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47화 (47/191)

< 외국산 드릴 (2) -유료 시작 >

내가 강여름이 가지고 온 드릴을 처음 본 건, 한창 직원들과 차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예상보다 뛰어난 성과에 사무실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대박대박! ‘둠둠둠’이 벌써 9위에요!”

“펄 엔터에서 근무했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신인이 이 정도 속도로 올라가는 건 에이클라스와 매그넘 말고 없었습니다. 천마 님의 곡을 믿었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아무래도 <우리집>에 나간 게 신의 한수였던 거 같아요. 타이틀 곡 말고 수록곡들도 슬슬 차트에 들어가고 있어요!”

다소 빨라진 말투로 성과에서 얘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속에서 경쾌한 운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에는 타이틀곡 말고는 멜롱 차트에 들어간 곡이 없었다.

이제는 방송의 영향으로 수록곡들도 슬금슬금 차트에 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happily ever after’ 같은 경우는 이전부터 음원으로 내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있었는데, 보너스 트랙인데도 50위를 넘어서 30위 안쪽을 노리는 중이었다.

SNS 노출이나 뉴튜브 조회수, 앨범판매량 같은 지표들도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마음에 안들어.”

타이틀곡은 차트 9위가 아니라, 1위를 해야 한다.

수록곡이 차트인한 것에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차트 줄세우기를 해야 한다.

딱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단숨에 치고 올라갈 것 같은데.

그 한 발짝이 아쉬웠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가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옥수진이 말했다.

"요즘 예능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와요. 거기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집에 왜왔니>에 나간 이후, 예능 섭외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특히 몸 쓰는 쪽 예능이.

독특하고 확실한 컨셉의 천마는 예능계의 떠오르는 블루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능에 나간다고 당장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예능에 나가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쉬웠다.

양궁과 같은 행운(?)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SNS 계정을 관리하는 강여름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강여름은 원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호들갑을 떨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김영훈과 옥수진은 고개만 내밀어서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습니까?···헉!”

“무슨 일이길···어머!”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다들 왜 반응이 이래?

궁금해진 나도 일어나서 강여름에게 갔다. 강여름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인별그램 메인 페이지가 보였다.

- 팔로워: 102만

- 알림: 999+

엄청난 양의 알람과 함께 팔로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버렸다.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영어 댓글이 엄청 많이 달린 게시글이 있었는데, 거기에 춤추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네?

옥수진이 물었다.

“천마 님 이런 춤 언제 췄어요?”

“내가 언제 이런 춤을···.”

···이라고 말하려다 갑자기 기억났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려 강여름을 바라보았다.

“여름 님!”

“헤헿”

.

.

.

몇 주 전, 칸과 박희찬의 동발 소식이 들리면서 직원들이 걱정하기 시작할 때였다.

<우리집에 왜왔니> 섭외도 받기 전이라서 그들은 전전긍긍하며 홍보 전략을 쥐어짜내고 있었고, 그때 강여름이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 사실 저 이번 곡이 댄스힙합에 가까워서 댄스챌린지를 넣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거든요. 그쪽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볼게요.

옥수진은 음악방송, 김영훈은 예능, 강여름은 SNS.

각자 맡은 바를 발전시켜서 기획안을 내놓아왔고, 그렇게 나는 강여름과 함께 댄스챌린지를 시도해보게 되었다.

나는 떨떠름했다. 솔직히 조금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꼭 해야 하나요?”

“천마 님 노래가 힙합 느낌이 나잖아요. 잘 어울릴 거예요. 저번에 한태영의 ‘우리, 봄’ 댄스챌린지 한 거를 보니깐 춤도 잘 추시던데요.”

춤을 잘 추는 거랑 안무를 잘 짜는 거랑은 다른 걸 분명히 알 텐데도, 강여름의 눈빛은 과하게 반짝였다.

나는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냥 제가 춤추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고요?”

“모든 사람이 보고싶어할 거예요. 딱 후렴구 10초만요!”

“······.”

