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53화 (53/191)

< 이번에는 한팀 (1) >

미니롱의 3집 앨범 「 WinterFly」가 발매되었다.

지난 싱글인 ‘sour candy’를 제외하면 전부 겨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래로 가득했다.

곡은 좋았다.

천마와 함께하면서 작민지의 작곡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지금까지 미니롱의 앨범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특히 작민지는 천마가 피처링해준 ‘눈의 별자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아내려고 했는데, 천마와 편곡하면서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었다.

미니롱은 습관적으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차트를 확인했다.

42. 미니롱 - 눈의 별자리 (feat.천마)

롱서아가 말했다.

“오? 순위가 또 올랐네?”

엊그제 봤을 때는 55위였는데 이제는 40위권에서 놀고 있었다.

천마가 지금까지 곡을 써준 가수들이 낸 성적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니롱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사실 지난번에 ‘sour candy’가 뜬 것도 여름 님이 찍어주신 직캠 영상 때문이니까.'

덕분에 인디치고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편이었지만, 다른 가수에 비해 팬덤이 아직 작다.

이번에는 천마가 피처링을 해준 덕분에, 그나마 천마의 구독자들 사이에서나마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그래도 미니롱의 표정은 좋았다.

11월 말부터 가수들의 컴백 러쉬가 이어졌고 연말마다 부활하는 캐럴도 있는데, 그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40위권에 안착했으니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라고 생각했다.

롱서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지난 앨범 낼 때는 인디 차트에만 들었으면 했는데. 그치?"

“맞아. 그때는 인디 차트에 들면 대단한 거였지.”

작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전만 해도 음악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녀는 내심 천마의 라방에 들어가서 후원을 날렸던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송 활동도 나쁘지 않고.”

“맞아. 지난 음악방송도 재밌었어! 그런 무대 장치는 또 처음 써봤잖아.”

롱서아와 작민지는 얼마 전 음방 무대에도 나갈 수 있었다.

평소 서봤던 대학교 축제나 지역 축제와는 다른 화려한 의상과 번쩍이는 무대 장치.

무대를 어떻게 연출할지 고민하던 경험은 재미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무명 가수에서, 이제는 음원을 내면 적어도 차트인은 하는 가수가 된 미니롱.

그들은 지금에 만족하며 앞으로는 더 잘해보자고 다짐했지만,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그 시작은 한 남학생부터였다.

*

본격적으로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입에서는 슬슬 입김이 나왔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져만 갔다.

모두가 움츠러드는 겨울에도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수능이 끝난 고3들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정시 원서까지 다 넣은 고등학생들은 거리를 뽈뽈뽈 돌아다니며 해방감을 즐기고 있었다.

"으 춥다. 맨날 수능만 끝나면 이렇게 추워지냐."

두꺼운 패딩을 입은 길성진이 투덜거렸다.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 나왔던 길성진도 올해 수능을 보았다.

그리고 대차게 망했다.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 나갔고, 천마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후 몇 달 동안 실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길성진은 그 시기를 다시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눈앞에서 1500만원을 놓쳤을 때는 정말이지, 허망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3회 연속 우승한 기대주에서 순식간에 패배자로 추락했으며, 사람들은 길성진을 대놓고 비웃었다.

욕심을 부린 탓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어리석은 놈으로.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무엇보다 길성진의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길성진은 노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기성 가수에 비하면 분명 모자라겠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쉽게 짓밟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다.

‘그날 천마의 무대는···.’

길성진은 당시 천마의 무대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냥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저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충격 속에서 날린 시간이 3개월쯤 됐으려나.

세상을 울리는 천마의 ‘둠둠둠’이 길성진의 귀에 들렸을 때,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길성진이 방황하는 사이, 천마는 회사까지 차린 후 데뷔 앨범을 냈다.

순식간에 해외까지 휩쓴 둠둠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셀럽들도 천마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분명 나이도 나랑 비슷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자극을 받은 길성진은 각오를 다졌다.

‘나도 나아갈거야.’

천마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들지 않았다.

다만 그도 천마처럼 빛나고 싶었다.

'비록 그게 반딧불이라도, 빛날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이지.'

···라고 생각하던 길성진은 문득 이런 자신이 멋져 보였다.

어린 나이에 실패를 경험했지만, 디딤돌 삼아 더 큰 도약을 해내다니!

자신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나중에 성공해서 이런 내용으로 인터뷰도 해야지.

데뷔곡으로 차트 1위를 한 후 인터뷰하는 상상을 하던 길성진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카페에서는 미니롱의 ‘눈의 별자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오. 이 노래 나도 좋아하는데.’

길성진은 미니롱의 팬이다. 미니롱의 스토리가 꼭 자기와 닮은 듯했다.

음악을 그만둘 정도로 역경을 겪었지만, 마침내 인정받아 성공한다!

멋지지 않은가?

특히 최근 발매한 ‘눈의 별자리’는 길성진의 최애 곡이다.

여린 송서아의 보컬과 천마의 하모니가 인상 깊은 노래였다. 겨울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길성진은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 듣고 있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명곡을 자신이 발견한 것같아 또다시 뿌듯해졌다.

그때였다.

“야, 길성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길성진이 돌아보았다.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였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인데, 이 녀석은 공부를 잘해서 기숙사가 있는 사립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수능도 끝났겠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반가워서 길성진이 씩 웃었다.

"야, 오랜만이다. 뭐하고 지냈냐."

"고3이 뭐했겠냐. 공부했지."

