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21화 (21/191)

< 거물이 나타났다 (3) >

펄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제이맨.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제이맨은 펄 엔터의 창립 멤버였으며, 간판 보이그룹인 ‘매그넘’을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다.

매그넘의 캐스팅부터 시작해서 데뷔곡을 만들고, 컨셉을 잡고, 그들이 국내 탑을 넘어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에 제이맨이 있었다.

흙 속에 있던 펄 엔터테인먼트를 지금의 진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제이맨이다.

그리고 제이맨은 지금 매그넘의 뒤를 이을 차세대 걸그룹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걸그룹의 데뷔가 가까이 오자 업무량이 미친 듯이 늘어났다. 각종 프로모션에서부터 안무와 곡의 최종 점검 등등.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오전에 어제 미뤄둔 업무를 처리하던 제이맨은 문득 어제 방송이 생각났다.

어젯밤에 해야하는 업무까지 미루고 들어간 방송.

‘흠. 괜히 들어가봤나.’

솔직히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보니 벌써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BJ에 1000만원을 쏟아부은 제이맨!]

[제이맨의 걸그룹, ‘그 작곡가’도 영입하나?]

[라이징 작곡가 음공천마···한태영, 미니롱 그리고 제이맨까지!]

버즈량은 달달했다.

유명 기획사의 프로듀서가 BJ에게 거액을 후원하는 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화젯거리였다.

덕분에 곧 데뷔할 ‘에이클라스’도 같이 언급되면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었다.

문제라면 여기에 알파 엔터가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컴백전쟁, 제이맨의 아이들 VS 젤리크러쉬]

[BJ음공천마에서 일어난 배틀: 승리자는 누구일까?]

그러면서 하필이면 젤리크러쉬와 대결 구도가 잡혔다.

학폭 논란으로 저기 나락으로 떨어진 걸그룹과.

“하필 엮여도 젤리크러쉬라. 득보다 실이 많군.”

덕분에 원래 세워놨던 홍보 계획에 변동이 생겼다.

제이맨이 계획한 주요 홍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캔걸즈를 이을 괴물 신인]

[제이맨의 걸그룹이 ‘위캔걸즈’가 장악한 판도에 도전장!]

비교 대상이 누군지에 따라 이미지도 달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현세대 최고의 걸그룹인 ‘위캔걸즈’와 엮으려고 했건만···.

되도않는 학폭 그룹과 엮이면서 걸그룹 대권 도전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일단 이걸 만회하려면 천마가 우리에게 곡을 주고, 젤리크러쉬에게 못 가도록 막아야겠지.’

그리고 나서 ‘결국 천마가 선택한 것은 젤리크러쉬가 아니라 차세대 아이콘 에이클라스!’ 같은 기사를 내보내면 좋을 것이다.

제이맨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동안, 어느새 약속 시각이 다가왔다.

*

나는 일단 양쪽 모두 만나보기로 했다.

제이맨을 만나러 펄 엔터테인먼트로 가는 길, 나는 옥수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솔직히 제이맨은 알파 엔터에 비할 바가 안 되죠. 이번에 제이맨이 작정하고 기획했다는데, 거기 데뷔 앨범에 곡을 밀어넣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커리어가 될 거예요.’

그러면서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인다.

‘참, 작업과정을 짧게나마 [컴백일지]에 넣을 수 있다면 대박일 텐데···. 한번 말을 꺼내보는 게 어떨까요?’

그것 외에도 옥수진은 이것저것 분석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과연 총관답다.

직장인들로 복작복작거리는 삼성역을 뚫고, [PEARL]이라고 멋들어지게 써진 건물로 들어갔다.

프런트에서 방문증을 받고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안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저 사람이 제이맨인가보군.’

조금 냉막해보인다고 해야할까? 날카로운 눈빛과 차가운 인상이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어디 기업 사장처럼 보인다.

무림에서 보았던 대형 상단의 총수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내가 들어가자 제이맨은 다가와서 악수를 건넸다.

“아, 오셨군요 작곡가님. 제이맨이라고 합니다.”

그가 미소를 짓자 싸늘한 인상에 조금 온기가 돌았다. 나는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네. 천마라고 불러주세요.”

