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앨범 (1) >
옥수진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한태영 막콘의 직캠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날 천마는 ‘Good bye’를 불렀고, 무대 사고에도 불구하고 레전드를 찍었다.
‘나도 이때 갔어야 했는데!’
옥수진은 직캠영상을 일곱 번째 돌려보면서 생각했다.
이 곡은 옥수진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한태영의 콘서트를 위해서 준비한 노래인지, 가사며 분위기며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 콘서트에 최고로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사고로 반주가 끊겼을 때였다.
모든 소리가 끊긴 상태에서 천마 혼자서 목소리로 무대를 꽉 채우는 순간,
옥수진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소름 돋은 팔뚝을 쓸어내린 옥수진은 영상을 두번정도 더 돌려보고 이제 댓글로 내려갔다.
당연하지만 칭찬 일색이었다.
한태영 팬들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천마는 호감이었다. 천마의 곡 덕분에 한태영이 1등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옥수진도 편한 마음으로 댓글을 즐길 수 있었다.
- 가창력 하나 진짜 ㄹㅈㄷ
- 형 진짜 사람들 많은데서 초능력 쓰지 말라니까;;;;;
- 분위기도 안 망치고 무대도 완벽하게 끝내고···.
- 무대사고 나서 천마가 갓인줄 알았다
- 왜 작곡가임? 가수해줘ㅠㅠㅠㅠㅠㅠㅠ
- 성량미쳤냐고ㄷㄷㄷㄷㄷㄷㄷ
- 무반주로 이렇게 꽉 채워서 부를 수 있다니···근데 왜 가수아님?
- 아무리 아름다운 악기도 목소리만 못하다는 걸 보여준 레전드 무대
- 음향속에 숨겨진 찐천마ㅠㅠㅠㅠ이런 사고 너무 좋다···.
- 오ㅐ 무반부 부분만 돌려보고잇냐
- 이거 음원 안내주나요? 앨범 나오면 100장 살게요
옥수진은 괜히 뿌듯해졌다.
천마가 작곡으로 유명해졌기는 하지만 사실 노래도 진짜 잘하는데.
사람들이 이제 그걸 알아봐 주는 듯했다.
옥수진은 다시 한번 천마의 말을 떠올렸다.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충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은 필요한 법이지.’
그때 천마는 칠십 년은 더 산 할아버지 같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지만 그가 남긴 말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옥수진은 천마의 말대로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천마의 성장 가능성이라.
5개월 전만 해도 구독자 4명 (그중에 3명은 부모님과 본인)인 채널이었는데, 지금은 100만 명이 넘는 뉴튜버로 성장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일반인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과연 여기가 끝일까?
이렇게 반짝했다가 식어버릴 인기일까?
‘그렇지는 않지. 실력은 진짜니까.’
천마에게는 이 인기를 꾸준히 이어나갈 실력이 있었다.
천마와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는 옥수진은 알고 있다.
천마는 아직 가지고 있는 재능의 절반도 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그 재능의 편린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한다면 나중에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천마의 성장 가능성에 조금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천마가 정말 범죄라도 저질러서 자폭하지 않는 한, 지금보다 훨씬 대단해질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럼 내가 진성전자에 간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진성전자는 대기업이며 연봉도 높다.
하지만 근속연수가 짧고 퇴사율도 높은 편이다.
거기에 디자인팀은 원래 업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편이고.
'진성전자에서 주는 복지 포인트까지 쳐도 천마가 월급을 더 많이 주네.'
10년 뒤, 아니 5년 뒤만 비교해도 금방 답이 나왔다.
5년 뒤에 자신은 진성전자에서 잘해봐야 대리로 일하고 있겠지.
하지만 천마의 옆에서라면 창립 멤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누가 자신을 더욱 필요로 하는지도 확실했다.
진성 전자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그저 직원 1이다.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천마는 누구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저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 일하는 것 보다, 진심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마랑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걸.”
아무리 생각해도 진성전자에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천마의 말대로였다.
충분히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래서 옥수진은 결심을 했다.
천마 코인에 탑승하기로.
