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58화 (58/191)

< 이번에는 OST (1) >

1차 경연 콘서트는 거의 자정에 가까이 끝났다.

한때 [빛태영]이라는 닉네임을 쓰며 한태영을 덕질했지만, 한태영이 군대에 간 이후 천마로 갈아탄 직장인도 그쯤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 런칭을 앞두고 있어서 주말에도 야근을 해야했던 그녀는 이를 갈았다.

“내가 진짜 퇴사하고 만다···.”

물론 매달 날아오는 카드명세서를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소리지만.

무튼, 직장인은 지금 꽤 빡이 친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한숨을 쉬며 받아들였을 야근도, 주말 근무도 오늘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히트메이커 2> 방청 티켓팅에 성공했는데도 이놈의 회사 때문에 친구에게 넘겨야했기 때문이다!

친구한테 티켓값이랍시고 치킨을 받아서 속이 덜 쓰리긴 했지만, 그래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직장인은 주말에도 호출한 상사를 생각하며, 천마가 자주 하던 표현을 중얼거렸다.

“확 모가지를 따버릴까.”

다 씻고 시원한 맥주도 한 캔 딴 후, 본격적으로 방청 후기를 찾아봤다.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천마 무대에 대한 후기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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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메이커 방청 갔다왔어

5일 만에 준비했다길래 연습 부족할까 봐 걱정했는데ㅎ

역시 교주님이 찢어벌임

앞에 칸 무대 보고 걱정했는데 내가 누굴 걱정했나 싶다

여운 엄청 남더라

여기 현장 반응 다 너무 좋고 순위권도 상위권 예측

그저 우리 천길이 2차 경연도 열심히 준비하길...♡

주작 소리가 넘 많아서 인증남겨ㅎㅎ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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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더 풀어보라고! 왜 이거밖에 업냐

- 그래서···천마를 직접 보셨겠다?

- 개부럽다 나랑 눈바꾸자

- 무대사진 없나요ㅠㅠㅠㅠㅠ

ㄴ죄송합니다 사진을 못 찍었어요···. (글쓴이)

후기는 굉장히 단편적이고 두루뭉술했으며, 무엇보다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다른 후기들도 둘러봤지만, 무대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네놈의 티켓 인증 따위는 필요 없단 말이다!

무대 사진을 내놓으라고.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그녀는 얼마 전 한태영의 콘서트를 떠올렸다.

그때 음향사고에도 불구하고 천마가 개쩌는 무대를 보여줬을 때, 그녀 역시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얼마나 좋았길래 사람들이 사진을 못 찍었지?’

직장인은 조금, 아니 많이 불안해졌다.

뭔가 대단한 걸 놓친 게 분명했다.

그냥 회사를 째고 방청하러 다녀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녀는 다른 후기를 찾아봤다.

여전히 사진은 없고, 파편적인 정보만 넘실넘실 흘러다녔다.

하지만 파편들을 모은 것만으로도 엄청났다.

- 길성진 탈 쓴 게 신의 한수ㅋㅋㅋ 얼굴을 가리니 존나 신비로워보이냐ㅋ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ㅋㅋ

- 인형탈? 알바할 때 쓰는 거?

ㄴ이건 또 뭔 개소리야

ㄴ인형탈ㅋㅋㅋ은 아니고 약간 전통탈 같은 느낌

- 이번 무대 진짜 ㄹㅈㄷ다 멋져보이는 거 다 쳐넣어놨네

- 소매 나풀거릴때 나도 같이 나풀거릴뻔함

- 조명이 빛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거 다 거울 조각이라며?

ㄴㅇㅇ이거 생각한 사람 진짜 변태 아니냐ㄷㄷㄷㄷㄷ

ㄴ디테일 무엇 그저 존경합니다

착장이 어땠다더니, 편곡이 어땠다느니, 무대가 어땠다느니.

돌아다니는 말을 조합해 본 직장인은 벽을 쳤다.

‘무조건 갔어야 하는건데!’

그깟 회사가 뭐라고.

이미 새벽 2시고 다음날 출근이 기다리고 있지만, 눈이 돌아가버린 직장인은 검색을 계속했다.

슬슬 직캠 영상이 돌 때도 된 것 같은데도, 관객들 모두 무대에 몰입했었는지 직캠은커녕 사진도 거의 안 올라왔다.

그때였다.

-칸홈마계정에 직캠 떴ㄷㅏ!1!!!!!!!!!!!

칸의 무대를 찍으러 간 홈마가 천마의 영상을 올린 것이다.

파편으로만 돌아다니는 떡밥에 헐떡거리던 팬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화질은 구리고 흔들림이 많으며 잡음까지 많이 섞인 영상이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조회수는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직캠영상은 직장인이 후기 글을 보고 상상한 것보다 더 굉장했다.

특히 2절로 넘어가는 간주구간에서 검은 하늘이 은하수처럼 밝아지고, 천마가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정말이지.

