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서트에서 (2) >
나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수만 쌍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눈에 설렘을 가득 담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콘서트 무대에 선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고 싶다.
이건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응원봉은 하얗게 빛나고.
그들에 둘러싸인 나는 마치 별들 사이를 유영하는 듯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노래를 시작했다.
- 벅찬 맘으로 달려가
넓은 세상에 나타난 그건
우리, 봄
“봄봄봄 우리 봄!”
내가 노래를 부르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내 노래를 따라부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뚫고 들어온다.
수만 개의 목소리지만, 하나가 되어 콘서트장을 울린다.
그들의 표정이 보인다.
잔뜩 들떠있고 노래에 취한 듯 행복한 표정.
그들이 느끼는 것은 즐거움이다.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어버린 것 같다.
무대 위에서, 나는 노래를 시작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봄의 마지막 남은 소절까지 끝내고,
- 봄봄봄 우리의 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기분이 끝내준다.
여운을 완전히 만끽한 후 한태영이 나에게 다가와 가볍게 포옹을 하고 관객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다들 아시죠? 요즘 제일 핫한 작곡가, 천마님입니다! 제가 천마님 여기 모시려고 라이브 방송 들어가서 얼마를 썼나 몰라요."
한태영의 팬들은 나에 대해 잘 아는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우리 천마님. 이거 환호 소리 뭐야? 나보다 인기가 좋은 거 같은데요? 그리고 노래는 또 왜 이렇게 잘해?”
“무림에서 70년 동안 노래만 해서?”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다들 웃어넘겼다.
“야, 역시 우리 작곡가님 컨셉 확고하다니까.”
한태영과 나는 가벼운 담화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다음으로는 천마님의 무대입니다. 자작곡을 준비하셨다고 하는데. 아마 이번이 무대에 혼자 서시는 건 처음이죠?"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한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뭐 그런 셈이죠."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처음이기는 하지.
십만 교도 앞에서 서본 경험은 수백 번 있지만.
"우리 천마님 힘 좀 나게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한태영이 빠지고 이제 온전히 내 무대가 되었다.
나는 스탭이 건네준 기타를 메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형이 제 곡을 계속 탐내길래 이번에 하나 써봤습니다.”
내 말에 뒤로 빠져있던 한태영이 벌떡 일어섰다.
“뭐? 이거 나 줄 거예요?”
“아니 뭐 줄건 아니고. 그냥 군대 잘 다녀오라는 의미에서 만들어 본건데요."
“군대송이구나···.”
한태영은 시무룩해져서 다시 뒤로 사라졌다.
관객들 사이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Good bye’ 들려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노래의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선율이 우아하게 공간을 채운다.
- 문득,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다가온 그날
단전에서 끓어오른 내력이 파동을 타고 콘서트 장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마치 깃털처럼, 혹은 눈송이처럼.
사람들의 귓가에 사뿐사뿐 쌓였다.
어느새 홀은 조용해졌다.
거대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소리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나의 목소리뿐.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현장에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마이크를 타고 들려오는 숨소리, 그 사이로 묻어나오는 감정. 떨림.
그 모든 게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 아름답고, 아름답던 그 시절을 두고
떠나가는 너는 많이 두려울거야
‘Good bye’는 콘서트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다.
엄청나게 신나는 노래도 아니고, 또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라서 떼창을 부를 수도 없다.
대신 모래사장을 가볍게 쓸고 지나가는 잔파도처럼.
잔잔히 다가오지만, 어느새 흔적을 남기고 가는 노래이다.
천천히 쌓이고, 쌓이다, 어느새 스며든다.
단조롭던 노래에 변화가 생기고 점점 고조된다.
조금 더 풍성해지는 사운드.
그리고 클라이막스로 다가가던 그 때에,
뚝
반주가 끊겨버렸다.
“!”
직장인은 눈을 크게 떴다. 직장인 말고도 콘서트장에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 하필 지금!’
아쉬움이었다.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었는데, 하필 지금 이런 사고가 나다니.
그 다음으로는 몰입이 끊긴 것에 대한 짜증과, 무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스탭들은 당황스러운 듯 무전을 쳤고 한태영도 무대 위로 올라가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때였다.
- 회색빛으로 물들 시간속에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무대 위로 고정시켜버렸다.
어딜 눈을 돌리냐며, 시선을 떼놓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여전히 반주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천마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천마는 이내 기타에서조차 손을 떼고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 같은 시간 속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너를 기다려
good bye, oh good bye
그저 목소리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공간을 꽉 채운다.
홀로 오롯이 빛나는 것처럼.
직장인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의 팔뚝에는 소름이 돋아있었다.
- Good bye but don’t worry
‘cause we’re waiting here so good bye
na nananan na nanana na-
둥글고 섬세하게 다듬은 보컬은 마치 악기와도 같았다.
그리고 천마의 노래는 마침내 끝이 났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가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천마도,
아래에서 여운에 잠긴 관객들도.
정적에 휩싸였지만, 같은 음악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연결감이 여전히 그들 사이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뒤.
“하아.”
직장인은 저도 모르게 숨을 내뱉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천마의 무대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
게스트 무대가 끝나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처음 콘서트에 섰고, 그 여운은···죽여줬다.
농도 높은 감정으로 가득 찬 바다에 푹 잠겨있다가 꺼내진 느낌.
