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앨범 (2) >
옥수진의 어머니는 계 모임에서 열심히 딸 자랑을 하고 있었다.
“어휴, 우리 딸이 얼마 전에 취업을 했다니까. 내가 진짜 한시름 놨지 뭐야.”
"수진이가 취업을 했어?"
“정말? 어디에?”
친구들의 물음에 어머니는 씰룩거리는 입가를 누르며 말했다.
“진성전자 디자인팀에. 내가 신경 안써도 혼자서 떡하니 붙어 오더라니까. 호호홋”
“어머. 거기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던데! 수진 엄마 좋겠다.”
"이거 나중에 수진 엄마가 밥 한번 사야 하는거 아냐"
역시나.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심.
옥수진의 어머니는 어깨가 으쓱해진 채로 그 모든 것들을 즐겼다.
그때, 한 사람이 초를 쳤다.
“어렵기는. 그쪽 학교가 진성 재단이라서 취업 연계하면 맨땅에서 헤딩하는 것보다 쉽게 들어가지.”
옥수진의 어머니는 샐쭉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승희 엄마였다.
승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옥수진과 전교 1, 2등을 다투던 사이었다.
하지만 승희는 수능을 못 봐서 1년 뒤에야 H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일까. 두 아이의 엄마도 사소한 일로도 경쟁심리를 느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년이 태클을 걸어?’
‘어디서 자랑질이야!’
마주친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옥수진의 엄마가 반격에 들어갔다.
"취업 연계 전형도 요즘은 경쟁이 만만치 않다고 하더라고요. H 대학 애들끼리도 10:1은 가뿐히 넘는다던데. 수진이는 조기 졸업까지 하고 진성전자에 '다이렉트'로 합격했지 뭐에요. 재수 안해서 다행이죠. 호호호."
재수에 민감한 승희 엄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을 넘어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때, 이 분위기를 못 읽은 한 사람이 말했다.
“근데 수진이가 디자인팀에 입사했다고? 내 친구 아들도 거기에 재작년에 입사했잖아. 그쪽도 디자인이라고 들었는데.”
“어머, 정말? 잘됐네! 잘됐어. 우리 딸 좀 챙겨달라고 해줘요. 아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알았어. 내가 말해둘게.”
옥수진의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고 취업턱을 낸 후 돌아왔다.
물론 승희 엄마는 약속이 있다고 먼저 일어났다.
승희 엄마의 태클이 있었지만, 그날 계 모임에서 승자는 옥수진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딸래미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며칠 후, 이 일에 대해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임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 수진 엄마. 잘 지냈어? 근데 수진이가 진성전자 들어갔다고 했지?
“응. 맞아. 내가 그래서 취업턱까지 냈잖아.”
- 진성전자 본사 제품디자인팀 옥수진 사원, 맞지?
"그럼. 저기 서초에 있는 진성전자 본사 디자인팀이야."
- 근데 수진엄마. 내가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진성전자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데?
“뭐, 뭐라고?”
옥수진 어머니는 눈을 끔벅거렸다.
이게 무슨 말이야? 진성전자에 수진이가 없다니?
- 본사 인트라넷에 검색했는데 정말 안 나온데. 수진이 본사가 아니라 다른 데 디자인팀에 합격한 거 아니야? 그 왜, 수원이나 천안 쪽에도 회사가 있잖아.
그럴 리가 없다.
거기에 합격했으면 당연히 자취를 시켰겠지. 서울에서 거기까지 통근을 어떻게 하나.
- 아니면 디자인팀이 아닌거 아닐까?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볼까?
그녀의 눈으로 합격 메일을 봤다.
거기에는 분명 디자인 팀에 합격했다고 나와 있었다.
조작의 여지도 없다.
딸래미의 메일함에 있는 건 진성전자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메일이었다.
심지어 옥수진은 요즘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진성전자에 없다면 그럼 얘는 도대체 어디를 다니는 걸까?
옥수진 어머니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수진엄마?
옥수진 어머니는 가까스로 말했다.
“아니야. 내가 다시 확인해볼게. 확인해줘서 고마워 정말. 내가 나중에 밥 살게.”
정신을 차린 옥수진의 어머니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녀의 딸이,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확인하기 위해.
*
옥수진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짜 새로 시작하는구나!’
조금 전까지 천마와 어떻게 앨범 작업을 진행할지 얘기하고 왔다.
