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게 클라스지 (2) >
젤리크러쉬의 미니 2집, 「metamorphosis」 가 마침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젤리크러쉬의 노래는 차트에 진입했다.
솔직히 잘 빠졌다.
제이맨은 인정하기로 했다.
고작 천마 하나로 뭐가 바뀔까 했는데,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컴백 이후 쇼케이스에서 앨범의 제작과정이 밝혀졌다.
그저 작곡가인 줄만 알았던 천마는 타이틀곡을 넘어 앨범 전체 프로듀싱에 개입했다.
먼저 타이틀곡인 ‘티키티키’는 강렬한 사운드에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를 가지고 있다.
제이맨도 아까 들어봤는데 아직도 머릿속에서 ‘티키티키티티키키’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더블타이틀곡인 ‘탈바꿈 (I Fly)’ 또한 천마가 편곡을 했다고 한다.
'티키티키'와는 다르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담아냈다.
청량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캔디팝이었다.
두 타이틀은 다른 느낌이었지만 전부 여름에 잘 어울렸다.
하나는 해변 위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정열적으로 춤추는 모습이 그려졌고, 다른 하나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서핑을 떠나는 듯했다.
제이맨은 다시 한번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1. 에이클라스 - MY CLASS
.
7. 한태영 - 우리, 봄
9. 한태영 - 고백
10. 에이클라스 - drop drop
11. 미니롱 - sour candy
.
.
.
15. 젤리크러쉬 - 티키티키
에이클라스의 타이틀곡이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느새 젤리크러쉬가 15등으로 치고 올라왔다.
심지어 천마가 작곡했다는 이유로 한태영과 미니롱의 노래까지 순위도 덩달아 올랐다.
제이맨은 불안해졌다.
이대로면 젤리크러쉬에게 따라잡힐 것만 같았다.
조금 시들해지던 경쟁 구도도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단순한 해프닝 때문에 벌어졌다면, 이제는 진짜 성적을 놓고 라이벌리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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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클라스는 상대보다 1주보다 먼저 일찍 데뷔하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팬덤도 성공적으로 형성되었고, 음원도 잘 나가서 잠시 마음을 놓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놈의 천마가 문제였다.
'컴백일지가 그렇게나 잘 먹힐 줄이야.'
잘먹혔다.
그것도 너무 잘먹혀서 문제였다.
제이맨은 당연히 천마가 젤리크러쉬의 학폭 이미지를 벗겨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으로 젤리크러쉬와 에이클라스를 비교하는 기사를 냈는데.
하지만 이게 웬걸.
천마의 컴백일지는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성공적으로 젤리크러쉬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오히려 제이맨이 낸 기사들 덕분에 컴백일지의 조회수만 올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컴백일지 이후 젤리크러쉬는 학폭돌이 아닌, 하나의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이쪽이 만든 판이 완전히 깨져 버렸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동정심을 갖고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를 갖고 있다.
젤리크러쉬가 [컴백일지]에 나가서 힘들었던 시기를 털어놓으면서 그 경향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혹자는 ‘사연팔이’ ‘신파’ ‘피해자 코스프레’라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잘 먹혔다.
언더독이 역경을 극복하고 날아오르는 서사는 누구나 열광하는 것이었으며, 천마는 그 원동력을 제공해주었다.
선악 구도는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다.
제이맨은 그게 뼈아팠다.
'이 모든 게 천마 한 사람 때문이라니.'
천마가 그들에게 곡을 주지 않았더라면 모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그때 돈을 더 주고서라도 천마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제이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에이클라스가 더 잘 나가고 있다.
심지어 데뷔 2주 차에 음방에서 1등까지 했다.
이제 지상파 방송 한군데서 더 1등을 타면, 목표했던 ‘지상파 음방 3관왕’을 달성할 수 있다.
데뷔곡으로 이 기록을 세우는 건 에이클라스가 처음이다.
국내 가요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
'일단 이걸 중심으로 홍보를 해야겠어.'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마 다음 음방에서도 에이클라스가 무난하게 1등을 할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다.
천마라는 놈이 또 어떤 방법으로 훼방을 놓을지 몰랐다.
그래서 제이맨은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국내 팬 뿐만이 아니라 해외 팬들까지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잠시 고민하던 제이맨은 펄 엔터의 간판 보이그룹인 ‘매그넘’에게 연락했다.
- ‘MY CLASS’ 후렴구 너네가 한번 불러봐라.
매그넘 말고도 펄 엔터에 있는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같은 연락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음방에서 1등을 따놓은 당상이겠군.'
마음속에 남아있는 일말의 불안감을 털어낸 제이맨은, 새로 구상한 에이클라스의 홍보 포인트를 전하기 위해 홍보팀을 불렀다.
*
매그넘은 제이맨의 요청에 펄 엔터의 사옥에서 모였다. 제일 꼴찌로 도착한 메인보컬이 말했다.