왠지 속는 느낌이지만, 다들 내 앨범을 위해 열심히 으쌰으쌰하고 있는지라 넘어가줬다.

후렴구 10초라.

아마 ‘둠둠둠둠-’이 나오는 부분일 거다.

곡을 만들 때 신경을 썼던 파트라 멋있는 걸 뽑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멋있는 무공이라 하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운룡대팔식이 좋겠군.’

정파 놈의 무공이지만 멋들어지긴 했다.

예전 곤륜파 장문인을 잡아 족칠 때 봤는데, 허공에서 몸을 여덟 번 뒤집는 게 화려해 보였다.

‘지금 따라했다가는 허리가 나가겠지만.’

포인트를 따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공 몇 수 섞어서 동작을 완성했다.

긴 다리로 바닥을 휩쓸다가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방향을 전환하며 몸을 뒤집은 후, 손으로 끊어치기.

탁-

“이 정도면 되려나요?”

“우와. 방금 그거 뭐예요? 어떻게 한 거예요? 다시 한번만 보여주세요! 제발!”

···이거 아무리 봐도 사심 채우기인 거 같은데.

강여름은 그렇게 두 번 정도 직관한 다음, 솔직한 평가를 말했다.

“멋있는데.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좀 더 쉽게 바꿀 수는 없을까요?”

쉬운 무공은 만들 수는 있지만, 쉬운 안무를 만들 수는 없다. 난 안무가가 아니니까.

그렇게 댄스챌린지는 강여름의 사심만 채우고 끝났다.

그런 줄 알았다.

.

.

.

그리고 지금.

나는 떨떠름하게 강여름에게 물었다.

“이걸 촬영하고 있었어요?”

“댄스챌린지를 올리려고 했던 건데 당연하죠. 그때 안무 만든 게 아까워서 그냥 올려봤는데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어요. 이게 왜 좋지?”

그러게 말이다. 왜 좋지?

SNS에 유행하는 댄스챌린지는 따라하기 쉬워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쉽게 영상을 올리고, 그래야 금방 퍼지니까.

하지만 내가 만든 안무(?)는 백번 양보해도 쉽지는 않다.

나는 영어로 도배된 댓글을 확인했다.

- 이게 원본이야?

- 이것 좀 봐 (링크)

- 노래 좋은걸? 스포티나인에 있나?

- 토니가 이걸 보고 한 거구나 (링크)

- 와우. 이건 정말 ‘챌린지’인데?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원본이냐고?’

그러면 이거 말고 다른 영상이 있다는 말인데?

사람들이 링크를 걸었길래 들어가 봤더니, 웬 1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 나왔다.

#Doomchallenge #Doom_formymuse

거기에는 웬 외국인이 ‘둠챌린지’라는 이름의 댄스챌린지를 하고 있었다.

강여름이 가지고 온 미국산 드릴의 정체였다.

*

안토니오 로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무가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안토니오 로시의 이름은 유명하다.

그가 매그넘의 대표곡인 ‘one step’의 안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2집 타이틀곡인 ‘one step’의 안무를 만들었고, 그게 메가 히트를 치면서 매그넘이 월드스타로 떠오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제이맨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에이클라스의 'MY CLASS' 안무도 만들었다.

그런 안토니오는 지금 KPOP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 칸이 복귀를 했다고 했지?"

얼마 전 제이맨의 연락을 받았다.

전화로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칸이 컴백했다는 걸 몇 번이고 말하는 걸 보니 은근히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대충 뭔지 짐작은 갔다.

"트위트에서 응원이라도 해달라는 거겠지."

일단 노래가 뭔지라도 알아야 홍보를 해줄 수 있다.

안토니오는 제이맨이 했던 말도 있고 해서 칸의 노래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끓어 넘치는 영감을 줄 아티스트를 만나게 될 운명.

먼저 안토니오는 뉴튜브에서 칸의 신곡 뮤비를 찾아보았다.

신곡의 제목을 검색하니 뮤비뿐만 아니라 신곡과 관련된 수천 개의 영상이 나왔다.