*
나는 옥수진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장소는 늘 만나던 집 근처의 그 카페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앉자마자 옥수진이 말했다.
“저 진성전자 때려치웠어요.”
“켁”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사레들릴 뻔했다.
“뭐? 갑자기?”
“왜요. 천마님이 저 영입한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너 계약조건도 안 들어봤잖아.”
옥수진이 생긋 웃었다.
“천마님이 알아서 잘 챙겨주시겠죠.”
“물론 그렇기는 한데.”
나는 얼떨떨했다. 솔직히 몇 번 더 설득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정리하고 올 줄이야.
마침 계약서도 가져왔기 때문에, 내친김에 조건을 조율하기로 했다.
나는 계약서를 내밀며 말했다.
“읽어보고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말해.”
옥수진은 계약서를 보는 건 처음이지만 꼼꼼히 보기로 했다.
연봉, 수당, 근로 복지까지 중요한 사항을 확인할 때마다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뭐야, 왜 이렇게 좋아?’
옥수진은 눈이 커진 채 계약서를 뚫어져라 보았다.
조건이 너무 좋았다.
연봉이 쎄고 복지가 좋다는 외국계 기업에서나 볼 법한 조건들.
옥수진은 아예 휴대폰으로 ‘근로계약서꿀팁’ ‘사회초년생을 위한 근로계약서 상식’ 등을 검색까지 하면서 세 번 더 검토했지만, 독소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물었다.
“천마님 이거 이상한데요.”
“···? 뭐가?”
“조건이 너무 좋아요.”
“뭔 개소리야."
"이거 혹시 그런건가요? 저 집에도 가지 말고 일하라는 큰그림?"
나는 피식 웃었다.
"싸인이나 해.”
옥수진도 마주 웃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은 펜을 잡고 시원하게 사인을 했다.
그녀의 손길에는, 이제 아무런 고민도 없었다.
옥수진은 천마신교 레코즈의 노예···아니, 직원 1호가 되었다.
*
천마신교 레코즈
마침내 인테리어까지 끝내고 이사까지 마쳤다.
이번에도 부모님께서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사업을 수십 년 동안 해오신 분들이라서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나는 부모님께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영상통화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자리를 잡아서 다행이긴 한데, 회사 이름이 촌스럽게 그게 뭐니. 천마신교 레코즈라니···.”
그러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무림 엔터가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여봇!”
뜨끔했다.
사실 저것도 이름 후보에 있었던 건데···.
아무튼 ‘천마신교 레코즈’가 설립되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집 근처에 사무실을 임대했다.
[天魔 (천마)]
멋지게 간판도 걸어두었다.
직원은 아직 옥수진 한 명뿐이다.
하지만 연봉이나 복지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재택근무를 하면 됐고, 높은 기본급에, 조회수에 따른 인센티브도 확실하게 제공했다.
거기에 회사에서 무상으로 사과 로고가 그려진 노트북과 일체형 컴퓨터를 제공했다.
디자이너들이 이 사과 제품을 좋아한다던데, 옥수진도 내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
“와 대박. 이거 제꺼에요?”
“그래.”
“제 평생직장 할게요. 감사합니다. 우왕아아!”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실에 사람들이 놀러 오기 시작했다.
“짠! 1호 가수 등장이요!”
가장 먼저 천마신교 레코즈의 첫 아티스트가 된 미니롱부터.
롱서아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우와, 깔끔하게 인테리어 잘 해놓으셨다! 쇼파도 있네요. 잠자기 딱 좋겠다!”
“천마님한테 이런 센스는 없을테니, 실장님이 인테리어를 다 하셨나봐요.”
···어떻게 알았지?
그다음에는 젤리크러쉬가 찾아왔다. 얘들은 마침 6주간의 성공적인 활동을 마치고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너희 안 바쁘냐?”
“바빠요! 그런데 너무 좋아요!”
젤리크러쉬는 이번에 음악방송 1위를 휩쓸며 자리매김을 했다.
어제도 회의를 하느라 늦게 잤다고 했지만, 얼굴은 싱글벙글 좋아 보였다.