오랜만에 봤는데도 삐딱한 건 여전한 친구였다. 길성진은 피식 웃었다.

“수능은 잘 봤고?”

“아 몰라. 망했어.”

남고생의 말에 길성진은 의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녀석이었다.

가끔 연락할 때마다 들었던 모의고사 성적도 길성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았고.

남고생이 투덜거렸다.

“진짜 누나가 맨날 집에서 천마 노래를 틀어가지고. 공부하는 내내 둠둠거린다니까?”

그렇게 남고생은 본격적으로 썰을 풀었다.

누나가 얼마전에 천마신교 레코즈에 취업한 이야기부터, 천마 데뷔곡이 1위를 할 수 있을지 내기를 해서 결국 십만 원을 뜯긴 일까지.

"뭔놈의 스밍을 한다고 하루종일 똑같은 노래만 트는데 진짜 짜증나더라."

얘기를 듣던 길성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남고생은 짜증난다고 말하기는 하는데, 최근에 천마가 윤재하와 콜라보해서 팬송을 만든 것부터 미니롱 신곡을 편곡한 것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짜증나는 것치고 묘하게 천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남고생은 천마가 어떤지에 대해 떠들다가, 혼자 들떠서 너무 많은 걸 말해버렸다는 걸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큼. 그런데 넌 대학은 어디 지원했냐?”

길성진이 말했다.

“나 대학 안 갈라고.”

“엉?”

남고생은 눈을 끔벅거리며 되물었다.

“진짜? 대학 안 갈거야?”

"응. 부모님께 허락도 받았어. 음악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

그가 한창 실의에 빠져서 학교도 안 가고 폐인처럼 지낼 때,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숨고찾' 영상을 보신 부모님은 길성진의 재능을 인정해주셨다.

차라리 공부 말고 하고싶은 음악을 하게 해주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천마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음악적 재능이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길성진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했어.”

“헐? 어디?”

어떤 일에도 시니컬한 남고생이 놀라워하는 걸 보니 길성진은 어깨가 으쓱 펴졌다.

사실 만났을 때부터 계속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없어 보일까봐 참고 있었다.

“히트 메이커. 지금 넷플렉스에도 방영되고 있는데.”

“히트메이커? 지난 시즌에 진짜 재밌게 봤는데. 그럼 너 넷플렉스에도 나와?”

“그런 셈이지. 사실 지금도 녹화를 하고 있어서 좀 바쁘긴 한데 잠깐 시간이 나서 나온거거든. 예선 1차, 2차랑 본선 진출 결정전까지 다 통과했고 2주 뒤부터 본선 무대 할거야."

"본선까지 나간다고? 거기 경쟁률 개빡센 곳 아니냐?"

대단하다는 듯 보는 눈빛에 길성진은 속으로 춤을 추면서도 태연히 말했다.

"흠흠. 운이 좋았지 뭐."

*

<히트메이커>

난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나름대로 신선한 포맷을 들고 온 방송이다.

예선까지는 일반적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참가자들이 수만 명이 경쟁을 뚫고 8명의 최종 멤버에 선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신 8명이 뽑힌 이후, 본격적인 경연에 들어가면 <히트메이커>의 특색이 드러난다.

최종 합격한 8명과, 지금까지 심사를 하던 프로듀서가 팀을 이룬다.

그리고 다른 팀들과 함께 경합을 벌인다.

프로듀서는 매주 참가자에 어울리는 새로운 곡을 프로듀싱을 한다.

그 곡은 음원 사이트에 올라가며, 그렇게 음원 성적과 시청자투표와 현장투표가 모두 결과에 반영된다.

예선까지는 원하는 프로듀서와 팀이 되기 위해서 참가자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모습이, 본선에 올라가서는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펼치는 불꽃 튀는 신경전이 이 프로그램의 백미였다.

참가자 대 참가자.

프로듀서 대 프로듀서.

극한의 경쟁을 보여주며 <히트메이커>는 흥행에 성공했다.

시청률도 괜찮게 나왔고, OTT와 계약에도 성공했다.

그렇게 <히트메이커> 시즌 2는 더 강력하게 돌아왔다.

이전보다 화려한 프로듀서 군단, 그리고 참가자들의 더욱 치열해진 경쟁.

그리고 길성진은 여기서 승승장구했다.

두 번의 예선 무대에서는 8명의 심사위원들에게 올패스를 받으며 통과했다.

본선 진출을 결정하고, 한 팀을 이루는 프로듀서를 고를 때는 먼저 구애도 받는 몸이 되었다.

"길성진 씨 진짜 물건이네요. 조금만 다듬으면 무조건 뜰 거 같은데?"

"길성진 씨 저랑 같이 해요. 나 히트곡 많이 쓴 거 알잖아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저랑 같이 하시죠. 길성진 씨랑 나랑 음악 스타일이 딱 맞는 거 같아."

길성진은 우쭐해졌다.

'그래. 나 정도면 잘하는 거지. 솔직히 천마는 사기캐잖아.'

스크래치 난 자존심이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본선에도 무난히 진출했고, 원하는 프로듀서와 함께 페어를 이룰 수 있었다.

'나 이러다가 우승하는 거 아니야?'

이제 천마에게 패배하여 세 달을 끙끙 앓던 길성진은 이제 없다. 그는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같이 합을 맞춘 프로듀서가 논란으로 하차하기 전까지는.

“와···. 내 인생 왜 이러냐.”

길성진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 이번에는 한팀 (1) > 끝

ⓒ 연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