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20화 (20/191)

< 거물이 나타났다 (2) >

알파 엔터테인먼트는 중소기획사이다.

올해 초에 ‘젤리크러쉬’라는 이름을 가진 걸그룹을 데뷔시켰는데, 곡도 잘 뽑았고 쎈언니 느낌의 걸크러쉬 컨셉을 내세워서 중소돌치고는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다.

음원차트에도 들어가고, 팬덤도 형성이 되서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

그 타이밍에, 문제가 생겼다.

[젤리크러쉬 메인보컬 전나영 학폭의혹···소속사 ‘확인 중’]

[‘학폭의혹’ 젤리크러쉬 나영은 누구?]

[젤리크러쉬 학폭의혹···활동에 빨간불]

멤버 중 하나가 학폭 논란이 터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놈의 회사에서 수습을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다.

그냥 한번 크게 사과를 박고 문제의 멤버를 탈퇴시켰으면 될 걸 변명을 만들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한번 보자.

「우선, 젤리크러쉬 멤버 전나영과 관련하여 논란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것입니다. 상대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저희 멤버를 악의적으로 공격했고, 이에 회사에서는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해나갈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저희 멤버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서, 재학 동안 제보자를 포함한 다수의 또래 친구와 갈등을 겪은 적이 있으며···.」

요약하자면 상대가 일방적으로 거짓말을 했고, 사실 그것도 그냥 친구 사이의 갈등이며, 따지고 보면 우리 멤버도 피해자이다!···라는 말이다.

그러자 빡친 (진짜) 피해자가 증거물을 인터넷에 뿌렸다.

「이번 젤리크러쉬 전나영 학폭 의혹 최초 제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회사 측에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서 다시 한번 글을 올립니다. 먼저 전나영 학폭의 증거물입니다.

(증거1)

(증거2)

(증거3).....」

증거물은 크게 두 가지이다.

전나영이 그동안 피해자를 따돌렸던 정황이 담긴 메시지 캡처본과, 학교에서 전나영이 학폭으로 4호 처분을 받은 자료였다.

그걸로 사건은 종결됐다.

- 역시 좆소 클라스 지렸다

- 이걸 커버친다고? 전나영도 미쳤는데 회사는 레전드

- 젤리크러쉬라더니 친구도 크러쉬했네

- 어휴ㅋㅋㅋ다른 애들도 학폭 아님? 조사해봐야할 거 같은데

ㄴ ㅇㅇ 원래 끼리끼리 노는거임. 안봐도 뻔하지

- 나 방금 증거 보고 왔는데 그 여자애가 ㄱㄹ라던데

- 응 좆소가 좆소했지~

- 전나영 개소름이네ㄷㄷㄷ관리하니까 ㄹㅇ호감이었는데

- 탈퇴 축하한다! 앞으로 불꽃길만 걷기를 빌게!

젤리크러쉬는 전방위적으로 까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회사에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논란 멤버와 전속계약을 해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젤리크러쉬에 학폭돌 이미지가 붙은 것이다.

각종 포털에 젤리크러쉬의 젤리- 까지만 검색해도 연관되어 나오는 것들을 모두 학폭과 관련된 것뿐.

데뷔 후 쭉쭉 뻗어 나가야 할 시기에 활동을 부랴부랴 마무리해야만 했고,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젤리크러쉬는 아무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파 엔터테인먼트 회의실에서 새로 취임한 대표가 말했다.

“우리 애들도 이제 슬슬 활동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미룰 만큼 미뤘는데.”

젤리크러쉬의 당초 계획은 첫 미니앨범을 내고 4개월 뒤인 5월에 다시 컴백하는 것이었다. 원래 신인이야 휴식기 거의 없이 바로 다음 앨범을 내야 하니까.

하지만 그놈의 학폭 논란 때문에 그 기간이 너무 늘어지고 있었다.

논란이 되었으니 조용히 자숙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이 또 너무 짧으면 욕을 먹을 게 뻔하다.

그러다보니 계획보다 2달 정도 미뤄졌고, 하필이면 펄 엔터의 새 걸그룹 데뷔와 시기가 겹치게 된 것이다.

까딱하다가는 펄엔터의 걸그룹에 묻히게 될 상황이니, 몇 주라도 먼저 활동을 시작하자는 거다.

그러자 같이 회의하던 실장이 말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도 다 정해졌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만 문제라면, 그···논란 때문에 아직도 여론이 안 좋아서요.”

