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45화 (45/191)

< 양궁으로 과녁 올킬 (3) >

차선우는 <우리집에 왜왔니>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훈련소를 수료한 한태영과 통화를 했다.

“거기는 지낼만 해요?”

- 지낼만 하겠습니까? 천마 씨도 여기 오면 다른 세상을 느낄 거예요.

“에이, 저는 아직 한참 남았다니까요?”

그러면서 오늘 첫 예능 출연인데 조언해줄 게 있냐고 물었더니 한태영이 말했다.

“자기 카메라 어디에 있는지 잘 챙기시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도 카메라를 등지지는 마세요.”

“아, 그리고 그 모드에 들어가지 말고!”

···한태영도 옥수진과 비슷한 조언을 해줬다.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나중에 면회 한번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강여름이 말했다.

“와, 여기 4년 전이었던가···트릭커가 녹화할 때 왔었는데 이렇게 또 오네요!”

트릭커는 이승호가 소속된 보이그룹이다. 강여름이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많다 보니 그녀가 일일 매니저로 붙었다.

제작진을 만나서 진행 상황에 대해 들은 후, 대기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천마님!”

나는 그를 바로 알아봤다.

이번 킹오브트롯의 우승자 박희찬이었다.

부모님께 박희찬과 같이 예능 게스트로 나간다고 하니 어머니의 특명이 내려왔다.

‘어머머머, 우리 희찬이를 만난다고?’

누가 들으면 희찬이가 우리집 아들인 줄 알겠다.

‘엄마가 이번에 방청가서 희찬이 한정판 브로마이드를 받아왔거든? 그거 택배로 보내줄테니까 사인받아와. 무조건. 알았지?’

어머니의 특명을 떠올리며 나도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킹오브트롯 1위 축하드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킹오브트롯 보셨나요?”

“어머니께서 즐겨 봤습니다. 희찬 님 팬이시거든요.”

“와, 진짜요? 감사합니다! 제가 사인이라도 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쪽에서 먼저 사인 얘기를 꺼낸 김에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머니께서 사인 받아오라고 택배로 브로마이드를 부쳐주셨거든요. 지금 대기실에 놔두고 왔는데,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참, 저도 천마 님 방송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제 방송이요?”

“저번에 [주간곡소리]에서 트로트랑 힙합 섞는 거 봤어요.”

“아···.”

별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는데, 박희찬은 꽤 감명 깊었나 보다.

들뜬 목소리로 그런 노래 하나만 써달라고 부탁해온다.

본인이 마음에 든다면야 뭐.

그렇게 내 대기실로 가는 중이었다. 복도 모퉁이를 돌 때쯤 금발로 염색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어? 여기 계셨구나!”

매그넘의 칸이었다. 칸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칸이라고 합니다. 천마 님 대기실에 찾아갔는데 없으시더라고요.”

나는 얼떨결에 악수를 했다.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찾았는지···?”

“당연히 천마 님 곡을 받으려고 그랬죠! 우리 다음에 같이 작업해요. 참, 그러고보니 희찬 님도 같이 있으셨네요?”

그제야 박희찬을 발견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박희찬도 마주 웃었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스파크가 튀기는 듯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데뷔 축하드려요. 저도 매그넘 데뷔할 때 얼마나 긴장되던지. 바쁘시겠어요.”

“아닙니다. 선배님도 곧 신보 발매하신다면서요? 그룹으로 하다가 솔로로 나오면 많이 떨릴 거 같아요.”

“하하하”

“하하하”

···분위기 한번 훈훈하다.

*

착-!

슬레이트가 쳐진다.

"우리집에 왜왔어?"

기존에 있던 패널들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을 외치며,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차선우를 비롯한 게스트들이 세트장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차선우였다.

입장 순서는 제작진 측에서 미리 정해준 까닭에 바꿀 수 없었다.

패널들을 차선우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오! 천마다 천마!"

"천마가 뭐야. 교주님이라고 불러야 되는거 아니에요?"

"요즘 제일 핫한 작곡가가 왔네요."

"그 제이맨을 이겼는데. 오늘 매그넘이랑 나와도 되는건가 모르겠네?"

패널들의 격한 환영에 차선우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32대 천마이자, 천마신교 레코즈의 1대 천마 차선우입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와씨 컨셉 미쳤다. 역시 천마야!”

“이러다가 막 나중에 무공도 쓰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뒤이어 박희찬과 칸이 순서대로 입장했다.

패널들을 역시나 격하게 그 둘을 반겨주었다.

차선우가 나왔을 때보다 더 큰 환호성으로.

그렇게 게스트들이 모두 들어온 후,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우리집에 들어오려면 장기가 하나씩은 있어야하는데, 준비해온 거 있어요?"

박희찬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제기차기 잘 합니다.”

