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 엔터테인먼트 (3) (수정재업) >
한태영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고민에 잠겼다.
'회사라···.'
내가 처음 음악 방송을 시작한 것은, 그저 사람들과 내 음악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 회사의 필요성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서 했던 버스킹, 그리고 미니롱과 젤리크러쉬가 서있던 무대를 보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대의 열기와 관중들의 환호, 가수와 관객이 하나 되는 느낌.
최고였다.
더, 더, 더 많은 사람이 내 음악을 들으면 좋을 거 같다.
‘이참에 회사를 세워서 음악으로 무림···아니 세계를 일통하는 건 어떨까?’
무심결에 든 생각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지만,
'근데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무림일통을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시스템 창을 가지고 있던 나는 개인으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인이었다.
'하지만 무림일통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건 세력이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
천마신교든, 무림맹이든, 사황성이든.
세력이 없으면 일통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음악도 비슷하겠지.'
혼자서라면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랑 같이 작업하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어.’
미니롱과 젤리크러쉬.
내가 만든 곡으로 애들이 치고 올라가는 걸 보니 뿌듯하고 보람찼다.
마교에서 제자를 키울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천마의 이름 아래 나와 함께 음악을 할 사람을 모을 것이다.
그리고 제2의 천마신교를 만드는 것이다.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할.
두근거린다.
재미있을 것 같다.
결심이 섰으니 이제 방법을 고민할 차례.
한태영의 제안처럼 기획사에 들어간다면 당장은 편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기획사에 들어가면 분명 성장에 한계가 올 것이다.
'누구 밑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체계를 잡는 데 시간과 돈이 필요하더라도, 종국에 내가 디디고 설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나에게는 그게 마교···아니, 회사다.
회사 경영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현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적응하는 데에는 물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다.
무림에서 무려 십만 명의 교도를 거느리고, 그들을 이끌고 무림을 통일한 경험이.
그리고 수십 년간 그 성세를 유지했던 경험이.
이 정도면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진성의 회장쯤 되어야 비빌 수 있는 수준이다.
의지도 다졌고 경험도 있다.
그럼 이제 실천에 옮길 차례.
나는 초록 창에 들어가 회사 설립 과정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
제이맨이 프로듀싱한 ‘에이클라스’는 얼마 전 활동을 마무리하고 짧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에이클라스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최근 걸그룹의 ‘데뷔 성적’만 따지자면 최고라고 꼽힐 만하다.
SBC 음방에서 1위, 이어지는 MBS 음방에서도 1위. 더블 크라운을 달성했다.
음원 성적도 항상 차트의 최상단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한창 치고 올라가야할 시기에, 바로 젤리크러쉬에게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천마만 아니었어도.’
지상파 음방 3관왕을 달성하기 직전, 젤리크러쉬에게 1위를 뺏겼다.
그리고 한번 기세를 탄 젤리크러쉬에게 다시는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없었다.
젤리크러쉬가 활동을 마칠 끝물에 에이클라스가 총공세를 펼치면서 겨우 1위를 달성하기는 했고, ‘데뷔곡으로 트리플크라운’이라는 타이틀을 어찌어찌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게 에이클라스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건 사람들도, 제이맨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패배를 곱씹으며 다음 싱글 앨범을 준비하는데, 펄 엔터의 대표가 제이맨을 불렀다.
“싱글 준비는 잘 돼가고 있나요?”
에이클라스는 3개월 뒤 싱글로 컴백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이맨이 프로듀싱을 맡기로 했다.
“네. 지금 곡은 계속 받고있고 어느 정도 리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주 내로 내부회의를 거쳐 선정할 겁니다.”
“음. 좋습니다. 제이맨이라면 믿을만하지요.”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이맨은 왠지 대표가 싱글 때문에 그를 부른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형식적으로 에이클라스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오간 후, 대표가 마침내 용건을 꺼냈다.
“작곡가 천마 말입니다. 펄엔터로 영입하는 건 어떨까요?”
“네? 천마를요?”
“지금 동향을 들어보니 천마가 지금 소속사가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눈독을 들이고 있다네요. MCN에서 유명한 비트박스, 한태영이 소속된 어썸뮤직도 입질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면 우리도 못 할 건 없지 않나요? 제이맨이 천마를 만나본 적이 있으니 한번 의견을 들어보고자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솔직히 제이맨은 천마가 싫었다.
천마를 볼 때마다 그 재능에 열등감과 패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냉정한 사람이다.
대표의 말에 제이맨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천마를 평가해보았다.
사적인 감정을 제쳐두고 능력만 놓고 봤을 때 천마의 작곡 및 프로듀싱 능력은 대단했다.
