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채용 (2) >
결과는 자명했다.
"김영훈 씨로 하자."
내 말에 옥수진은 바로 수긍했다.
“저도 그분이 좋아 보였어요. 천마 님의 마케팅 방향에 대한 생각이 같아요. 그리고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정확하게 방법을 제시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평소에도 천마님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나도 음반을 제작하는 건 처음이고, 옥수진 또한 기획 아이디어는 많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으니 그걸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데 있어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김영훈의 경력이라면 방향을 잘 잡을 거 같다.
무엇보다 내공을 담아서 물어본 결과 진심으로 내 음악을 좋아해 주던 사람이라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제이맨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가산점 요인이고.
“그럼 다음주부터 출근하라고 하자.”
그렇게, 탈락을 직감한 김영훈은 화제의 공고 첫 채용자가 되었다.
나중에 사람은 더 늘려야겠지만 일단 음원 제작 쪽 채용은 이걸로 끝내고, 이제 옥수진을 대체할 인력을 구할 차례다.
옥수진이 바빠지면서 촬영편집을 대체할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영상 쪽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다 보니, 과연 이 편집이 내 영상에 적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다가올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옥수진에게 맡겼다.
“네가 먼저 리스트를 추려보면 내가 그중에서 고를게.”
“네. 그건 제가 한번 볼게요. 그리고 앞으로 일정에 대해 브리핑할게요.”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라 할 일이 많다.
꼼꼼한 옥수진은 올해 연간 계획을 벌써 다 짜놨다.
지금이 9월 초니 늦어도 10월에는 내 앨범을 내고, 11월 중순쯤에는 미니롱의 앨범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앨범의 유통, 디자인, 프로모션 및 마케팅에 대해서 옥수진은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하나씩 처리해나가고 있었다.
옥수진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일단 이번 주부터 유통사 미팅 일정을 잡아놨어요. 천마 님이 한번 확인해주시면 제가 픽스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플랫폼에 업로드할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스튜디오를 알아봤어요. 스튜디오마다 사진 분위기가 다른데, 제가 정리해서 드릴테니 천마 님이 한번 보시고···.”
“또 트랙이 다 나왔으니 앨범 재킷 시안에 대해 같이 얘기해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학교 시디과 선배님 중에 이쪽으로 일하는 회사에 들어가신 분이 있는데, 그 회사가 엔터계에서는 꽤 유명한 곳이라서···.”
“세션 녹음도 알아보고 있는데, 미니롱 언니들이랑 친한 분이···.”
“기존의 뉴튜브 채널과 SNS 계정을 이용한 홍보 활동에 대해 대략적인 계획을 잡아놨는데···.”
나야 내공으로 인해서 잠을 거의 자지 않을 수 있다지만··· 저게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업무량인가?
하지만 열심히 브리핑을 하는 옥수진의 눈빛은 또랑또랑 빛났다.
이쪽에 오래 있으면서 보고 들은 게 많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무는 다른 법이다.
빈틈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옥수진은 밤을 새면서 자료를 조사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며 결과물을 만들어온다.
나는 노예···아니, 직원 1호를 보며 흐뭇해졌다.
아무래도 잘 데려왔다.
*
다음주 월요일.
김영훈은 첫 출근을 했다.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면접을 그렇게 봤는데 내가 합격을 했다고?’
착오가 있었나 싶어서 직접 물어봤지만, 합격이 맞고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라고 한다.
김영훈은 정장을 쫙 빼입고 출근했다.
면접을 망쳤으니,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따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자유 복장이라고 하긴 했지만 너무 자유로우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8시 30분.
조금 이른 시간이라 혹시 문이 안 열려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이 있었다.
차선우가 하품을 하며 나왔다.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회사에서 잤는지 목에는 안대가 걸려있고, 옷은 잠옷 차림이었다.
김영훈은 조금 당황했지만 씩씩하게 말했다.
그는 천마의 팬이었고, 면접 때 망친 첫인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첫 출근이라 업무도 익힐 겸 일찍 왔습니다!”
“아··· 업무요. 그렇죠.”
차선우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휴게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김영훈은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되어있네.’
차선우의 작업실을 제외하면 통유리로 칸이 나누어져 있다. 목재 인테리어로 따뜻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부여했다.
휴게실로 들어간 차선우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커피 마실래요?”
하지만 이미 차선우가 두 잔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훈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네.”
차선우는 아침 대신 과자를 까먹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1집 앨범을 낼 거라서요. 녹음까지 대강 마쳤고 이후 과정을 김영훈 씨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을 하던 차선우는 흠칫 놀랐다. 김영훈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집이요? 곡이 벌써 다 나왔나요? 제가 한번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어? 어, 어. 뭐 그죠. 타이틀곡 세션녹음이 아직 덜 끝나기는 했는데. 일단 들어봐요.”
차선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펄 엔터 일이 빡세서 퇴사한 거 아니었나?’
그런 것치고 김영훈이 꽤 열정적이다. 차선우는 파일을 열며 설명을 해주었다.
“1집에 들어갈 곡은 총 여섯 개에요. 그 중 타이틀곡은 하나, 보너스트랙으로 ‘happily ever after’를 넣을 예정이고···.”
‘happily ever after’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살짝 달라서 넣을지 말지 고민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서 넣기로 했다.
김영훈이 반색했다.
“와! 드디어 ‘happily ever after’이 음원으로 나오는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그만. 말씀하십시오.”
