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48화 (48/191)

< 외국산 드릴 (3) >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는 영상이 촬영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역시! 저는 그 안무가 통할 줄 알았어요.”

강여름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분명 그때 본인의 사심을 채우는 용도였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강여름의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내가 만든 안무는 그냥 ‘멋지기만’ 했다.

'솔직히 내공도 없는 몸으로 그걸 따라하기는 쉽지 않지.'

안토니오라는 친구가 따라하기 쉬운 버전으로 바꿔주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유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잘했길래 이렇게 난리가 난거지?'

안토니오가 만든 쉬운 버전의 안무를 재생해보았다.

먼저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 동작.

안토니오는 이걸 과감하게 빼버렸다.

대신 제자리에서 발을 차올리고 둠둠둠 하는 비트에 맞추어 강하게 내리찍는 동작으로 만들어놨다.

운룡대팔식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 동작이 빠진 건 아쉬웠지만, 확실히 이렇게 바꿔놓으니 따라하기는 훨씬 편해 보였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끊어치기도.

그 동작은 아예 발을 구르는 동작과 합쳐버렸다.

둠! 하는 비트에 맞춰서 발과 손을 동시에 쓰니 확실히 임팩트가 있었다.

이후 몸을 웅크렸다 쫙 피는 동작이 추가되면서 리듬감을 살려냈다.

'유명한 안무가라더니 다르긴 하군.'

나는 안토니오가 만든 안무를 따라해보았다.

뭐, 내가 만든 동작보다는 별로지만 이정도면 훌륭한 듯했다.

내가 안토니오의 안무를 확인하는 사이, 직원들은 영상의 확산세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와, 근데 이거 전파력이 미쳤는데요?"

"벌써 해외 셀럽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네요."

"이건 미구엘 로페즈? 이 사람은 배우인데요? 헐 대박. 데이비슨도 둠챌린지를 찍었네요."

안토니오가 만든 챌린지의 파급력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대단했냐면 인별그램에만 챌린지가 5.7만 건이 검색될 정도이다.

대부분 해외 영상이었지만, 실시간으로 그 아래 한국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SLAYED (찢었다)

- YUPPP

- 와 원본은 ㄹㅇ챌린지인데;;;난 못할듯

- I LOVE U BOTH (둘다좋아)

- TONYxCHEONMA (토니X천마)

- 토니 구독하는데 천마 영상 올라와서 개깜짝놀랐네

- @YEONTR 이거 한번 ㄱㄱ

- @askjohn 우리도 해볼래?

- @sdjjjj_1887 shall we?

해외 셀럽을 중심으로 커버 영상이 올라왔고, 그걸 본 한국 셀럽들도 내 챌린지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만든 원본과 비교하는 영상, 리액션 영상 등 재생산에 재생산을 거듭했다.

참고로 내가 만든 원조 챌린지 영상은 도전심이 강한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혹여라도 비슷하게 성공이라도 하면,

- 미친ㅋㅋㅋㅋ 이걸 하네

- 천마 쉑 이거 어떻게 했냐

- 양궁 쏠때부터 알아봤어. 이놈 진짜 천마인듯

- 나 이거 추다가 허리 삐끗해서 응급실옴 ㅅㅂ

ㄴ 천마한테 치료비 청구하면 될듯ㅋㅋㅋㅋㅋ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해외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인 스포티나인에도 내 곡이 차트인하기 시작했고, 음원 성적에 반영되는 ‘나온차트’나 ‘멜롱 핫100’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했던 한 발짝은 이미 채워졌고, 1등 턱 끝까지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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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칸 - 오래된 연가

2. 천마 - 둠둠둠 (replay)

3. 박희찬 -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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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정이 지나고 새로 고침을 하는 순간.

“!”

화면이 변했다.

1위에 있던 칸의 노래가 한 계단 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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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마 - 둠둠둠 (re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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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노래가 차트의 맨 꼭대기에 올라섰다.

이 순간을 확인할 때 우리는 모두 같이 있었다.

옥수진, 김영훈, 강여름.

그리고 1호 가수인 미니롱까지.

“꺄아아아아악!”

강여름의 방정맞은 비명이 천장을 흔들었고,

“남자 솔로 가수가 데뷔 2주만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건 유례없던 일입니다!”

김영훈은 점잖은 척했지만 흥분한 게 눈에 보였다.

키가 큰 송서아는 훨씬 작은 김민지를 안아버렸고, 옥수진은 손을 살짝 떨었다.

'둠둠둠'이 1등을 할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오늘이 될 거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짜릿했고,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었다.

각자는 각자의 방법으로 기쁨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옥수진은 가장 먼저 스크린샷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다른 말도 없이, 딱 그 캡처본만.

그거면 충분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 달여간의 시간이 스쳐지나갔다.

차근차근 데뷔일지를 올리며 홍보를 하고, <우리집에 왜왔니>에 나가고, ‘양궁짤’ 버프를 받아 차트 등반을 하고, 그게 ‘둠 챌린지’로 이어지기까지.

모든 퍼즐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목표를 이뤄냈을 때.

그때의 쾌감은 중독적이었다.

옥수진은 엄마와의 채팅방을 보았다.

