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게 클라스지 (4) >
천마가 부르는 티키티키는.
그날 저녁,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거실에서 TV를 켜놓고 공부하던 남고생.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던 남고생은 주말을 맞이해 집에 돌아왔다.
그는 티비를 켜놓고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알았다면 등짝을 맞았겠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누나를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다.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수학 문제를 풀던 도중, 그의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끄러운 얘기 날 둘러싸]
요즘 학교 급식시간마다 나오는 익숙한 멜로디.
젤리크러쉬의 티키티키였다.
하지만 티비 속에서 느껴지는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았다.
남고생은 홀린듯이 화면을 보았다.
“어? 저 사람은?”
그리고 그곳에는 누나가 좋아한다는 뉴튜버가 나오고 있었다.
망돌을 파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뉴튜버까지 덕질한다며 혀를 차곤 했었는데, 남고생은 어느새 천마의 노래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 나더러 어쩌라고
상관없어 다 던져버려
티키티키 티티키키 loveme 그저 loveme]
CD를 틀어놓은 듯한 깔끔한 노래.
학교에서 계속 틀어줘서 지겹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귀에 쏙쏙 박혀 든다.
같이 추는 춤은 또 어떻고.
총을 쏘는 듯한 포인트 안무를 할 때는, 춤을 잘 모르는 남고생조차 탄성을 내뱉을 정도였다.
남고생은 천마를 보며 생각했다.
‘웬일로 누나가 괜찮은 사람을 덕질하냐.’
풀던 수학 문제는 저기 멀리 던져두고, 남고생은 본격적으로 천마의 채널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천마를 보고 있는 건 남고생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여대생이 있었다.
그녀는 에이클라스의 팬이다.
하지만 그녀의 핸드폰에는 젤리크러쉬가 게스트로 나온 테레비토크가 재생되고 있었다.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여대생은 며칠 전 화제가 되었던 천마의 테레비토크 출연 썰을 들었다.
사실 그녀는 천마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에이클라스는, 천마 때문에 계속 젤리크러쉬와 비교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테레비토크와 천마 사이에서 일어났던 해프닝은 재미있었고 또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냥 궁금해서 보는 거야.’
그렇게 합리화하며 여대생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테레비토크를 틀었다.
천마가 나오자 여대생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와··· 잘생겼는데? 이 사람이 작곡가라고?'
테레비토크에서는 후원 장면을 재미있게 편집해놓아서 여대생은 낄낄거리며 봤다. 그리고 후원을 받은 천마가 노래를 시작했다.
[빛났던 나를 찾아 (whoa-oha-oha)
뜨거운 불속에 몸을 던져 (whoa-oha-oha)
티키티키 티티키키 loveme, oh loveme]
천마의 목소리가 혼자서만 다른 장비를 쓰는 것처럼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후렴구로 올라가면서 노래는 점점 고조된다.
젤리크러쉬가 부를 때와는 달리, 더 힘 있고 폭발력이 넘치는 목소리.
듣고만 있는데도, 머릿속으로 가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진짜 작곡가 맞아?’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천마의 목소리는 여대생의 마음속에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여대생은 테레비토크를 보느라 내릴 역을 지나치게 된다.
.
.
.
강원도 원주의 낭만포차.
차선우의 아버지는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았고, 이번에 테레비토크에 아들의 방송영상이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홀에 있는 커다란 TV 채널을 은근슬쩍 [테레비토크]에 고정시켜 놓았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잔소리는 throw away
달려가 highway]
아들의 목소리였다.
아들이 만든 젤리크러쉬의 곡은 수십 번 들었지만, 직접 부른 건 처음 들어봤다.
더운 여름밤을 날려버리는 목소리.
시끄럽던 술집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TV에 시선을 고정한 것이다.
티비에서 나오는 아들의 노래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날아올라 fly again
그래 다시 피어나는 거야]
절묘하게 감정을 끌어올리며 질주하는 듯한 후렴구.
퇴근 후, 포차에 모인 손님들은 스트레스가 싹 씻겨나가는 걸 느꼈다.
그날 아버지는 요리를 태워 먹어서 서빙이 늦었지만, 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님 역시 TV 속의 천마가 누군지 찾아보느라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속으로 굉장히 뿌듯해했다.
*
천마의 방송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왔다.
원래 테레비토크를 보던 사람들, 입소문을 타고 유입된 사람들, 어쩌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목소리에 사로잡힌 사람들.
잠깐이라도 천마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천마에게 빠졌다.
그날 테레비토크는 천마가 나온 순간 최고시청률을 찍었고, 천마의 ‘티키티키’를 들은 사람들은 그 중독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됐다.
- 티키티키가 원래 여자 노래였어요?
- 원래 아이돌 노래 잘 안듣는데 이건 너무 좋네요
- 젤리크러쉬 논란있던 그룹 아니었나요?
ㄴ ㅋㅋㅋㅋ언제적논란
ㄴ 천마 채널가서 [컴백일지] 보고오세요. 얘네도 불쌍한 애들임
- 천마라는 분 뭐하는 사람인가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시네요
ㄴ 이분 작곡가임 티키티키도 본인이 만든거
ㄴ 천마님은 BJ음공천마 채널을 하시는 뉴튜버입니다!
- 에이클라스 팬인데···보다보니 젤며든다···.
잠깐이지만 지상파 예능을 탄 건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천마를 통해 '티키티키'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천마가 부른 것은 고작 1분 정도 되는 짧은 파트.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에 원곡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젤리크러쉬의 '티키티키'를 들었다.
