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채용 (3) >
드디어 [이승호마누라], 그러니까 강여름의 면접날이 되었다.
내 방송에서 괴랄한 아이디를 가지고 이상한 요청을 하던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기에는 강여름의 편집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옥수진의 추천으로 마지못해 summer_river이라는 계정에 들어갔는데,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지원자 중 단연 돋보이는 영상미.
강여름은 탐이 나는 지원자였다.
김영훈을 뽑았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강여름 한 명만 불렀다.
면접을 통해 정상인인지만 확인만 한 후 채용하기 위해서였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2시 40분.
3시 면접이었는데,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이른 때에 누군가가 천마신교 레코즈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강여름은 활기찬 인사와 함께 들어왔다.
사장실 안에 있었던 나는 블라인드 사이로 강여름을 볼 수 있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는 도도해 보였지만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겼다.
홍조가 발그레하게 도는 볼은 개구쟁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옥수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여름에게 다가갔다.
"강여름 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수수깡님 맞으시죠?"
강여름은 마치 동지라도 만난 것처럼, 옥수진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영상 올려주시는 거 너무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진짜 수수깡 님이 올려주시는 영상이 아니었으면 매일매일 기다리느라 죽었을 거예요."
옥수진은 넘치는 텐션에 당황했지만 이내 빙긋 웃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혹시 음료라도 드릴까요?"
"뭐든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옥수진은 강여름에게 차를 타주며 면접 장소인 회의실로 안내했다. 두 여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천마님 어쩌고’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뉴튜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강여름을 안내한 후, 옥수진은 나에게 와서 면접자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천마님, 강여름 님 왔어요!”
“아, 그래?”
나는 다 듣고 있었지만 아닌 척 대답했다.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
나는 3시까지 미적거리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차를 홀짝거리던 강여름은 내가 들어가자 사레가 들렸다.
“헉 천ㅁ···켁켁!”
“.......”
나는 손에 내공을 담아 등을 두들겨줬다.
강여름은 곧 진정하고 ‘천마님이 등을 두드려줬어···!’라고 중얼거렸다.
오늘 면접은 빨리 끝내보도록 하자.
지난번 면접을 볼 때는 지원자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어보기 위해서 목소리에 내공을 담았지만, 강여름의 속마음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아무튼.
나는 면접을 시작했다.
일단 처음에는 모든 면접에서 물어보는 일반적인 질문을 던졌다.
간단한 자기소개, 직무 능력과 편집 경험.
강여름은 걱정과는 다르게 정상적으로 질문들에 답을 했다.
'내가 너무 걱정을 했던 건가.'
물론 답변을 하는 와중에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이건 무림에서도 여러 번 겪어 본 일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내공을 쓰지 않았기에 김영훈 때와 달리 ‘그 모드’에 들어갈 일도 없었다.
그렇게 면접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맑은 눈의 광인을 얕보고 있었다.
"강여름 님, 지금 재학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만약에 학교 스케줄과 회사 일이 겹치면 어떻게 할 겁니까?"
이력서를 보니 아직 졸업하려면 몇 달 남은 모양이었다.
분명 학교와 회사일이 겹치는 때가 있을 건데, 과연 그럴 때는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강여름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면 수업을 제끼겠습니다."
“...엉?”
“어차피 곧 졸업이고 학점도 이미 망했는데, F를 한번 더 받는다고 별 일이야 있겠어요. 당연히 천마 님이랑 같이 있는 게 중요하죠.”
“그, 그렇군요.”
그러고 나서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는 걸 깨달았다.
젠장. 기세에 밀릴 줄이야.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만약에 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상사 그러니까 제 의견과 강여름 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저는 무조건 교주···아니, 천마 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개의 질문이 더 오갔지만.
"천마 님과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월급은 몇 달 안 받아도 좋습니다.”
“야근이요? 그럼 천마 님을 더 오래···당연히 가능합니다!”
분명 나는 내공을 쓴 일이 없는데, 왜 자꾸 이런 대답을 듣게 되는 거지?
나는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이었다.
이제 진짜 끝내자.
나는 형식적으로 마지막 질문을 했다.
"···혹시 우리 회사에 궁금한 점이 있나요?"
"넵. 그런데 채용 공고에서 특별한 일 없으면 재택근무라고 하셨잖아요."
맞다.
어차피 편집은 굳이 출근해서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촬영 할때만 출근하면 됩니다."
그러자 강여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런데 혹시 재택 안하고 매일매일 출근해도 되나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하지 마.”