“아, 예. 천마···님.”

제이맨은 바로 곡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갔다.

“작곡료는 대략 600만 원 선에 저작권료는 9%를 생각해놨습니다만, 한 가지 요청을 들어주시면 두 배로 드릴 수 있습니다.”

“두 배요?”

그럼 1200만 원?

보통 국내 최고의 작곡가들이 1000만 원 또는 그 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런데 그 돈을 나한테 준다고?'

돈에 혹한 것은 아니다.

거액이 한번에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금도 저작권료와 방송 수입이 쏠쏠하게 들어온다.

내가 원하는 건 음악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와 변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싶은 음악을 하는 것.

내 노래를 사람들이 듣고 좋아해주는 것.

그런 점에서 제이맨이 나에게 뭘 요구하려는 건지 궁금해진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제이맨이 말했다.

“알파 엔터에는 곡을 주지 말아주세요. 이번 활동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그러면 두 배로 드리죠. 작곡가님께도 손해 볼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제이맨이 내건 조건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분히 알파엔터를 의식하는 듯한 제안에 나는 옥수진의 분석을 떠올렸다.

‘제이맨과 알파 엔터의 경쟁구도를 이용하면 협상에 유리할 거라더니. 그러면 받고 하나 더 가봐도 되겠는데.’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죠. 그쪽 걸그룹이 제 [컴백일지]에 나오는 걸로.”

“아. [컴백일지]요.”

제이맨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당황스러움이었다.

“당장 천마 님의 곡을 이번 앨범에 넣을지 정해지지가 않아서요.”

“???”

나도 당황했다.

“제 곡을 앨범에 넣을 게 아닌데 그 돈을 주고 사간다고요?”

“일단 이번 앨범은 수록곡까지 모두 컨펌이 나서 넣기는 어렵습니다. 곡이 좋으면 아마 다음 앨범에 들어가겠지요. 컴백일지도 그때 가서 다시 한번 상의해보도록 하지요.”

제이맨은 부드럽게 넘겼지만, 나는 이제 뭘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 작곡가’가 우리에게 곡을 줬다. 젤리크러쉬가 아니라!···이런 식으로 홍보를 갈긴 다음, 곡은 그냥 묻어놓겠다는 거다.

나한테 주겠다는 1200만원은, 그냥 홍보비인 셈 치는 모양이다.

곡이 좋으면 다음 앨범에 넣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확정적인 사항은 아니다.

‘어쩐지 불러놓고 곡 컨셉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더라니. 이거 좀 쎄한데?’

제이맨의 입장도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가 당장 1200만 원 때문에 죽을 것도 아니고 괜히 곡을 만들어놓고 묻히기는 싫었다.

그래도 옥수진이 말했던 내용도 있고, 가수를 직접 만나서 작업하다 보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평소처럼 가수를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일단 가수부터 만나보고 얘기하시죠.”

“가수? 그러니까 에이클라스를요?”

이번 걸그룹 이름이 에이클라스인가보네.

“네. 저는 직접 가수의 스타일을 확인하고 작업하는 편이라서요. 특히 이쪽은 참고할만한 다른 곡도 없잖습니까?”

“아 물론 그건 그렇죠. 그런데 애들도 그렇고 천마 님도 피차 바쁘실 텐데 그냥 곡을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편곡하면 될 텐데요.”

제이맨의 말투에서 ‘굳이?’라는 뉘앙스가 묻어나왔다.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제 작업 스타일이 원래 그래서요.”

“천마님이 원하신다면야 뭐, 그렇게 하시죠.”

대화를 나누던 제이맨은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미팅에 들어가야 해서요, 자세한 건 우리 실무진이랑 얘기하세요.”

제이맨은 직원 한 명을 붙여주겠다고 하더니 나가버렸다.

거 되게 바쁜가 보네.

어쨌든 회의실에 앉아서 오렌지주스나 빨아먹고 있는데, 직원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매니지먼트 1실 실장입니다. 저희 애들을 만나보겠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내 대답에 실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한데 지금 애들이 없어서요.”

“없다니요?”

