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7화 (17/191)

< 차트 등반 시작 (1) >

[컴백일지] 미니롱 편은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

빛태영이 알고리즘을 따라 미니롱까지 넘어왔을 때가 2화가 나올 시점이었다.

옥수진은 2화에서 완성된 노래의 후렴구를 넣어놓았다.

이 후렴구는 1화의 원곡 후렴구와 대비가 되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 어 뭐야? 어제 들었던 건 이게 아닌데?

- 천마 당신 정체가 뭐야?

- 근데 옷보니까 이거 하루 만에 촬영한 거 아닌가?

- ㄹㅇ이네 진짜 하루 만에 편곡 끝낸 거네 ㅋㅋㅋㅋㅋ

마침 빛태영과 비슷한 루트로 들어온 사람들이 미니롱까지 찾아오면서,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괜찮은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천마의 댄스 챌린지는 벌써 100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니롱의 컴백을 담은 영상도 이틀 만에 7.8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컴백일지]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코너이기도 하고, 미니롱이 인지도가 있는 가수는 아닌지라 다른 영상에 비해서 묻힌 감은 있다.

하지만 10만이 채 되지 않는 조회수도 미니롱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이 정도면 미니롱이 당초 목표했던 화제성 챙기기에는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댓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분탕질을 치려는 어그로도 같이 유입됐다.

- 미니롱 애쓰네···. 지들보다 어린놈한테 고개나 숙이고. 가서 읍한 거 아님?

- 어그로 끌려고 아득바득ㅎㅎㅎ 그 시간에 차라리 실력을 올리지 그러니?

몇몇은 미니롱을 비난하고,

- 딱봐도 천마가 어려보이는데 미니롱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 좀 아니지 않나ㅠ

- ㅇㅇ 방송때부터 느꼈는데 좀 싸가지가 없는 듯

- 후원 받고도 고개만 살짝 까닥이는거 봐. 기본이 글럿네

- 응 그냥 중2병 정신병자야

- 팩트만 말해줘도 댓삭하네? 쫄리냐?

몇몇은 천마를 깠다.

하지만 이제 천마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천마의 방송을 초기부터 보던 팬들.

그 숫자는 유입된 어그로들에 비해 훨씬 많다.

그들은 분탕들에 맞서 댓글창에서 열심히 싸워줬다.

- 얘들아 왜 열폭해ㅠ

- 현실을 살자 제발. 방구석에서 손가락만 놀리면 재미있니?

- 음공천마 : 연예인들이 곡 달라고 슈퍼챗 날림 / 악플다는본인 : 인생 최대 업적 초등학교 개근상

- ㅅㅂ정병들 좀 안꺼지냐

- 머갈텅텅인거 다 티나니까 댓글 좀 지우세요

싸움이 심해진다는 것은 천마의 채널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는 거.

한태영의 신곡에서 흐름을 탄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마지막 화가 올라간 것과 동시에 신곡이 공개됐다.

*

미니롱의 신곡 발매 당일.

나는 미니롱의 작업실에서 같이 닭발을 뜯고 있었다. 나는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아니예요. 저도 작곡가님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김민지는 진심으로 말했다.

천마의 작곡 방식과 영감은 천재적인 재능에 기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민지는 어깨너머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차선우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심상을 풀어내는 방식 등을 배운 김민지는 분명 다음 앨범에서는 훨씬 더 좋은 곡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송서아도 닭발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 천마님은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해요?"

송서아는 차선우에게 조금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배울 수 있었다.

맑고 여린 보컬을 가진 송서아는 타고난 음색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그만큼 장르적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서 차선우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극대화할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잘되면 꼭! 맛있는 거 쏠게요. 그런데 우리 차트 진입은 할 수 있으려나?”

미니롱은 성적이 좋은 가수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성적과는 관계없이 본인들의 음악을 하는 걸로 알려진 가수였다.

지금까지의 최고 성적은 인디차트 40위 언저리.

그것도 2년 전에 낸 앨범의 성적이다.

그 이외에는 거의 차트인도 하지 못한 수준.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 다르다.

