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물이 나타났다 (1) >
나는 H 대학교의 축제에 왔다.
옥수진이 다니고 있는 학교인데 마침 미니롱이 거기 축제에 무대를 하러 온다고 한다.
그래서 미니롱의 무대가 끝난 후에 다 같이 뒤풀이나 하자며 우리는 H 대학교에 모였다.
나는 옥수진에게 물었다.
“졸업 시즌이라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어제까지 할 거 다 끝내버렸어요.”
놀기 위해서 미친 듯이 과제를 끝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옥수진의 눈 밑은 퀭했다.
옥수진이 덧붙였다.
“그리고 언니들이랑은 친하기도 하고, 대학 축제에서는 몇 년 만에 서보는 거라는데 이왕 온 김에 얼굴도 보면 좋죠.”
[컴백일지] 촬영하면서 옥수진과 미니롱은 많이 친해졌다. 지난번에는 셋이서 방탈출도 다녀왔다고 한다.
날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우리는 일찍 왔기 때문에 앞에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와 옥수진은 맥주에다가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말고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떠들고 노는 모습.
‘그러고보니 우리 집에도 곧 대학생이 한 놈 생기겠군.’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여동생의 이야기이다.
중간고사 끝나고 강원도 집에 올라왔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요즘 공부 안하고 놀러 다닌다며 그러다가 어느 대학에 갈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셨다.
뭐, 내 인생도 아닌데 알아서 하겠지.
나는 옥수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전공이 뭐야?”
“산디요. 산업디자인.”
아, 디자인. 그래서 영상을 잘 만드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심코 드는 생각.
‘얘가 취업하면 내 영상 못 봐주는 거 아냐?’
살짝 쫄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 취업은 어디로 하게?”
“아직 정하지는 못했어요. 자격증 공부할 시간도 필요해서 수료만 해두고 학원 다닐까 생각중이에요. 아니면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중이고요.”
그래도 척척석사는 싫어··· 라고 중얼거리는 옥수진의 표정은 어두웠다.
고민이 많은 듯싶었다.
하긴, 저 나이 때 진로는 정말 중요한 고민거리기는 하지.
천마신교에 들어가서 잠마동에서 죽도록 수련한 후 나올 때가 떠올랐다.
상태창이 없었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끔찍했지.
그때 잠마동을 나오면서 처음에 어떤 부대를 들어갈지 머리 빠지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 고민이 무색하게 비각주의 눈에 띄어서 다이렉트로 비각에 끌려갔지만, 어쨌든.
‘옥수진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그러려면 내가 회사를 세워야 하는 건가?’
그러려면 일단 내 체급부터 좀 키워놔야 하겠지.
적어도 옥수진을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에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고민하는 사이 무대는 시작됐다.
이후 한 시간쯤 지나고 축제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니롱이 등장했다.
미니롱은 최근에 축제의 계절을 맞이해서 열심히 불려 다니고 있었다.
대학 축제는 아니고 지방 지역 축제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는데, 종종 미니롱의 직캠 영상이 뜨면서 이제는 소소하게나마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있었다.
H 대학교에는 가수 한 명이 펑크를 내면서 급하게 땜방으로 들어왔다.
한태영에 비해서는 많이 초라한 수준이지만, 미니롱은 드디어 빛을 본다고 감격하며 엄청 열심히 준비했다.
무대에 오른 미니롱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름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sour candy를 불렀다.
[아직 알지 못하겠지
조금 더 녹아내리면
숨겨둔 내 달콤함이 팝팝팝]
“팝팝팝!”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꽤 있는지 앞뒤 사람들이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난 아직 sour candy]
“사우어 캔디!”
[너에게만 보여주는 sweet candy]
“스윗 캔디!”
[조금만 기다려봐
곧 혀끝에 맴돌텐데
곧 입안에 퍼질텐데]
사람들이 환호하고 웃으며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들 사이에 있는 건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휴대폰 화면에서 나온 빛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마치 빛무리 속에 있는 느낌이다.
단순히 방송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해 주며 후원금을 날리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그 이상이다.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내가 만든 노래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감정을 직접 맞닥뜨리는 건···.
'굉장하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차선우가 감상에 빠졌을 때, 대포 카메라를 들고 축제 영상을 찍고 있던 대학생은 입을 틀어막았다.
‘저, 저, 저, 저 사람 천마 아니야?!’
남자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오랜 덕질 경력을 자랑하는 대학생이 그걸 꿰뚫어 보는 건 쉬웠다.
모자를 눌러써 봤자다. 살짝 드러난 이목구비로 사람을 매칭시키는 건 수십 번은 해본 일이다.
‘진짜 천마다. 헐, 어떡해. 천마가 우리 학교에 왔네? 세상에 무슨 일이야!’
속으로 덩실덩실 춤추다가 이윽고 갈등이 찾아왔다.