앨범을 몇 번 내본 미니롱이 조언을 많이 해줬다.
‘그리고 이참에 직원을 뽑기로 했지. 유통사나 음반제작팀에서 일해본 사람을 뽑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옥수진은 오랫동안 이쪽을 깊게 팠다.
덕분에 기획에 관한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무 경험이 거의 없다.
아니, 일반적인 업계 종사자들에 비해서는 없는 수준이다.
이 부분에서 옥수진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천마가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린 만큼, 옥수진도 본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촬영이랑 편집까지 해줄 수 있는 사람도 따로 두고 싶다.'
채용 조건도 좋았으니 분명 많은 사람이 지원할 거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은 그녀를 들뜨게 했다.
옥수진은 신나는 기분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띡띡띡띡 띠리릭
그리고 거실에 있던 어머니가 현관으로 나왔다.
“옥수진, 너 뭐하다 왔어?”
옥수진이 진성전자에 취업한 이후, 어머니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딱딱하게 굳은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겁이 덜컥 났다.
‘설마 눈치채신건가?’
그녀는 아직 가족들에게 진성전자 취업을 포기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그냥 나중에 말하자고 생각했었는데.
옥수진은 태연한 척 신발을 정리했다.
“저요? 일하다가 왔죠.”
“어디서?”
옥수진은 그 질문에 어머니가 모든 걸 알았다는 걸 알아챘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얘가 진짜!!!!!”
어머니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심호흡을 했다.
“엄마가 다 확인해봤어. 네 이름이 진성전자에 없다더라. 혹시 본사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간거야?”
“아니요.”
하지만 어머니의 심호흡은 소용이 없었다.
“그럼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데!!!!”
어머니의 호통이 커진다.
방에 있던 가족들도 시끄러운 소리에 하나둘씩 밖으로 나온다.
가족들의 시선이 옥수진에게 꽂힌다.
하지만 그럴수록 옥수진은 이상하게 침착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말씀을 드리지 못한 건 죄송하다.
하지만 옥수진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천마의 회사에 취업하기로 결심한 이후, 어떻게 하면 천마를 세상에 더 알릴지 계획하고 상상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래서 옥수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 사실 다른 곳에 취업했어요.”
“뭐?”
“천마신교 레코즈라는 곳이에요. 천마라는 뉴튜버가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연봉도 다른 대기업 신입사원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게 받고 근무 환경도 좋아요."
가족이라면, 진심이 통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그래서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옥수진!!!!!!!!!”
하지만 어머니는 옥수진을 이해하지 못했다.
옥수진은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지금 귀청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그대로 달려들어 그녀를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이 미친 것아. 너 제정신이야? 뭐, 뉴튜버? 천마? 지금 엄마가 동네방네 다 자랑하고 다녔는데 엄마 생각은 하나도 안했어? 내가 진짜 쪽팔려서.”
옥수진은 울고 싶었다.
“엄마···.”
“나가.”
“······.”
“내가 너 겨우 뉴튜버 따까리 시키려고 지금까지 키운 줄 알아? 나가! 당장 나가!!!!!”
그래서, 옥수진은 그냥 나와버렸다.
속상했다.
가족이라면 그녀의 결정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도 홧김에 한 말이고, 몇 시간 후면 진정하시겠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진성전자를 포기할 때만 해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어졌다.
이게 정말 잘한 일이었을까?
모르겠다.
옥수진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 잘 곳이 없으니 일단 사무실에서 자야겠다. 소파를 사두길 잘했네.’
그렇게 간 회사에는 아직도 천마가 있었다.
*
옥수진이 퇴근을 한 후,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전화를 했다.
- 선우야, 일은 잘 되고 있니?
“네. 이제 슬슬 사람도 뽑고 제 앨범도 내려고요.”
어머니와 회사를 차린 이후의 근황 토크가 오간 후,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 선우 너는 니가 알아서 척척 잘하니 다행이지, 우리 집 딸래미는 어찌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여동생을 떠올렸다.
“지가 알아서 하겠죠.”
- 너는 진짜 동생한테 신경 좀 써. 오빠가 돼서. 니 동생이 올해 수능 보잖아. 전화도 종종 해주고 그래라.
“제가 걔랑 전화를요?”
지난번에 집에 다녀온 이후 카톡을 해봤는데··· 씹혔다. 전화는 무슨.