미니롱이 고집하는 색채를 덜어내고, 차선우의 지도 아래 대중성을 장착했다.

김민지가 차분하게, 그리고 결연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인디차트 10등 안으로 들어가는 게 목표야.”

“나는 월간 차트 100위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월간을 어떻게 가니. 일간 차트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아냐! 이번에는 다르다고. 우리 차트인 할 수 있을 거 같아. 천마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술이 들어가고, 두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신곡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미니롱이 음악을 시작한 지 5년. 단순한 차트 성적이 아닌 뮤지션으로서 이뤄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술이 들어가 얼굴이 붉어진 송서아가 말했다.

“저는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콘서트 하고 싶어요.”

김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우리 [컴백일지]를 본 사람들을 합쳐도 콘서트장을 못 채우겠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꿈은 모르겠고 나는 그냥 무대를 하고 싶어.”

나는 되물었다.

“무대?”

“예전에 몇 번 대학 축제에서 무대를 섰던 적이 있거든요. 지금은 불러주지 않지만, 어쨌든 이번에 음원 성적이 괜찮게 나온다면 한번 다시 서보고 싶어요.”

무대라.

그러고보니 나는 방송을 통해서만 관객을 만나왔다. 얼굴을 직접 맞대고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때 송서아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천마 님은 왜 방송만 하세요? 우리보다 노래도 잘 부르시고 얼굴도 잘생기시고, 심지어 곡도 잘 만드시는데. 정식으로 앨범 내서 데뷔해도 대박 날 거 같은뎅.”

말끝이 요상하게 구부러지는 것을 보니 취한 거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데뷔도 좋지. 그런데 지금은 방송이 재밌어서.”

사실이다.

나는 지금 방송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평생 천마로 살다가 죽을 줄만 알았던 시간이 70년.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술을 마시며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무림에서 돌아온 지 이제 겨우 한 달,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과 사연을 나누고 내 음악을 들려주는 게 좋았다.

딱히 급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 스무 살이고, 넘치는 게 시간이거든.

앨범을 내려면 거기에 많은 시간을 뺏길 텐데, 그러면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일단 지금은 내가 만족할 만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다가 간간히 [컴백일지]를 통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음악인과 교류하는 것도 좋고.

어쨌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신곡이 공개될 시간이었다.

내 채널에, 그리고 음원 사이트에 곡이 공개된 것을 확인했다.

sour candy - 미니롱

작곡: 민지, 음공천마

작사: 민지

편곡 : 음공천마

우리는 함께 만든 노래를 재생해보았다.

내가 만든 멜로디와 김민지의 가사, 송서아의 보컬이 어우러진 노래는.

"노래 잘 빠졌네."

"흠. 제가 들어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차트 진입 가즈아!!"

물론 한태영이 그랬던 것처럼 한시간만에 차트에 진입하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고, 노래도 좋았다.

우리 셋은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데에 건배를 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송서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희 인디차트에서 77위 했어요!!!!! 와 대박, 하루 만에 이렇게 들어온 거 보니까 천마님 채널이 도움이 됐나 봐요!”

"그래? 77위를 했다고?"

이상하네? 나는 그거보다는 잘 할 줄 알았는데.

"벌써 77등이나 했다구요! 그럼 마무리는 더 잘할 수 있겠죠? 어··· 잠시만.”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보야. 여기 인디차트가 아니잖아?’

‘헐? 꺄아악 미쳤어 미쳤어!’

전화가 끊어졌다.

“···?”

나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메인에 보이는 HOT 100에서는 당연하지만 보이지 않았고, 대신 최신차트 끄트머리에 미니롱의 이름이 있었다.

4주 내 발매곡을 따로 모아서 만든 최신차트의 77위를 한 것이다.

“음. 타이밍이 좋았네.”

한태영 효과가 있었고, 다른 아이돌은 6월 말부터 컴백이 잡혀있어서 차트가 빈집이나 다름없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라는 게 내 생각보다 더 좋았다.