그러자 매그넘 칸도 슬쩍 끼어들었다.

“저도 제기차기 잘해요. 새해 자컨(자작컨텐츠) 찍을 때마다 저희 멤버랑 같이 했는데 제가 계속 일등했거든요.”

그러자 패널이 눈을 반짝이며 차선우를 돌아보았다.

“그럼 천마 씨는?”

차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기차기를 안 해본 지 몇십 년이더라?

“어릴 때 해보고 안 했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오오 패기 좋다!”

그렇게 준비된 제기차기.

매그넘 칸은 5개를 하고 나가떨어지고, 박희찬은 9개까지 했다. 그리고 차선우는···.

“...쉰하나, 쉰둘, 쉰셋.”

천마의 위엄을 보여줬다.

“???”

“!!!”

“밈미ㅣ미및친”

“혹시 이십 년동안 제기차기만 하셨어요?”

더 하라면 더 할 수는 있지만, 그랬다가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차선우는 제기차기를 그쯤에서 끊었다.

거의 묘기에 가까운 제기차기를 본 사람들은 좋아했고, 패널들은 분위기를 계속 달구며 진행을 했다.

아무래도 요즘 주가를 높이는 사람들만 모아놔서 그런지 촬영장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고, 패널 중 한명이 본격적으로 질문을 했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왜 왔습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칸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우리집 애청자라서요. 꼭 한번 나와 보고 싶었어요."

칸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패널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에이 거짓말하시네!"

"우리는 칸 씨 여기 왜나왔는지 뻔히 아는데."

"여기 스타일 어떤지 알면서 왜그러실까. 서로 좀 솔직해집시다."

"저는 여기 신곡 홍보하러 나왔습니다!"

쏟아지는 야유에 박희찬이 재빠르게 말했다.

"이제야 좀 솔직해지시네요."

"근데 다들 알죠? 우리집에서 홍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명 뿐이라는 걸. 미니게임 준비 됐습니까?"

메인MC는 제작진에게 물었고,

"오늘의 미니게임 양궁.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제작진이 가리킨 곳에는 멋들어진 양궁 세트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딱 봐도 과녁까지의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평소 아이돌올림픽에서보다 20미터 쯤은 더 먼 거 같다.

메인MC가 그 세트장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양궁에 능하신 분들이 있다고 해서 저희가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패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와, 제작진 진짜 잔인하다. 오늘 나온 게스트들 다 홍보에 목마른 사람들인데. 이걸 이렇게 이용하시네."

하지만 칸은 긴 거리에도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다들 제 양궁실력 아시죠? 아이돌올림픽 금메달 3관왕입니다."

이에 질세라 박희찬도 말했다.

"저도 사격을 오래 해서요. 멀리서 쏴서 맞추는 데엔 자신 있습니다. 이번에 전 국대분께 특별 코칭도 받았구요."

두 사람의 모습에 패널들은 환호를 보냈다.

"알지알지. 칸 님 활 잘쏘는거."

"근데 희찬 님도 사격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시던데요?"

“그런데 사격이랑 양궁이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몰라요. 그냥 박수나 쳐요.”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분위기를 띄우던 패널들은 문득 한 사람이 아직 나서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근데 천마 님이면 활을 잘 쏘려나?"

차선우는 사실 전혀 연습을 하지 않았다.

양궁도 며칠 전 옥수진이 예약을 해준 곳에서 처음 해봤고, 거기 코치가 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안 갔다.

그래서 이번에도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는 며칠 전에 활을 한번 잡아봤습니다."

솔직한 모습에 패널은 웃음을 지으면서도 별 기대는 안했다.

규칙은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3발씩 4세트, 가장 높은 점수를 얻는 사람이 이긴다.

“자 그럼 시작하···”

려고 했는데, 그때 차선우가 제작진을 멈춰세웠다.

“잠깐만요.”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차선우가 말했다.

“칸 님이랑 박희찬 님이 먼저 대결하시고, 저는 마지막에 한번에 쏘겠습니다.”

“네?”

PD가 당황했다.

한번에 쏘려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팔이 아플 텐데 괜찮으려나?

혹시 양궁을 진짜 안 해봐서 팔힘이 많이 들어가는 걸 모르나?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쁜 일이 아니다.

편집할 때도 칸과 박희찬 둘이서만 경쟁하는 게 훨씬 그림이 살 거다.

이 장면이 나갈 때쯤 칸과 박희찬이 차트에서 박터지게 싸우고 있을 테고, 각자의 팬들은 그들이 양궁에서 직접 붙는 모습을 보러 찾아올 것이다.

그 구도에서 천마는 곁다리일 뿐이라, 차라리 화면에 같이 안 잡히는 게 나았다.

“이야. 천마 님이 통이 크시네요.”

