지 영상을 보았다.

[컴백일지ㅣ미니롱과의 첫만남···시작부터 음주작업?!]

첫 만남은 송서아와 김민지 투샷을 강조하면서 보여줬다.

특히···엄청난 키 차이를.

미니롱 보컬1. 송서아 (키 176cm)

미니롱 보컬2. 김민지 (키 152cm)

-왘ㅋㅋㅋㅋ진짜 미니롱이네

-ㅋㅋㅋㅋ닉언일치 무슨일

-나 남잔데 나보다 크시네요 ㄷㄷㄷ

-서아언니ㅠㅠㅠ키 10센치만 저한테 주세요···.

그리곤 작업실을 소개한 후 슬슬 작업준비를 시작했다.

[롱서아: 우리 치맥해요!]

[PD: (동공지진) 지금 오전 11시인데···?]

[천마: 원래 술이 들어가서 예술이지.]

[~ 그렇게 음주 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

빨간색 자막이 지나간 후, 치맥을 뜯으면서 노래를 고르는 장면이 지나갔다.

1화라서 그런지 곡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 미니롱의 사연을 들어주고 천마와 얘기하는 장면만 들어갔다.

김민지는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직 대학생이라던데 되게 센스가 좋네.’

작은 작업실에 꾸역꾸역 들어가 앉아 회의하는 모습은, 어딘가 진실되어 보였다.

가난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뮤지션 같은 이미지를 편집을 통해 붙여줬다.

‘현실은 이렇게 멋있기보다는 좀 더 절망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컴백일지]는 편집의 마법을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했고, 마지막으로 선곡하는 장면이 나왔다.

[난 아직 sour candy

너에게만 보여주는 sweet candy]

짧은 후렴구가 지나가고 천마가 말했다.

[천마: 이게 제일 좋은데?]

그 밑에 붉은 자막이 박혔다.

[···라고 말했지만 가차없이 개조당했다]

이어서 예고편 느낌으로 천마가 본격적으로 편곡하는 컷이 짧게 지나갔다.

[천마: 아니 마음에 안들어.]

[천마: 마음에 안들어.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천마: 이걸 모르겠어? 왜? 왜 몰라?]

[천마: 멜로디의 완성은 디테일이라고!!!!!]

그 예고편을 보다가 김민지는 PTSD가 오는 걸 느꼈다.

‘음···. 장난 아니었지.’

천마의 편곡은 대단했다.

완성됐다 싶으면 다시 편곡에 들어갔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고쳤나 했지만, 기가 막히게 원곡의 느낌은 남겨놨다.

김민지는 스크롤을 내려서 댓글을 읽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 난 원곡 후렴구도 괜찮은데?

- 오늘의 명언: 마음에 안들어

- 다음편 내놓으라고 이색히들아ㅠㅠㅠㅠ

- 어떻게 편곡했을지 궁금하네요ㅎㅎㅎ

- 난 천마 노래 듣는게 더 좋은데···. 일단 다음편 기대해보겠습니다.

당연히 안 좋은 댓글도 있긴 했다.

- 어휴ㅋㅋ 듣보롱이 한태영한테 비비려고 애쓴다

- 노린 거 딱 보이네 그렇게 뜨고싶은가ㅠㅠㅠㅠ애처롭다ㅠㅠㅠㅠㅠ

- 천마님 이런 애들한테 좀 휘둘리지 마요

- 해줘도 왜 이딴 놈들한테 곡을 주냐 ㅉㅉ 어차피 망할건데

- 응 컴백일지 노잼

하지만 김민지는 딱히 타격을 받지 않았다.

‘사실인데 뭐.’

오히려 좋았다. 이런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는 뜻이니까.

무명시절을 겪으면서 느꼈다. 이 바닥은 어떻게든 뜨기만 하면 된다.

'뜨기만 할 수 있으면 이런 악플같은 건 몇백 개를 받아도 돼.'

영상의 조회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버즈량은 충분했고, 정말 아주 가끔 인터넷 연예 뉴스에서 천마를 언급하면서 미니롱의 신곡에 대해서 나올 정도였다.

김민지는 어제 녹음까지 마친 ‘sour candy’를 떠올렸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자신이 만든 곡이 그런 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곡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하지만 훨씬 듣기 좋은 곡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천마의 재능이 부러웠다.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악상을 순식간에 악보에 풀어놓을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재능의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오히려 경외심만 느껴졌다.

사람들이 천재라고 추켜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나 싶었다.

어쨌든 이제 믹싱 마스터링만 하면 곡은 완성된다.

조금 빠듯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컴백 날짜를 한태영이 싱글을 내고 10일 후로 잡았다.

한태영과 천마에게 묻어가려는 게 노골적으로 보이는 의도였고, 사람들에게 욕 좀 들어먹겠지만···.

그녀는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

마침내 한태영의 싱글이 나왔다.

1. 우리, 봄

2. 고백

무려 두 개의 곡을 수록한 채로.

- 갓태성이 오셨다ㅠㅠㅠ드디어ㅠㅠㅠㅠ

- 갑자기 춤추길래 군대가기 전에 하고싶은 거 다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띵곡?

- 하루종일 후렴구 부르게 생겼음 벌써 중독된 거 같아···.

- 뭐지? 이시대의 댄스곡이 생각나는데 느낌이 완전 다르잖아

ㄴ이번에는 ㄹㅇ 춤춰도 봐준다

그리고 역시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그 기세를 타고 한태영은 다시 천마의 방송에 찾아갔다.

- 천마님, 댄스챌린지 한번 해보실래요?

< 천마가 심폐소생 해줌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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