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25화 (25/191)

< 이런 게 클라스지 (1) >

에이클라스의 데뷔가 일주일 더 빨랐다.

어쩔 수 없었다. 젤리크러쉬가 한 달을 남겨놓고 구성을 다 바꿨으니 말이다.

덕분에 ‘신인 걸그룹 대전’에서 팝콘을 뜯고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에이클라스에 몰려갔다.

[제이맨 걸그룹 ‘에이클라스’ 신곡 MY CLASS 공개]

[에이클라스 ‘MY CLASS’ 멜롱 차트 톱9···걸그룹 데뷔곡 3년 만에 최고기록]

[에이클라스 타이틀곡 3개나? 모두 차트 줄세우기에 성공]

[에이클라스 수록곡에도 MV 공개···눈부신 비주얼]

제이맨은 데뷔 전부터 프로필 사진, 자체콘텐츠, 티저 영상으로 거의 한 달 내내 꾸준히 떡밥을 풀었다. 이렇게 모인 팬덤은 타이틀곡 MV가 공개되자마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2일 차인데 덕질존잼이다ㅠㅠ

- 덕질하면서 자컨 걱정은 없을 거 같아

- 떡밥 홍수 너무좋다ㅠㅠㅠㅠㅠ역시 제이맨 일 잘해

- 얘들아 너네 에이클라스 킬파는 어디야?

ㄴ 모든 파트가 킬링파트입니다···

- 애들 볼수록 귀엽다ㅋㅋㅋ

- 어제 착장 미쳣다 이 착장으로 셀카 100개 올려줘

- ㅠㅠㅠㅠ내가 이래서 신인을 못놓아···,

제이맨은 오랜만에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반응은 예상대로 좋았다. 반응은 뜨거운 걸 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건 잘 찾아보진 않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쓸데없이 천마와 엮이면서 피곤해졌던지라 반응이 좋은 걸 눈으로 확인하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런 게 클라스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업계에서 자리 잡은 시스템.

그동안 쌓은 수많은 데이터.

최고를 만들어낸 경험까지.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하고, 모든 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탁탁 돌아가며 최고의 효율을 뽑아낸다.

그 완벽한 틀 아래, 에이클라스는 기세를 탔다.

중간에 일이 틀어질 뻔했지만 결국 모든 게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그걸 확인할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은 중독적이었다.

‘이제 천마 쪽은 신경을 안 써도 되겠군.’

젤리크러쉬 쪽에서는 어떻게든 비밀유지를 하려고 했지만, 제이맨이 이리저리 쑤셔봐서 들은 바가 있었다.

'그쪽도 청순 컨셉을 가지고 왔다고 했나?'

에이클라스와 컨셉이 겹쳐, 결국 컴백 한 달 전에 컨셉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이맨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앨범 작업에 적어도 수개월은 걸린다.

겨우 한 달 만에 바꾼 앨범이 어떤 꼴인지는 안봐도 뻔했다.

'천마라는 놈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지.'

고작 초짜 작곡가 하나만 믿고서 모든 걸 때려 박는 기업이라니.

자신이라면 절대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이맨은 속으로 비웃으면서 이제는 정말 신경을 끄기로 다짐했다.

에이클라스의 비교군은 이제 젤리크러쉬 따위가 아니다.

제이맨은 앞에 앉은 실장에게 물었다.

“매그넘이랑 비교했을 때 초반 분위기는 어떤가요?”

매그넘은 펄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그룹이다. 실장이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보이그룹보다는 걸그룹이 팬덤이 약한 경향이 있는데, 분석 결과 초기 팬덤 형성에 있어서는 에이클라스도 웬만한 보이그룹에 못지않습니다. 아무래도 초반에 젤리크러쉬와 경쟁 구도가 잡힌 게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분에 초기에는 팬덤빨로 치고 올라가는 음원 성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보이그룹은 팬덤형 그룹이 굉장히 많다. 일반 대중이 잘 모르는 ‘망돌’도 팬덤을 잘 구축해놓기만 한다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에이클라스는 걸그룹이면서도 데뷔하기도 전에 젤리크러쉬와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원래 이 업계 특성상 ‘우리애가 쟤보다 훨씬 나은데ㅋ’라는 말이 은근히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이 결집하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팬들이 엄청나게 많이 붙었다.

