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39화 (39/191)

< 첫 앨범 (3) >

옥수진은 내 말을 듣고 조금 기운을 회복한 것 같다만, 당장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눈치 보여요···. 이참에 독립할까요?”

하긴. 누가 이런 상황에서 집에 들어가고 싶겠어.

근데,

“독립할 돈은 있고?”

“...일단은 고시원에서 살까 생각 중인데요.”

요즘 고시원이 잘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옥수진은 내 첫 직원이다.

그렇게 대우해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내 집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그녀가 위치는 알고 있다.

옥수진은 일 때문에 내 집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었으니까.

옥수진은 기겁하면서 거절을 했지만, 내가 어차피 오늘 곡 작업 때문에 원래부터 사무실에서 잘 예정이었다고 하니까.

“아, 그러면 하루만 빌릴게요.”

금새 태도를 바꿨다.

“······.”

어쨌든 옥수진을 보내버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앨범에 어떤 곡을 담을지 구상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를 알릴 수 있는 노래.

내 머릿속에 수많은 곡들이 스쳐 지나간다.

무림맹과 사황성의 연합 앞에서 교인들을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부터, 무림을 일통하고 만들었던 승리의 노래까지.

무림에서 만든 곡은 많았지만, 이번 앨범에는 그걸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새 노래.

‘뭐에 대해서 쓸까?’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다.

무림에서 있었던 치열한 삶의 흔적, 온 천하를 발아래에 둔 시절, 그리고 돌아와서 보낸 나날.

수많은 고민은 하나로 귀결되기 시작한다.

나.

나에 대한 것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천마이다.

지배하고 군림하고 추앙받는 게 당연한.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다.

내가 이곳에 돌아왔으니, 온 세상이 나를 기억하리라.

세상에 던지는 출사표.

그게 내 첫 타이틀곡이 될 것이다.

주제를 정하자 악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808 베이스로 묵직하면서도 선명한 비트를 찍는다.

세상을 짓누를 무게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사운드를 배치한다.

둥- 둥- 둥-

그리고 그 위를 당당히 밟고 서는 목소리.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오연함을 담아서.

- 이미 해본 게임, 정상을 찍은 네임

네 머리 꼭대기에 서는 건

또다시 나일테니

지금까지 만든 노래 중에 가장 패도적이다.

거침없고 웅혼하다.

거친 악기의 사운드와 장엄한 목소리가 막힘없이 밀어붙이며 올라가고, 분위기가 고조된 순간.

- 둠둠둠둠둠둠둠둠둠

replay replay

중독성 넘치는 훅이 나온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브레이크가 걸리며 모든 악기가 멈춘다.

그 정적 위를 채우는 건 오직 목소리.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하게.’

목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여러 톤의 목소리를 녹음해 겹겹이 쌓아 올린다.

아카펠라였다.

나는 타이틀곡 ‘둠둠둠 (replay)’를 시작으로 1집에 넣을 곡들을 쭉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떠오른 심상들을, 나는 거침없이 노래로 만들었다.

그렇게 내 첫번째 앨범에 들어갈 다섯 개의 곡을 모두 작곡했을 때쯤 옥수진이 다시 나타났다.

“뭐야 왜 다시 왔어?”

옥수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예요? 천마 님이야말로 안 잤어요?”

“어?”

그러고보니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이다.

꼬박 12시간을 작업한 것이다.

오랜만에 몰두해서 작업을 해버렸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1집 노래 다 나왔다. 들어볼래?”

“···네? 벌써요?”

*

천마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5개의 곡.

옥수진은 헤드셋을 끼고 밤새 천마가 만들어낸 작업물을 클릭해보았다.

[둠둠둠 (replay)]

이 노래는 5개의 곡 중에서 유일하게 보컬 녹음까지 끝낸 노래이다.

둥 둥둥 둥 둥둥둥

시작과 함께 무게감 있는 베이스와 드럼 사운드가 뒤섞여 흘러나온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위협적인 것이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고동 소리.

단순하면서도 무한히 변주되는 비트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 이미 해본 게임, 정상을 찍은 네임

이제는 익숙해진 천마의 목소리가 묵직한 비트 위를 밟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옥수진의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처음 보는 곳이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언뜻언뜻 일렁이는 화광이 보인다.

어째서 이걸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천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강렬해서 머릿속에 심상을 밀어 넣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대한 공간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눈에 열망이 깃든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천마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된다.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물감이 번지듯.

십만 명의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 천마

하나의 목소리로 외친다.

- 천마

새로운 천마를 드높여라.

십만 명의 목소리가 하나 되며 공간을 채운다.

그들이 있는 공간부터 어두운 하늘까지.

그들은 새로 등극한 천마를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새 시대를 열기를 기대하면서.

그 사이에서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

그때 그녀를 허공으로 잡아채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둠둠둠둠둠둠둠둠둠

replay replay

I play once again

그녀는 문득 시선을 돌렸다.

파도처럼 둘러싼 사람들 너머,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향해.

그곳에는 전각이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전각이.

목소리가 고조되고 불꽃이 하늘을 뒤덮을 듯이 타오른다.

높고, 높고, 높은 단상 위에 한 사람이 있다.

천마

그것은 바로 천마였다.

지고하고 오만한 지배자는 홀로였지만, 그 존재만으로 모든 걸 압도한다.

짓누르고, 군림한다.

십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천마의 이름을 외친다.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 그 환호를 받아들인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이질감까지 든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울렸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

.

.

옥수진은 긴 숨을 내쉬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곡 전체에 이어지는 강한 긴장감, 저 아래까지 떨어졌다가 갑자기 위로 솟구치며 넓은 공간 속으로 뛰어든다.

