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트 등반 시작 (2) >
갑작스럽게 떠오른 여동생에 대한 생각을 저 멀리 치워버릴 때쯤, 아버지가 말을 꺼내셨다.
“그러고보니 아들 노래를 안 들은 지 오래됐네.”
아버지가 은근슬쩍 말을 꺼내자 어머니께서 넙죽 받았다.
“그러게요. 어릴 때는 우리 데리고 노래방도 자주 가더니, 애가 좀 컸다고 노래를 하나도 안 불러주고. 아들이 만든 노래 중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노래가···고백이었던가?”
아버지가 어머니의 오류를 정정했다.
“고백은 오늘 9등 했고, 3등은 우리, 봄이야.”
“어쨌든 그게 그거죠. 오랜만에 아들 목소리 좀 들어볼까?”
두 분께서는 내 노래를 한번 직접 들어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목소리에 내공을 듬뿍 담아 불러드리기로 했다.
제일 히트친 노래인 ‘우리, 봄’부터 시작해서 ‘고백’에 이어, 미니롱의 ‘sour candy’까지.
술집 안에서는 때아닌 메들리가 이어졌다.
내공이 실린 멜로디가 머릿속에 하나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차오르던 감정이 노래에 실린다.
그리움이라고 정의내리기에는 조금 더 짙은,
70년 동안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
그 감정이 부모님께 전해진다.
어머니께서는 황급히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어머···. 왜 이렇게 주책이래니.”
"···흠흠. 그래, 잘 부르는구만. 굶어 죽지는 않겠네."
“당신 진짜!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하지.”
“내가 뭘.”
투닥거리시는 부모님을 보니 괜히 미소가 나온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부터 두 분은 몸이 뻐근하신지 어깨와 허리를 두드리고 계신다.
수십 년 동안 장사를 해오셔서 여기저기 결린 데가 많으신가 보다.
제주도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테고.
나는 여쭤보았다.
"혹시 제 방에 기타 아직 있나요?"
"그럼. 선우 네 방에 있는 물건들은 안 건드리고 잘 뒀지."
어머니의 말은 들은 나는 재빠르게 건물 3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가서 낡은 기타를 챙겨왔다.
내가 이번에 불러드릴 곡은 이름하여 '안마송'.
무림에서 사부님이 늙어서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고 하셨을 때, 특별히 만들어드린 노래이다.
이 노래에는 특별한 가사는 없다.
그저 멜로디와 허밍음이 전부인 곡.
하지만 음파 마사지 기계에서 착안을 한 이 곡은 제목대로 무려 안마의 기능이 있다.
내공을 담은 허밍음을 극대화시켜 그 음파로 전신을 안마하며 뭉친 혈을 풀어주고, 몸 내부의 노폐물들까지 분쇄해주는 그런 곡이다.
'단점이 있다면 내공을 엄청나게 잡아먹는다는 건데.'
한 달 동안 열심히 운기를 하였지만 아직 쌓인 내공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집에 기타가 있어서 다행이네.'
그냥 목소리만 가지고 안마송을 부르면 진동 효과가 좀 약하다.
기타를 이용하면 안마송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기타를 가지고 내려오니, 어머니께서 반색하셨다.
"여보, 우리 선우가 아주 제대로 하려나 본데요? 이거 엄마가 기대해도 되는 거야?"
나는 씩 웃었다.
"그럼요. 이번에 제가 새로 준비 중인 곡이거든요. 아직 멜로디만 있는데 엄마랑 아빠가 한번 봐주세요."
말은 마친 나는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내공을 담아서.
[라 라라 라라라라라]
기타를 튕기는 손가락에 내공을 담았다. 음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면서 부모님은 절로 눈을 스르르 감으셨다.
듣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멜로디.
기타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허밍음이 가게 안을 가득 울리고, 부모님은 몸에 힘을 쭉 빼신 채 노래를 듣고 계신다.
내공이 많지 않았기에 길게 부를 수는 없었다. 3분 후에 연주를 마친 나는 물었다.
"어떠세요?"
아버지께서 기지개를 쭉 켜셨다.
“어그그그 온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줄 알았다. 몸이 다 뜨끈해지네.”
“그건 당신이 술을 마셔서 그런 거고요. 근데 오랜만에 아들이 노래를 불러줘서 그런지 기분이 다 좋네.”