실장이 말했다.

“타이틀곡 3개가 전부 잘 빠진 덕분에 일반 대중들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습니다. 타이틀곡 3곡 모두 차트 10위에 들어갔고, 수록곡도 모두 차트인했습니다. 초반 지표는 나무랄 데 없이 좋습니다.”

“또한 전원 10대 걸그룹이라는 점에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풋풋한 감성을 가진 걸그룹은 없으니까요. 이 기조대로라면 이번 주부터 있는 음악방송에서 무난히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이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데뷔하자마자 지상파 3사 음악방송에서 트리플크라운’ 타이틀을 노려보는 것도 충분하겠는데요.”

“예. 충분히 가능할 듯싶습니다. 이 정도면 최초로 데뷔 음반으로 트리플 타이틀곡 모두를 히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자세한 건 이따가 정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4세대로 넘어오면서 각종 아이돌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이 정도 성적이면 과연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가에 있어서 냉정하고 박한 제이맨조차 ‘좋네요’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에이클라스가 역대급 성적을 거두자 다시 천마가 생각이 났다.

‘천마는 뭘 하고 있으려나.’

그쪽도 며칠 뒤에 컴백으로 알고 있는데. 잊고 지내려고 했는데도 괜히 찜찜하게 신경에 거슬린다.

제이맨은 슬쩍 물어보았다.

“젤리크러쉬 쪽 동향은 어떤가요?”

“저희가 화제성을 쫙 빨아먹어서 시들합니다. 요즘은 기사도 거의 안 나오고, 특별한 소식도 안 들려옵니다. 중소 기획사라 그런지 뒷심이 없어요.”

실장의 평가에 제이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별것도 없는 놈들 때문에 자원만 낭비했군.’

1위라는 깃발은 하나이고, 제이맨은 이미 그것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 이걸 빼앗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이맨은 그렇게 생각했다.

*

닉네임 [이승호마누라]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얼마 전 기말고사가 끝났다.

망해버린 성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우고, 뉴튜브의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그녀는 요즘 젤리크러쉬를 찍덕하고 있었다.

[컴백일지]를 통해 젤리크러쉬가 데뷔 초에 겪은 힘든 일이 소개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본진은 트릭커고 최애는 이승호지만, 괜히 젤리크러쉬에 정이 가서 응원하게 됐다.

'와! 이제 곧 컴백 하는 건가?'

원래 컴백일자에서 2주가 밀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컴백이 기다려지고 있었다.

요즘 천마의 [컴백일지 with 젤리크러쉬]를 보고 있는데, 왠지 준비가 잘되고 있는 거 같아서 기대가 됐다.

신곡이 빨리 나와서 차트 위로 쑥쑥 치고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도 생기고.

여튼 트릭커를 덕질할 때와는 다른 맛이 있다.

‘이래서 신인 덕질을 못 끊는 건가.’

그리고 마침내 오늘 저녁 6시에, [컴백일지] 3화가 올라옴과 동시에 젤리크러쉬가 컴백한다.

대학생은 5시부터 거실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있다가 5시 58분인 지금에는 계속 새로 고침만 누르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생물학적 남자 혈육이 말했다.

“정신 사납게 뭐하냐.”

“뒤지기 싫으면 닥쳐라.”

“쯧쯧. 또 그 망돌 덕질해?”

“망돌 아니거든!”

이승호를 까는 말에 대학생은 발끈하다가도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드디어 6시가 됐고 천마의 채널에는 따끈따끈한 컴백일지 3화가 올라왔다.

“와 올라왔다! 올라왔어!”

의자를 들썩거리며 좋아하자 남동생이 ‘바닥 무너지겠다’라고 중얼거렸으나, 영상에 집중한 그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컴백일지 2화에서 이번 타이틀곡의 후렴구가 나왔었는데 그게 너무 중독적이었다.

‘티키티키-티티키키 LOVE ME LOVE ME’가 반복되는데 일주일 내내 그 후렴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고만 있었다.

‘역시 천마라니까. 곡 하나는 진짜 잘 뽑는다.’

대학생은 먼저 16분짜리 영상을 넘겨서 바로 타이틀곡이 나오는 부분으로 가게 했다. 거기에는 신곡 ‘티키티키’의 풀버전이 있었다.