"어 뭐야? 다들 벌써 와있었네?"
먼저 와있던 리더가 말했다.
"나는 피디님 좀 만나느라고 일찍 왔지. 너는 어떻게 매일 늦냐."
"미안미안. 이 앞에서 차가 막히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4명은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떠들던 매그넘의 메인보컬이 물었다.
"근데 피디님은 갑자기 왜 부른 거래?"
아까 제이맨을 만나고 온 리더가 대답했다.
"이번에 우리 신인 나왔잖아. 에이클라스라고. 알지?"
"응. 오면서 걔네 노래 들어봤는데 좋더라. 지금 차트 1등이던데?"
"걔네들 신곡 홍보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
"제이맨 그 아저씨는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더니. 꼭 홍보할 때만 부르더라. 귀찮아 죽겠는데."
"야, 그래도 우리 펄 엔터 지분도 있잖아. 얘들이 잘되면 우리도 돈 버는 거야."
펄 엔터의 지분을 가진 매그넘은 결국 카메라를 켜고, 이번 에이클라스의 신곡인 'MY CLASS'를 불러주었다.
녹음을 마치고 메인보컬이 말했다.
"근데 이거 노래 괜찮네? 제이맨 아저씨 이번에도 목 좀 뻣뻣해지겠는데?"
"제이맨 님이 확실히 능력은 있지. 사람이 좀··· 차가워서 그렇지."
"차갑기는. 그냥 계산적인 거지. 나는 그 사람 머릿속에 계산기가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어디서 영감을 받는건지 곡은 잘 뽑아내더라."
그렇게 한창 제이맨을 까던 메인보컬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근데 노래가 이렇게 좋은데 왜 우리한테까지 홍보를 해달라고 한거야? 평소에 이런 부탁 안하던 사람이."
이번에도 리더가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이번에 천마라는 사람이랑 젤리크러쉬가 작업한 곡이 잘 되고 있다고 하더라."
"오? 그래?”
메인보컬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그도 천마가 제이맨을 깠다는 건 들었는데, 그 곡이 벌써 나왔다니.
“한번 들어봐야지. 거기 그룹 이름이 뭐더라? 걸크러쉬?”
“젤리크러쉬.”
메인보컬은 노래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15. 젤리크러쉬 - 티키티키
하지만 김이 팍 식었다. 제이맨을 깐 작곡가라더니, 생각보다 등수가 낮았다.
"뭐야? 겨우 15등 한 노래 가지고 뭘 그렇게 걱정을 하는거야."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노래를 재생했다. 성능 좋은 스피커를 타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리더가 말했다.
“좋은데?”
“...그러게. 좋네.”
제이맨이 왜 홍보를 부탁한 지 알 것 같았다. 노래가 정말 대중적으로 잘 빠졌다.
아직 나온 지 얼마 안 되서 홍보가 부족한 거지, 한번 탄력을 받으면 쫙 올라갈 것 같았다.
그들은 이번 미니앨범의 다른 노래도 들어보았다.
천마가 편곡한 ‘탈바꿈 (I Fly)’도, 급하게 바꾼 수록곡인 ‘pace up’도.
전부 좋았다.
메인보컬이 중얼거렸다.
“이게 다 천마가 만든 거라고?”
그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이맨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데?'
*
매그넘을 위시한 펄 엔터테인먼트 사단의 화력은 엄청났다.
제이맨의 부탁으로 에이클라스의 홍보가 시작되자 국내 팬덤뿐만 아니라 해외 팬덤에서도 에이클라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 A-CLASS? THEY'RE GORGEOUS
- 에이클라스 사랑해요. 애리조나에서 당신을 응원해요.
- 제이맨 대단합니다. 에이클라스도 대단합니다. 케이팝 최고 (태국어)
하지만 알파 엔터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지난번 회사의 병크는 거짓말이라는 듯,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저었다.
젤리크러쉬도 컴백 이후 여러 예능에 나가면서 신곡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오늘 나간 예능은 ‘테레비 토크’라는 지상파 예능이었다.
예전에 한태영이 여기에 나가서 천마와의 에피소드를 풀어내면서 한차례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리더는 대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탈퇴한 멤버에 대한 질문을 일부러 넣어달라고 했어.’
‘왜요?’
‘이번에 한번에 입장 정리하고 가려고. 그러니까 당황하지 말고 깔끔하게 정리한 후에, 시선을 천마 님께 돌려.’
‘작곡가님께요?’
‘천마 님과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부터 어쩌다가 앨범 전체 프로듀싱에 발을 담그게 됐는지 등등. 이번 한 달 스펙타클 했잖아.’
‘그건 그렇죠.’
리더는 바빴던 지난 한 달을 떠올렸다.
보너스 트랙인 줄만 알았던 천마의 티키티키는 어느새 타이틀곡이 되었고, 작곡가인 줄만 알았던 천마는 눈 떠보니 앨범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또 다른 타이틀곡을 본 천마는 혹평을 했다.
