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23화 (23/191)

< 망돌을 살려라 (2) >

제이맨은 포탈 메인에 걸린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왜 알파 엔터테인먼트랑 손을 잡은 거지?'

바로 전에 이 문제로 급히 회의까지 했었고, 제이맨은 대표로부터 크게 질책을 받았다.

- 가만히 있어도 잘 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일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괜히 천마를 건드려서 데뷔하기도 전에 논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천마를 두고 배틀을 했었기 때문에, 데뷔하기도 전부터 젤리크러쉬 같은 그룹과 대결 구도가 잡혀버렸다.

심지어 그 배틀에서 패배해버렸다.

결국 천마가 선택한 것은 알파 엔터테인먼트.

그 결과 ‘알파가 제이맨을 이겼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겼다’ 같은 말이 나오는 중이었다.

알파 엔터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제이맨을 이긴 실력파 중소돌’ 따위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신나게 언플을 하고 있었고.

“이럴 줄 알고 그 돈을 제시했던 건데.”

천마와 미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천마와의 대화는 나쁘지 않았었고, 데뷔조를 만나고 난 후 계약을 진행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미팅을 하러 간 사이에 갑자기 말이 바뀌고 알파 엔터로 떠났다.

‘뭐가 문제지? 돈이 모자랐나?’

그렇지 않다. 그 경력에는 차고 넘치는 돈이다.

일반적으로 A급 작곡가가 곡 하나에 1000만원을 받는 걸 생각하면, 천마에게 제시한 금액은 절대 모자라지 않는다.

‘혹시 말을 잘못한 게 있나?’

그런 것도 없다. 천마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라고 편의도 봐줬다.

가이드라인을 빡빡하게 정해주지도 않았고, 가수를 보고서 곡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실장이 뭐라고 한 건가?’

그래서 사람을 불러다가 물었다.

실장에게 물어봤자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을 게 뻔했기에, 그때 함께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

하지만 딱히 문제 되는 말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실장이 한 말은 아이들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데뷔조는 스케줄 때문에 직접 만나서 작업하기가 어려울 듯하니, 그냥 곡을 써서 보내주면 우리 측에서 알아서 편곡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면 남은 가설은 하나.

“그래. 처음부터 우리한테 올 생각이 없었군.”

펄 엔터가 먼저 구애하는 작곡가.

그리고 심지어 펄 엔터라도 언제든지 깔 수 있는 작곡가.

지금 천마에게 붙은 수식어이다.

"우리 쪽에 오면 본인의 역할이 없다는 것도 계산에 넣었나 보군."

펄 엔터에서는 천마의 곡을 사놓고 가지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가 활약할 수 있는 알파 엔터로 간 듯하다.

‘거기에 포지셔닝도 잘했지.’

언더독으로 포지셔닝을 잡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 하며, 보통 머리가 아니다.

언더독이 기득권을 깨부수고 승리하는 서사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니까.

아마 이 대결이 끝나면 천마의 몸값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제이맨은 모든 게 분명해졌다.

자신은 천마한테 이용당한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하, 나를 이용하겠다? 배짱은 대단하군.”

하지만 전제가 틀려먹었다.

그건 노래가 성공해야지 가능한 일이다.

과연 천마가 젤리크러쉬를 심폐소생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음원 시장에서 펄 엔터테인먼트를 이길 수 있을까?

‘대기업이 왜 대기업인지 보여주지.’

제이맨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

옥수진은 컴백일지에 들어갈 촬영본을 받았다.

졸업 직전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어서 바쁘기는 하지만 천마의 영상을 편집하는 건 그녀의 큰 즐거움이다.

이번에는 전문 촬영팀이 붙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촬영본의 퀄이 훨씬 좋았다.

덕분에 일거리가 줄어든 옥수진은 기뻐하며 생각했다.

‘대본 짜서 씬 몇 개 집어넣고, 인터뷰 컷도 따면 되겠네. 이건 나중에 가서 처리해야지.’

하지만 열심히 구상을 하던 옥수진은 이내 기운 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문제는 컴백일지가 아니었다.

제이맨이 천마한테 거절당해서 기분이 나빠졌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천마와 젤리크러쉬는 그 후폭풍을 제대로 맞고 있었다.

제이맨이 작정하고 기사를 뿌리는지, 알파 엔터의 승리에 초점을 맞추던 기사의 논조가 확 바뀌었다.

[학폭 논란 무시하고 컴백하는 젤리크러쉬]

[학폭 전나영 빠진 젤리크러쉬, 이제는 컴백 준비?]