'근데 나 미니롱 찍고 있었는데. 어쩌지?'
미니롱을 찍을까? 아니면 천마를 찍을까?
고민하는 와중에도 프로홈마의 손은 이미 흔들림 없이 미니롱을 포착하고 있었다.
대학생은 결론을 내렸다.
‘미니롱만 다 찍고 한번 말을 걸어봐야지.’
그렇게 미니롱 무대를 모두 찍고, 천마가 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린 순간.
“?????”
천마가 사라졌다.
미니롱 영상을 찍다가 천마가 아주 잠깐 곁다리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대학생은 결국 울면서 미니롱 영상을 보정한 후 자신의 SNS에 올렸다.
- 우리 대학 축제에 BJ음공천마가 옴. 미니롱 무대를 보려고 왔나본데ㅠㅠㅠ 말도 못걸어봤다···.
그리고 대학생이 찍은 미니롱의 직캠 영상이 SNS에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미니롱은 다시 음원 스트리밍 차트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
미니롱은 천마의 [컴백일지]에 나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홍보가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서보다는 오프라인에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축제 기간이 겹쳐서 몸이 부서져라 축제를 돌아다녔다.
점심에는 해남에서 무대를 하고, 그날 저녁 군산에 가서 또 무대를 할 정도였다.
중간중간 대학교 같은 곳에서 펑크가 났다고 하면 마다않고 달려갔다.
그렇게 무대 관객들 중심으로 ‘sour candy’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대학생이 SNS에 올린 직캠 영상이 불을 붙였다.
- 와 미니롱 진짜 오랜만이다ㅠㅠㅠ 나 고딩 때 공부하면서 돌려들었는데···.
-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 진짜 열심히 하는 거 너무 울컥하지 않냐
- 실력이 받쳐주니 언젠가 주목을 받을 겁니다. 신곡 잘 듣고 있어요. 화이팅!
- 진짜 숨듣명···. 더 유명해져라!
사람들은 미니롱의 꿋꿋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에 응원을 보냈다.
그걸 시작으로 70위에서 주춤했던 차트 성적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번 탄력을 받자 순위는 빠르게 올라갔다.
50위, 40위, 30위···그리고 20위권에서 잠깐 머뭇거리던 노래는 벽을 뚫고 18위에 무사히 안착했다.
5월 말, HOT 100 차트는 이랬다.
3위 한태영 - 우리, 봄
9위 한태영 - 고백
18위 미니롱 - sour candy
차트 20위권 내에 차선우의 노래가 3곡이나 있었다.
그리고, 프로듀서 제이맨이 이 상황을 보고 중얼거렸다.
“초보 작곡가가 이러기는 쉽지 않은데. 대단한데?”
제이맨이 소속된 펄 엔터테인먼트는, BLACKSHIP이라는 레이블을 갖고 있다.
강해리와 이승호가 소속된 그 레이블이다.
천마의 이름은 몇 달 전, 이승호가 개쪽을 당했을 때 한번 들어봤었다.
‘천마에게서 곡을 받으려고 했다가 결국 한태영이 가져갔지.’
그 곡으로 한태영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당시 이승호는 꼭 천마에게서 곡을 받아오겠다며 회사에 스케줄을 미뤄달라고 했다. 블랙쉽이 독립레이블이긴 해도 전체적인 스케줄과 프로모션은 펄 엔터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 엔터에서는 7월에 신인 걸그룹 데뷔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스케줄을 미루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이승호는 다른 곡으로 싱글을 냈고 대차게 망했다.
발매 당일 팬들이 총공한 덕분에 차트 하위권에 딱 한 번 반짝 들었지, 이후로는 차트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때 일을 계기로 제이맨은 천마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었다.
한태영과 미니롱이 잘 나가는 걸 보고 곡도 찾아서 들어봤다.
“나쁘지 않네? 이쪽에 감각이 있는데.”
한태영과 미니롱은 자기 특색이 강한 가수이다.
그 매력을 살리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젊어서 그런지 트렌디한 감각이 있었다.
“흠. 한번 이용해볼까.”
제이맨은 신인 걸그룹을 준비 중이었다.
데뷔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두 개는 이미 다 나왔고, 지금 맹렬히 연습하면서 뮤비 촬영에 들어가고 있다.
딱히 천마의 곡을 이번 앨범에 싣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앨범은 타이틀곡 3개에 수록곡까지 다 정해진 상태라 이제 와서 뒤집기는 어렵다.
대신 제이맨이 원하는 건 일종의 퍼포먼스로 인한 홍보 효과였다.
뮤비 촬영이 끝나는 대로 프로필부터 풀면서 슬슬 홍보를 하려고 했는데, 그전에 천마를 이용해서 예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이 잘 나오면 다음 앨범을 낼 때 써도 되는 거고.
“연락이나 해볼까?”