동료 연예인과 뉴튜버들의 커버 영상부터, 컴백 이후 음방과 예능에 나온 영상들까지.

"매그넘의 인기가 대단하기는 하군."

컴백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화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느껴진다.

칸의 신곡 뮤비를 보려고 했던 그는, 바로 밑에 재미있는 썸네일을 발견했다.

하트모양의 과녁지를 보고 칸이 놀라는 모습이 담긴 썸네일이었다.

"오? 칸이 양궁을 한건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안토니오는 양궁을 좋아한다.

역대 양궁 금메달 획득 개수로 미국이 2등, 이탈리아가 3등인 만큼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종목이었다.

물론 두 나라의 금메달 수를 합쳐도 한국의 3분의 1도 안된다는 게 함정이긴 했지만, 어쨌든.

올림픽에서 다른 건 안 봐도 양궁과 축구만큼은 챙겨보는 안토니오는 뮤비를 보기 전에 해당 클립을 먼저 눌렀다.

<우리집에 왜왔니> 제작진은 해당 영상의 영어자막도 제공했기 때문에 안토니오는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상 속의 칸은 아이돌이 무색하게 잘 쐈다.

그와 경쟁을 하는 트로트 가수 역시 고작 2주 연습한 사람치고 잘했다.

안토니오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국인은 다들 양궁에 재능이 있는 건가?"

예전에 한국인이 어떤 활잡이의 자손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사이 영상에서는 어느새 차선우가 나왔다.

가슴을 울리는 BGM과 함께.

둥 두둥 둥둥 둥둥둥

그 육중한 사운드를 듣는 순간 안토니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마치 위협적인 무언가가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

지금까지 듣던 케이팝과는 차원이 다른 전율이 일었다.

강제로 화면에 시선을 잡아끄는 그런 느낌이었다.

"뭐지? 분명 처음 듣는 음악인데."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음악인지 찾고 싶었다.

이 노래로 안무를 만들 수만 있다면!

분명 역작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누구의 노래지?’

안토니오는 성질 급하게 영상의 뒷부분으로 넘겨 곡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때였다.

“!!!!!!!!”

차선우가 과녁에 하트를 만들었다.

안토니오는 그게 자신을 향한 고백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반해버렸다.

“WHAT THE FUCK HEART KILLS ME!!!!!!!!!”

칸과 같이 나온 걸 보니 가수인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경쟁자들을 이긴 차선우가 홀로 신곡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안토니오가 그렇게 원하던 노래를.

1분 남짓한 짧은 곡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안토니오를 홀리기에는 충분했다.

한국어로 된 가사는 잘 몰랐지만 멜로디만 들어도 아티스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만 같다.

그게 시작이었다.

안토니오는 천마에 대한 모든 걸 검색했고, 어느새 조회수도 잘 안 나온 댄스챌린지까지 볼 수 있었다.

“와우!”

챌린지라고 하기에는 동작이 너무 어렵기는 하지만, 안토니오는 이 안무의 가치를 알아봤다.

한 마리의 용이 구름 위를 노니는 것 같다.

방금 들은 사운드와 겹치면서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춤을 추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안토니오는 즉시 ‘둠둠둠’을 틀었다.

사운드는 곧장 신경을 자극했고, 뇌를 거치기도 전에 몸에서 반응이 왔다.

곡이 좋아서 그런걸까? 안토니오의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그렇게 만족할 때까지 ‘둠둠둠’을 반복재생하던 그는 결과물을 보고 씩 웃었다.

“Cool”

안토니오는 천마의 댄스챌린지를 모두가 따라할 수 있게끔 쉬운 버전으로 바꾸었다.

그 후 #Doomchallenge #Doom_formymuse라는 태그를 걸고 SNS에 올렸다.

참고로 안토니오는 2000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스타 안무가였고 그가 쏘아 올린 공은 한국까지 날아와,

차트를 뒤흔들었다.

< 외국산 드릴 (2) -유료 시작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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