학폭 논란이 다시 언급되자 회의실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알파 엔터테인먼트가 잘한 것은 없었지만, 말 못 할 사정은 있었다.

그때 학폭 논란이 있던 멤버의 아버지가 여기 대표였었다.

지금은 논란 때문에 대표직에서 사임하고 멤버도 전속계약을 해지했지만, 당시에는 진짜 자기 딸이 절대 그럴 애가 아니라고 잡아떼는 탓에 후속 대응이 개판이 됐다.

지금 젤리크러쉬가 나락으로 떨어진 건 부녀의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실장이 말했다.

“본격적으로 컴백하기 전에 이미지 쇄신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쇄신 좋지요. 근데 그게 쉬운 일입니까?”

대표의 말에 실무진들을 다들 고개를 숙였다.

지난 학폭 사건에서 대처를 잘못한 게 너무 뼈아팠다.

괜히 나와서 어줍잖게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면 욕이나 한 바가지 처먹겠지.

그때 실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혹시 BJ음공천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대표는 바로 알아들었다.

“한태영 작곡가?”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주목해야 할 건 한태영이 아니라 미니롱입니다.”

그러면서 태블릿을 조작하여 BJ음공천마 채널의 [컴백일지] 코너에 들어갔다. 실장은 거기서 한 개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 [컴백일지 with 미니롱] 마침내 완성된 sour candy 공개 (조회수 29.3만 회)

“다들 미니롱이 어떤 그룹인지도 모르셨을 겁니다. 그런데 미니롱은 컴백일지를 통해서 ‘실력도 좋고 열심히 했지만 묻혀버린’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영상의 편집은 좋았다. 천마와 미니롱이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지금까지 미니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적절히 배합하면서 이미지를 쌓았다.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날것의 편집이 오히려 미니롱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젤리크러쉬도 이런 리얼리티를 통해 컴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학폭 논란 이후 멤버들이 얼마나 힘들어한 지 대중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솔직히 대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애들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걸요."

"그건 그렇지. 우리 애들이 진짜 고생 많았어."

"저는 천마의 채널을 통해서 그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회수 수십만이 나오는 채널에서 자연스럽게 홍보도 할 수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천마의 곡은 정말로 좋습니다.”

대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젤리크러쉬가 학폭돌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것.

천마의 컴백일지에 나간다면, 가능성이 조금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봐야지.

미니 2집은 구성이 다 나왔지만, 천마에게서 받은 노래는 보너스 트랙으로 넣으면 된다. 곡을 받는 데에도 큰 문제는 없다.

결정을 내린 대표는 말했다.

“좋아. 그러면 천마에게 곡을 의뢰하도록 하지.”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천마에게 곡을 받기 위해서는 대표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

*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다.

[제이맨 님이 3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곡 의뢰를 해야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면서요?

[알파엔터 님이 3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제이맨 님까지 여기까지 오셨을 줄은 몰랐네요.

나는 황당한 얼굴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뭐야? 또?”

이승호와 한태영의 후원금 배틀이 떠오르는군.

이쯤 되니 둘이 맞춰서 이렇게 들어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나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헐 대박 후원금ㄷㄷㄷㄷㄷㄷㄷ

- ㅁㅊ 진짜 제이맨이네

- 이번에 데뷔하는 여돌 썰좀 풀어주세여ㅠㅠ

- 제이맨님 저 만원만!

- 미미미및니

- 우리 나작천 어디감? 인기 도랏이네

- 근데 진짜 제이맨 맞음?

-ㅇㅇ맞아 이 핑프야 공식채널이잖아

채팅창이 난리가 나든 말든 두 사람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제이맨 님이 300,2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대표님 취임하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뵙네요.

[제이맨 님이 300,3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그런데 곡 의뢰는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알파엔터 님이 300,4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그런데 온 거는 제가 먼저 와있었죠. 하하하하.

[알파엔터 님이 300,5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저는 천마님 구독자거든요. 예전부터 방송도 다 챙겨봤답니다.

덕분에 채팅창은 별 폭죽으로 물들었다. 후원이 터질 때마다 나는 효과로, 당연한 말이지만 옥수진이 설정했다.

5분이 지났는데 벌써 후원이 200만 원 가까이 터졌다.

둘은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후원을 할 때마다 질 수 없다는 듯이 30만 원씩 쏴줬다.

‘이번에도 한탕 제대로 할 수 있겠는데?’

