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31화 (31/191)

< 숨은 고수를 찾아라 (2) >

당연한 얘기지만 길성진도 천마를 알고 있었다.

요즘 그가 푹 빠진 젤리크러쉬의 작곡가가 아닌가!

티키티키는 말할 것도 없고, 수록곡인 ‘pace up’도 숨은 명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여기에 왜 나와? 나올 수 있는거야? 아니지. 가수가 아니라 작곡가니까 나올 수 있는건가?’

‘숨은 고수를 찾아라’는 일반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음원 하나라도 낸 가수부터 기획사 연습생까지 철저하게 걸렀다.

어쨌든 당장 천마를 가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다.

지금까지 앨범 한 장을 낸 적도 없고, 그냥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길성진은 또한 천마를 그냥 젤리크러쉬의 작곡가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BJ음공천마 채널에서 영상을 몇 개 보기는 했지만, 젤리크러쉬가 나온 컴백일지가 전부였다.

으레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렇듯, 남자 스트리머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길성진은 다른 의미에서 흥분했다.

‘내가 천마를 이기면 화제가 엄청 되겠지? 유명한 작곡가잖아.’

이미 연예뉴스란에 몇 번이고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특히 '배틀짤'이라고 부르는 천마의 라이브방송 채팅은 길성진도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이거 나중에 기자들이 우리 학교로 찾아오는 거 아니야?’

상상 속에서 길성진은 이미 천마를 이기고 연예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500만 원을 받아서 어디에 사용할 건지에 대해 인터뷰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용우가 말했다.

“이제 1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전대 우승자인 길성진 님과 새로운 도전자 강유하 님의 매치!”

길성진은 그를 부르는 소리에 무대로 나갔다.

무대에 올라보니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도전자는 무대 반대편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목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길성진은 긴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길 거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 자신감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승자는 이번에도 길성진 군!"

용우의 멘트와 함께 길성진은 웃었다.

'내가 질 리가 없지.'

그리고 평소처럼, 길성진은 마지막 4라운드까지 끊임없이 승리했다.

*

나는 길성진이 4라운드까지 쭉 승리하는 걸 지켜보았다.

“어린놈이 잘하네.”

길성진은 사부님이 여기에 있었으면 사제라면서 데리고 갈 정도로 잘했다.

여린 목은 아직 단련되지 않은 듯했지만,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고 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감정 전달과 표현력이 좋았다.

똑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길성진의 노래에는 감동이라는 게 있었다.

이건 그냥 재능이었다.

어디 기획사에 들어가서 연습생 생활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

저런 재능을 가지고서 아직까지 일반인으로 있는 게 신기했다.

내 시청자들도 길성진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 본아뻬띠: 3회 때인가? 처음 등장해서 계속 씹어먹음

- Adana: 숨고찾 장르가 바꼈지 먼치킨물로

- 무쇠주먹: 무슨 3화랑 4화랑 5화 내용이 다똑같아

- slhfe: 저새끼가 노잼메이커임

저 녀석이 3회 내내 우승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상금을 수령하지 않고 뒤로 미루면서 1500만 원까지 쌓였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분명 길성진은 실력자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번 회차에도 우승을 하고 상금을 추가하겠지.

내가 없었다면 말이다.

내 시청자들은 길성진의 노래를 듣고서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 기억하자:ㅋㅋㅋㅋㅋㅋ1500만원 천마가 먹겟네

- 영점: 길성진 불쌍해서 어쩌냐

- 적락: 열심히 상금 세이브 했는데 다음 상대가 천마네

- 세비허: 뚝배기 깨러 가나요

- 헤즐럿향기: 솔직히 천마 노래는 씹사기인데

- 평가맘: 천마야 이기면 뽀찌 정도는 좀 줘라ㅋㅋㅋㅋㅋㅋ

- 란마아부지: 이따가 길성진 오열하겠는데?

나는 4라운드에서 우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성진을 보았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근데 저 새끼는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네.’

방금도 몇 명이 나에게 와서 곡을 받아가고 싶다는 등, 같이 작업을 하자는 등 쓸데없는 말을 하던데.

'쟤도 그런 건가?'

어쨌든 마지막 4라운드까지 모두 끝났다.

- 네차크: 근데 천마님은 언제 나가심?

원래대로라면 4라운드에서 승자가 결정된다.

하지만 4라운드까지 할 참가자를 이미 뽑아놨는데, 이제 와서 한 명을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제작진은 라운드를 하나 더 추가했다.

