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 엔터테인먼트 (1) >
용우 TV의 용우는 가수였다.
물론 가수로서 성공을 하진 못했다.
긴 무명 생활에 지쳐서 유튜버로 전향했고, 특유의 입담과 알고리즘의 선택 덕분에 유튜버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음악 유튜버로 계속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가수로서의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앨범 작업도 조금씩 준비하며 가수로서의 재기를 꿈꾸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용우는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나올 때마다 가수로서는 어떨지 평가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참가자들은, 용우가 보기에 가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길성진 단 한 사람을 빼고는 없었다.
그런데 천마의 노래를 듣는 순간, 용우는 평가하는 것도 잊고 무대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와···. 이건 진짜 재능이다.’
용우는 천마가 테레비토크에서 ‘티키티키’를 불렀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천마는 쫀득쫀득하고 팝팝 튕기는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도 정말 잘 부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부르는 ‘happily ever after’는 완전히 다른 장르다.
심지어 완전히 다른 창법으로 부르고 있다. 그때보다 조금 더 투명하고 맑은 느낌으로.
근데 이것도 천마와 너무 잘 어울린다.
마치 원래부터 이런 스타일로 노래를 부른 사람 같다.
심지어 이 노래가 자작곡이란다.
'이 사람은 못하는 게 뭐지?'
전달력도 일품이었다.
차선우가 그려내는 이미지가 용우의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한 가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라는 게 차선우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20살의 차선우에게 마치 수십 년은 노래를 부른 명인같은 모습이 보였다.
용우는 머릿속에 번뜩임이 지나가는 듯했다.
‘이건 무조건 된다.’
지금까지 길성진에게 박살 난 참가자들이 몇 명이었는지.
그동안 시청자들이 너무 길성진이 무쌍 찍는 거 아니냐며 아우성을 쳐댔지 않은가.
천마의 노래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용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길성진은 이제 끝났군.’
뒤이어 길성진이 무대로 올라왔다.
무대에 올라온 길성진은 처음으로 긴장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성진 또한 늘 그랬듯이 잘했다.
하지만 앞선 무대의 농도 짙은 감동의 여운이 남아있는 지금, 길성진의 노래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길성진의 노래가 천마가 남긴 여운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어 거슬릴 정도이다.
마치 빛바랜 반딧불이 같다.
보통 이런 대결에서는 마지막에 무대를 한 사람이 유리하다.
천마를 먼저 올려보내고 그게 약간 걱정으로 남아있었는데, 용우는 이제 마음이 편안해졌다.
*
이변은 없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로 내가 우승했다.
용우는 뭐가 그렇게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상금을 전해주었다.
“상금 1500만원은 모두 천마 님께 돌아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천마 님.”
나는 [15,000,000원]이 적힌 판넬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뜻밖에 천오백만 원이라니.
이걸로 부모님께 선물이나 사드릴까?
공연도 만족스러웠고 거기에 거액을 받으니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내 인사를 마지막으로 숨고찾 6화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도 내 방송을 종료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저기 구석에서는 길성진이 세상을 잃은 얼굴로 멍하게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등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저 나이에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이 코앞까지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세상을 잃은 것 같겠지.
‘그러게 지난 회차에서 마무리 짓고 박수칠 때 떠나지 그랬냐.’
본인 선택이니 딱히 불쌍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충격을 받아서 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근래 들어 내가 본 재능 중에는 제일 괜찮은 녀석이었다.
이 무참한 패배가 녀석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숨고찾의 제작진은 길성진의 곧죽을 것같은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뷰를 따고 사진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승자에서 1500만원을 날린 패자가 됐으니, 이건 이거대로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이제 집에 가려는데 용우가 나에게 다가왔다.
“무대 잘 봤습니다. 천마님 덕분에 이번 화 조회수가 꽤 잘 나올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1500만원이 써있는 판넬을 흔들며 웃었다.
"에이, 제가 더 감사하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천마 님이 나온 무대만 따로 녹화본을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메일 주소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나는 옥수진의 메일주소를 알려줬다.
“이쪽이 제 피디님인데 여기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 오셨나 보네요?”
“피디님이 일이 있다고 해서요. 요즘 좀 바쁘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용우 쪽을 보았다. 저쪽은 촬영 스탭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각종 장비들을 일사불란하게 챙기는 모습이 인상 깊다.
나는 가내수공업으로 옥수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데, 저기는 기계 톱니바퀴가 딱딱 맞물리듯이 체계적이다.
용우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그래요? 보통 피디님이 바쁘면 매니지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주지 않나요?”
“네? 저 매니지 없는데요?”
용우는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정말요? 기획이나 영상 퀄리티가 괜찮아서 당연히 회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화하다 보니 옥수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다.
지금 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걸 혼자서 다 하고있는 거였어···?
사람을 더 고용해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용우가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참에 저희 회사로 오실래요? 천마 님 체급 정도면 소속사가 있는 편이 좋을 거예요.”
“네. 생각해보겠습니다.”
매니지먼트라.
이제 슬슬 생각해봐야 될 문제이다.
나는 고민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
천마가 나온 ‘숨은 고수를 찾아라’는 화제가 되었다.
