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에서 (1) >
깜짝 회사 설립 발표는 커뮤니티를 타고 돌았다. 나는 이참에 구인글도 같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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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함 (음반제작/기획자/작가/PD)
본좌다.
‘천마신교 레코즈’에서 사람 구한다.
1. 직무역량_기획자/작가
- 촬영/편집 역량이 없더라도 그걸 뛰어넘을 콘텐츠 감각이 있으면 상관없습니다
- 다만 기획 역량을 보기 위해 3개월···.
- ···.
2. 직무역량_PD
- MCN, 방송국 등 방송제작 업무 경험이 있으신 분
- 뉴튜브 콘텐츠 제작을 위한 콘티 구성···.
- ···.
3. 직무역량_음반제작
- 음반 및 음원 기획 및 제작
- 아티스트 컨셉 및 프로젝트 앨범 및 곡 기획/지원
- ···.
4. 핵심역량
- 인터넷 커뮤니티, 밈 등에 빠삭하신 분
- (PD) 멀티캠 편집 경험 있으신 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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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공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댓글이 수십 개가 달리기 시작한다.
- 이열 사장님 됐다며?
- 천마신교 지렷다ㅋㅋㅋㅋㅋㅋㅋ
- 한번 잡은 컨셉 제대로 밀고 가야지
- 이제 ㄹㅇ 교주님이 되버렸네
- 나도 지원해볼까?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가 된 건, 근무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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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무환경/기타
- 당연한 것들: 4대 보험, 퇴직연금, 장기근속자 포상....
- 자유 복장
- 최상급 장비 제공 : 에플(A+) 일체형 컴퓨터, 노이즈캔슬링 헤드셋
- 재택근무 권장, 촬영 시에만 사무실 출근
- (사무실 근무 시) 점심시간 1시간 / 간식시간 30분 제공
- 대표가 사무실에 잘 없음
- 야근하려면 대표 허락 받아야 함 (수당 챙겨줌)
- 자유로운 휴가 사용 (당일 카톡으로 가능 / 마감에 지장 없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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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작업환경 실화인가ㄷㄷㄷㄷㄷㄷ
- 내일 당장 회사 때려친다
- ㅋㅋㅋㅋ미쳤네 나는 퇴근하려면 허락받아야하는데
- 대표가 사무실에 없는 게 제일 좋은 거 아니냐?
- 재택근무ㅠㅠㅠㅠㅠㅠㅠ
- 아이맥 저거 나 존나 갖고싶은데ㅠㅠㅠㅅㅂ부럽다ㅠㅠㅠㅠ
- 천마 돈 많이 버나보네
- 히트곡이 몇 갠데 당연히 잘벌겠지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교주 노릇을 하면서 느꼈지만, 개인 생활이 만족할 만큼 보장되어야 애사심이 높아지는 법이다.
뭐 성과가 없으면 자르면 되는 거고.
‘이제 내일···아니 오늘 밤이면 커뮤니티에 다 퍼지겠군.’
이 구인글이 널리널리 퍼져나가서 능력자들이 들어오기를 바랐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 속에.
마침내 내가 낸 법인이 설립되었다.
‘천마신교 레코즈’
세계 음악 시장을 일통할 천마신교 레코즈의 등장이었다.
그때 마침 옥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 천마님 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지금 시간 되세요?
좋은 타이밍이다.
마침 나도 옥수진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내가 회사를 설립하면 영입 대상 1호가 바로 옥수진이다.
시청자 4명이었던 작은 채널을 지금까지 키운 데에는 누구보다 옥수진의 공이 크다.
[컴백일지]로 미니롱과 젤리크러쉬를 성공적으로 재조명한 것부터, 매주 꾸준한 고통···아니, 사랑을 받는 [주간곡소리]까지.
이런 코너를 기획하는 기획력이 좋다.
또한 용우가 칭찬한 것처럼, 옥수진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퀄리티의 영상편집을 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랑 합이 잘 맞는다는 거지.’
교주 노릇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만, 이렇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
내 비전에 공감을 해주고 열정을 다해줄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옥수진이 그런 사람이다. 일도 잘하는데 나와도 잘 맞는 사람.
그래서 꼭 데리고 가고 싶다.
나는 옥수진에게 답장했다.
- 집 근처 카페에서 봐.
옥수진을 처음 만났던 그 카페였다.