“···타이틀곡은 ‘둠둠둠 (replay)’입니다. 일단 들어보시죠.”
차선우는 기계를 조작해서 노래를 틀었다.
이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묵직한 사운드.
그 순간 김영훈은 ‘happily ever after’를 잊어버렸다.
지금까지 그의 최애곡은 버스킹 때 들었던 h.e.a였지만, 이제는 바뀔 것 같았다.
대단하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선우는 그걸 항상 잘 일치시켜왔다.
누구나 쉽게 따라 들을 수 있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훅.
다 듣고 나면 다시 한번 노래를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빨리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싶다.
특히 ‘둠둠둠둠둠둠둠’ 울리는 아카펠라는 노래가 끝나고도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김영훈은 음악을 좋아해서 이쪽 업계에서 일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좋은 음원을 접하고, 그걸 유통해서 그 결과를 보는 건 그에게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는 순간, 그는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뜬다.’
올해 여름을 강타한 ‘티키티키’처럼, 천마의 ‘둠둠둠’ 또한 올해 연말까지 빛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일하기 싫다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지냈는데, 김영훈은 엔돌핀이 도는 게 느껴졌다.
하루라도 빨리 이 곡을 유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차선우는 노예 2호를 보며 또다시 흐뭇하게 웃었다.
*
옥수진이 PD 직무 지원자들 중에서 괜찮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추려서 보내주었다.
'솔직히 이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편집과 촬영은 오래전부터 옥수진이 혼자서 담당하던 분야이다.
옥수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지원자들이 첨부한 영상을 하나씩 제끼고 있다.
'이 사람은 다 좋은데 구도가 조금 아쉽네요.'
'여기서는 편집점을 다르게 잡았으면 좋겠는데.'
'...재미가 없는데요?'
옥수진은 이번 채용으로 들어올 사람이 자신의 진짜 후임자라면서, 바쁜 와중에도 지원 영상을 고르고 골라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스트에는 총 5명의 후보가 있었다.
나는 옥수진이 고른 후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추리고 추려서 그런지 후보군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실력이 좋았다.
척 보더라도 재미있고 편집도 깔끔하게 해놨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느새 리스트에 있는 4명의 영상을 모두 보았지만 내 눈에 부족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다들 괜찮은 거 같은데?’
여기서 누구를 골라도 제 몫은 할 것처럼 보였다.
이제 마지막 후보의 차례.
그런데 마지막 지원자의 포트폴리오에는 마치 강조라도 하듯 옥수진이 별표까지 여러 개 붙여놓았다.
그녀가 이렇게 어필한 적은 처음이라 괜히 기대감이 들었다.
딸각
첨부된 영상을 눌러보았다. 영상의 길이는 짧았다.
총 5분짜리.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른 나는 순식간에 몰입해서 5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편집 영상을 보고 있었다.
'와 이건 진짜 좋은데?'
재생시간이 짧았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지원자는 클라스가 다르다는 것을.
요즘 유행하는 밈을 센스있게 이용하여 편집을 하면서도, 스트리머에게 계속 집중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구도를 잡는 것까지.
이건 재능이었다.
나는 이 마지막 참가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밖으로 나가 옥수진에게 물었다.
"리스트에 있던 마지막 사람. 이 사람 정체가 뭐야? 편집이 진짜 좋네."
"아, 제가 강조해놨던 그 사람이요? 그 사람 영상 좋죠?"
옥수진은 약간 들뜬 목소리였다.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랑은 수준이 다르던데?"
"그분이 원래 이승호 홈마 출신이에요. summer_river이라는 계정인데, 전업은 아닌지 영상이 많이 올라오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올릴 때마다 좋은 직캠을 찍어서 유명한 편이죠. 이번에 지원할 줄은 몰랐어요."
···잠깐만.
이승호 홈마라고?
나는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내 열혈 시청자 중에 이승호의 이름이 박힌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있었던 팬인데, 종종 후원으로 이상한 요청을 해와서 기억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 사람이 방송에서 했던 요구가 스쳐 지나간다.
- 천마님! 토끼머리띠 좀 써주세요!
- 골반댄스 이제 안하시나요? 티키티키 다시 해주세요><
- 이번에는 시원하게 제로투 댄스 한번 가시죠!
- 후원 리액션으로 애교 가능한가요? 후원 준비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는 다 무시했었다.
하지만 모두 피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에 걸리고 말았다.
- 천마님 그거 아시나요?
‘뭐를?’
- 양볼에 엄지를 붙이고 있으면 주먹을 쥐었다폈다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왜 안돼?’
- 엥??? 혹시 천마님은 가능?
‘당연하지.’
거기에 넘어가서 '애교부리는 천마'라는 짤로 박제가 된 것까지 기억이 났다.
나는 기분 나쁜 기억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설마 아니겠지. 이승호 팬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사람이겠어.’
그때 옥수진이 확인사살을 날렸다.
"그리고 이 분 자기소개서를 보니까 천마님 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심지어 천마님 팬클럽에서 열혈교인이라고 하는데, 구독자를 편집자로 쓰면 좋은 점이 진짜 많거든요. 방송의 분위기나 시청자들과의 관계도 잘 알고 있으니까 더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거에요. 운이 좋았어요."
그러면서 옥수진은 이승호 홈마라는 사람의 지원서를 건네주었다.
[...저는 천마 님의 구독자이며, 팬카페에서도 ‘이승호마누라’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 직원 채용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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