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는 한팀 (4) >
5일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나는 길성진에게 지옥 트레이닝을 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강여름은 무대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상제작부터 무대 세트준비까지 거의 사흘 만에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전폭적인 금융 지원 덕분에 예산 걱정은 없었다.
그래. 촉박한 시간 안에 무대 준비를 마쳐야 하는데, 양심이 있으면 돈이라도 줘야지.
그리고 강여름은 바쁘게 의견을 구하면서 다녔다.
“도포의 옷깃 패턴은 뭐가 나은 거 같아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 이거는 문양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저거는 바깥쪽으로 들어가잖아요!”
“...?”
강여름의 등등한 기세에 옥수진까지 가세했다.
“이건 남청빛이 도는 푸른색이고, 이건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이네요.”
“둘 다 파랗지 않나?”
“색감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파란 게 아니라 푸른색이고, 짙은 보랏빛이 도는 쪽이 신비로워보일 거 같긴 하네요.”
“...?”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서 이쪽은 아예 신경을 끄고 곡의 완성도를 다졌다.
무대를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노래다.
무대 위에서 길성진이 나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량을 올려놔야 한다.
길성진에게 맞추느라 내 역량을 줄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서 길성진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옥에서 올라온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참, 길성진과는 형 동생을 하기로 했다.
나는 특별히 사제를 가르치듯이 친절하게 가르쳤다.
“아니, 마음에 안 들어.”
“여기서 왜 쓸데없이 음을 올린 거지? 무식하게 음을 올려버리는 게 아니라 두 마디 전부터 빌드업을 쌓아야지.”
“이게 왜 안 돼? 그냥 부르면 되는거 아닌가?”
“처음부터 다시. 노래의 완성은 디테일이다. 중간에 힘 빼지 말고 끝처리까지 완벽하게.”
"스탑. 그렇다고 너무 힘을 주지는 말고. 듣는 사람이 편해야지."
그렇게 두 시간 내내 연습하던 길성진이 목이 쉬었다며 뻗었고,
퍽 퍼퍼퍼퍽!
추궁과혈을 하자 다시 살아났다.
나는 쓰러진 길성진을 다시 일으켜 세워 노래를 시켰다.
나중에 길성진은 ‘마음에 안들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얼마 없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공연일이 다가왔다.
다른 직원들은 무대 준비 때문에 먼저 도착했고, 나와 길성진은 밴을 타고 도착했다.
무대의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담요를 몸에 꽁꽁 둘러싼 채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볼에 맞닿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길성진이 웅얼거렸다.
"끄응 날이 엄청 추워졌네요."
한서불침이었던 예전의 몸이 조금 그리워진다.
헐렁한 도포 자락 안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그래도 핫팩을 덕지덕지 붙여놔서 참을 만했다.
내리자마자 기자들과 대포 카메라를 든 팬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천마 님! 5일 전에 합류가 결정 났다고 들었는데요. 어려움은 없었는지 여쭤봅니다!”
“많았죠.”
“오늘 어떤 각오로 임하실 건가요?”
“잘하려고요.”
“교주오빠아아악!”
뭔 오빠?
당황해서 돌아보자, ‘천마야사랑해♡십만교인일동’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흩날렸다.
‘십만교인’은 최근에 생긴 공식 팬클럽 이름이다.
검은 현수막에 내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걸 보니 감동스럽기도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스탭의 안내를 따라 대기실로 걸어갔다.
대기실에는 커다란 티비가 하나 놓여있었고, 당연하게도 대기실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른 참가자의 무대를 보며 하는 리액션을 따가기 위해서였다.
전체 리허설로 어떤 느낌인지 대충 봤을 텐데도, 무대가 시작되자마자 길성진은 호들갑을 떨었다.
“와 혹시 ‘마이비’ 보컬 민경환 아니에요? 나 진짜 팬인데. 민경환 선배님을 여기서 보다니 미쳤다, 미쳤어. 저분을 누가 섭외했었죠?”
제작진이 얘를 왜 좋아하는지 알겠다.
살짝만 찔러도 리액션이 쏟아져 나온다.
음. 확실히 무대는 화려했다.
일단 무대의 크기 자체가 훨씬 커서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
거기에 추가할 수 있는 장치의 개수나 함께 무대를 만드는 세션과 백댄서의 수도 훨씬 많았다.
