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채용 (1) >
알람은 천마의 채널에 올라온 채용공고였다.
읽어보니 요구하는 직무역량도 대학생에게 꼭 맞았다.
"나 영상 촬영이랑 편집은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대학교에서 4년 내내 배운 게 그것밖에 없다.
거기에 덕질을 좋아하는 대학생인 만큼 촬영은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도 이승호 덕질을 하면서 홈마로 명성을 날리던 그녀다.
계정명 summer_river라고 하면 트릭커 팬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심지어 미니롱이 차트를 재등반 할 수 있었던 무대 직캠영상도 대학생의 손에서 시작했다.
"설마 이거 나를 위한 공고인건가?"
대학생은 조금씩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대학생은 천마랑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도 [주간곡소리] 첫번째 방송, ‘아기고래+여돌노래 편곡’에서 천마에게 토끼 머리띠를 씌우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혹시 천마의 영상을 촬영한다면, 언젠가 그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이건 못 먹어도 고다."
대학생은 결심했다.
천마의 회사에 이력서를 내기로.
그녀는 커뮤니티 링크에 들어가서 정성스레 양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부터 이력을 적고, 직무 경험을 써내는 것까지.
모든 게 처음이라서 서툰 그녀였지만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학생이었다.
*
그리고 또 한 명의 지원자가 있었다.
이름은 김영훈.
김영훈은 펄 엔터의 음반제작팀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숨은 고수를 찾아라’ 홍대편을 하던 시기, 친구에게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는 결국 진짜로 퇴사를 했다.
펄 엔터에 오기 전 유통사에서도 일해보고 중견 기획사에도 일해봤지만, 펄 엔터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진짜 펄 엔터는 끔찍했지.'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 출근은 필수 옵션이었다.
심지어 에이클라스 데뷔 직전에는 새벽 퇴근도 못 하고, 그냥 회사에서 살았다.
그것도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웃기는 건 펄 엔터는 이런 부분에서는 배려를 넘치도록 해줘서, 모든 숙식을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라꾸라꾸를 넘어서 캡슐형 숙박 시설에, 샤워실도 따로 있고, 중식은 기본에 조식과 석식에 야식까지 제공해줬다.
그렇게 회사 지박령으로 살아가던 세월을 견디다 못해, 김영훈은 ‘워라밸’을 외치며 결국 퇴사를 했다.
'일도, 돈도 좋지만 제일 좋은 건 쉬는 거지.'
프로필 사진을 ‘도비는 자유예요’로 바꾼 후, 그는 뉴튜브와 SNS와 웹툰을 읽으며 하루하루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특히 퇴사를 하고 가장 좋았던 건, 한태영의 막콘에서 천마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던 거였다.
홍대 버스킹 이후 천마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마침 회사에서 근무할 때 우연히 표를 얻었다.
펄 엔터에서 계속 있었다면 시간이 없어서 못 갔겠지만, 마침 김영훈은 행복한 백수였고 문화생활을 즐길 겸 콘서트에 갔다.
그때 천마가 게스트로 나와 직접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심지어 무대 사고가 있었는데도 완벽하게 관객을 사로잡는 모습이란.
홍대 ‘숨고찾’ 버스킹 무대에서 ‘happily ever after’를 듣고 천마를 찍덕하고 있던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완전히 천마에 빠지게 되었다.
퇴사 이후 매일 꼬박꼬박 라이브방송을 보는 건 물론이고, 후원도 심심찮게 날렸다.
최근 김영훈의 목표는 천마를 실제로 보고 싸인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잉여로운 백수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천마 채널에 구인공고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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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함 (음반제작/기획자/작가/PD)
본좌다.
‘천마신교 레코즈’에서 사람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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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직무역량_음반제작
- 음반 및 음원 기획 및 제작
- 아티스트 컨셉 및 프로젝트 앨범 및 곡 기획/지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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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구하나 보네? 새로 앨범을 만들려는 건가?”
김영훈은 이때까지만 해도 남일 보듯 했다.
아예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조금 더 놀고 싶었다.
‘천마랑 같이 일하면 좋을 거 같기는 한데···. 펄 엔터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요즘도 가끔 펄 엔터에서 고통받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아직은 조금 더 쉬어줘야지.'
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은 다음 ‘근무환경’란을 보니 바뀌었다.
- 재택근무 권장, 촬영 시에만 사무실 출근
- 야근하려면 대표 허락 받아야 함 (수당 챙겨줌)
- 자유로운 휴가 사용 (당일 카톡으로 쌉가능 / 마감에 지장 없는 한)
엔터 쪽으로는 꽤 빠삭하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근무환경을 가진 회사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댓글창을 보니 너도나도 눈이 돌아가서 지원을 한다고 난리였고, 김영훈도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계속 백수로 지낼 게 아닌 이상 언젠가 다시 일을 해야 했고, 그때 가서는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진 회사가 없을 게 분명해 보였다.
물론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대기업에 비해서 받는 복지는 많이 없었다.
그러나 김영훈에게 복지는 딱히 필요 없었다.
펄엔터에서 경험한 바로, 일이 많으면 복지 혜택을 누릴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매일의 근무환경이 좋은 게 최고의 복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마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였다.
‘한번 지원해볼까?’