뮤비는 공식 채널에 따로 올라왔고, 컴백일지에는 뮤비 촬영 비하인드 컷을 편집해서 올려놓았다.

배경은 노을이 지는 바다였다.

‘헐 썸머쏭인가?’

솨아아아-파도 소리가 시원하게 귓가를 간질인다. 하지만 붉은 석양이 깔린 탓에 청량하면서도 어딘가 고혹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인영이 검게 아른거렸다.

같이 보고 있던 불청객이 말했다.

“어? 젤리크러쉬? 얘네 학폭 아님?”

“그런 거 아니거든! 아가리 다물고 보기나 해라.”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은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싸우던 것도 잊고 영상에 몰입했다.

[Yes. I am···.]

작은 속삭임 뒤로 중독성 강한 훅이 인트로부터 나왔다.

[티키티키티티키키 loveme loveme

티키티키티티키키 loveme loveme

Oh love me, Boy love me]

후렴구처럼 강하지는 않지만 마치 주문같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이번 영상은 젤리크러쉬가 가진 기존의 ‘쎈언니’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그저 여전사처럼 강한 게 아니라 건강한 느낌이랄까.

‘뭔가 라틴? 남미? 그런 느낌도 나고.’

기본적으로 힙합 베이스이긴 한데 리듬을 타다 보면 '어? 라틴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름밤에 터지는 불꽃놀이처럼 강렬하고, 신나는 축제에 온 것처럼 열정적인 그런 노래였다.

“오~ 중독성 개쩌네.”

오랜만에 남동생이 맞는 말을 했다.

한번 듣기만 해도 리듬에 머리에 각인돼서 계속 찾아 듣게 된다.

대학생은 오늘 남동생이 자기 전까지 ‘티키티키티티키키’를 흥얼거린다는 데 저놈 손모가지를 걸 수 있었다.

남동생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뮤비를 찾아보라고 징징거렸고, 대학생은 무시한 채 댓글창으로 내려갔다.

- 진짜 그룹색깔이랑 노래가 찰떡이다ㅠㅠㅠㅠ

- 독기 미쳤냐ㄷㄷㄷㄷ 영상 뚫고 나오는 줄

- 하루종일 티키티키하게 생겼음 한번 봤는데 중독됐다고ㅠㅠㅠ

- 수능금지곡으로 임명합니다

- 천마가 천마했다 지렸다

- 가사가 얘네들 이야기를 담은 거 같은데 천마는 역시 작사도 잘해

- 반복재생하다보면 티키티키 이 부분 계속 기다리고 있음

- 누가 티키티키 여기만 따서 무한반복 올려줘···.

반응이 너무 좋다.

‘이 정도면 에이클라스는 가뿐히 이기겠는데?’

대학생의 행복회로가 듬뿍 들어간 소망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컴백이 늦어져서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천마는 천마다.

대학생은 뭔가 뿌듯해져서 남동생에게 은근슬쩍 천마의 채널을 소개해줬다.

“야, 이 뉴튜버가 작곡한 거야. 노래도 잘해.”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개새끼가.

대학생은 남동생을 째려보며 말했다.

“너 공부 안 해? 곧 기말 아니야?”

“응 내가 너보다 잘하는데. 너 곧 성적표 나오잖아. 학점 3점은 넘겼냐?”

“야!!!!!!!!!!”

대학생은 남동생에게 쿠션을 던져버렸다.

*

나는 젤리크러쉬 단톡방에 소환되었다.

[막내]: 교주님ㅠㅠㅠㅠㅠㅠ

[막내]: 저희 실시간 진입 1위!!!!!!!

[막내]: (캡처)

[막내]: 와 hot 100 차트 17위!!!

[막내]: 근데 경쟁자가 넘 막강해요ㅠㅠㅠㅠ

[막내]: (캡처)

캡처 사진을 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7위 한태영 - 우리, 봄

12위 한태영 - 고백

13위 미니롱 - sour candy

.

.

17위 젤리크러쉬 - 티키티키

‘미니롱 얘네는 언제 저기로 올라갔냐.’

그리고 한태영은 왜 아직도 저기 있는 거지?

어쨌든 ‘티키티키’가 올라가려면 내가 만든 곡을 제쳐야 한다.

바야흐로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이런 게 클라스지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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