[학폭 멤버 탈퇴 후···5인조로 개편한 젤리크러쉬]

[BJ음공천마는 왜 이들에게 곡을 줬는가?]

학폭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천마와 젤리크러쉬를 향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학폭을 저지른 멤버는 이미 탈퇴했다.

개떡 같은 대응을 보여준 전 대표도 물러났다.

하지만 계속 학폭과 연관 지으면서 기사를 쏟아내는 이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달라붙을 수밖에 없다.

옥수진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이러면 천마한테도 불똥이 튀는데.”

천마가 이미지 장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부담을 안고 가는 건 사양이다.

그래서 옥수진은 웬만하면 제이맨과 작업을 했었으면 싶었지만···.

‘···벌써 이런 식으로 구도가 잡힌 이상 제이맨이랑 다시 하긴 어렵겠지.’

옥수진은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검색어를 바꿨다. ‘제이맨 ‘ ‘걸그룹’ 등을 검색하니 수백 개의 기사가 올라왔다.

제이맨이 새로운 걸그룹과 관련된 떡밥을 던진 것이다.

[‘제이맨 걸그룹’ 팀명은 에이클라스···”높은 곳을 바라본다”]

[베일 벗은 4인조 新걸그룹 ‘미친 화제성!’]

[‘제이맨 표’ 걸그룹 ···풋풋한 프로필 깜짝 공개!]

[전원 10대로 구성된 하이틴 걸그룹, 에이클라스]

그런데 이쪽의 키워드도 심상치 않다.

10대의 깨끗하고 청량한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제이맨이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학폭’ 이미지가 붙은 젤리크러쉬와 대비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니라, 선악 구도가 잡힌 것이다.

옥수진이 본 댓글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 젤리크러쉬 1위 못하게 정의구현 가즈아!

제이맨이 놓은 맞불은 효과적이었다.

편 갈라먹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붙고, 여기에 에이클라스 팬덤이 가세했다.

- 우리 갓기들 데뷔도 안했는데 견제하더니ㅋㅋㅋㅋ

- 느그돌은 학폭ㅎ

- 천마? 별 중2병 듣보 때문에 무슨 일이야

젤리크러쉬에 달리던 악플이 천마에게까지 번져나갔다. 옥수진이 카페에 앉아 동향을 체크하는데,

“뭐하는데 표정이 심각해?”

차선우가 불쑥 나타났다.

젤리크러쉬 때문에 이야기할 게 있어서 만나자고 했었는데, 벌써 올 줄이야.

옥수진은 황급히 노트북을 가리려고 했다.

‘악플이니까 읽어봤지 좋을 건 없지.’

한두 개의 악플이라도 은근히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차선우는 이미 읽었다.

“뭐? 중2듣보? 별 미친 새끼가 다 붙네. 학폭 멤버가 탈퇴한 지 언젠데 아직도 지랄이야.”

···다행히 별로 타격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옥수진은 말했다.

“아무래도 제이맨이 언플 중인 거 같아요.”

“언플?”

“네. 젤리크러쉬는 잘못했고 반대로 에이클라스는 착하다. 단순한 프레임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죠. 지금은 천마님도 싸잡아서 욕먹는 중이시고.”

“하여간 제이맨 그 음흉한 새끼.”

꼭 제갈세가 가주를 보는 듯했다.

천마신교를 상대로 어찌나 언플을 해대던지.

사람들이 신교에는 피에 미친 괴물들만 사는 줄 알고 있더라.

차선우는 이런 일을 지긋지긋하게 겪었고 그럴 때마다 해답은 단순했다.

“신경 꺼. 그건 판을 깨면 끝나는 게임이니까.”

“판을 깨요?”

“욕하는 새끼들도 방송은 보러 들어올 거 아니야?”

“뭐, 그렇기야 하겠죠.”

목적은 욕하러 들어오는 거지만, 일단 들어오기는 할 거다.

“그럼 됐어. 제이맨 덕분에 화제 몰이는 제대로 했네.”

정말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태도에 옥수진은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려고요?”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설득해요? 무슨 수로···?”

“내 목소리로.”

*

닉네임 [이승호마누라]는 대학생이다. 어느새 6월이 다가왔고, 그녀는 다시 과제 폭탄 + 기말고사를 맞이했다.

요즘 감감무소식인 이승호 대신 천마에 푹 빠져있던 그녀는 BJ음공천마 채널에 올라온 공지를 봤다.