리더가 말했다.
“저희 사장님께서 직접 못 찾아봬서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다음에 따로 찾아뵙겠다고 하시네요.”
“됐어. 와봤자 할 얘기도 없을 텐데.”
그러자 리더가 조용히 웃는다.
“무슨 소리를 하세요. 저희 다음 앨범도 프로듀싱 해주셔야죠.”
“···?”
어째서 일이 그렇게 되는 거지?
한태영은 군대에 있으므로 화환과 선물세트를 보냈고, 마지막으로 이승호와 강해리가 찾아왔다.
나는 같이 온 두 사람을 보고 놀랐다.
둘이 같은 레이블 소속이긴 하지만 지난번 사건 이후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들었었는데.
“뭐야? 둘이 같이 왔네요?”
강해리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여기 앞에서 만났어요.”
“하하하. 우리 강 피디님이 여기 오신다는 거 알았으면 제가 모셔다드렸을 텐데. 너무 아쉽게 됐네요!”
강해리는 능글맞게 웃는 이승호를 무시하고, 나에게 화분을 건네주었다.
“축하드려요. 천마 님 처음 뵀을 때부터 대단한 작곡가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대표님이 되실 줄은 몰랐어요.”
“해리 씨가 처음에 많이 도와줬었죠.”
나는 강해리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강해리가 사운드클라우드에 고백송을 올리라고 조언을 해줬고, 그게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었다.
“제가 돕기는요. 천마 님 곡이 좋았던 건데.”
“덕분에 빠른 궤도에 오른 건 사실이죠.”
우리 분위기가 훈훈해질 찰나.
“이렇게 모인 김에 뭐 좀 시켜 먹을까요? 개업날에는 짜장면이죠.”
나는 벌써 쇼파에 앉아서 배달 어플을 뒤적거리고 있는 이승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너 내가 준 곡은 연습하고 있냐?”
이승호가 시선을 피했다.
.
.
.
우리는 음식들을 시키고 둘러앉았다.
내 손에는 맥주가 들렸다.
내 개업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의 손에도 맥주가 들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젤리크러쉬 애들은 빼고.
나는 맥주잔을 들고 건배사를 외쳤다.
"천마신교 레코즈를 위하여!"
내 선창에 다른 사람들도 웃으며 건배사를 따라했다.
그리고 미니롱의 송서아가 재빠르게 외쳤다.
"다음에는 1등 하게 해주세요!"
그러자 젤리크러쉬의 막내 예리도 외쳤다.
"우리도 또 1등 하게 해주세요! 시상식에서 상도 받고 싶어요!"
그리고 이승호도 한마디 했다.
"다음에는 좋은 곡을 받을 수 ㅇ···."
물론 내 눈빛에 이승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나라는 공통분모 덕분일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금새 친해졌다.
음식과 술이 돌고, 사람들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신교로 돌아온 느낌이네.'
그때도 부하들과 종종 모여서 연회를 벌이고는 했었는데.
괜스레 그때의 생각이 났다.
천마신교 레코즈 개업 축하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내일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볼게요."
요즘 매일같이 바쁜 젤리크러쉬를 시작으로,
"저희도 내일 라디오가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민지에게 끌려가는 송서아와,
"오랜만에 봐서 좋았어요. 종종 방송에서 수면용 노래도 좀 불러주세요."
강해리와 함께 미련이 남은 눈빛으로 나가는 이승호까지.
다들 다음날을 준비하러 떠났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니 사무실이 휑했다.
내가 말했다.
“이제 직원도 뽑고, 연습생도 키우고, 내 앨범도 내고, 가수도 영입하고, 걸그룹도 내야지.”
“할 게 많네요, 그중에서 천마님이 가장 하고싶은 건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앨범 내는 거.”
내 앨범을 내서, 한태영처럼 콘서트를 열고 거대한 홀을 나만을 보러온 사람으로 꽉 채우고 싶다.
“좋아요. 그럼 천마 님 앨범부터 내요.”
우리는 마주 웃었다.
< 첫 앨범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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