아직도 그 잔해들이 내 몸에 진득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시 서고 싶다.’
더, 더, 더 무대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내 곡으로 꽉 채워서.
그렇게 혼자 감상을 정리하다가 이제 슬슬 퇴근하려고 하는데, 마침 콘서트를 마무리한 한태영이 들어왔다.
한태영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천마 씨! 아직 안 가셨다고 해서 왔어요. 갑자기 반주가 끊겨서 놀랐을 텐데 죄송해요. 하필 천마 씨 첫 무대에서 이러냐.”
딱히 상관없었지만, 한태영은 꽤나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반주는 왜 갑자기 끊겼대요?”
“원래 하는 음향업체가 있었는데, 이번에 콘서트 기간을 늘리면서 다른 음향업체랑 했거든요. 그쪽에서 실수를 한 모양이에요.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결과가 좋았으니까 다행이죠.”
한태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개쩌는 무대로 수습을 해주지 않았다면, 분위기가 싸해질 뻔했다.
덕분에 한태영도 문제없이 막콘 마무리를 잘할 수 있었다.
“진짜 천마 씨가 저 살려줬다니까요. 그런데 노래 진짜 뭐예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방송으로 들었을 때와는 그냥 차원이 다르잖아요!”
그야 뭐, 내공을 썼으니까.
한태영은 꽤 흥분했는지 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다시금 오늘 무대를 곱씹었다.
전성기 때 내공이 있더라면 콘서트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환각에 빠지게 할 자신이 있는데.
그때 한태영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오늘 부른 군대송도 좋던데, 새로 만든 거죠?”
“형이 군대 간다길래 특별히 만들었죠.”
“어? 뭐야? 그러면 내꺼네?”
이 자식 봐라?
나는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지만, 한태영은 뻔뻔했다.
그는 천마가 어썸뮤직에 들어와 한솥밥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그게 어그러져서 많이 아쉬워했다.
‘제대하면 천마 곡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뮤지션은 항상 더 좋은 곡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군대송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이별 노래나 다름없는 ‘Good bye’도 너무 좋았다.
한태영은 대놓고 욕심을 부렸다.
“스타일도 나랑 딱 비슷하고 하나만 선물해주면 안돼요? 군 입대 선물? 어때요?”
나는 피식 웃었다.
“제대나 하고 오시죠.”
한태영이 툴툴거렸다.
“천마 씨 군대 갈 때 두고 봅시다. 얼마 안 남았어요.”
난 아직 스무 살이다. 군대는 무슨.
어쨌든 한태영과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졌고, 나는 대기실에서 나왔다.
이제 한태영이 준비해준 차량을 이용해서 집으로 갈 예정이다.
그리고 스탭의 안내를 받아 지하주차장으로 나오자마자,
“천마다!”
“어? 천마야! 대박대박!”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방금 콘서트를 본 사람도 있고, 티켓팅에 실패해서 퇴근길에라도 보려고 온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는 내 이름이 적힌 네온사인이 나왔다.
그 환호가 열렬해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꺄아아아악!”
“천마님 교주님 눈 마주쳤어!!!!”
내 리액션을 보자 목소리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콘서트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적으로 맞닿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항상 거리감이 있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코앞에서 보는 건 또 달랐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오늘 무대 어땠어?”
“너무 좋았어!”
“다시 불러줘요!”
“나도 교인 시켜주세요!”
뭐? 교인을 시켜달라고?
마지막에 이상한 말이 들린 것 같기는 한데, 대충 좋았다 잘했다는 말이 섞여 나왔다.
나는 흐뭇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나중에 나도 콘서트 할거니까 와라.”
다시 사람들이 왁왁거리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흥분해서 스탭도 나더러 이제 차로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차에 타려고 하는데,
“천마야!!!!”
고함과 함께 어떤 물체가 날아왔다.
옆에서 스탭이 헉소리를 내며 나를 뒤로 끌었다.
“위험해요!”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나를 향해 던진 거 같기는 한데, 방향 조준이 잘못됐는지 훨씬 높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대신 이대로 가다간 저 물건이 내가 탈 차를 넘어 저기 뒤쪽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팬이 준 선물인데, 그렇게 둘 순 없지.'
나는 스탭의 손을 부드럽게 풀고, 차 보닛을 밟고 뛰어올랐다.
타악!
물건을 잡아채고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
남의 차를 밟아서 조금 걱정됐는데 다행히 경공 실력이 어디 간 건 아닌지 흔적은 남지 않았다.
안심하며 물건을 확인해보니,
“···재킷?”
그쪽 재킷을 나한테 왜 던진 거지? 입으라고?
내가 조금 당황하며 있자 갑자기 사람들이 너도나도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슬로건부터 시작해서 인형이랑 초콜릿, 꽃다발들까지.
맞는다고 다칠 물건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휙휙 잡아채며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날, 돌아가는 차 안에는 내가 아크로바틱하게 잡아낸 각종 선물들이 가득 찼다.
.
.
.
천마가 게스트로 온 막콘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음향사고 직캠 영상부터 퇴근길 곡예 영상까지.
수많은 쇼츠와 짤이 돌아다니면서 이슈가 되고있다.
그리고 옥수진은 그 영상을 보며 마침내 결심을 내린다.
< 콘서트에서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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