어머니께서 동생을 신경 쓰라는 폭풍 잔소리를 하신 후, 최근 보내드린 안마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 참. 요즘 네 아빠랑 아침마다 안마송 듣고 있잖아. 그거 노래 좋더라.
- 그것만 들으면 몸이 어찌나 시원한지, 요즘 20년은 젊어진 것 같다니까.
저번에 안마송을 만들었던 걸 재녹음해서 1시간 버전으로 보내드렸다.
보컬이 없이 악기들로만 구성된 인스투르먼트 트랙인데, 아침에 명상하면서 들으실 때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좋아하셨다.
- 그런데 선우야.
- 니 동생 공부 좀 열심히 하게 집중 잘되는 음악 같은 거 만들어주는 건 어때?
- 막 들으면 집중이 잘 된다거나, 클래식에 그런 거 있잖니.
여동생이 내 음악을 퍽이나 듣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네. 시간날 때 한번 해볼게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 짓고 나는 치킨을 시켰다.
치킨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다음 앨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기로 계획했다.
배달이 오고 치킨 다리를 하나 집어 드는데,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옥수진이 들어왔다.
“???”
나는 큼지막한 닭다리를 뜯어먹다가 들어오는 옥수진을 보고 놀라 멈췄다.
조금 전만 해도 기분 좋게 퇴근한 애가 갑자기 죽상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뭘 할까 라고 중얼거리며 신나게 퇴근하던 게 바로 몇 시간 전인데.
옥수진은 머리가 산발이었고, 울고 있었다.
화장은 번져있었고, 눈은 퉁퉁 부었다.
어디 가서 맞고 돌아온 모습.
“뭐야? 누가 이랬어?”
옥수진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혼자서 뭐든 잘 해내는 애가 이러는 걸 보니 나는 당황했다.
"어··· 혹시 치킨 먹을래?"
나는 치킨을 건넸지만 옥수진은 더 서럽게 울었다.
이게 아닌가?
나는 한개 밖에 남지 않은 닭다리를 골랐다.
“야, 야. 울지마. 다리로 줄까?”
옥수진은 야무지게 닭다리를 받아먹었다.
이게 맞았나보다.
아무래도 술이 필요할 거 같아서 나는 맥주를 꺼냈다.
잠시 후 진정한 옥수진이 맥주를 쭉 들이키고 탁 내려놓았다.
“저 사실 진성전자 합격 포기한 거 부모님께 말씀을 안 드렸었어요. 근데 오늘 걸렸어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옥수진의 어머니는 딸래미가 진성전자에 가지 않은 것에 화가 많이 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곳이 내 밑이라서 더 화가 나셨다고 한다.
분명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복잡하게 됐네.'
옥수진은 나와 상황이 달랐다. 내 부모님은 내가 음악을 하는 걸 이해해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지금도 두 분은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시는데.
물론 옥수진의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딸래미가 진성 전자에 합격했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해놨는데, 갑자기 나와 일한다고 하니 속상하실 만도 하지.
진성전자는 이미 모두가 아는 최고의 기업이지만, 나는 ‘천마신교’를 세운 이후 증명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옥수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무림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바로 소교주 경합.
전대 천마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천마신교 내에 있는 쟁쟁한 가문이 후보로 몰렸다.
초대 천마때부터 신교에 충성을 바친 가문에서부터 대대로 호법과 장로들을 배출하는 가문까지.
그에 비해 나는 세력이 없었다.
내 뒤에 있는 거라고는 스승님이 전부.
그때 삼 장로의 아들이 나에게 왔다.
원래 삼장로는 내가 아니라 다른 후보를 지지하려고 했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나에게 붙은 것이다.
‘그때 보통 지랄이 아니었지.’
호적에서 판다느니, 의절하겠다느니, 너 때문에 가문이 망하게 되었다느니.
정말 온갖 난리를 쳤다.
그런데 결과는?
당연히 내가 소교주가 되고, 삼 장로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아들 덕분에 숙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과.
진성전자의 말단 사원보다 내 옆에 있는 게 더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말했다.
“인정받게 해줄게.”
그걸 보여주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침 돈도 들어왔겠다 이제 내 정규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잘 됐네.”
옥수진이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 이번 앨범으로 차트 올킬정도 하면 되려나?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 첫 앨범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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