화면에서는 연신 무대장치가 번쩍거렸고,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는 무대를 넘어 이곳 대기실까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길성진도 열심히 리액션을 하며 분량을 따내고 있다.
“컨셉이 삼바 축제인가? 진짜 섹시하다.”
이건 어떤 여자 참가자의 무대.
“뮤지컬 같네요. 저 사람들 다 섭외하는데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이건 어떤 남자 참가자의 무대.
그리고 압권은 칸의 무대였다. 칸과 참가자가 무대에 꽂아뒀던 횃불을 휘두르며 퍼포먼스를 펼치는 순간, 길성진은 할 말을 잃었다.
잠깐의 침묵 후, 길성진이 중얼거렸다.
"하, 진짜 떨린다. 저희 잘할 수 있겠죠? 제가 하필 순서를 이상하게 뽑아서···."
본선 결정전이 끝나던 그 날, 8명의 참가자는 무대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그리고 똥손 중의 똥손, 언럭키가이 길성진은 숫자 6이 써있는 제비를 뽑았다.
만약 무대가 다 끝난 후에 몰아서 투표를 한다면 마지막에 무대를 한 사람이 유리하겠지만, <히트메이커>에서는 좌석에 부착된 기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섯 번째 무대는 굉장히 어정쩡한 순서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무대에 끌린 사람들이 투표를 모두 던진다면, 남은 표가 별로 없을 테니까.
“흠.”
나는 길성진을 힐끗 보았다.
길성진은 자아가 굉장히 확실한 타입이다.
가끔 그게 좀 지나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한 흔들리지 않는다.
문제라면 길성진이 지난 숨고찾 이후, 그 자신감이 많이 꺾였다는 것이다.
그 원인에 내 몫이 없는 건 아닌지라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다.
이번 무대를 통해서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았다.
“길성진.”
길성진이 홀린 듯이 나를 돌아본다.
네가 해내야 할 몫을 대신 해주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줄 수는 있겠지.
내공을 담은 음파가 귓가를 뚫고 마음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
“꺄아아아아악!”
칸과 참가자의 합동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중에는 매그넘의 팬인 [칸댕댕]도 있었다.
H대학교 기숙사생인 그녀는 얼마 전 기말고사까지 끝내고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빵꾸난 학점을 위해서 계절학기를 들어야 하는 탓에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그녀는 기숙사에서 귤이나 까먹으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운 좋게 <히트메이커> 티켓팅에 성공했다.
티켓팅 당시에는 라인업이 확정되지 않아 ‘조금 빡세네?’ 싶은 정도였다. 매그넘 콘서트를 티켓팅하던 노하우를 발휘해서 그녀는 손쉽게 방청권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프로듀서 명일, “친구 찬스”로 칸을 불러!]
칸이 나오네?
프로듀서 명일과 제이맨은 친구이다. 그래서 제이맨을 통해 매그넘 칸을 섭외했다는 소식이 커뮤니티를 강타했다.
그때부터 암푯값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시세가 오십만 원까지 찍었을 때는, 팬인 기숙사생조차 ‘차라리 이걸 팔아서 핸드폰을 바꿀까?’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 칸의 무대를 보고 난 후, 기숙사생의 생각은 바뀌었다.
“미쳤다! 오길 잘했다!”
평소에도 칸의 무대는 화려하기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이번 무대는 특별히 더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칸의 팀은 밴드 음악을 선곡했다.
칸과 참가자의 2인 보컬로 편곡했는데, 참가자가 묻히지 않도록 칸이 호흡을 잘 조절한 덕분에 두 사람의 환상적인 듀오가 잘 돋보일 수 있었다.
거기에 유명 밴드의 히트곡을 선곡했기 때문에 관객 대부분이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였고, 화려한 무대 구성과 국내에서 손꼽히는 세션들이 그 뒤를 받쳐주었다.
기숙사생 역시 신나게 칸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방방 뛰며 응원봉을 휘두르던 기숙사생은, 불길이 치솟으면서 클라이막스로 향해 갈 때는 거의 옆사람을 잡고 흔들 정도였다.
“꺄아아악! 카아아아안!”