단순히 반짝 뜨고 말 그런 사람이 아니라, 기본 실력이 탄탄해서 언제든지 일정한 퀄리티의 곡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제이맨이 말했다.
“영입한다면 펄 엔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중성이 뭔지 알고 곡을 정확하게 설계하니까요.”
대표는 싱긋 웃었다.
“제가 이래서 제이맨을 좋아합니다.”
제이맨은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했다.
상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적이라고 해도 이득이 된다면 손잡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도 천마를 한번 영입해보는 걸로 하죠. 그쪽이랑 연락하는 건 제이맨에게 맡길게요."
제이맨은 한발 양보하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지만, 회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문제라면 천마는 이쪽과 손잡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
본격적으로 회사에 대해 알아보자 생각보다 복잡한 것들이 많았다.
일단 나는 법인 사업자를 내기로 결정했다.
사업자를 내면서 통장을 정리하면서 확인한 것이지만,
'나 돈 진짜 많이 버네.'
후원금에서부터 저작권비, 작곡비와 프로듀싱 비용까지.
5달 동안 한달에 최소 수천만 원씩은 벌었다.
법인을 선택한 만큼 필요한 서류들이 무지하게 많았지만.
돈도 많겠다, 그건 그냥 돈을 주고 맡겨버렸다.
사무실도 집 근처에 좋은 곳으로 찾았고, 가구부터 시작해 각종 사무용품까지 다 주문이 끝났다.
이제 조만간 날만 잡아서 이사를 가면 끝이다.
'이제 그럼 내가 32대 천마가 아니라, 천마 엔터테인먼트의 초대 천마가 되는 건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무림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만든 회사이다.
이제 나중에 직원도 몇 명 더 뽑고, 가수들도 영입할 것이다.
'아, 옥수진도 정식으로 영입해야지.'
옥수진은 요즘 취업 때문에 바쁜 모양인지 마감기한만 겨우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설립한 김에 제대로 영입할 생각이다.
특별히 그녀를 위해서 직함도 만들었다.
실장.
총관으로 하고 싶었는데, 옥수진이 싫어할 듯해서 고심 끝에 생각해 냈다.
‘내일 얘기해봐야겠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방송을 켰다.
‘나중에 이사하면 시청자들한테도 깜짝 발표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의 컨텐츠인 썰방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황당한 사연이 있나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비트박스 님이 5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뉴튜브 크리에이터 전문 매니지먼트 ‘비트박스’의 대표입니다.
훅 들어온 거액의 후원금.
“비트박스라면···.”
예전에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 우연히 참가했을 때 용우가 스치듯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용우의 소속사?”
[비트박스 님이 5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용우 님이 말했다고 하시긴 했는데 기억하시는군요.
[비트박스 님이 500,2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이렇게 인사드리게 된 건, 천마 님을 저희 회사로 모시고 싶어서입니다.
[비트박스 님이 500,3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채팅으로도 메일로도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셔서요···.
[비트박스 님이 500,400원을 후원했습니다.]
- 혹시 아직 매니지먼트가 없다면 비트박스는 어떠실까요?
“...?”
조금 전까지 법인을 설립하고, 사무실 인테리어를 알아보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영입 제안에 당황했다.
하지만 내가 당황하든 말든 시청자들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 네듀젬 :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얀사람 : 천마 또 씹었냐···.
- 몽시몽시 : 비트박스 일 잘하네
- 기억하자 : 솔직히 여기 일 잘하는 걸로 유명하긴 하지
- CENTER : 대박대박 여기 꼭 잡으세요! 그리고 비트박스 소속 여캠 중에 순아라고 잇는데 만나면 싸인좀 받아줘
- 적락 : 나는 합방도 좀 해주면 좋겠음
- 미라클 : 대표님 저 만원만요
- 니가내별 : 와ㅋㅋㅋㅋㅋㅋ 이 누추한 곳에 천마를 영입하러 오네
오랜만에 거액의 후원금이 터져서 다들 꿀잼각이 섰다.
하지만 후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썸뮤직 님이 500,5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마님^^
[어썸뮤직 님이 500,600원을 후원했습니다.]
- 한태영 씨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어썸뮤직 님이 500,7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반갑습니다. 어썸뮤직의 대표 이기범입니다.
[어썸뮤직 님이 500,8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저도 천마님을 저희 기획사로 모시고 싶어서요.
[어썸뮤직 님이 500,900원을 후원했습니다.]
- 한태영 씨에게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어썸뮤직은 아티스트가 최선의 환경에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답니다.
한태영의 소속사이자 대한민국 4대 기획사 중 하나인 어썸뮤직.
그곳의 대표가 직접 나선 것이다.