김영훈은 예전에 적어둔 자소서를 적당히 수정해서 이력서와 함께 제출했다.
1차는 간단하게 합격했다.
사실 그의 경력으로는 불합격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펄 엔터테인먼트의 팀장으로 있었으니까.
그리고 김영훈은 오늘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자들을 시간을 두고 불렀는지, 그가 갔을 때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복도를 지나자 사무실이 나왔다.
책상은 여러 대가 있었지만, 사람은 아직 한 명밖에 없었다. 검은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
‘아. 저 사람이 수수깡인가?’
조금 어려 보이기는 했지만 얕보지는 않았다.
수수깡은 음방계의 고인물로, 그녀가 띄워줘서 거물이 된 스트리머나 뉴튜버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센스있는 편집으로 천마의 채널을 키우는데 일조한 능력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옥수진은 김영훈을 보더니 반갑다는 듯이 다가왔다.
“김영훈 씨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마실 거 드실래요? 커피, 녹차, 오렌지쥬스?”
옥수진은 그를 퍽 살갑게 대했다.
“녹차로 주세요.”
옥수진이 그를 안쪽 회의실로 안내한 후 차를 내왔다.
“지금 천마 님이 곡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어서요. 조금만 기다리면 오실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영훈은 천마가 어떤 곡을 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제 방송에서 피처링을 구하긴 하던데.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건가 보네. 첫 앨범에는 무슨 노래가 들어가려나? happily ever after는 꼭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날 홍대 버스킹에서 들었던 노래는 인상 깊었다.
옥수진이 버스킹 영상을 편집해서 따로 올려주기는 했지만, 조금 더 깨끗하게 녹음된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작업을 마무리한 천마가 들어왔다.
‘뭐야? 진짜 잘생겼잖아?’
방송에서 봤을 때도 잘생겼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실물로 보니 느낌이 확 달랐다.
무쌍에 짙은 속눈썹. 단단한 턱과 굵은 선은 상당히 남성적으로 생겼다.
지금까지는 화면으로만 봤기 때문에 그냥 화면발이 잘 받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잘생긴 것이었다.
이렇게 잘생겼는데 제이맨을 꺾고 차트 1위를 거머쥐고, 거기에 노래까지 잘 부른다고?
'부럽다 부러워.'
무엇보다 젊은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아우라가 있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 매진한 장인과도 같은 느낌.
“김영훈 씨?”
천마의 부름에 김영훈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천마 님, 아니 사장님, 아니 대표님···?”
“그냥 천마라고 부르면 돼요. 자리에 앉으시죠.”
“넵. 천마 님.”
김영훈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면접이 시작됐다.
“김영훈 씨는 펄 엔터에 다니고 있었군요. 그런데 왜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나요?”
면접 단골 질문이다.
그리고 적당한 각색이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고.
당연히 김영훈은 눈 감고도 달달 외울 정도로 준비해왔다.
천마의 눈을 바라보면서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려는 순간,
“!?”
천마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김영훈은 멈칫하고 말았다.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눈동자.
마음속까지 뚫어볼 것 같은 깊은 눈빛.
천마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울린다.
“왜 펄 엔터에서 나왔는가? 경력 쌓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을 텐데.”
저항할 수 없는 울림이 가득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 준비한 내용이 모두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저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펄 엔터의 근무 강도가 너무 높아서요. 지난번에 에이클라스 데뷔 프로젝트를 할 때 얼마나 빡빡하게 굴던지, 밤새서 결과를 만들어가면 반려시키고, 그래서 다시 만들어가면 반려시키면서 처음 게 낫다고 하고···. 일주일 동안 퇴근도 제대로 못 했어요. 또 제이맨은 얼마나 깐깐한데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저희 팀에 내려와서 누구 하나 얼려버릴 것같은 목소리로···”
그리고 김영훈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제이맨에 대한 불평을 모조리 쏟아낸 후였다.
‘씨발 망했다!’
앞으로 상사가 될 사람 앞에서 전 상사를 까다니!
‘설마 이대로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김영훈은 자신의 실수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천마의 입가가 씰룩거린 것은 보지 못했다.
‘다음 질문에서 만회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김영훈의 귓가를, 또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강타했다.
“자네가 펄 엔터에서 나온 이유는 잘 알겠네. 그러면 천마신교에 온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이 또한 면접 단골 질문이다.
김영훈은 지난 펄 엔터에서의 경험을 살려 회사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모범 답안을 준비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역시나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 님의 곡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홍대에서 버스킹 할때 천마님 노래에 반했거든요. BJ음공천마 채널에 보면, 당장 앨범에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곡이 많이 있죠. 그중 으뜸은 ‘happily ever after’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이 곡을 마케팅한다면, 먼저···.”
김영훈이 이번에는 자기의 팬심을 까발려버렸다.
음반 제작부터 홍보와 마케팅 방법, 콘서트와 관련 굿즈에 대한 생각까지···자기가 생각했던 온갖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았다.
면접이 모두 끝난 후 천마의 사인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나온 김영훈은 절망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는 탈락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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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채용이 시작된 부문은 음반제작에 관련된 직무.
당장 앨범을 내야 하니 급한 부문부터 채용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총 일곱 명을 면접 본 나는 결정했다.
“김영훈 씨로 하자.”
< 직원 채용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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