‘솔직히 말하지. 너넨 본좌가 아니면 나락갔어.’
그렇게 편곡한 타이틀곡은 죽여줬지만, 덕분에 뮤비를 다시 찍고 안무도 바꿔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마는 타이틀곡을 건드린 것에서 끝내지 않고 수록곡들도 모조리 뜯어고쳤다.
기존에 있던 곡들의 편곡은 기본이고, 원래 예정된 수록곡도 하나 빼고 조금 더 강한 느낌의 댄스힙합을 추가했다.
덕분에 젤리크러쉬는 하루에 잠을 3시간밖에 못 자고 계속 연습, 연습, 연습에 몰두했다.
‘그래도 반응이 좋아서 너무 다행이야.’
너무 힘든 와중에도 점점 올라가는 순위를 보면 피로를 싹 잊혀진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음악방송에 나가는데, 이 정도라면 1위···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보는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어느새 녹화가 시작되었고, MC 이동신은 긴장한 신인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이야! 티키티키가 나왔네~”
이동신은 총을 쏘는 듯한 포인트 동작을 했고, 젤리크러쉬도 마주 춤을 추며 받아줬다.
“안녕하세요. 젤리크러쉬입니다!”
훈훈하게 분위기를 풀어가다가 이동신은 준비된 질문을 던졌다.
“멤버 구성원에 변화가 있었는데요. 작업하시는 데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5인조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많았지요. 하지만 그 어려움 덕분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탈바꿈’처럼요?”
리더는 미소지었다. Metamorphosis, 탈바꿈은 이번 앨범 이름이었다.
그녀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네. 그리고 천마 님 덕분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동신은 한태영이 나왔을 때도 천마에 대한 이야기로 분량을 뽑았었다. 그때 올린 클립본이 지금 200만 회를 넘어섰다.
이번에도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번 캐보기로 했다.
“천마 님이라면 저도 잘 알지요. 한태영 님이 지난번에 여기 나왔을 때 얼마나 칭찬을 하시던지.”
그때 막내가 끼어들었다.
“교주님은 진짜 천재예요! 티키티키도 한시간도 안돼서 뚝딱! 만들었다니까요.”
"교주님이요?"
"앗, 실수. 그건 우리가 천마님을 부르는 별명이에요."
막내 예리가 귀엽게 웃었다.
이동신은 천마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보기로 했다.
“교주님이 그 명곡을 한시간만에 만들었다고요?”
이동신이 과장되게 반응하자 신난 막내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거 보너스 트랙으로 쓰려고 했거든요.”
“아니, 왜? 티키티키를 보너스 트랙으로?”
“네. 근데 곡이 너무 좋아서 타이틀곡으로 올렸어요. 사실 저희 원래 컨셉이 ‘청순’이었거든요. 그런데 ‘티키티키’가 타이틀이 되니까 청순이랑 안 맞는 거예요.”
이동신은 흥미진진한 눈빛을 했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른 예능에서는 안 나왔던 이야기다.
“그쵸. ‘티키티키’가 청순한 노래는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 컨셉이 청순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컴백 한 달 전에 다 바꿨어요!”
“????”
경악하는 패널들.
그리고 젤리크러쉬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과가 좋아서 지금은 웃어넘기지만, 한 달은 정말 지옥 같았기 때문이다.
메인보컬 가은이 말했다.
“천마 님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거의 하루 만에 타이틀곡 나머지를 전부 편곡하고, 수록곡에 들어갈 곡도 하나 더 만들어주시고···. 이번 앨범은 천마 님이 프로듀싱해준 거나 다름없어요.”
“이야. 진짜 능력자시네.”
이후로도 천마와 있었던 썰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동신은 신이 났다.
지난번 한태영 때도 그러더니, 천마만 나오면 분량이 술술 뽑힌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인데 벌써 내적 친밀감이 생기고 있었다.
그때 막내 예리가 말했다.
“우리 교주님이 티키티키 노래 부르면서 춤추는 거 보셨어야 했는데! 진짜 요염하거든요.”
“오?"
이동신은 눈을 반짝였다.
“혹시 지금 천마 님의 노래를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진행이긴 하지만, 방송 도중에 전화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다.
물론 그 경우도 사전에 합의된 거기는 하지만···.
이동신은 괜찮으면 넣고, 별로면 피디에게 편집해달라고 하는 셈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천마의 노래 실력은 한태영에게 들은 바가 있었던지라, 작곡가가 등판해서 노래를 불러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장난기가 동한 막내 예리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걸었다.
- 어, 예리야. 나 방송···.
그리고 상대가 받자마자 외쳤다.
“교주님!!! 저 예능찍는데 테레비토크인데 노래 좀 불러주세요!!!!”
- ······.
천마는 잠시 침묵하더니,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그리고 예리는 당황했다.
< 이런 게 클라스지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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