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54화 (54/191)

< 이번에는 한팀 (2) >

<히트 메이커> 제작진은 회의실에 모였다.

시즌1이 성황리에 끝나면서 시즌2 역시 두둑한 제작비 지원을 받았다.

덕분에 본선에서 가수들과 페어를 이룰 유명한 프로듀서를 섭외해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OTT 플랫폼인 넷플렉스에도 같이 방영이 돼서 해외시장까지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각종 호재에도 회의실에 모여있는 제작진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메인 피디가 짜증을 냈다.

"이호준 그 미친 새끼는 하필이면 지금 그런 사고를 낸 건데!"

제작진 측에서 야심차게 데리고 온 프로듀서인 이호준이 사고를 친 것이다.

그것도 음주운전 후 경찰을 폭행하고 도주한 대형 사고를.

이호준의 하차는 당연한 일이고, 이호준이 녹화된 장면도 모조리 편집해야 한다.

메인 피디는 답답한 속을 두드렸다.

‘내가 어떻게 8명을 다 모았는데!’

제작 몇 달 전부터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프로듀서에게 모조리 연락을 돌려 겨우 8명을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명이 빠져버린 탓에 프로그램의 뼈대가 무너지게 생겼다.

문제는 단지 프로듀서가 하차하고 논란이 생긴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1차 본선 무대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프로듀서를 데리고 오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타를 뛰고 싶어할 프로듀서는 없을 겁니다.”

본선 무대에서는 음원 차트 성적도 반영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 일주일 만에 곡을 만들어서, 연습을 하고, 녹음 및 촬영도 하고, 무대까지 준비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급이 안 맞는 프로듀서를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작진은 머리를 싸매며 후보를 고르고 연락을 돌렸지만, 다들 각자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 저는 앨범을 제작 중이라···.

그렇게 연락을 돌리다가 누군가가 윤재하를 언급했다.

"혹시 윤재하 씨는 어떨까요?"

윤재하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면서, 혼자서 작곡도 하고 프로듀싱도 하는 올인원 아티스트이다.

최근 ‘DAISY’라는 싱글로 컴백했으며,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화제도 되고 있다.

15년 차인 만큼 실력도, 인지도도 확실하니 섭외할 수 있으면 좋을 듯했다.

마침 메인 피디와도 작은 인연이 있었다.

윤재하는 피디가 맡았던 음악 프로그램에 1년 정도 패널로 있었던 것이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메인 피디는 반색했다.

"한번 연락해볼게요."

메인 피디는 그자리에서 전화를 걸었고, 윤재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 네, 피디님. 오랜만입니다.

피디는 사정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불쌍하며 세상 짐을 혼자 다 지고 있는지···주변 작가진이 황당하게 쳐다볼 정도로 구구절절했고,

“제가 진짜 편집도 잘해드리고 회차별 출연료도 넉넉하게 챙겨드릴게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도 날렸지만,

- 죄송해요. 다음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라서요. 다른 사람까지 프로듀싱하기에는 시간이 없을 거 같아요.

윤재하는 거절했다.

"아···. 그러시군요.”

메인 피디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윤재하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대신 제가 한 명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추천을요?"

메인 피디는 시큰둥했다. 솔직히 웬만한 사람들에게 이미 다 연락을 돌려 봤다.

윤재하가 추천한 사람 역시 이미 섭외 연락을 돌렸던 사람일 확률이 80%가 넘었다.

그러나 윤재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추천했다.

- 천마 님 아시죠?

“천마 님이요?”

메인 피디의 되물음에 주변에 있던 작가진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최근 차트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게. 우리가 왜 그 사람을 생각 못 했지?’

화제성이 짙고, 유명한 작곡가이며, 탑 보컬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생각을 못 했던 건 너무 신예였기 때문이다.

데뷔한 지 이제 한 달.

뉴튜브 채널을 열었던 것까지 쳐도 반년이 조금 넘는다.