*
옥수진은 천마와 처음 만났던 그 카페에 왔다.
‘벌써 다섯 달 전이네.’
봄내음이 풍기기 시작하는 3월에 천마를 처음 만났었는데, 이제 어느새 쨍쨍한 여름이 되었다.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싶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천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며칠 전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해서 옥수진은 골드버튼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라면 받침으로 쓰지 않기를 바라지만.
처음 시청자 6명을 데리고 서툴기 그지없던 방송을 하던 천마는, 어느새 대형기획사에서도 영입을 하기 위해서 배틀을 벌이는 사람이 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 회사까지 차렸다.
그리고 천마라면 앞으로도 더욱 성장할 것이다.
그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내가 지켜볼 수는 없겠지.’
그녀는 결심했다. 천마의 채널을 떠나기로.
천마와 일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같이 하고 싶다.
5개월 동안 옥수진은 인생에서 손꼽히는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바쁘긴 했지만 천마가 월급도 보너스도 빵빵하게 쥐여준 덕분에, 웬만한 대기업 신입사원보다 잘 벌었다.
하지만 진성전자 취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들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니까···.'
얼마 전 친척 모임 때도 ‘수진이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축하한다’ 같은 소리를 듣고 왔다.
이모들은 작은 플래카드와 케이크를 준비해서 진성전자 취업을 축하해줬다.
심지어 부모님이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낸 덕분에, 이제 앞집 아주머니까지 옥수진이 진성전자에 취직한 걸 알고 계신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제가 하고싶은 일은 따로 있어서, 진성전자는 그냥 때려치려고요.’같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누구보다 진성전자 합격을 자랑스러워하신 부모님께서 실망하실까 봐. 그게 제일 걱정된다.
뭐든 야무지게 잘 해내는 옥수진이지만, 아직 그녀는 23살이었다.
주변의 기대가 아직은 버거울 나이다.
그때 천마 채널 알림이 울렸다. 천마가 공지를 올린 것이다.
“어? 갑자기 웬 공지지?”
확인해보니 구인글이다.
음반제작부터 PD, 기획자, 작가까지. 전반적으로 사람을 채용한다는 글이었다.
‘천마님이 사람을 더 뽑으시려는구나. 잘됐다.’
라고 생각하던 옥수진은 스크롤을 내리다 근무환경 사항을 보고 동공이 흔들렸다.
‘...?’
이 정도면 진성전자보다 근무환경이 좋은데?
옥수진이 원래 받는 월급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근무환경까지 좋으니 진짜 이걸 포기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든다.
천마의 글을 보니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고민을 하는 사이, 차선우가 들어왔다.
옥수진은 하고 싶은 말을 숨긴 채 적당히 근황을 나누었다.
어제 방송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오고, 이내 어색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할 얘기가 있는데.”
“말씀드릴 게 있어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용건을 꺼냈다.
차선우는 먼저 말하라고 했다.
“저 진성전자 디자인팀에 취직했어요.”
원래는 여기에 더이상 일을 못할 거 같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방금 구인글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옥수진은 결정하지 못한 채 말을 바꿨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어요.”
“...?”
차선우는 말이 없었다. 많이 놀란 모양이다.
실제로도 차선우는 놀라긴 했다.
‘옥수진이 벌써 취업을 했을 줄이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흠···.’
차선우는 고민했다.
수백 마디의 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가 다시 지워졌다.
하지만 이럴 때는 괜히 돌려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진심을 전하는 것이 낫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돌직구를 던졌다.
“본좌는 회사를 차렸다.”
“···어제 방송을 봐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첫번째 직원으로 자네를 데려오려고 했네."
말을 하는 차선우는 어느새 ‘그 모드’가 되어있었다.
이것도 옥수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어제 천마가 회사를 설립했다고 했을 때부터 이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옥수진은 아직도 갈등 중이었다.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시던 부모님의 얼굴.
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차라리 누가 등이라도 떠밀어주면 좋으련만.
차선우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진성전자라고 했지. 거기는 국내 최고의 기업이지.”
“그렇죠.”
“그러면 본좌는?”
“네?”
“자네가 보기에 본좌는 어떻느냐 말일세.”
옥수진은 지금까지 차선우의 행적을 떠올렸다.
방송을 시작한 지 다섯 달.