물론 두 분께서는 개운함이 단지 오랜만에 아들 얼굴을 봐서 기분이 좋아진 거로 생각하셨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안마송은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혈류가 빨라지고 뭉쳐있는 곳을 풀어주는 정도 뿐이었지만, 피곤하기만 했던 안색에는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뿌듯했다.
부모님께 내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나 좋아하시니 무림에 가기 전에도 자주 들려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음원으로 만들면 부모님께 제일 먼저 들려드릴게요."
두 분께서는 굉장히 만족하신 얼굴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말했다.
"그런데 선우야, 혹시 트로트는 안하니?"
"예? 트로트요?"
갑자기 트로트?
이쪽은 거의 들어본 적도 없는 장르인데.
내가 눈을 끔벅거리자 아버지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네 엄마가 요즘 킹오브트롯에 빠졌더라. 강현호 그 친구가 노래를 참 잘부르더만.”
“요즘 엄마가 문자 투표도 하고 있거든. 그런데 이번에 그 한태영이라는 가수랑 작업했으면, 나중에 강현호랑도 작업할 수 있는 거 아니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시는 어머니.
그러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말리셨다.
“당신도 애 부담스럽게 무슨 그런 얘기를 해. 아무튼 네가 자리를 좀 잡아가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부모님의 덕담을 듣고 아버지는 노래를 들은 대신이라며 한잔 따라주시겠다고 했다.
가게 안쪽에서 무언가를 끙끙거리며 들고 오신 아버지.
아버지가 들고 오신 건 각종 약초들이 가득 든 담금주였다.
"아들이 왔는데 또 한 잔 안할 수가 없지. 자, 한 잔 받아라."
나는 아버지가 따라주시는 술을 공손하게 받았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앞으로도 뭘 하든 재미있게 살아라."
아버지의 덕담과 함께 건배를 한 나는 따라 주신 담금주를 원샷했다.
그런데,
'뭐야? 이거 약초주 맞아?'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 순간, 뱃속이 뜨뜻해진다.
*
나는 뜻밖의 기연(?)을 얻었다.
아버지가 따라주신 담금주. 그걸 먹고 난 후 운기까지 마치니 미약하게마나 내공이 차올랐다.
분명 아버지는 인삼이랑 약초 몇 개만 넣으셨다고 했는데.
'여기 그냥 약초만 들어있는게 아는 것 같은데?'
산삼이나 오래된 약초 같은 것이 섞여있는듯 싶다.
내가 주는 대로 꿀떡꿀떡 잘 받아먹으니 아버지는 그냥 통째로 담금주를 내 손에 쥐여 보내셨다.
다음날 집에 돌아온 나는 담금주를 몽땅 비우고 안에 있는 삼들과 약초들을 씹어먹었다.
오래 묵은 것들은 아닌지 약성은 크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릇을 싹싹 긁어먹듯이 약성을 모조리 흡수했다.
'마침 다행이네. 최근 운기를 하면서 얻는 내공이 크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자그마한 약성 하나하나가 아까운 지금이다.
그렇게 한참 운기를 하고 난 후 오랜만에 묵직해진 단전에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내 목소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내공이 늘어났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영약을 찾아낸 거지?’
다음에도 몇 개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내가 직접 구해다 먹어도 되고.'
생각해보니 요즘 내 수입이 꽤 짭짤했다.
한태영에게 작곡을 해준 비용부터, 방송에서 벌어들이는 후원금과 정산금, 그리고 앞으로 들어올 저작권료까지.
무림에서 돌아온 한 달 동안 천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려버렸다.
약초를 먹으면 내공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정 급하면 어디 심마니한테 가서 산삼이라도 몇 뿌리 사 먹으면 된다.
그리고 내공이 늘어났으니 다음번에는 안마송을 조금 더 제대로 들려드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참에 제대로 녹음을 해서 피곤하실 때마다 들으시라고 할까?'
매일 안마송을 들으시면서 일을 하시면 몸에 피로도 풀리고 두 분 다 건강해지실 텐데.
아무튼 아버지 덕분에 기연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기연은 나한테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
닉네임 [이승호마누라]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결국 중간고사를 조졌다.
더 슬픈 건 솔로로 컴백한 이승호도 같이 조졌다는 것이다.