[새로운 게스트와 함께 돌아온 컴백일지!]

‘헐? 컴백일지 또 해?’

새로운 게스트라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최근 천마와 계속 엮이며 논란이 됐던 젤리크러쉬가 떠올랐다.

'설마 젤리크러쉬는 아니겠지?'

이전까지 그녀는 젤리크러쉬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솔직히 남은 멤버들이 트롤러 하나 때문에 대차게 까이는 걸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젤리크러쉬와 엮이면서 천마까지 까이기 시작하니 조금 피곤해졌다.

‘그냥 제이맨이랑 같이하지. 이번에 나오는 애들 괜찮은 것 같던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공지를 클릭했다.

역시나 젤리크러쉬를 게스트로 해서 컴백일지를 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밑에 댓글창은 전쟁통을 불사했다.

- 굳이···?

- 젤리크러쉬 멤버들 다 좋고 실력도 뛰어난데···소속사가 진입장벽 1위임 동의하면 ㄹㅇㅋㅋ박으셈

ㄴ ㄹㅇㅋㅋ

ㄴ ㄹㅇㅋㅋ

ㄴ ㄹㅇㅋㅋ

ㄴ 진짜 학폭 2차 가해 + 고소ㄷㄷㄷㄷ

ㄴ 천마는 왜 이런데랑 같이 하는지 모르겠어ㅠㅠ 빨리 탈출해

- 솔직히 젤리크러쉬 호감이었는데 이번에 제이맨 걸그룹 계속 걸고 넘어지는 거 보고 정떨어지더라···. 아직 데뷔도 안한 애들인데ㅠㅠ 에이클라스 화이팅♡

에이클라스는 데뷔도 안 했는데 벌써 팬이 붙었는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하고 갔다.

대학생은 악플에 일일이 비추를 박고는 한숨을 쉬었다.

즐겁게 덕질하려고 왔는데 사람들이 싸우고 있으니 피로도는 점점 쌓이고 있었다.

‘컴백일지는 빨리 끝내버리고, 천마가 노래하는 영상이나 올려주면 좋겠다.’

그와 별개로 이슈는 확실히 되었다.

공지가 올라간 다음 주.

컴백일지 1화가 방영되는 순간, 한시간도 되지 않아서 조회수가 4만을 넘은 걸 보면 말이다.

과제를 하던 대학생도 알람 소리를 듣고 1화를 보기 시작했다.

대학생의 바람은 딱 하나였다.

‘제발 띵곡이여라.’

그래서 천마에 대해 떠드는 새끼들 아가리를 싹 다 닫아버리면 좋겠다.

대학생은 본격적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과제는 이미 저 멀리 치워버린 지 오래다.

시작은 연습실에서 젤리크러쉬와 천마가 첫만남을 가지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상은 조금 달랐다.

'뭐지? 이거 제대로 된 카메라가 아닌 것 같은데?'

마치 CCTV를 이용해서 촬영을 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 밋밋하고 멀리 떨어져서 보는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더 진실되어보이기도 했다.

어두운 표정으로 모여있는 젤리크러쉬.

막내이자 비주얼 멤버인 예리가 불쑥 말했다.

[예리 (막내): 저희 망한 거 같아요!]

[천마: 쿨럭]

화면이 전환되며 본격적으로 젤리크러쉬의 사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생은 짜게 식은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성팔이 시작인 건가?'

뻔해도 너무 뻔한 레퍼토리였다.

대학생은 댓글창이 어떻게 도배될지 벌써부터 예상이 됐다.

- 어휴ㅋㅋㅋㅋㅋㅋㅋ

- 실력이 안 되니까 감성이라도 팔아야지

- 보다가 오글거려서 진짜···.

- 천마가 이번 게스트는 잘못 고른듯

- 젤리크러쉬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피해자 코스프레하니까 좀 그렇네요.

그때였다.

천마의 노래가 나지막이 BGM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영상에 잘 녹아들면서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목소리.

[가은 (메인보컬) : 답답하죠. 솔직히 저희 회사가 엄청난 대기업은 아니지만, 직원분들이 데뷔 앨범이라고 열심히 일해주셨거든요. 그런데도 일이 그렇게 됐으니까···.]

뻔한 사연인데 대학생은 괜히 코를 훌쩍거렸다.

“이게 뭐라고 슬프냐.”

내공이 가득 담긴 BGM은 효과적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젤리크러쉬의 사연에 설득력을 부여했던 것이다.

< 망돌을 살려라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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