지금까지 섭외한 프로듀서에 비해 경력에 있어서 너무 차이가 났다.

‘그런데 실력으로는 말할 것도 없지 않나?’

천마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초봄. 그때 그는 ‘우리, 봄’으로 1위를 했다.

여름에는 젤리크러쉬의 ‘티키티키’가 1위를 이어받았고, 가을에는 ‘둠둠둠 (replay)’가 1위를 이었다.

‘그러고보니 6달 내내 천마의 노래가 1위하고 있었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메인 피디가 반색했다.

"할 수만 있으면 최고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감사합니다."

*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다.

음악을 만들고, 수련을 하고, 그리고 뉴튜브 방송도 하고.

여기에 추가가 된 게 있다면 각종 결재 서류들이 조금 많아졌다는 것 정도?

직원이 늘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나는 통유리창 너머에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전화기를 붙잡은 직원부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서 작업을 하는 직원까지.

천마신교 레코즈의 새로운 식구가 늘어났다.

그것도 꽤 많이.

'여기로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무실이 작아 보이냐.'

재택근무를 한다고 반 정도가 빠져서 이정도지, 다 모이면 꽉 찬 느낌이 든다.

근무환경에 신경 쓴다고 개인 공간을 넓게 만든 탓이었다.

'이사를 해야하나? 아니면 차라리 위층이랑 아래층까지 다 임대해버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옥수진이 방문을 두드렸다.

"천마 님, 섭외 연락이 왔어요."

“섭외?”

평소에 별거 아닌 섭외는 알아서 커트해버려서 내가 신경 쓸 일이 없는데, 옥수진이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보다.

"<히트메이커>에서 연락이 왔네요."

“아, 거기.”

나도 아는 프로그램이다. 시즌1이 넷플렉스에 있어서 최근에 정주행했다.

프로듀서랑 가수가 한 팀이 되어서 경연을 펼치는 형식이 재미있었다.

특히 프로듀서들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유명한 게스트를 섭외하는데, 지난 시즌1에는 위캔걸즈가 나온 적도 있었다.

내가 예전에 주간곡소리에서 ‘아기고래+여돌 노래 섞기’ 미션을 했던 그 위캔걸즈 말이다.

아무튼 화려한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넷플렉스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즌2는 지금 진행 중인 거 아니야?”

끝나면 몰아보려고 시즌2를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넷플렉스에서 방영 중이라고 알고있다.

이미 섭외는 끝났을 텐데 나한테 연락이 오다니?

“이번에 이호준이라는 프로듀서가 물의를 빚어서 하차했다더라고요. 그래서 문제가 좀 생긴 모양이에요.”

옥수진이 사정을 간추려서 설명했다.

녹화분을 다 날린 데다가, 당장 이번 주 안으로 음원을 녹음해서 발매해야하고, 다음주에는 무대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프로듀서들은 모두 거절했다.

지금 시즌2에 섭외된 프로듀서는 모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퀄리티를 만들어낸다?

이건 도박이었다.

그리고 제작진에서 연락을 돌린 프로듀서는 이런 도박을 할 만큼 급하지 않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옥수진은 나에게 이걸 가져왔다.

왜 그랬을까?

옥수진이 미소를 지었다.

“천마 님이 하시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거예요. 천마 님이 아는 사람이랑 팀을 이룰 거거든요.”

“누군데?”

옥수진은 바로 말해주지 않고, <히트메이커>에서 보내온 서류를 넘겼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관심을 끌게 만들고 싶었던 거라면 성공했다. 진짜 궁금했으니까.

나는 서류를 휙휙 넘겼고,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길성진?”

“'숨은 고수를 찾아라'에 나왔던 애 기억하시죠? 천마 님이 얘한테서 1500만원 뺏어갔잖아요.”

그 덕분에 옥수진도 500만 원 보너스를 받았다. 나는 툴툴댔다.

“뭘 또 뺏어가.”

정정당당하게 받아온 거지.