이승호의 싱글은 그냥 팬들 사이에서만 반짝 돌고 끝났다. 심지어 아이돌에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이승호가 컴백을 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녀의 머글 친구들이 ‘이승호? 아직 제대 안한 거 아니야?’라고 할 때마다 얼마나 빡치던지!
더군다나 천마의 곡을 가지고 이승호와 경쟁했던 한태영은 차트 상위권에서 놀고 있었다.
그게 좀 배 아팠지만, 한태영의 곡을 들은 순간 그녀는 납득할 수 있었다.
‘노래 미친 거 아니야? 진짜 개좋네. 하긴 우리 천마가 만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블랙쉽은 하필 왜 한태영이랑 동발해가지고···. 컴백을 2주만 늦췄어도 이 꼴은 안 났지. 아니면 좀 제대로 된 작곡가를 붙여주던가. 우리 오빠도 천마랑 같이했으면 대박 났을 텐데.’
결국 그녀의 분노는 이승호의 소속사에게 향했다.
블랙쉽 대표가 들었으면 굉장히 억울했을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대학생도 망하고 최애도 망했지만, 시간은 흘러 5월이 되었다.
바로 축제의 시기.
대학교에서 축제가 시작하고 가끔 교수님도 수업을 일찍 끝내주거나 휴강을 했다.
마침 그녀의 학교도 역시 축제가 시작했다.
마지막 수업 교수님이 휴강해주신 덕분에 일찍 돌아온 대학생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SNS 타임라인부터 갱신했다.
‘요즘 우리 봄 챌린지가 핫하네.’
노래도 좋고 동작도 간단해서 따라하기 쉬웠다. 피드를 쭉 둘러보다 천마가 따라한 챌린지를 발견한 대학생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뭐야. 왜 춤도 잘 춰?’
그녀는 모르겠지만, 천마가 무공 수련을 한 경력이 무려 70년이다. 춤의 동작을 매끄럽게 따라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천마의 몸짓에는 소위 춤 좀 춘다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쫀득쫀득한 춤선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10초 남짓한 챌린지를 몇 번 돌려보던 대학생은 자연스럽게 천마의 채널로 넘어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에는 [컴백일지]라는 새로운 컨텐츠가 있었다.
대학생이 중간고사를 치르는 동안 컴백일지는 3화까지 나왔었고, 그녀는 곧바로 정주행을 시작했다.
'이번 천마 노래도 좋네. 의외로 미니롱도 노래 잘하는데?'
미니롱은 잘 알지 못하는 가수였지만 [컴백일지]를 보다 보니 사정이 딱했다.
대학생 또한 중간고사를 조졌기 때문에 미니롱이 성적을 거두지 못한 시절과 동질감이 형성되면서,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어느새 그녀는 미니롱에게 몰입했다.
미니롱이 5년간의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천마와 함께 ‘sour candy’라는 노래를 발표할 때는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하. 나도 중간고사 망했는데. 진짜 얘랑 나랑 비슷하게 사는구나.’
물론 미니롱은 열심히 했는데도 뜨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 사례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대학생은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대학생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서 미니롱 노래를 찾았다.
찾기는 쉬웠다.
‘헐????? 뭐야? 차트에 들어왔었어?’
무려 HOT 100 차트 70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73. 미니롱 - sour candy
그녀가 좋아하는 이승호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한참 낮은 73위.
'뭐 이따가 스밍이나 좀 해줄까?'
몰입해서 [컴백일지]를 본 까닭일까? 미니롱에게는 뭔가 정이 갔다.
플레이리스트에 미니롱의 곡을 저장하고 있을 때 톡이 울렸다.
단톡방이었다.
- 오늘 축제 라인업이다!!!!
[H 대학교ㅣ5월 13일 축제 라인업]
그녀는 친구들이 보내준 라인업을 확인했다.
축제에서 자주 보인다는 가수들 이름 옆에 생소한 가수의 이름이 하나 있었다.
- 미니롱
‘헐, 대박. 미니롱이 있네?’
그때 다시 톡이 울렸다.
- 뭐하냐?
- 우리 자리 맡아놨는데 올래?
'이건 못 참지.'
- 나 바로 간다. 맨 앞자리 맡아둬
답장을 하고 출발하는 그녀의 손에는, 한창 트릭커를 따라다닐 때 사용했던 대포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 차트 등반 시작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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