옆 사람도 칸의 팬이었는지 같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묘하게 동질감이 형성된 그들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무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칸의 무대가 끝나고 기숙사생이 짙은 여운에 빠져있을 때쯤, 다음 참가자의 무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녀는 반쯤 탈진한 상태에서 칸의 무대에 투표 버튼을 눌렀다. 이제 남은 건 한 표뿐.
남은 표는 견제표로 사용할 것이다.
이런 서바이벌에서 두 표 모두 잘하는 사람에게만 정직하게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방청까지 오는 사람들이면 이미 확고하게 미는 참가자들이 있고, 그들은 최애에게 주고 남은 표를 일부러 못한 팀에 던져서 유망한 다른 팀을 견제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시즌2에서 가장 견제를 많이 받는 참가자는,
‘길성진이지. 아마 칸 다음 무대였던 거 같은데.’
기숙사생은 언뜻 본 세트 리스트를 떠올렸다. 아마 6번째 무대였을 것이다.
길성진은 <히트메이커 2>에서 단연 버즈량이 많은 참가자였다.
출연 이전에도 1500만원남으로 유명했고, 제작진도 그 이야기를 조명하면서 길성진의 이미지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애는 착한 거 같긴 하던데.’
방송에서 종종 보여주는 순박한 모습을 보면 나쁜 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 만들어진 길성진의 이미지는 그런 방향이 아니었다.
1500만원까지 상금을 쌓아둔 게 사람들에게 좋게 비춰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비호감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다만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기 때문에 ‘욕심은 많지만 그만큼 실력이 받쳐주는 애’라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 8명의 참가자 중 가장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사람이었다.
이호준 병크가 터지고 나서 동정여론이 조금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천마가 합류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신 길성진은 히트메이커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견제받는 중이었다.
당장 길성진을 나쁘게 보지 않고 있던 기숙사생도,
‘얘한테 표를 줬다가는, 칸이 좀 밀릴 수도 있겠는데?’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천마를 응원하는 플래카드와 피켓이 쫙 깔렸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사랑해요 교주님
- 천마는 무대를 찢어
대부분은 입구에서 스탭이 나눠준 거긴 하지만, 그 모습을 보자 기숙사생은 경계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지난번 칸의 신곡이 천마의 둠둠둠에 패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천마의 둠둠둠을 수백 번이나 돌려 들은 그녀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오늘 1등은 무조건 칸 거야.’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절대 천마 팀에 표를 주지 않겠다고.
*
천마의 무대가 시작된 건 아직 칸이 만들어낸 열기가 식지 않을 때였다.
유명 밴드의 히트곡.
그걸 완벽하게 소화한 두 보컬.
하나가 되어 떼창을 부르는 관중들.
이걸 이길 무대는 보이지 않았다.
칸이 만들어 낸 무대는 압도적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그다음에 나올 사람에게 동정을 표할 정도였다.
그 순간, 장중의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 이제 남은 광원이라고는 응원봉과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빛뿐.
처음에는 연출인가 싶었지만 무대는 밝아지지 않았다.
“어?”
기숙사생은 눈을 깜박거렸다.
사고인가?
어느덧 친해진 옆좌석 매그넘 팬과 당황스러운 눈빛을 교환할 때였다.
무대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달빛이 어둠을 밝히듯이.
어느새 바뀐 무대에는 높이 솟아오른 전각이 있었다.
2층 무대를 활용한 세트장이었다.
Uwhi-whi-whiwhi-
고운 대금 가락과 함께, 한줄기의 불빛이 누군가를 비추었다.
전각 위에 청잣빛 도포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하얀 탈을 써서 입술밖에 드러나지 않은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신비함을 부여했다.
이번 무대는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밤처럼 조용하고 정적이다.
웅웅-우우우-우우웅
화끈했던 무대로 어수선해진 관객석을 단숨에 사로잡는 울림.
대금 선율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들어와 시선을 옭아맨다.
빠져나갈 수 없도록.
본인의 역할을 마쳤다는 듯, 대금을 연주하던 남자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
가지마.
어느새 빠져들었던 기숙사생은 짙은 아쉬움을 느꼈다.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건, 발을 구르고 선동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그 사실을 깨달을 때다.
< 이번에는 한팀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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