빵빵 터지는 후원 덕분에 시청자들이 더욱 신났다.
- 감성버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노블매니아 : 이제 영입배틀 가나요
- 흑곰이랑께 : 잠깐 기다려 나 팝콘좀!
- 한세월 : 미친 5분만에 500만원ㄷㄷㄷㄷㄷㄷㄷㄷㄷ
- 하늘짱 : 근데 진짜 왜 맨날 천마 라이브방송에 와서 싸우냐ㅋㅋㅋ
- 세비허 : 천마쉑 이러려고 일부러 메일 안읽는듯
무튼, 어썸뮤직과 비트박스는 내 영입을 두고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비트박스 님이 501,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이 대표님. 상도덕이 있죠. 여기 제가 먼저왔습니다만.
[어썸뮤직 님이 501,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글쎄요. 천마님 방은 선착순이 아닌걸로 알고있는데요^^
[비트박스 님이 501,2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저희는 MCN 전문이라 뉴튜브에 관한 모든 것을 맞춤형으로 세심하게 케어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썸뮤직 님이 501,3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무슨 소리를. 천마 님은 뉴튜버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죠. 어썸뮤직이 천마님에게 딱입니다.
마구마구 후원금을 쏘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 경쟁을 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나는 황당했다.
‘얘네 왜 이러는 거지?’
이 순간에도 두 사람은 너보다 내가 더 낫다며 열심히 싸우고 있고, 자기 회사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떠들어댔다.
두 회사가 좋은 건 알겠다.
비트박스는 MCN 중에서는 최고이고, 어썸은 4대 기획사 중 하나니까.
문제라면,
‘나는 그 어디도 갈 생각이 없단 말이다.’
그게 모두 김칫국 드링킹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끝나지 않을 싸움이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멈추고 그냥 회사 설립을 발표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제이맨 님이 1,0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 무슨 소리죠. 천마 씨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입니다만?
백만원 후원이 터졌다.
그리고 김칫국을 가장 거하게 마시는 놈이 등장했다.
제이맨이었다.
제이맨의 후원에 채팅창에 온갖 효과가 난리법석을 치고, 시청자들 또한 같이 난리가 났다.
- 클라스 지렷죠
- ㅁㅊ 또 백만원이야?
- 와씨 그냥 백만원을 갖다박네ㅋㅋㅋㅋㅋㅋㅋ
- 근데 천마랑 제이맨이랑 싸운 거 아님?
- 에이 싸운건 아니고 그냥 경쟁이지 경쟁
- 와 둘이 손잡으면 역대급 앨범 나오는 거 아니냐?
- ㅁㅊㄷㅁㅊㅇ
- 천마님 저 만원만 주세요
[제이맨 님이 1,000,1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저희 대표님께서 천마 씨를 펄 엔터로 모시고자 합니다.
[제이맨 님이 1,000,200원을 후원했습니다.]
- 저희 회사에 매그넘부터 시작해서 월드클라스 가수들이 대거 포진해있죠. 이 가수들을 천마 씨가 프로듀싱할 기회입니다.
제이맨은 연달아 백만 원을 후원하며 채팅을 쳤다.
요지는 펄 엔터에서도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것이다.
후원이 터졌다는 화면이 정신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제이맨]: ···네?
앞의 두 사람은 괜찮지만 제이맨은 꼴도 보기 싫다.
나는 젤리크러쉬 때 제이맨이 음흉하게 뒤에서 이상한 기사를 내던 걸 잊지않고 있다.
개같이 기어도 모자랄 판에, 월클 가수와 함께 일할 기회를 주겠다고?
이게 말이냐, 똥이냐.
[제이맨 님을 강제퇴장시켰습니다.]
나는 제이맨을 보내버린 다음 진짜 교통정리에 들어갔다.
내가 스트리머냐, 싱어송라이터냐, 프로듀서냐에 대해서 박터지게 싸우는 사람들.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나 여러분 회사 안 갈겁니다."
[어썸뮤직]: ???
[비트박스]: 네?
"이번에 내 회사를 차릴 거거든. 벌써 사무실 계약 마치고 다음주면 들어갈건데?”
깜짝 회사발표였다.
- 회사? 왜? 갑자기? 헐???
- ㅋㅋㅋㅋ세명이서 헛짓거리 했네
- 거기가면 맨날 천마 노래 들을 수 있나?
- 직원! 직원은 안뽑으시나요?
- 교주님! 축하드려요!
- 잠깐 손이 왜 거기로 가냐??
- 이 새끼 또 방ㅈ···.
[BJ음공천마님이 방송을 종료하였습니다.]
< 천마 엔터테인먼트 (3) (수정재업)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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