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44화 (44/191)

< 양궁으로 과녁 올킬 (2) >

킹오브트롯의 우승자, 박희찬은 양궁장에서 연습 중이었다.

<우리집에 왜왔니>에서 섭외가 와서 전 국가 대표에게 속성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전 국대가 말했다.

“처음인데 잘하시네요. 원래 사격을 해서 그런지 집중력이 아주 좋으신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상대로 나오는 분이 칸 님이라서요.”

매그넘 칸은 아이돌 중에서도 양궁 잘하기로 유명했다.

전 국대도 아이돌올림픽 시즌마다 속성교육을 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박희찬이 칸에게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격려해주기 위해서 칭찬을 했다.

“그분도 잘하기는 하는데, 희찬 님도 빠르게 기량이 올라오고 있어요. 다음주까지 매일 이렇게 연습하면 해볼만 할 것 같은데요?”

박희찬은 속으로 꼭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은근히 칸을 견제하고 있었다.

이번에 킹오브트롯에서 우승하면서 엄청난 팬덤을 등에 업었고, 인기가 식지 않은 상태로 데뷔하기 위해서 한 달 반 만에 앨범 준비를 마치고 데뷔했다.

그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고생한 걸 생각하면,

꼭 음원차트에서 1등을 하고 싶었다.

매그넘 팬덤이 엄청나다고는 하지만, 박희찬이 등에 업은 4050세대도 만만치 않다.

이정도면 칸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전 국대가 물었다.

“그런데 게스트가 세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나머지 한 명은 누구입니까?”

“아!”

그제서야 박희찬은 나머지 한 명의 존재를 떠올렸다.

“천마라고 들어보셨나요? 이쪽에서는 꽤 유명한 작곡가인데.”

“아, 그 뉴튜버요?”

국대도 천마 채널을 구독하지는 않았지만 이름은 들어봤다.

뉴튜버인데 티키티키를 작곡했다지 아마?

작곡가, 혹은 뉴튜버.

그게 세간이 인식하는 천마였다.

전 국대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천마가 제일 양궁을 잘하는 거 아니예요? 그 사람은 천마잖아요.”

“하하하. 그럼 저는 검성으로 하죠.”

농담으로 넘기며 박희찬은 양궁 연습에 집중했다.

신곡 홍보 기회를 따내서 매그넘을 꼭 이기겠다고.

당연히 그의 안중에 천마는 없었다.

.

.

.

한편 매그넘의 칸도 양궁장에서 연습 중이었다.

솔직히 그는 <우리집에 왜왔니>에서 박희찬과 같이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하필 붙여놔도 신인이랑 붙여놓냐.”

컴백 대전이니 뭐니 하면서 이런 대결 구도가 잡힌 거는 사양이다.

<우리집에 왜왔니>가 홍보 필수 코스라서 나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엎었다.

연습하는 내내 칸이 투덜거리자 매니저가 말했다.

“너 만만하게 보지 마라. 그 신인이 요즘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지금 ‘킹오브트롯’에서 낸 음원이 차트 1등 먹고있는 거 못봤냐?”

칸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니까 하필 왜 지금 데뷔한다고 해서.”

“우리는 연말에 에이클라스 싱글이 있어서 이렇게 됐고, 저쪽도 한번 잡은 인기를 어영부영하다가 시들게 하기 싫었겠지.”

‘킹오브트롯’은 시청률 30%를 찍으며 웬만한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이번에 1위를 한 박희찬은 그 수혜를 모두 받았다.

박희찬은 경연이 끝나자마자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설립한 기획사에 들어가서 바로 데뷔 준비를 했다.

‘킹오브트롯’의 마지막 방영일이 8월쯤이었으니 거의 한 달 반 만에 빡세게 준비를 마치고 나오는 것이다.

매니저가 씩 웃었다.

“그래도 양궁하면 너 아니냐? 아무래도 제작진에서 신경 좀 쓴 거 같은데.”

“양궁 아니면 내가 안 나갔지.”

칸은 말끝마다 안나간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열심히 시위를 당겼고, 날아간 화살은 어김없이 가운데 원에 박혔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쏘는 족족 들어갔다.

그러다가 칸은 함께 나오는 게스트 한 명을 더 떠올렸다.

“참. 천마도 나온다고 했던가?”

“아, 엉. 그렇다더라.”

매니저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니저는 천마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칸은 박희찬보다는 천마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제이맨 아저씨가 한 방 먹은 건 진짜 오랜만이었지.’

젤리크러쉬가 에이클라스를 이긴 후, 칸은 종종 천마 방송에 들어가 봤다.

매니저 계정으로 라이브방송으로 후원도 날려보고, 천마가 노래를 부른 영상도 봤다.

