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57화 (57/191)

< 이번에는 한팀 (5) >

조금 더 듣고 싶다.

기숙사생은 미약한 갈증을 느꼈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저 대금 한 가락일 뿐인데 특별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금 선율은 겹쳐지는 다른 반주 속에서도 희미하게 이어지며 기대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안개처럼 깔린 드라이아이스가 옅어지며 무대 위에 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남청색 도포를 입고 하얀 사슴탈을 쓴 사람이었다.

서서히 시작되는 반주와 그에 맞춰 이어지는 대금 소리.

사슴탈을 쓴 남자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이거 무슨 노래지?’

알듯말듯하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선율에 기숙사생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슴탈을 쓴 길성진은 고개를 들어 어둠에 잠긴 전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라진 사람을 그리워하듯 노래를 부른다.

- 시리도록 빛나던 당신은 떠올라

별자리가 되오

그제서야 기숙사생은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거 눈의 별자리잖아!’

천마 채널을 종종 보던 기숙사생은, 최근 발매한 미니롱의 ‘눈의 별자리’ 역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신나는 댄스음악 쪽이 취향이었지만, 댄스음악은 계속 듣다 보면 질리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쯤 겨울 감성을 그대로 잘라내 붙인 듯한 눈의 별자리를 한 번씩 듣곤 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국악 풍으로 편곡이 된 까닭일 것이다.

원곡을 알게 되자 기숙사생은 조금 더 무대에 이입하게 되었다.

'이런 몽환적인 느낌이 어울릴 줄 몰랐는데.'

그저 차갑고 슬픈 노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극풍 편곡과 이에 어울리게 개사한 가사, 그리고 눈앞의 무대까지.

모든 게 한 편의 잘 짜인 이야기처럼 어우러졌다.

무대가 너무 멋졌던지라 기숙사생은 길성진에게 조금 후해졌다.

'얘도 잘하는데?'

기숙사생은 사실 길성진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노래를 잘하기는 했지만, 얼굴이 썩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슴 탈로 얼굴의 반을 가린 길성진을 보고 있자, 왠지 멋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노래는 소원을 비는 사람 같았다.

꿈을 계속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지금의 무대는 유명했던 길성진의 서사와 이어지며 괜히 감정적으로 뭉클해졌다.

‘1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얘도 여기서 떨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숙사생은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기숙사생은 아직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무대 연출도 좋았고, 편곡도 잘 됐고, 길성진이 잘 부르기는 했지만, 아직 혼자서 무대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초반에는 대금 덕분에 확 몰입이 됐었는데, 지금은 그 임팩트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뭔가 아쉬웠고, 칸의 무대만큼 빠져들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콘서트인 만큼 함께 왁왁 소리 지르고 같이 발을 구를 수 있는 그런 노래가 강렬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뛰어놀았으니, 지금은 쉬어가며 즐기자는 느낌으로 무대를 관람했다.

그러나, 그녀가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1절을 끝낸 길성진이 마이크를 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기숙사생은 저도 모르게 같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

그리고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조금 전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남자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어슴푸레하던 무대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

기숙사생의 눈동자가 커졌다.

밝아진 건 스포트라이트 때문이 아니었다.

대신 은하수가 깔린 것처럼 하늘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각에 달려있던 거울 조각이 빛을 반사하면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수백 개의 유리 조각이 달빛을 반사시킨다.

마치 눈의 별자리처럼.

그 빛이 후광처럼 남자를 감싸는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천마다.”

누군가 속삭이듯 말했다.

여전히 탈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천마였다.

그걸 깨달음과 동시에 노래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웅웅-우우우-우우웅

더욱 강렬해진 대금 소리. 어우러지는 현악기와 관악기.

이는 무대를 '관람'하고 있던 관객들에게 알리는 경고와도 같았다.

더이상 가만히 즐기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모두가 압도되어 천마만을 쳐다보는 가운데, 천마는 대금을 내려놓고 노래를 시작했다.

-영원히 아물지는 않으리

깊숙이 들어오는 저음이었다.

기숙사생은 처음에 남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느꼈던 갈증이 비로소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더 듣고 싶었다.

-그대가 사라진 곳에서

그만큼 매력적인 음색이다.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악기 같았다.

천마의 저음은 콘트라베이스같이 웅장했다.

낮고 탄탄한 천마의 목소리는 노래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천마의 목소리가 베이스처럼 낮게 깔리고, 길성진의 맑은 고음이 멜로디를 이어나간다.

콘서트라는 걸 고려해서 폭주하듯 고음부로 뻗어가는 노래.

하지만 베이스가 든든하니 끝없이 이어지는 고음도 불편하지 않다.

마침내 천마의 발이 땅에 닿았다.

하늘과 땅에 있던 두 사람이 만나던 그 순간, 그들은 마주 보고 노래를 이어간다.

어쩌면 둘이라는 숫자는 대칭을 구현하기에 딱 좋을지도 모른다.

-아스라이 떨어지는 눈송이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그대여

-눈의 별자리가 되어

-소복이 쌓여가오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고, 쉼 없이 교차되면서, 하나가 되어간다.

어쩐지 벅차오르는 마음에 기숙사생은 조용히 가슴을 눌렀다.

그 여운은 무대가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또 듣고 싶다.'