"나는 맨 마지막에 나간다."

이름하여 스페셜 라운드.

마침 용우가 앞으로 나와서 나를 소개했다.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는데요. 젤리크러쉬 ‘티키티키’의 작곡가, 음공천마! 그분이 여기에 오셨습니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앞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게 확 체감이 되었다.

조금 전부터 힐끔힐끔 보던 길성진은 이제 대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용우가 웃으며 말했다.

“티키티키 춤으로 유명해지셨죠. 천마 님, 지금 한번 춰주실 수 있을까요?”

이게 미쳤나?

“아니요.”

“아~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봅니다. 의외시네요!”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과연 여기에 올라온 게 잘한 일인가 싶었다.

용우는 극적으로 손을 쫙 뻗으며 말했다.

“4관왕을 거머쥔 길성진 군을 위해 저희 제작진이 특.별.히. 스페셜 게스트를 섭외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작진이 길성진을 떨어뜨리려고 작정했다는 것이다.

함정이다.

“물론 길성진 군은 스페셜 라운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상금은 정상적으로 지급이 돼요.”

제작진은 퇴로를 열어놓는 것과 동시에,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걸었다.

“대신 스페셜 라운드를 선택하면, 엄청난 상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상품?’

‘근데 천마는 작곡가 아니야? 길성진이 이길 거 같은데’

‘또성진? 이제 좀 그만 이겼으면 좋겠는데.’

예민한 귀는 그들의 목소리를 잡아챘다.

그들은 상품이 뭔지 궁금해하면서도, 길성진이 또 이길 거라는 불만이 은연중에 보여준다.

그래서 은근히 내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천마가 이기면 눈앞에서 1500만원 날라가는 건데, 그럼 무슨 기분일까.'

'꿀잼각 아니냐. 차라리 천마가 이겨줘으면 좋겠다.'

'지난번에 잠깐 봤는데 천마도 노래 잘하던데?'

'아 모르겠고 천마 잘생겼다. 잘생긴 사람이 이기면 좋겠다'

승리자의 추락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길성진은 과연 스페셜 라운드를 선택할까?'

그런 가운데 용우가 스페셜 라운드의 상품을 발표했다.

“천마 님과 겨루는 스페셜 라운드를 이기면, 천마 님께서 곡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이 환호한다.

4라운드에 길성진이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보다 더 큰 환호가 무대로 전해졌다.

상품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든 곡이었으니까.

“제이맨과 젤리크러쉬가 천마의 곡을 받기 위해서 후원금 배틀을 벌인 건 모두 아시죠? 여기서 지금 천마님을 이기면 그 곡을 받아갈 수 있습니다.”

“자, 길성진 군. 도전하시겠습니까?”

길성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고 싶습니다.”

“패기 좋네요. 천마 님도 하고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지금 부를 곡은 ‘happily ever after’이라는 노래인데 오늘 처음 공개하는 겁니다. 길성진 군이 저를 이기면, 이 곡을 드리죠.”

“와우!”

용우가 놀란 척 말을 이었다.

“좋네요. 길성진 군이 천마의 곡을 뺏어갈 수 있을지 한번 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포장하니 마치 곡을 쟁탈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이 더 열광했다.

“그럼 이제 천마님의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용우와 길성진은 아래로 내려갔고, 나 혼자 광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호기심, 흥미로움, 기대감.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눈동자를 통해 각자가 가진 생각이 비치고 있었다.

'천마가 길성진을 이길 수 있을까?'

'난 길성진이 이겼으면 좋겠어. 천마의 곡을 받을 수 있대잖아.'

'난 천마 구독하고 있는데 쟤 노래 진짜 잘불러.'

'오늘 여기 구경오길 잘했다.'

머릿속으로 대결에 대한 생각을 하는 그들 사이로, 내 목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 남몰래 써내려가는 동화 속 이야기

새하얀 깃털처럼 하얗게 물들고

노래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생각들을 밀어내고 단단히 자리 잡는다.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용우도, 촬영하는 감독도, 돌아다니던 스텝도.

모두 할 일을 잊어버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였다.

이제 사람들의 눈을 통해 느껴지는 건 무대를 향한 집중. 딱 하나뿐이었다.

만족스럽다.

고양감이 차오른다.

어쩌면 천마로 살아왔던 게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노래를 듣기 위한 목적만으로 찾아온 관객은 없지만, 지금은 이런 무대라도 좋다.