“오늘 안무 최종점검이 있어서 나갔는데, 한 3시간쯤 뒤에 들어올 것 같아요. 기다리시겠어요?”

여기서 3시간이나 기다릴 만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내일은요?”

“내일은 뮤비 촬영 스케줄이 있고, 모레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아마 선배 그룹 음방에 댄서로 나갈 거예요.”

“바쁜가 보네요.”

“아무래도 데뷔가 코앞이다 보니까. 하하하.”

그러면서 실장이 말한다.

“꼭 가수를 직접 봐야할까요? 다른 작곡가들은 그냥 곡만 주면 저희가 알아서 컨셉에 맞게 편곡하는데···.”

귀찮아하는 게 역력한 느낌.

제이맨에게서 은연중에 받았던 의도는 분명해졌다.

‘나는 네 곡이 얼마나 좋은지는 상관없고 그냥 이름값만 이용해 먹을란다.’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나도 작업 스타일을 저버리면서까지 여기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럼 니들끼리 알아서 하세요. 계약 같은 거 안할테니까.”

“네? 잠깐만요!”

뒤로 들리는 실장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그대로 나와버렸다.

*

나는 그대로 알파 엔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옥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 갑자기 펄엔터 공계로 채팅이 엄청 오는데요;;;

-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답장해줬다.

- 별일 아냐. 펄 엔터랑은 안하기로 했음. 그쪽 연락은 무시해도 됨

그리고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는 옥수진에게 연락이 엄청나고 오고 있었지만 일단은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눈앞에 알파 엔터 대표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거든.

“아유, 편하게 볼일 보셔도 되는데요.”

“아니, 다 했습니다.”

알파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은 제이맨보다는 훨씬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는 있지만, 썩 곱게 보이지 않는다.

어제 채팅창에 도배되던 내용이 계속 떠오른다.

학폭아이돌, 젤리크러쉬.

학폭 멤버가 있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후에 소속사에서 대응을 하는 건 다른 문제이다.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가며, 학폭 멤버를 두둔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냥 다 때려칠까?’

일단 왔으니 용건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자리는 지켰다. 그래도 괜히 심드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바빠서 얼굴도 못 본 에이클라스를 떠올리며 물었다.

“혹시 그쪽도 뒤에 일정이 있나요?”

“어우, 아니요. 저희는 완전히 한가합니다. 오늘 오신다길래 오전에 스케줄을 다 끝내고 왔거든요. 지금 밑에서 애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래도 협조적이긴 하네?

“그럴 필요는 없고요. 여튼 저한테서 곡을 받고 싶다고요?”

“네. 저희는 바로 이번 앨범에 보너스 트랙으로 넣고 싶습니다. 그리고 곡도 곡이지만, 천마님 채널의 컴백일지에도 나가고 싶어서 어제 그렇게 채팅을 드렸습니다.”

“컴백일지에요?”

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번에는 저희가 걸크러쉬 컨셉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어서요. 컴백일지를 통해서 천마님과 젤리크러쉬 멤버들이 함께 곡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미니롱 편에서 하셨던 것처럼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미지 세탁을 하겠다는 거군.'

이해는 간다.

솔직히 젤리크러쉬 남은 애들이 학폭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얘네도 피해자이다.

젤리크러쉬는 문제는 없다고 치지만,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소속사 새끼들이다.

'이 새끼들 내 곡 가지고 가서 또 병신짓거리 하는거 아냐?'

지난 논란에도 병크를 터뜨려서, 사과하고 끝내면 됐을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소속사에 곡을 넘기는 거에 더해서, 심지어 컴백일지까지 같이 하자고?

그런 리스크를 안고 싶지는 않다.

“생각해볼게요.”

내가 바로 대답을 주지 않자 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이런 말씀 여쭙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혹시 저희 논란 때문에 꺼려지시나요?”

아예 대놓고 물어본다.

이쪽에서 먼저 오픈했으니 나도 그냥 까놓고 얘기했다.

“그냥 그쪽 회사를 못 믿겠는데요. 솔직히 그쪽도 알지 않습니까? 지난번 대응이 좆같았던 거.”

“...!”

내 팩트에 대표가 당황했다.

< 거물이 나타났다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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