‘노래도 진짜 기가 막히게 하던데.’

천마는 작곡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가 좋고, 발성이 탄탄하고, 기교가 다채롭고··· 그런 단순한 수식어를 넘은 아우라가 있다.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빠져들었고, 헤어난 후에는 아쉬움에 탄식하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도 부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기가 막힌다.

곡도 잘 만드는 사람이, 노래까지 잘하니.

이번 앨범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물론 앨범 퀄리티와 상관없이, 그가 음원 1위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음원 사이트 1위에 드는 건 단순히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다.

회사 홍보 및 마케팅팀의 활약은 기본이고, 팬덤의 조직적인 지원 역시 필수적이다.

팬들은 가수만큼이나 음원 성적에 신경을 쓴다. 음원 성적이 받쳐줘야 음방에서나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들은 음원 총공팀을 구성해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음원 순위를 올리고, 심지어 헬퍼 알바를 고용하기까지도 한다.

공식 팬클럽도 없고, 당장 가지고 있는 팬덤이라고는 조직력도 없는 구독자뿐인 천마가 이걸 이길 수 있을까?

칸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나중에는 또 모르겠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주말이 끝난 월요일 아침.

옥수진, 김영훈, 그리고 강여름까지.

천마신교 레코즈의 직원들은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였다.

평소라면 천마 앨범에 대해 왁자지껄하게 떠들었겠지만, 오늘 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기사 보셨겠지만 대책을 세워야할 것같습니다."

김영훈의 말에 강여름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하필 매그넘이 복귀를 하냐."

주말 동안 연예 뉴스는 매그넘 칸의 복귀로 떠들썩했다.

[매그넘 칸, 솔로가수로 컴백···가을감성 저격!]

[‘컴백’ 매그넘 칸 “새로운 시작, 단단하게 성장”]

[매그넘 칸, 2년만에 솔로로 컴백]

[매그넘 칸 컴백 스케줄 포스터 공개···10월 12일 컴백 확정]

[매그넘 칸, 새 미니앨범 ‘오래된 연가’...믿듣 보컬 보여줄까]

기사 10개 중에 9개가 매그넘의 메인보컬인 ‘칸’이 컴백한다는 내용이었다.

10월 12일이면 공교롭게도 천마와 컴백날짜가 겹친다.

세 명은 우울한 표정으로 기사를 훑어봤다.

지난주까지 옥수진과 김영훈이 열심히 홍보를 해서 천마의 기사를 몇 개 정도는 볼 수 있었는데.

"이대로면 지금 하던 SNS 마케팅도 안 먹힐 가능성이 높겠네요."

뉴스도 이 상황인데, SNS는 더하면 더했지.

어떤 꼴일지 뻔했다.

분명 그쪽 팬덤에서 조직적으로 실트 총공에 들어갔을 거다.

그때, 옥수진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박희찬? 이 사람은 또 왜 나오죠?"

매그넘의 기사를 뚫고 새로운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킹 오브 트롯' 우승자 박희찬, 데뷔 준비 완료!]

[박희찬, 연말을 노린 앨범 발매]

[트로트스타 박희찬, 10월 초 첫 앨범 나온다]

[트로트의 왕자 박희찬, 이번에도 4050 팬심을 휘어잡을수 있을까]

'킹 오브 트롯' 우승자인 박희찬의 데뷔 소식을 담고.

세 사람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10대에서 30대까지.

매그넘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메가히트한 앨범만 5장이 넘고, 멜롱 차트 기록을 갈아 치운 것도 수차례이다.

그리고 4050 사이에서 '킹 오브 트롯'의 인기는 가히 종교와도 같다.

'킹 오브 트롯'의 최종화 시청률은 무려 30%를 넘어 예능 시청률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둘이서 음원 시장을 사이좋게 갈라먹고, 천마는 그 사이에 끼어서 장렬하게 전사를 할 각이 보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김영훈이었다.

"일단 홍보 방향부터 바꿔야겠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얼마전에 음악방송 쪽과 연락을 한 적이 있는데, 그쪽에 천마님 출연이 가능한지 한번 물어보는건 어떨까요?"

옥수진의 말에 김영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알고 있는 예능 작가님들께 연락을 돌려보죠."

강여름도 이에 질세라 말했다.

"사실 저 이번 곡이 댄스힙합에 가까워서 댄스챌린지를 넣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거든요. 그쪽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볼게요."

옥수진이 정리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천마 님한테 보고할테니, 각자 조금 더 정리해서 회의에서 다시 얘기를 해봐요.”

그렇게 세 사람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다시 한번 파이팅을 다지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서 잤던 차선우가 출근했다.

그리고 들어오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전달사항이 있는데 저 이번에 <우리집에 왜왔니> 나가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논의를 종결하는 한마디였다.