그리고 지금은 마침 음공천마의 방송시간이었다.
*
방금 미니롱이 나한테 톡을 보냈다.
[롱서아]: 헐 ?f어여?
[롱서아]: (캡처)
[롱서아]: 저희 17위 됐으뮤ㅠㅠㅠㅠㅠㅠ
[롱서아]: 한칸 올랏당
[롱서아]: 담달에는 10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ㅠㅠㅠㅠ
[미니민]: 음 컴백하는 그룹이 많아서 힘들지 않을까
[롱서아]: 야!!!!!
나는 적당히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줬다.
[나]: (오색찬란한 배경의 ‘호박이 덩굴째 들어오는 福된 날 되길~’)
미니롱과 대화하니 축제 때의 그 무대가 다시 생각난다.
‘나도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무대를 하고싶은데.’
음악방송도 좋지만 무대를 한번 경험하니,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다. 농도 높은 감정의 물결 속에 푹 잠겨있다가 나왔을 때의 충만함은 중독적이었다.
나는 옥수진에게 톡을 보냈다.
[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컨텐츠는 어때?
답장은 바로 왔다.
[수수깡]: 아 버스킹이요?
[수수깡]: 좋은 거 같아요!
[수수깡]: 그런 건 미니롱 언니들이 이런 거 잘 아니까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나]: ㅇㅋㅇㅋ
[수수깡]: 그리고 10분 뒤에 방송 시작할게요!
나는 내 채널에 접속했다. 미니롱마저 역주행을 한 후, 내 채널은 급격히 성장했다.
[BJ음공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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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동영상이라서 조회수가 이 정도이고, 다른 동영상의 조회수는 이것들의 십 분의 일 정도에서 머무는 정도이다.
그래도 괄목한 성적인 건 분명했다.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층도 다양해지면서 시간도 너무 늦지 않게 밤 9시에서 새벽 1시로 조정했다.
그럼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고민상담을 시작할 차례.
시청자가 많이 유입된 이후 고민의 스펙트럼도 다양해졌다. 오늘 첫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메가이버]: 저희 애가 우울증일까요? 너무 걱정이 됩니다 ㅠㅠ
올해 아이가 9살이 돼요. 여자아이구요.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잠깐 발랄하게 노는데, 그 외의 시간에는 기력이 없이 축 늘어져 있어요.
멍하니 창밖을 보는 일도 많고, 요즘에는 불러도 대답도 잘 안해주더라고요ㅠㅠㅠ
애기 때는 항상 엄마만 따라다니면서 쫑알거렸는데···.
어쩔 때는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밤에도 잠을 안자고 계속 깨어있네요.
얘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걱정이 됩니다.
아무래도 아이 부모님인 것 같았다.
애가 9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우울증으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다니.
걱정이 되긴 하겠다. 덩달아 채팅창의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 란마아부지 : 아이고 어떡해ㅠㅠㅠㅠ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 구타후집필 : 우울증 걸리기에는 너무 어린데···.
- hys-0331 : 근데 요즘에는 소아우울증이 빈번하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한 마디 얹었다.
“계속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게 좋을 텐데.”
[메가이버]: 그런데 저희 애가 어릴 때부터 나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안 좋아한다고 계속 집에 처박혀있으면 안 되지. 아니면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나?”
[메가이버]: 3살 터울 동생이 있기는 한데 친구는 없어요.
[메가이버]: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계속 싸워서.
나는 황당했다.
“진짜 친구가 없어? 혹시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거 아니야?”
[메가이버]: ???
[메가이버]: 학교는 안 다니는데요?
나는 여기서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잠깐만. 9살인데 학교를 왜 안 다녀?”
[메가이버]: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
[메가이버]: 우리 고양이 말하는 건데요.
“······.”
이 씨발새끼가.
- 현재보는중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 야나두야너 : 주어를 미리 말해?d어야지!
- 유리아o :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감성버찌 : 아니 고양이가 9살이면 기력이 없을만하죠···.
여튼 그렇게 [메가이버]의 사연은 끝나고 다음 사연을 물색할 때였다.
[제이맨 님이 입장했습니다.]
[제이맨 님이 3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곡 의뢰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면서요?
- Tringya: ???? 뭐야? ???제이맨???????
- 황사바람 : ㅁㅊ 거물 등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UUU : 제이맨이 뭐임 침침맨 친구임?
- 인생뭐있냐 : 펄엔터 작곡가자너;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 중 한 명이 나섰다.
[알파엔터 님이 3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제이맨 님이 여기까지 오셨을 줄은 몰랐네요.
- 시온대장 : 알파엔터가 여기?C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카오스엔젤 : 미쳤죠? 천마 인기절정이죠?
알파엔터는 중소지만 탄탄한 기획사.
기업 대 기업,
중소 대 대기업 프로듀서의 기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 방송에서.
< 거물이 나타났다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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