그러다 통편집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PD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PD는 ‘정말 괜찮겠냐’는 의례적인 말조차 하지 않고 바로 콜을 외쳤다.

“좋습니다. 그러면 칸 님과 박희찬 님이 먼저 하도록 하시죠!”

그렇게 칸과 박희찬이 먼저 배틀을 시작했다.

칸은 아이돌올림픽 금메달 3관왕이라는 게 과언이 아닌 듯, 고민 없이 과녁 한복판에 화살을 명중시켰다.

"칸 님은 진짜 잘 쏘시네."

"박희찬 님도 음, 집중력이 좋으시네."

칸이 쏘는 화살은 족족 못해도 8점, 보통 9점과 10점에 명중했다.

몇몇 패널이 박희찬을 띄어주려고 했지만, 칸이 너무 잘해서 형식적인 칭찬으로만 들렸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PD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차라리 사격으로 할 걸 그랬나. 너무 차이가 나면 재미가 없는데. 그래도 매그넘 팬들이 좋아하긴 하겠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선우가 나섰다.

딱 봐도 설렁설렁한 자세라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초보군.’

집중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 극명하게 대비가 되긴 했다.

PD가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악편을 떠올리는 사이,

휘이잉 탁!

화살촉이 과녁 정중앙에 박혔다.

“?”

PD가 턱을 툭 떨어뜨렸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차선우는 화살 두 대를 한번에 시위에 매겼다.

PD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설마?”

저거는 사극 드라마에서나 보던 거 아닌가?

차선우는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고, 두 대의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정중앙을 살짝 빗나갔다.

여전히 10점 과녁존에는 있지만, 조금 전과 같은 퍼펙트골드는 아니었다.

‘아깝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던 PD는, 순간 두 대의 화살이 묘하게 대칭을 이룬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쉴 틈 없이 화살이 꽂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하는 것도 잊고 소리 없이 경악했다.

‘뭐야?’

‘!!!!!!!’

‘헐???????’

화살을 모두 쏟아낸 후, 과녁에 남은 건 하트였다.

10점 과녁존 안에, 좌우대칭이 완벽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패널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니, 왜 태릉에 안 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야?”

PD도 그 말에 동감했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정적에 빠진 그 순간, 차선우가 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신곡 홍보는 누가 합니까?”

점수도 점수지만, 차선우는 양궁을 거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게스트도, 패널도, 그리고 미니게임을 기획한 제작진도.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당연히 천마 님이지.”

“야야, 소파 밀어! 탁자, 탁자도 치워! 무대 만들어드리자!”

“천마! 천마! 천마! 천마! 천마!”

모두가 흥분해서 천마를 외쳤다. 그만큼 양궁이 남긴 인상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둠둠둠'의 MR 반주가 나온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양궁에 대한 기억은 싹 지워졌다.

*

칸의 매니저는 대기하고 있다가 방송이 끝난 후 칸을 데리러 갔다.

나오면서 스탭들에게 칸이 미니게임에서 결국 천마가 신곡 홍보 기회를 가져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니저가 운전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아쉽긴 하다. 그래도 박희찬 씨가 가져가는 것보다 차라리 천마 씨가 기회를 가져간 게 낫지. 천마가 그렇게 쩔었다며?”

매니저도 녹화 중 쉬는 시간에 천마가 과녁에 하트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쩔었지.”

“그 실력 가지고 천마 씨는 왜 양궁을 안 하고 노래를 하고 그러냐. 내가 그 실력이면 금메달 따서 군 면제 받았다.”

“무슨 소리야. 천마 님이 왜 국대를 해. 당연히 그 실력이면 가수를 해야지.”

“엉? 무슨 소리야?”

핀트가 어긋난 대화에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칸은 보충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곡 홍보 타임에서 불렀던 천마의 노래만이 맴돌고 있었다.

시작은 강렬한 비트였다.

자칫하면 보컬이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장엄한 사운드.

하지만 천마는 그 단숨에 휘어잡고 주도권을 가져왔다.

칸은 천마의 눈빛을 떠올렸다.

트랙 위를 당당히 밟고 서는 위엄.

단지 시선이 스쳤을 뿐인데도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칸은 이번 곡이 나쁘지 않게 나왔다고 믿었고, 또한 언제나 지지해줄 매그넘 팬덤을 믿었었다.

해외까지 뻗어 나간 거대한 팬덤은 그들이 곡을 낼 때마다 언제나 1위라는 성적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천마의 신곡을 듣고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샘솟았다.

‘...설마?’

그러는 사이 어느새 10월이 성큼 다가왔다.

박희찬이 가장 먼저 데뷔앨범을 냈고, 그 다음에 매그넘의 칸이.

마지막으로 천마가 출사표를 던졌다.

< 양궁으로 과녁 올킬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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