어쨌든 길성진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귀환한 이후 처음으로 내가 ‘재능있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녀석이었다.

만약 무림이었다면 사부님이 사제로 데리고 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이거 재밌겠는데?”

옥수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

그 시각, 길성진은 머리를 잡아 뜯었다.

"왜 맨날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같이 합을 맞춘 프로듀서가 사고를 치고 쫓겨났다.

제작진이 다른 사람을 찾는다고 부랴부랴 나선지 이틀이나 지났다.

하지만 당장 5일 뒤가 무대인데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인 건 하나 더 있었다.

"내 분량은 또 어떻게 할 거냐고."

프로듀서가 날아간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까지 찍어놓은 자신의 분량까지 날아가게 생겼다.

이미 방영된 2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음주 + 경찰폭행 + 도주’ 삼단콤보를 한 사람을 방송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 3화부터 통편집될 거다.

길성진이 이호준과 짝이 지어진 것부터, 함께 작업한 작업기, 우승을 향해 쌓아가는 빌드업.

모든 게 날아간다. 그것도 첫 경연을 앞두고.

항상 잘 나간다 싶을 때 고꾸라지는 걸 보면 지독히도 운이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지난번 숨고찾 때도 눈앞에서 1500만원이 날아가더니. 내 인생 진짜 레전드다."

전 프로듀서와 작업했던 음원도 폐기되었기 때문에 연습도 못 하고 있던 길성진은, 제작진의 연락을 받고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마침내 같이 작업할 프로듀서를 찾았다는 거다.

‘벌써?’

무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쯤 다시 섭외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 과정이 너무 후루룩뚝딱 지나가서 불안하기도 했다.

‘대충 아무나 섭외하고 나 떨어뜨리는 거 아니야?’

예전에 ‘숨고찾’에 나갔을 때 용우 제작진에게 당한 적이 있던지라 길성진은 방송국 놈들을 믿지 않았다.

탈락한 후 인터뷰를 한다며 조리돌림하던 기억이 아직도 아프다.

길성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할 프로듀서님은 누구신가요?”

피디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특별히 저희가 대단하신 분으로 모셔왔어요."

대단한 분?

피디가 이렇게 평가할 정도면, 진짜 괜찮은 사람인가 본데.

조금 안심한 길성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제작진이 날 아주 버리는 건 아닌 모양이네. 솔직히 내가 예선에서 좀 잘하기는 했지.’

심사위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올패스를 받았고, 본선 진출 결정전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바닥을 찍었던 길성진의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근데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길성진은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그런데 진짜 누구신가요?"

"길성진 님도 잘 아는 사람일 걸요. 되게 유명하신 분이거든요."

피디는 웃으며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숨고찾’에서 길성진과 천마가 어떤 악연을 맺었는지 아는 피디는, 천마를 만났을 때 길성진의 표정을 리얼하게 찍고 싶어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 제작진을 믿어버린 길성진은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렸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혹시 제이맨이라도 오는 거 아냐?'

제이맨은 길성진이 아는 프로듀서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히트메이커 2> 다크호스 길성진, 제이맨과 만나!]

[길성진 히트메이커 최종 1위···제이맨과 함께 펄엔터로 들어가나?]

[제이맨 “길성진은 최고의 보컬리스트”, 펄엔터로 영입할 것]

상상 속에서 그는 이미 우승한 후, 제이맨의 구애를 받고 펄 엔터로 들어갔다.

길성진은 히죽히죽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프로듀서를 기다렸다.

어쩌면 이호준이 떨어진 것도, 다 이때를 위한 운명인 것 같았다.

제이맨의 손을 잡고, 탈락 위기에서 우승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프로듀서님 오십니다!"

스탭의 외침에 길성진이 표정을 엄숙하게 정돈했다.

‘제이맨이 들어오면 깜짝 놀란 척해야지.’

달칵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을 본 길성진은,

"오랜만이네요?"

“!”

입을 떡 벌린 채 굳어버렸다.

< 이번에는 한팀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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