*
어쨌든 강여름은 최종적으로 합격을 했다.
그리고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바로 다음 날 출근을 했다.
강여름은 첫날부터 회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점심시간마다 사람들과 밥 먹으면서 천마를 덕질할 수 있는 건 좋았다.
“이번 앨범 사전예약 특전으로 천마가 애교부리는 모습을 포카로 넣으면 어떨까요?”
“음, 좋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활동 시작하면 팬사인회도 열면 좋겠는데요.”
“헐 대박 좋아요! 저 꼭 갈게요!”
“아니, 여름 님이 가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여는 건데···.”
회사에 갔는데 세 명이 모두 덕친이라니!
이건 행복한 일이었다.
덕질이 곧 기획이었으니, 아이디어는 미친 듯이 솟아났다.
직원들부터 팬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팬이 뭘 원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천마는 가끔 질색하며 ‘집에 가서 일하는 게 어떤가요?’라고 은근슬쩍 재택근무를 종용하긴 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포기한 눈치였다.
강여름의 직업만족도는 최상이었다.
그 주 주말, 강여름은 취업 기념으로 가족들에게 밥을 사기로 했다.
부모님께서는 ‘천마신교 레코즈’에 취업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셨다.
"···천마신교? 혹시 종교 단체니?"
강여름은 꺄륵 웃으며 설명했다.
이 뉴튜버의 이름이 ‘천마’인데 천마신교는 무협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무력단체 중 하나라고.
그런 세력의 수장인 컨셉으로 뉴튜브를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드렸다.
무협지를 보셔서 천마가 뭔지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떨떠름해하며 말씀하셨다.
"음, 재밌게 사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여름아 학교는 어쩌고?"
“알아보니까 조기취업자가 사유서를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된다더라고요.”
강여름은 전혀 몰랐었지만,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옥수진이 말해줘서 알았다.
그렇게 가벼운 오해는 풀리고, 부모님께서는 상당히 좋아하셨다.
두 분 모두 강여름이 취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유명한 작곡가의 사무실에 취업했기 때문이다.
한태영의 ‘우리, 봄’
미니롱의 ‘sour candy’
젤리크러쉬의 ‘티키티키’를 비롯한 2집 앨범
천마가 만든 곡 모두 부모님까지 흥얼거리는 대중적인 노래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금방 마음에 들어 하셨다.
하지만 두 달 뒤 수능인 남동생이 궁시렁거렸다.
“회사까지 천마신교야? 컨셉 지린다.”
“야, 뒤질래?”
강여름은 등짝스매싱을 날린 후 회사 생활이 어떤지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이번에 앨범 낼 거라서 준비하고 있거든요. 노래 진짜 좋아요.”
그런데 동생이 또 딴지를 걸었다.
“엥? 웬 뉴튜버가 앨범?”
"왜, 뉴튜버는 앨범 내면 안되냐? 너도 노래 잘 부른다고 인정했잖아."
지난번 동생은 테레비토크에서 천마가 ‘티키티키’를 추는 걸 본 후 종종 천마 영상을 찾아봤다.
3일 전 천마가 골드버튼 언박싱을 하다가 결국 그걸 부숴버린 영상도 봤다.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솔직히 뉴튜버 중에서 앨범 내서 성공한 사람이 있냐? 누나를 뽑을 정도면 회사도 작은 것 같은데, 성적이 잘 나오겠냐?”
“뭐? 이 새끼가! 니 수능성적보다 잘 나올 거거든!”
동생은 픽 웃었다.
“차트인이나 하고 말하던가.”
“차트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조건 차트 일등 할거다!”
“하이고. 차트 일등하면 내가 십만원 준다.”
강여름도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천마가 차트 일 등을 하리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꽁돈 벌겠네.’
“십만원 좋지. 무르지나 마라.”
“흥”
“흥”
늘 그렇듯 으르렁거리는 남매를 보며 부모님은 어색하게 웃었다.
*
김영훈도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음반제작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걱정했던 만큼 힘든 건 아니었다.
김영훈이 합류한 시점에 이미 기획이 다 끝나서 녹음을 진행 중이었다. 더군다나 그 녹음도 일주일 만에 뚝딱 해치워서 천마는 지금 놀고 있었다.
안무는 없었고, 뮤직비디오는 강여름이 콘티를 짜는 중이다.
심지어 언제 어떤 프로모션에 들어갈지도 옥수진이 대부분 짜놨다.