무대를 보았던 3분이라는 시간 속에 계속 갇혀있고 싶은 기분이다.

기숙사생은 원래 견제표로 다른 팀에게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천마에게 표를 주었다.

이걸 어떻게 안 주고 배길 수 있을까.

이 감동을, 벅차오름을, 헌사를 어떤 식으로든 쏟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분을 느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

무대를 마친 나는 환호를 들으며 뒤편으로 빠져나왔다.

‘역시 무대에 서니까 좋네.’

이 정도의 무대는 예전에 군대로 가버린 한태영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관객과 노래로 연결되는 순간은 마치 ‘내’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수백 명이 내뿜는 열기.

피부에 그대로 닿는 날것의 감정.

그리고 수백 명의 사람을 이어주는 하나의 노래.

그렇게 여운을 느긋하게 즐기며 대기실로 돌아가는데,

“와!”

길성진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깜짝이야.

돌아보니 흥분에서 방금 빠져나와 정신을 차린 듯했다.

“너무, 진짜 너무 좋았어요! 진짜 저···아니, 우리가 제일 멋있는 거 같은데요. 이런 옷도 처음 입어보고 그 빛도 너무 예쁘고···.”

아주 횡설수설하는 게 가관이다.

아무래도 무대가 주는 뽕에 푹 젖은 모양이었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고, 연신 거친 호흡을 내뱉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동공도 살짝 풀려있고, 입도 헤 벌린 게 조만간 침도 질질 흘릴 기세인데?

'아까 내공을 넣어준 게 조금 과했나?'

대단한 건 아니었고, 길성진이 너무 긴장하길래 제 실력을 못 발휘할까봐 컨디션 관리용으로 내공을 불어넣어 줬다.

무림에서 출전하기 전에 부하들에게 종종 버프용으로 써주던 거였는데, 실제로 효과도 좋았다.

무대에 선 길성진은 다른 사람이었다.

오늘 길성진은 본인의 기량을 관객들에게 분명히 보여줬다.

흥분한 길성진은 무대가 어땠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었고,

‘그냥 재워버릴까.’

고민도 했었지만 옆에서 따라붙는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길성진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대기실로 돌아갔다.

혼자서 이 여운을 조금 즐기고 싶은데, 대기실 앞에도 시련이 있었다.

“아, 천마 님!”

손을 붕붕 흔들며 다가오는 남자.

그는 칸이었다. 무대에서 방방 뛰어다니더니 그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우리집에 왜왔니>에서 안면이 있었던지라, 칸은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번 우리집 촬영 이후로 처음이죠?”

"예.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저야 잘 지냈죠. 이제 활동도 거의 끝물이거든요.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히트메이커>에 나왔는데, 천마 님이랑 겹칠 줄이야."

이 친구는 참 수다스럽다.

옆에서 길성진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칸을 쳐다보긴 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두 사람이 안면을 트게 되면, 대기실이 점거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빨리 칸을 보내버려야겠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칸이 말했다.

“제가 천마 님 보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거든요. 내년 여름에 매그넘이 완전체로 컴백하는데···”

혹시 곡을 써달라는 건가?

“...천마 님이랑 활동이 안 겹쳤으면 해서요. 천마 님은 내년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그렇게 내년 계획을 물어보던 칸은, 앞으로의 내 인생계획까지 털고 가버렸다.

마침내 조용히 있을 수 있게 된 나는 무대에서보다 더 큰 피로함을 느끼며 대기실 쇼파에 누웠다.

현장 반응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고, 방영일에 맞춰 미리 녹음해둔 음원이 발매된다.

앞으로 2주 동안 1차 본선 무대가 방영되고, 그 2주 동안 음원 성적, 시청자 투표성적까지 모두 반영되어 최종 성적이 집계된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음원 차트도 기대해볼 만 하지 않을까?'

*

최근 윤재하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의 새로운 음원인 ‘DASIY’가 잘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팬들을 위해 부른 노래인 만큼, 윤재하의 감회는 더욱 새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바로 어제 그의 팬송인 ‘DAISY’가 마침내 1위를 찍은 것이다.

"드디어!"

그는 작게 주먹을 쥐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둠둠둠이 2개월간의 차트 강점기를 끝내고, 그 빈 자리를 팬송 'DAISY’가 차지했다.

평소 차분하던 윤재하도 차트 1위가 되는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기쁜 소식을 팬들에게 전하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샷을 찍어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SNS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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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데이지(꽃)

윤재하입니다.

드디어 DAISY가 1등을 했네요.

(캡처)

이 모든 일들이 우리 데이지들 덕분입니다. 더불어 15주년 팬송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 듯합니다.

15년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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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 팬클럽의 따듯한 댓글이 달렸다. 윤재하는 댓글을 읽어보다가 흐뭇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럴까?

조금 남아있던 불면증도 씻은 듯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다음날, 윤재하가 SNS에 들어가 봤더니 메시지가 엄청 와있었다.

‘1위를 해서 다들 축하해주려나 보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한태영이 어젯밤에 군대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 형

- 방금 팀킬당함

- 차트 한번 확인해봐

- ㅋㅋㅋㅋㅋㅋ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윤재하는 급하게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거기에는···.

< 이번에는 한팀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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