다들 당황했다.

“???”

"네? 갑자기요?"

“아니 천마님이 왜 거길···?”

"어제 방송 끝나고 보니까 섭외 연락이 와있던데요? 일챗으로요."

세 사람은 재빠르게 천마의 계정에 들어가서 채팅을 확인해보았다.

"어? 뭐야. 진짜 왔네요?"

"아니 그럼 내가 거짓말로 그랬을까. 어쨌든 하기로 했어요."

어쨌든 덕분에 세 사람이 방금 전까지 고민을 하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진짜 잘됐네요. 저희도 마침 새로운 홍보 수단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요."

"이걸 내세워서 저도 예능 쪽으로 한번 섭외 돌려볼게요."

"요즘 뉴튜브 예능도 핫하니까 그쪽으로도 연락해볼게요! 요즘 뉴튜브에 ‘케이시의 쇼터뷰’나 ‘술먹고 가라’같은 곳이 있더라고요."

차선우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세 사람에게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옥수진을 따로 사장실에 불렀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방송이 처음이라서, 혹시 뭐 준비해야하는건 없나 해서."

차선우의 말에 옥수진은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일단. 방송에 나가서는 '그 모드'를 쓰시면 안돼요."

"그 모드?"

"갑자기 진지해지면서 반말 쓰시는 그거 있잖아요. 그건 진짜 절대 안돼요."

옥수진의 말에 차선우는 '그 모드'가 뭔지 깨달았다.

차선우가 종종 내공을 사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천마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가 있었다.

그때 상대가 누구든지 말을 놔버리곤 했었는데.

차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 모드'는 안 쓰는 걸로 하고. 그거 말고는?"

"이번 게스트가 누구라고 했죠?"

"매그넘의 칸이랑, 박희찬이더라. 이번에 '킹 오브 트롯' 우승한 사람."

차선우의 말을 들은 옥수진의 표정이 굳었다.

경쟁자들이 너무 강력했다.

오히려 여기에 낀 천마가 들러리처럼 보인다.

이러면 좋은 편집을 받기 힘들다.

주목을 받으려면 무조건 미니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다들 신곡 홍보하러 나왔나 보네요. <우리집>에서 신곡 홍보하려면 미니게임 이겨야 하는건 아시죠?"

"제작진이 알려주더라. 이번 미니게임은 양궁으로 한다던데?"

"양궁이요?"

"어. 양궁."

"방금 칸이 같이 출연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칸이 양궁을 진짜 잘하거든요. 아이돌올림픽에서 매년 양궁으로 우승하는 게 칸이에요."

말을 한 옥수진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집에 왜왔니>는 tvS에서 꾸준한 시청률을 자랑하는 인기 예능이다. 여기 미니게임에서 이겨서, 홍보를 할 수 있어야 두 명과 차트에서 싸울 만 할텐데.

하필이면 종목이 양궁이라니.

누군가를 밀어주려고 하는 제작진의 의도가 투명하게 보인다.

"천마 님이 이번에 잘해주면 홍보를 할 수 있어서 좋을텐데. 혹시 천마 님 양궁을 할 줄 아시나요?"

양궁이라.

처음 무림에 떨어졌을 때는 상태창의 도움을 받아서 활로 사냥도 곧잘 하곤 했지만, 음공이 경지에 오른 이후에는 활을 쏠 필요가 없었다.

그 후에 또 언제 했더라···.

아, 기억났다.

마지막으로 팔순 잔치에서 흥을 돋울 겸 내기 활쏘기를 했다.

"십 년 전쯤에 활을 한번 잡아봤지."

옥수진은 어렸을 때 양궁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건 ‘나 어렸을 때 바둑했어’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 쳐봤어’ 같은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도 옥수진은 애써 긍정적인 점을 찾았다.

"음. 한번 해봤으니까 빠르게 다시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양궁장을 알아볼게요."

옥수진은 전 양궁 국가대표 선수가 운영하는 양궁장을 찾았다.

원 포인트 레슨도 해주는 곳으로, 보통 양궁이 급하게 필요해진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모양이었다.

빠르게 결제까지 마치고, 그날 저녁.

차선우는 양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코칭을 맡은 전 국가대표는 긴장감 없이 서 있는 차선우를 보며 생각했다.

'또 어디 아이돌이 대회에 나가나 보네. 기초부터 가르치려면 귀찮겠는데.'

하지만 차선우가 활을 잡는 순간 당황했다. 자세가 제대로였던 것이다.

‘뉴튜브에서 보고 공부해왔나?’

그리고 차선우가 시위를 당기고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순간,

"...여기 왜 오셨어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 양궁으로 과녁 올킬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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