곧바로 1이 사라졌지만, 그녀는 굳이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휴대폰을 넣었다.

뭔가 한 방 먹인 기분, 제대로 보여준 느낌이라 들떴다.

옥수진은 이 기분을 만끽하기로 했다.

.

.

.

강여름 역시 스샷을 찍어서 동생에게 보냈다. 그녀는 천마가 1위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동생과 십만원빵을 했다.

[강여름]: (캡처)

[강여름]: 10만원

[동생놈]: 안토니오가 도와준 건 사기지

[강여름]: 뭐래ㅋ

[강여름]: 10만원

동생 새끼는 헛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십만원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김영훈도 몇 주 전 만났던 펄 엔터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굳이 1등을 한 스샷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그 친구는 누구보다 빨리 알았을 테니까.

대신 가볍게 한마디만 했다.

- 내일 한 잔 할래?ㅎㅎㅎ

펄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매일같이 하던 1등이었지만, 이번에는 감회가 조금 색달랐다.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일을 하면서 1등을 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막바지에는 야근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재미있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았다.

김영훈은 이 직장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미니롱은 오늘 다음 앨범에 대해 얘기하려고 왔다가 우연히 1등하는 순간을 함께 목격했다.

신기했다.

대형기획사 소속도 아니고 이제 갓 데뷔를 한 천마가 차트 1위를 하다니.

미니롱의 머릿속에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가능성이 떠올랐다.

롱서아와 작민지(작은 김민지)는 서로를 마주 봤다.

'다음에는 우리도 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1등 가즈아!'

.

.

.

나는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당연한 자리에 당연히 앉았을 뿐인데, 마음속으로 번지는 기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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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마 - 둠둠둠 (re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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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리에 계속 내 이름이 있으면 했다.

한번 해보니 계속해서 1등 자리에 있고 싶어진다.

저 한 곡으로 독재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사람들은 다시 새로 나오는 신선한 곡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고, 그때가 되면 ‘둠둠둠’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하지만 대중이 다시 찾는 새로운 노래도 내가 만든 거라면?

'그게 진짜 일통이 아닐까?'

내 마음속에 다음 목표가 생겼다.

은퇴를 하는 그날까지, 차트 올킬!

나는 사람들과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미니롱을 보았다.

천마신교 레코즈의 다음 앨범은 미니롱이 맡기로 했다.

이번 미니롱의 앨범은 겨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곡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 타이틀로 생각한 노래를 내가 듀엣으로 편곡한 후 피처링해주길 원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미니롱은 1호 가수니까.

물론 연말 음원 시장이 쉽지 않을 거다.

연말 특수를 노리고서 컴백하는 가수부터, 크리스마스만 되면 어김없이 기어 나오는 캐럴 좀비들까지.

하지만 이들과 경쟁하는 건 재미있을 것이고,

‘둠둠둠’의 왕좌를 이어받을 노래가 미니롱의 신곡이 되면 좋겠다.

‘내일부터 준비해볼까?’

그때 누군가가 양팔을 덥석 잡았다.

“어?”

돌아보니 어느새 친해진 롱서아와 강여름이었다.

"천마님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요."

"얼른 와서 같이 놀아요!"

왁자지껄한 그들 사이로 김영훈이 열심히 샴페인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오늘은 일단 즐기자고.

*

옥수진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천마가 일등을 한 이후 할 일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먼저 천마에게 각종 섭외가 들어오고 있었다.

지역 축제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무대까지.

천마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추려서 일정을 잡고, 또 참석하기 어려운 것들은 적당한 이유를 대서 거절하는 일은 옥수진의 차지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대나 방송에 나가려면 옷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때마다 다른 착장을 준비해야 한다.

임시로 고용한 코디들과 함께 무대에 어울릴만한 의상을 선정하는 것도 옥수진의 일이었다.

차트 일등을 한 후로 협찬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온다.

천마에게 어울릴만한 브랜드와 제품을 고르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아, 여기에 미니롱의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팬싸인회 같은 행사를 준비하는 것도 그녀였다.

아마 지금 천마신교 레코즈에서 가장 바쁜 사람을 고르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옥수진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일이 없는거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옥수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녀의 큰 기쁨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던 옥수진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연예 기사를 보고 있었다.

요즘 차선우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와서 기사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한 기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가수 윤재하의 7집 앨범 또 엎어져?]

[윤재하 벌써 5년 동안 5번 엎었다!]

[윤재하 올해 데뷔 15주년, 결국 올해 앨범 못 내나?]

"와, 윤재하는 또 엎어졌네."

남자 솔로 가수 윤재하에 대한 기사였다.

17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가수였는데, 최근 들어 부진했었다.

무려 5년 동안 앨범을 하나도 내지 못한 것이다.

앨범이 엎어지고 음원이 전량폐기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는 하지만, 5년 동안 5번 엎어지는 건 이례적인 걸 넘어 괴랄한 정도였다.

‘진짜 멘탈이 갈려나갈 거 같은데.’

일을 해보니 알겠다. 앨범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장난 아니라는 것을.

준비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남의 일이다.

거기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옥수진이 너무 바빴다.

그렇게 짧은 휴식을 마친 옥수진은 본격적으로 미니롱의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 외국산 드릴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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