그 안에 천마는 히트곡을 주르륵 써내려 왔다. 그가 만든 곡이 차트인하지 않은 적은 없었으며, 심지어 두 곡은 1위를 거머쥐었다.
‘우리, 봄’과 ‘티키티키’.
“이게 본좌의 한계라고 보는가?”
옥수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았다.
5년 후에, 진성전자에서 자신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5년 후에, 천마의 옆에서 자신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차선우는 흔들리는 옥수진을 보며 미소지었다.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충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은 필요한 법이지. 그러니 고민해보게.”
*
옥수진은 일주일간의 시간을 달라고 했고, 차선우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는 사이 한태영의 콘서트가 다가왔다.
한태영은 군대 가기 전 전국 콘서트 투어를 돌고 있었고, 지방 투어를 모두 마치고 이제 서울에서 열리는 마지막 콘서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마지막 콘서트였다. 지금부터 5일 후 한태영은 입대한다.
[빛태영]은 직장인이다. 그녀는 오늘 연차를 내고 한태영의 콘서트를 보러왔다.
‘기대된다. 후기가 진짜 좋던데. 게스트도 빵빵하고.’
정규앨범이 망한 건 조금 아쉽지만, 한태영에게는 워낙 히트곡이 많아서 이번 앨범 외에도 즐길 곡들은 많았다.
그리고 소속사 측에서도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라고 특별히 무대에 신경을 써준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천마가 게스트로 온다던데.’
한태영이 천마 방송에 직접 들어가서 섭외했고, 직장인은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 중 하나였다.
직장인은 ‘우리, 봄’으로 시작해서 ‘미니롱’을 거쳐 이번 테레비토크의 ‘티키티키’까지.
천마의 모든 컨텐츠를 섭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라이브 방송도 빼놓지 않고 시청 중이었다.
당시 방송에서 최애와 차애가 허물없이 얘기하는 모습은 괜히 그녀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날 천마가 게스트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인은 계속 콘서트 후기를 찾아보았다.
중간에 미니롱이 게스트로 나왔다는 후기는 봤지만, 아직 천마가 나왔다는 얘기가 없었다.
‘설마 오늘 오려나? 무조건 오겠지?’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올 날이 없긴 하다.
그렇기에 직장인은 확신을 가지고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중의 마지막 콘서트라서 그럴까?
무대 연출부터 대박이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한태영이 화려한 불빛과 함께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 직장인은 정신을 놓았다.
“꺄아아아아악!”
“오빠 군대 가지마요!”
한태영은 ‘touch touch’라는 문제의 댄스곡으로 오프닝을 장식했다.
‘근데 이 노래가 원래 이렇게 좋았나?’
한태영이 만든 곡 중에서 부동의 워스트 1위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모르겠지만 한태영과 만났던 날 천마가 콘서트용으로 편곡을 해줬다.
덕분에 같이 따라부르기 쉬운 곡으로 바뀌었고 초반부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8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가수인 만큼 한태영은 히트곡으로 세트 리스트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은 곡을 보유했다.
직장인은 즐겨듣는 노래가 대거 나오자 응원봉을 휘두르며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뜨거워진 열기에 한태영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다음 곡은 모두 아시는 곡일 텐데요. 바로 올봄에 히트했던 노래이죠.”
직장인은 눈을 반짝였다.
‘우리봄이다!’
한때 계속 돌려 들었던 익숙한 반주가 나왔다.
한태영의 뚝딱거리는 춤솜씨로 열심히 율동을 했고, 직장인은 그 모습마저 귀엽다며 왁왁거렸다.
‘국방부 개새끼들 우리 갓기 돌려내라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태영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게 너무 슬펐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우리봄의 1절이 끝나고 간주가 들어가는 순간 무대 뒤쪽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갔다.
“어? 뭐야뭐야?”
직장인이 조명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 나오는 게 보였지만 아직 검은 인영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인영에게서 나온 풍성한 목소리가 거대한 홀을 꽉 채웠다.
[네 생각에 들떠있어 좀
아직은 어설플지 몰라도
우리, 봄]
순식간에 몰입시키는 목소리.
입안에 사탕 열 개쯤은 머금은 듯한 달달함.
듣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직장인은 눈을 크게 떴다.
“...!”
그건 직장인이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목소리였다.
자기도 모르게 응원봉을 힘차게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천마 차선우였다.
< 콘서트에서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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