옥수진은 콘셉트, 앨범 발매 형태, 방송일정, 인터뷰나 쇼케이스를 포함한 홍보까지 알아보고 다 계획을 세웠다.
물론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는데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그냥 경험이 부족해서 요령이 없는 정도랄까.
여기서 한두 해 일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여기 유통사는 멜롱 플모를 잘 넣어주더라고요.”
“여기 스튜디오는 스케줄이 빡빡해서 결과가 늦게 나올거예요.”
“오늘 방송국 갔다온다면서요? 거기 음방 피디님이 솔의눈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옥수진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피드백을 받아들였다. 김영훈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꼼꼼하네. 열정도 있고.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잘만 키우면 열 사람 몫도 할 거 같은데?’
김영훈은 실무 경험이 많기 때문에, 같이 디테일을 다듬어주면서 옥수진이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김영훈은 새로운 직장 생활은 잘 굴러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워라밸이 보장돼서 마음에 쏙 들었다.
사장인 천마도 딱 본인 일만 끝나면 사장실에 처박혀서 무언가를 하느라고 바빠서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김영훈은 천마신교 레코즈에 크게 만족했다.
퇴근을 한 후, 김영훈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 연락을 한 친구는 아직 펄 엔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아직도 펄 엔터에서 지박령이 되어 일을 하고 있을 친구에게, 천마신교 레코즈의 근무환경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샘솟았다.
[김영훈]: 뭐하냐?
[김영훈] : 아직 일함?
[김영훈] : 한잔 ㄱㄱ?
[친구]: 오 좋지. 나도 마침 일 거의 다 끝나간다.
[친구]: 여기로 올래?
[김영훈]: 내가 펄엔터 쪽으로 갈게
[친구]: ㅇㅋㅇㅋ 원래 보던 거기서 보자
김영훈은 펄 엔터 근처에 있는 평소에 다니던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니 눈빛이 새까맣게 죽은 친구가 나타났다. 친구는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으아, 죽겠다. 너는 얼굴이 아주 폈구만. 퇴사가 좋기는 좋나봐?”
김영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 얼마 전에 취업했어.”
“엉? 취업? 왜? 너 쉰다고 한거 아니었어?”
친구는 눈을 끔벅거렸다.
매일매일 워라밸을 부르짖으며 퇴사하면 반년은 쉬겠다고 다짐한 게 엊그제다.
그런데 퇴사한 지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다시 취업이라니?
김영훈은 한숨을 쉬며 자발적 노예가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됐다. 조건이 너무 좋아서 넘어갔지. 근데 업무량이 계속 이정도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천마신교 레코즈를 평생 직장으로 생각해봐도 될만한 정도야.”
“어? 천마신교 레코즈? 너 거기 들어갔냐?”
친구는 천마신교 레코즈에 대해 알고 있었다.
펄 엔터 사람들은 제이맨과 싸웠던 천마에 대해 은근히 관심이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천마가 앨범을 낸다는 소문까지 입수한 상태였다.
친구가 말했다.
“니네 이번에 데뷔 앨범 낸다며?”
“뭐야?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우리도 매그넘이 솔로 앨범 준비하고 있거든. 원래 너네한테 곡 받아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동발할 거 같아서 안 받았다고 하더라.”
“뭐? 매그넘이 앨범 낸다고?”
“그래. 메인보컬 미니앨범. 퇴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까먹었냐? 지금쯤 내기로 했었잖아.”
펄 엔터는 연간 계획 다 세워놓고 유통 일정 잡는 편이고, 김영훈은 그제서야 매그넘이 앨범을 내기로 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매그넘 메인보컬인 ‘칸’의 앨범이.
“니네 2, 3주쯤 뒤에 낸다며? 우리도 그쯤 낼건데, 차라리 몇 주 미루는 게 어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매그넘이 내면 천마의 앨범이 묻힐 게 뻔하다는 게 은연중에 느껴진다.
김영훈은 그 뉘앙스가 짜증나기는 했지만,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솔직히 우리가 노래는 더 좋겠지만, 규모에서 오는 차이를 좁히는 건 쉽지 않으니까.'
노래 하나만 믿고 있기에는, 매그넘의 팬덤과 펄 엔터의 프로모션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화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김영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단순히 보도자료를 돌리고, 뉴튜브와 SNS로만 홍보해서는 먹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돌아가서 방향성에 대해 얘기해봐야겠군.’
< 직원 채용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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