짜릿함이 있는 곡이다.

곡에서 패도적인 기세가 느껴졌다.

내가 마침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가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중독적이다.

젤리크러쉬의 ‘티키티키’를 만든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는지, 이번에도 중독성 넘치는 훅을 들고 왔다.

- 둠둠둠둠둠둠둠둠둠

replay replay

I play once again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동 소리는 아직도 귀에 울리는 듯했다.

노래는 끝났지만 옥수진은 홀린듯이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번, 그리고 한번 더.

그녀는 ‘둠둠둠 (replay)’을 몇 번은 더 돌려 듣고는 이어서 2번에서 5번까지 트랙을 쭉 이어들었다.

아직 남은 곡에는 보컬이 입혀지지 않았지만 심상치 않다.

완성되면 분명 놀라울 거다.

‘천마가 천마했네.’

옥수진은 사람들이 채팅창에서 늘 쓰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옥수진은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엄청난데요? 홀린 것처럼 계속 듣게 돼요. 이 정도면 수능 금지곡으로 지정해야겠는데요?”

옥수진의 칭찬에 차선우는 씩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옥수진은 그 모습이 환상 속에서 봤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좋아. 이대로 녹음하자. 대신 미디로는 곡의 강한 느낌을 살리기 힘들어서 세션을 써야겠어.”

“그건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옥수진은 천마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많은 채팅을 받았다. 그중에는 난다긴다하는 실연자도 있었다.

물론 차선우는 모조리 씹어버렸지만 옥수진은 모두 기억해뒀다.

차선우가 녹음을 하는 동안, 옥수진은 본격적으로 음반제작과 프로모션, 마케팅을 시작할 예정이다.

분명 차선우는 빨리 끝내버릴 테니까 옥수진 역시 부지런해야 했다.

하지만 옥수진 혼자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 혼자 모든 앨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없다.

새로운 직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차선우는 얼마 전 받은 지원서를 검토하여 면접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가 뽑을 사람은 당장은 두 명.

전반적인 앨범 제작에 도움을 줄 직원과, 옥수진을 대신해서 촬영을 도맡아줄 직원.

그리고 마침 두 명의 후보가 등장했다.

*

[이승호마누라]는 대학생이다.

하지만 대학생 타이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재수와 거듭되는 휴학 끝에, 어느새 마지막 학기가 다가왔다.

"시간 왜 이렇게 빠르냐."

친구들은 모두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대학생은 석사 과정을 밟을지, 취업 준비 대열에 합류할지 고민이었지만···사실 둘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대학생은 하고싶은 일이 확실한 편이었고, 잘하는 것만 잘했다.

그건 학점에서도 드러났다.

‘영상학 개론’ ‘영상역사의 이해’ 같은 이론은 거의 조져놨지만, ‘영상디자인 실기’ 같은 실기 과목은 우수했다.

사실 그녀는 이쪽에 재능이 있는 편이긴 했다.

덕질 겸 취미삼아했던 홈마 계정은 꽤 인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참에 전업 홈마로 뛰어?’

탑시드 홈마는 억 단위로 번다고 듣긴 했다.

평균 학점이 3점에서 아슬아슬하게 놀고 있고, 남들이 스펙을 쌓느라고 바쁜 사이 그녀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찍으러 다니느라 바빴으니, 어쩌면 이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휴 그래도 이제는 진짜 뭐라도 해야지."

하지만 그녀의 몸은 정직하게도 기숙사 침대에 누워 열심히 덕질을 하는 중이었다.

"...일단 이것까지만 보고할까."

그녀의 손은 자연스럽게 뉴튜브 채널로 향했다.

이승호의 팬이었던 그녀는 최근 최애가 점점 바뀌는 중이었다.

바로 천마.

대학생은 오늘도 열심히 천마의 채널에서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이건 어제 3번 본거고, 이거는 아침에 봤었고···"

벌써 대부분의 영상을 수십 번씩 돌려본 그녀였다.

"요즘은 뭐 새로운 영상이 없네. 영상 좀 많이 올려주면 좋겠다."

참고로 천마의 채널에는 거의 매일 같이 새로운 영상이 올라온다.

"그래도 수수깡님이 와서 다행이지. 아니었음 말라 죽었을 거야."

천마의 채널 초기에는 영상이 하나도 없어서 매일같이 라이브 방송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디가 오고 나서는 정말 매일같이 영상이 올라왔다.

주 3회 있는 라이브방송 [고민상담소] 편집본, 주말에 있는 [주간곡소리] 편집본.

그러다가 띵곡이 나오면 따로 녹음을 해서 [싱포유]에 올린다.

심지어 영상 퀄리티도 좋고, 인터넷 밈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재미있었다.

분명 뒤에서 수수깡이 엄청나게 갈리고 있을게 뻔히 보였지만, 대학생은 그래도 수수깡이 부러웠다.

"교주님이랑 함께 일할 수 있다니. 진짜 개부럽네."

뉴튜브를 탐방하던 그녀는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오! 교주님 새로운 사진 떴당. 이건 바로 저장해야지."

최근 그녀는 회사를 설립한 천마의 팬클럽이 가입했다.

자칭 '교인'이라고 부르는 천마의 팬클럽 사람들은 방송에서 잘 나온 사진들을 보정해서 올리고, 운 좋게 찍은 직찍 사진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대학생도 학교 축제에서 미니롱 공연을 찍던 와중에 우연히 잡힌 천마의 모습을 편집해서 올려 천마신교의 열혈교인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그녀가 열심히 천마의 사진들을 저장하고 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어? 이건?"

천마의 채널에서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 첫 앨범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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