일단 출연 배경부터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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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ㅅㄱㅊ에 나온 이유
원래 그자리에 버스킹 하려고 했는데 날짜를 잘못 예약했다더라ㅋㅋㅋㅋㅋ
그 날 하려고 예약했는데 알고보니까 다음날에 예약한거였음ㅋㅋㅋㅋㅋ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용우를 만나서 시작 30분 전에 섭외한 거임
용우도 바로 결정 내린 거 대단하고 천마가 예약 잘못한 건 더 대단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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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예약 잘못해서 1500만원 벌어갔네 ㅋㅋㅋㅋㅋㅋ
- 딱 봐도 주작인데 이걸 믿냐···어휴 숨고찾 망해가던데 아득바득 띄우려고 애쓰네
ㄴ 이ㅅㄲ 백퍼 천마 방송 안봤음
ㄴ 아 천마라면 그럴 수 있지ㅋㅋㅋㅋㅋㅋㅋ
ㄴ 딴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천마는 쌉가능
주작 아니냐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천마라면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용우가 천마를 섭외한 걸 잘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중간 과정은 대충 뭉개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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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가 길성진 개발라버리네ㄷㄷㄷㄷ (직캠영상)
현장에 있었는데 천마 라이브 미쳤음
그때 ㅈㄴ 시끄러웠는데 천마가 노래하는 순간 다들 입닫고 집중하고 ㄹㅇ 소름
천마 방송 보면서 노래 잘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개개개개개개개잘함
그때 주변 음식점에서 밥먹던 사람들 다 나와서 보고 갈 정도임ㅋㅋㅋㅋㅋㅋ
노래 분위기도 미쳤음. 막 뭔가 아련하고 그리운 느낌?
나도 있지도 않은 여자친구가 괜히 보고싶더라 ㅅㅂ
이런 띵곡은 어떻게 만드는거지
happily ever after 빨리 풀영상 나오면 좋겠다···편집자 빨리 일해···
(직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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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이 귀한 걸···감사합니다
- 노래도 잘하는데 곡도 좋으면 개사기 아니냐?
- 솔직히 천마 없었으면 숨고찾 개노잼 됐음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무쌍도 정도껏 찍어야지
ㄴ ㄹㅇ 이번에도 천마 없었으면 길성진 우승인데ㅋㅋㅋㅋ 나 그럼 안봤음
- 길성진 지금 기분이 어떨까
ㄴ 길성진 지금 방안에서 오열중이랍니다ㅋㅋㅋㅋ
- 진짜 눈앞에서 1500만원이 날아갔네 ㅈㄴ 후회하고있을듯
옥수진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응을 찾아보았다.
길성진이 너무 오랫동안 ‘숨고찾’에서 1위를 해 먹어서 다들 천마가 이긴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천마가 불렀던 ‘happily ever after’를 빨리 보고싶다는 반응도 많았다.
‘좋네. 나도 빨리 편집해서 올려야겠다.’
영상을 편집하는 옥수진의 손이 분주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무척 아쉬웠다.
뒤늦게 천마가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용우에게서 온 영상을 보며 옥수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직접 봤어야 했는데.’
용우는 이전에 옥수진이 구독해놓고 보던 사람이었다.
그때도 구독자가 100만이 훌쩍 넘었던 기억이 난다.
구독자가 2명일 때부터 봤던 천마는, 어느새 대형 뉴튜버랑도 같이 작업할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채널이 성장함에 따라 생각보다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천마였다.
[천마]: 보너스
[천마 님이 5,000,000원을 입금했습니다.]
오늘 꽁돈이 생겼다며 상금을 떼서 옥수진에게 준 것이다.
옥수진이 솔직히 버는 돈이 적지 않았다.
처음에 비율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천마의 조회수가 잘 나오는 만큼 그녀의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늘어났다.
지금은 웬만한 대기업 신입사원만큼은 벌고 있었다.
무엇보다 옥수진은 지금 천마랑 같이 일을 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아직까지 그녀의 제일 큰 취미는 음방을 보는 것이고, 천마는 그녀가 본 BJ 중에서 최고였다.
덕업일치를 이루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옥수진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진성전자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옥수진 님 ([email protected])은 최종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이후 일정은 개인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성전자 제품디자인 팀에 채용된 것이다.
그녀가 다니는 H 대학교의 재단이 진성전자이다.
졸업자 대상으로 취업 연계 전형이 따로 있어서 그쪽에 지원을 했는데 한번에 붙어버렸다···!
모든 산업디자인 학도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며,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외가 친가 친척들도 연락이 와서 다들 축하한다고 난리다.
딸이, 손녀가, 조카가 자랑스럽다며 어찌나 칭찬을 하시는지.
오늘 버스킹에서 그 일이 일어난 줄 몰랐던 것도, 진성전자에서 합격 전 채용검강검진을 오라고 해서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어떡하지···.”
디자인 쪽은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서, 진성전자에 들어가는 순간 천마와 더이상 일하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천마와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지금 가족들이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너무 좋아하는데 거기에 대고,
‘진성전자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저 뉴튜버랑 같이 일할래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나 진짜 그만둬야 하나?”
옥수진의 고민이 깊어졌다.
< 천마 엔터테인먼트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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