- 백마를 탄 왕자가 소녀를 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happily ever after

singing lalalala

노스탤지아가 물씬 느껴지는 멜로디.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가 곁들어져 섬세한 선율이 돋보인다.

동시에 내력을 천천히 순환시켰다.

이제 묵직해진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은 모든 관객을 감동시키기에 차고 넘친다.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에 내공이 담기면서 선명해졌다.

반주에 묻힐 법도 하건만, 음율 사이에 스며들어 찬찬히 존재감을 내뿜는 목소리.

음파를 타고 흩어진 내공은 이내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내가 상품으로 내건 노래, ‘happily ever after’은 동화 속 해피엔딩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

웹소설을 통해 무협지 속으로 들어간 내 이야기를 담았다.

거기에서 무공을 배우고 천마가 되어 천하일통까지 한 후 현실로 돌아온, 믿지 못할 일들.

여기서 이루고 싶은 음악의 꿈이 나를 나아가게 하지만, 무림에서 보낸 70년 세월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내공에 그 마음을 실었다.

- 동화 속에는 늘 happily ever after

언젠가 닿을 수 있을까?

singing lalalala

singing durururu

두루루루-

둥글게 구르는 맑은 소리와 함께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내 음악에 빠진 관객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무림이 그립기는 한데.

그래도 여기가 훨씬 더 낫다고.

*

홍대거리 광장 앞 포차에서 술을 마시던 직장인이 있다. 그는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좀 시끄럽네.”

“아, 용우라고 알아?”

용우는 음악방송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뉴튜버이다.

펄 엔터 A&R 음반제작팀에서 일하는 직장인도 이름을 들어봤다.

“‘숨은 고수를 찾아라’로 대박친 뉴튜버? 오늘 그거 하는거야?”

“어. 내가 그사람 구독하는데 이번에 홍대편 촬영한다고 공지 떴더라고.”

직장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화에 방해가 돼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광장 근처 포차에 자리 잡은 제 탓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만했다.

그들은 대화를 하며 광장에서 넘어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뭉개지는 소리에 소음까지 섞이니 불협화음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돋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길성진.

지금 길성진이 부르는 ‘사랑으로 가는 길’은 90년대 유행했던 옛날 노래인데도 맛깔나게 잘 부른다.

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소화력과 곡 전달력이 대단했다.

어느새 노랫소리는 그쳤고, 사회자가 관객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직장인도 신경을 끄고 대화에 집중했다.

친구가 말했다.

“방금 부른 애 잘하지 않냐? 길성진이라던데.”

직장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름 몇 번 들어봤어. 그렇지 않아도 캐스팅 팀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 같더라고.”

“헐 진짜? 아이돌 만들려고?”

“그런 것 같은데. 솔직히 아이돌은 아닌 것 같고. 뭐, 보컬리스트에 어울리긴 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직장인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펄 엔터를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퇴사각이 날카롭게 선 직장인은 직장 얘기 대신 조용한 곳에서 다른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우리 자리 옮길까?”

“하긴. 좀 시끄럽긴 하지?”

어차피 음식도 다 먹었겠다, 자리를 옮겨서 2차로 가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들은 적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 수줍게 떠다니는 별들

틈사이로 들려오는 나의 멜로디

청명하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긴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졌지만, 내면의 맑음을 잃지 않은 목소리가 멜로디를 이어간다.

직장인과 그 친구는 2차에 가려던 것도 잊고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으로 환상이 그려지는 듯했다.

어릴 적 추억을 건드리는 듯한 아련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른다.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마이크에 닿는 범위를 아슬하게 걸쳐있는 목소리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창문가에 앉아있었던 직장인은 저도 모르게 일어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물결.

맞은 편에도 창문을 열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도, 또 그 건너편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 가운데, 노래하는 사람이 있었다.

펄 엔터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올여름 내내 펄 엔터의 메인 프로듀서인 제이맨과 비교됐던 작곡가였다.

‘천마···?’

그런데 저 사람은 작곡가가 아닌가? 왜 저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

그러다 문득 직장인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주위가 너무 조용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워서 자리를 뜨고 생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자 모두가 숨죽여 한 사람의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

- 그들은 언제나 happily ever after

singing lalalala

이어지는 멜로디에 어느새 직장인도 생각을 멈추었다.

자신에게 눈을 떼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흡입력 강한 목소리를,

직장인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 숨은 고수를 찾아라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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