나는 일단 과열되는 채팅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대화를 길게 끌고 가기로 했다.

“둘 다 진정하시고.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가?”

용건을 묻자 먼저 제이맨이 말하기 시작했다.

[제이맨 님이 300,6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곧 저희 펄 엔터에서 걸그룹이 데뷔합니다.

[제이맨 님이 300,700원을 후원했습니다.]

- 3년 동안 100억 원 가까이 쏟아부으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걸그룹이지요.

대충 새로운 세대의 최고 자리를 겨냥하는 걸그룹이며, 뛰어난 실력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돼있다. 그러므로 최고의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고 싶다는 등등, 걸그룹 자랑이 이어졌다.

나는 제이맨이나 걸그룹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청자 반응을 참조하기로 했다.

한번 보자.

- 제이맨 믿듣이지

- 펄엔터가 이번에도 일 내나?

- 3년에 100억?ㄷㄷㄷㄷㄷ

- 펄에서 이를 갈았네

- 천마야 무조건 이거해라. 작곡비로 한 천만원 땡겨받고.

- 커리에어도 여기 작곡해주는게 훨씬 좋음

쭉쭉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며 주요 정보를 캐치했다.

일단 제이맨은 유명한 프로듀서이고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린 만큼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이번 걸그룹 론칭에 돈을 쏟아부었고, 성공각이 잘 잡혀있다. 여기에 곡을 팔기만 해고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

결정적으로 펄 엔터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은 회사이기 때문에 작곡비도 넉넉하게 줄 거 같다.

제이맨 혼자서 벌써 400만 원 가까이 후원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조금 넉넉해졌다.

“데뷔? 암, 첫 시작은 항상 중요하지.”

하지만 알파 엔터테인먼트도 만만치 않았다. 이쪽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후원을 날리기 시작했다.

[알파엔터 님이 301,3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젤리크러쉬도 곧 컴백할 예정입니다.

[알파엔터 님이 301,4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아이들 개성이 톡톡 튀는지라 천마님도 같이 작업하시면서 재밌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젤리크러쉬에 대한 자랑이 쭉 이어진다. 하지만 제이맨과는 달리, 시청자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 응 학폭ㅋ

- 걸크러쉬하다가 친구마저 크러쉬해버린 ㅋㅋㅋㅋㅋ

- 천마님 학폭돌 걸러요ㅎㅎㅎ

- 젤리크러쉬 전나영 걔만 학폭이었지 나머지 애들은 착한데ㅠㅠㅠㅠㅠㅠ

- 응 느그돌

나는 이번에도 시청자 반응을 보며 정리했다.

‘학폭 논란이 있었나 보네?’

나는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신봉하는 편이고, 무림에 있을 때도 이런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젤리크러쉬에 대한 인상이 자연스레 안 좋은 쪽으로 향했다.

내가 두 사람을 저울질하는 사이에도, 그들은 채팅창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 제이맨: 여름에 컴백하십니까? 우리 애들은 이번에 좀 쎈데···.

(너 망할 텐데 괜찮음?)

- 알파: 기대하고 있을게요. 좋은 경쟁이 될 거 같네요.

(응 안쫄려)

- 알파: 그런데 제이맨 님이 직접 곡을 쓰지 않으시고요?

(그런데 너 잘하는 거나 하지, 왜 여기서 지랄이니?)

- 제이맨: 최고의 작품을 위해서는 여러 투자를 아끼지 않는 법이지요. 대표님이야말로 셀프 프로듀싱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돈 많아서 투자 많이 할 수 있는데. 너는 돈 없잖아···ㅎ?)

후원금은 순식간에 거의 천만원 가까이 쌓였다.

이들이 싸우는 게 개꿀잼이라서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옥수진이 그때 채팅을 날렸다.

[수수깡]: 천마님 이쯤에서 끊으셔야 할 듯해요

[수수깡]: 너무 늘어지면 별로에요

돈 받으면서 싸움 구경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나는 아쉬움을 참으면서 말을 꺼냈다.

“좋아. 그럼 내가 같이 작업할 사람은···.”

채팅창에 정적이 흘렀다. 마치 내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씩 웃었다.

“···나중에 알려드릴게. 내일 보자.”

- 시발 천마 개색···.

- 야 어딜 도망ㄱ···.

[BJ음공천마 스트리밍이 종료되었습니다.]

< 거물이 나타났다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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