천마가 직접 부른 것만큼은 아니지만 원곡도 나름대로 좋았다.
후킹하는 부분도 많고 멜로디 자체가 잘 나와서인지, 원곡을 접한 사람들은 편하게 반복해서 '티키티키'를 들었다.
그리고 10위권에서 머뭇거리던 ‘티키티키’는 미친 듯이 치고 올라갔다.
에이클라스보다 팬덤이 적은데도 이럴 수 있다는 건, 소위 말하는 대중픽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만큼 천마가 만든 노래는 좋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수록곡까지 찾아 들으면서, 다른 곡들도 모두 차트 안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1위. 에이클라스 - MY CLASS
2위. 젤리크러쉬 - 티키티키
7위. 젤리크러쉬 - 탈바꿈 (I Fly)
11위. 젤리크러쉬 - pace up
17위. 젤리크러쉬 - 정(情)
테레비토크가 방영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젤리크러쉬는 음원 차트 2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타이틀곡뿐만 아니라 수록곡까지 모두 줄세우기를 한 상황.
그 영향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음원뿐만이 아니라, 천마의 [컴백일지]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컴백일지 - 젤리크러쉬 편]의 1화 조회수가 벌써 300만이 넘었다.
이제 적어도 컴백일지를 본 사람들은 젤리크러쉬를 학폭과 연관 짓지 않았다.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지금, 젤리크러쉬가 도약할 시간이 다가왔다.
젤리크러쉬는 '티키티키'를 앞세워 음악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
젤리크러쉬는 KBC에서 하는 음악방송에 나갔다.
사전녹화를 하는 곳도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생방송으로만 진행된다.
새벽같이 샵에 들러서 메이크업을 하고 왔기에 피곤했지만, 젤리크러쉬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막내 예리가 음방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소리쳤다.
"와! 우리 드디어 음방 나간다!"
예리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들떴다.
지난 1월, 데뷔를 했을 때 활동을 2주 만에 끝냈다.
그마저도 학폭 논란 때문에 제대로 활동을 하지도 못했다.
벌써 두번째 앨범이지만, 젤리크러쉬에게 음방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차분하던 메인보컬 가은조차 조금 흥분했다.
“[테레비토크]에 나가길 잘한 거같아.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셔.”
“맞아맞아. 그때 테레비토크에서 천마 님 방송에 들어가 주신 덕분에 인기가 확 는 것 같아.”
"[컴백일지] 보신 분들도 많아진 것 같더라. 이제 악플들도 거의 안달리던데?"
테레비토크에 나간 효과는 좋았다.
무엇보다 이미지가 확실하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악플이 무서워서 자신들에게 달린 댓글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하던 젤리크러쉬였지만, 최근에는 댓글을 읽는 게 큰 재미가 되었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막내 예리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오늘 몇 등 할 거 같아?”
멤버들은 머뭇거렸다.
다들 마음속으로는 1등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메인보컬 가은이 먼저 말했다.
“객관적으로 1등은 힘들지 않을까? 1위 후보에만 올라도 좋을 것 같아. 솔직히 에이클라스가 너무 쎄.”
“맞아. 그쪽 팬분들 화력이 너무 강해서.”
"매그넘 선배님이 홍보해주신 덕분에 요즘에는 해외팬들까지 붙었더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방송국에 도착했다.
젤리크러쉬는 먼저 다른 선배 가수에게 인사를 돌렸다.
음방에서 선배들께 인사를 돌리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다행히 다들 친절하게 받아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기실에 도착했는데,
“???”
“헐? 이게 뭐야?”
“···!”
대기실에 적힌 이름을 보고 당황했다.
[젤리크러쉬 / 에이클라스]
에이클라스와 대기실을 같이 쓰게 된 것이다. 메인보컬 가은이 생각했다.
‘···이거 배정한 사람 누구야?’
가서 욕을 한 바가지 부어주고 싶은 충동이 마구 솟았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더니 에이클라스는 이미 와있었다.
저들끼리 얘기하고 있던 에이클라스가 젤리크러쉬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순식간에 대형을 맞추더니 인사를 했다.
“네 마음속의 에이, 안녕하세요 에이클라스입니다!”
젤리크러쉬도 마주 인사를 박았다.
“안녕하세요. 젤리크러쉬입니다!”
그리고 방 안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쉽사리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만들어진 라이벌리다.
당연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을 리 없다.
한참의 침묵이 지나고, 에이클라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아핫. 선배님이라뇨!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니예요. 저희가 어떻게···!”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디는 막내 예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MY CLASS 노래 잘 들었어요!”
그러자 에이클라스는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저희도 티키티키 계속 돌려 듣고 있어요! 티키티키티티키키 이 안무 맞죠?”
“헉 저희 안무도 다 아시는구나! 저희도 매그넘 선배님과 챌린지한 거 봤어요.”
“감사합니다. 천마 님께서 노래 잘 만드시는 거 같아요.”
“운이 좋았죠. 하하하.”
극한의 사회생활이었다.
두 그룹은 서로를 의식하며 힐끔힐끔거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의상.
젤리크러쉬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미니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에이클라스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와···. 진짜 화려하다.’
반면, 에이클라스는 하얀색 프릴이 달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젤리크러쉬는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청순풋풋 그 자체잖아? 중간에 노선을 틀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완전 겹쳤겠어.’
하지만 그와 별개로, 에이클라스가 옆에 있으니 경쟁심이 조금씩 불타오른다.
조금 전 젤리크러쉬는 1위 후보에라도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니다.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음방에서 1등 한번 해보자.’
< 이런 게 클라스지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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