3일 후, 미니롱의 노래는 HOT 100 일간 차트에 진입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미니롱의 등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5월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주, 제주도에 한달살기를 다녀오신 부모님이 돌아오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부모님을 뵈러 강원도 원주로 올라갔다.

내 부모님은 원주에서 포차를 운영하신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포차를 찾았다.

기억 속에 있는 낡고 손때 묻은 가게는 어디 가고, 멀끔하고 깔끔한 가게가 있었다.

[낭만포차]

기억났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한 달 동안 당신 소유의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 맡기시고 두 분은 제주도로 놀러 갔다 오셨다는 것을.

날 봤는지 가게에서 짐을 정리하시던 어머니가 나오셨다.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나를 안더니 말했다.

“어이구 우리 아들 한 달 만에 보니까 더 컸네.”

“······.”

원래 부모님을 뵈면 하려던 말이 있었는데.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협지 속으로 처음 떨어졌을 때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사부님을 만나고 음공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천마신교에서 살아남느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소교주 경합전, 교 내부에서의 권력 싸움, 무림맹과의 혈전,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들.

중간중간 부모님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마음 놓고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평화를 찾고 나니 이미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부모님을 떠올리려고 하니 그저 흐릿한 인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선우야 너도 들어와서 일이나 거들어.”

“당신은 정말! 애를 한 달만에 만났는데. 내가 과일 깎아 올게요. 일은 이따가 저녁에 하고 얘기나 좀 하자.”

나는 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다스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과일을 정갈하게 깎아 오시고, 나는 새것 느낌이 물씬 나는 식탁 앞에 앉았다.

70년 만에 만나니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혼자만 괜한 감상에 젖어있는 거 같아 쑥스러워지기도 하고. 나는 아무 말이나 꺼냈다.

“어···음. 잘 지내셨어요?”

“푹 쉬다 왔는데 못 지낼 게 뭐가 있겠어. 그나저나 아들 방송한다는 건 잘 되고 있어?”

두 분이 제주도에 가기 전 나는 채널을 개설했고, 부모님 두 분께서는 구독까지 눌러주셨다.

“제가 방송하는 거 안 보셨어요?”

“아니, 뭐. 훑어보기는 했지. 그런데 넌 이름이 그게 뭐니? 여보, 뭐였더라?”

아버지께서 사과를 입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음공천마.”

“그래. 음공천마. 어이구, 어릴 때부터 무협지나 읽어대더니···. 좋은 이름도 많은데 이름이 그게 뭐니. 천마는 너무 유치해 보이잖아.”

나는 그냥 웃었다.

이런 잔소리는 또 오랜만에 들어보는데, 기분이 묘하게 좋다..

아들이 무작정 음악을 하겠다고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는데도 응원부터 해주시는 분들이다.

“에이, 그래도 저 잘하고 있어요. 구독자도 많이 늘었고요. 이번에 한태영이라는 가수한테 곡도 만들어줬는데, 들어봤어요?”

그래서 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신 아들이 음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그 챌린지 한 거 말하는 거냐?"

"...어떻게 아셨어요?"

"어이구, 말도 마라. 니 아버지가 여행 가서 맨날 그 노래만 듣는 통에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뻔했어. 무슨 스밍인가 그걸 해야지 순위가 올라간다는데. 저 양반이 아들 일이라면 아주 끔뻑 죽는다니까."

"흠흠··· 끔벅 죽기는 무슨. 그냥 듣다보니까 나온 거지."

“어이구, 어이구. 집에 오는 길에 카페를 들렀는데, 글쎄 거기에서 네 노래가 나오더라? 그러니까 이 양반이 주인장한테 아들 노래라고 자랑하는 거 있지. 내가 못말려 진짜.”

아버지는 모른 척 과일을 집중해서 드시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그래도 선우 네가 잘돼서 어찌나 다행인지 몰라. 엄마랑 아빠랑 너 그렇게 서울 올라가고 엄청 걱정했잖아. 니 동생도 이번에 모의고사 잘 봤다는데, 둘 다 잘돼서 다행이지 뭐니."

"...동생이요?"

아, 맞다.

나는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 차트 등반 시작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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