진짜 천마가 강림하는 줄 알았다.

그 부분은 이미 사람들이 짤로 만들어서 ‘천마강림짤’로 재생산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인은 그렇게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발매된 [천마 X 길성진-눈의 별자리]를 무한스밍한 후,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그리고 직장인과 같은 패턴의 사람들은 많았다.

그들이 밤새 돌린 스밍의 결과는 그대로 음원 성적에 반영되었다.

천마와 길성진의 음원은, 발매되자마자 차트 상위권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

"오늘을 과연 몇 위를 하려나?"

차트 중독자인 롱서아는 오늘도 차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걸 또 봐?”

“자꾸 오르니까 재미있잖아. 어제는 37등이었는데. 오늘을 몇 등을 하려나?”

작민지는 그런 걸 왜 자꾸 들여다보냐고 타박하면서도 슬쩍 다가와서 같이 보았다.

42위였던 순위는 조금씩 올라 얼마전에 37위까지 찍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도는지 순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찔끔찔끔 순위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감질나기도 하면서 은근히 재미있다.

롱서아의 손가락이 스트리밍 사이트를 향했다.

작민지는 마음을 다잡듯이 방어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제는 순위가 밀릴 거야.”

“왜?”

“<히트메이커 2>에서 음원을 발매했으니까. 아마 위에서부터 주르륵 밀릴걸. 그래도 신경 쓰지 말라고.”

“아핫 네가 더 신경 쓰는 거 같은데?”

“야!”

작민지는 더이상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다음 앨범 준비를 위해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대박 대박! 이것좀 봐봐! 우리 순위 미쳤어!”

롱서아가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작민지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궁금해져서 컴퓨터로 음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면에 뜬 순위를 보고 당황했다.

“...?”

17위. 미니롱 - 눈의 별자리 (feat.천마)

20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천마의 무대를 본 사람들이, 원곡이 어떤 노래인지 같이 들어보면서 순위에 변동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차트 맨 꼭대기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천마가 부른 눈의 별자리가 있었다.

1위. 천마 X 길성진 - 눈의 별자리

편곡된 버전이 원곡보다 더 높은 순위에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지만, 미니롱은 천마의 무대를 보고 납득했다.

그때 롱서아가 차트를 보며 말했다.

“와···. 근데 <히트메이커> 화력은 미쳤다.”

“아무래도 시즌2가 넷플렉스에서 인기가 있으니까.”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해외 마니아층에서도 입소문을 탔다고 들었다.

그래서인가 <히트메이커>에서 만든 음원이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하며, 기존에 차트에 있던 사람들도 주르륵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윤재하의 DAISY도 있었다.

롱서아는 어제 윤재하의 SNS에 올라온 게시글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팬들에게 자랑할 만큼 좋아하던데.

“우리는 천마 님 덕분에 위로 올라갔지만, 이분은 진짜 억울하겠다.”

“그러게. 심지어 2등도 아니고 6등까지 쭉쭉 밀렸어.”

“이건 뭐 밀림의 왕자냐.”

.

.

.

그리고 그 시각.

윤재하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내 노래는 왜 여기에 있는거지?"

어제는 분명 1등이었는데, 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

천마의 사극풍 편곡은 다른 업계로 슬금슬금 넘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은 드라마 업계였다.

<대한의 검성(劍星)>

넷플렉스와 계약해서 사전제작 중인 사극 드라마였다.

구한말 척준경의 후예가 나타나 검으로 대한제국에 드리운 암운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다.

시대극과 액션활극이 적절히 합쳐진 이 드라마는 라이징 작가인 신민희가 메인으로 집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보조작가까지 퇴근한 후, 혼자 집무실에서 집필을 이어가던 신민희는 기지개를 쫙 켰다.

“으아 누가 나 대신 글 좀 써주면 좋겠다!”

10시간 내내 컴퓨터만 붙잡고 있던지라 휴식을 좀 취하기로 했다.

신민희는 거실로 나가서 TV를 켰다. 그리고 들어간 건 넷플렉스.

그녀는 넷플렉스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내 작품도 이제 여기 들어간다!’

사전제작이라서 실제 런칭되는 건 나중의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건 들어가는 거다.

자신의 작품이 전세계가 보는 OTT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요즘에는 어떤 드라마가 잘 나가나.

신민희는 동향을 체크하기 위해서 인기순으로 나열된 목록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1등을 하고있는 프로그램은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이었다.

1. 히트메이커

“아, 이거. 넷플렉스에서 사 왔나 보구나.”

신민희는 작년에 <히트메이커 1>을 봤었다. 그때는 케이블 방송인 Snet에서 했는데 꽤 히트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예능이 넷플렉스에서 1위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녀는 이번 시즌2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졌다.

신민희는 머리도 식힐 겸 최신화를 틀었다.

이미 시즌1을 봐서 포맷은 익숙하기에 1화부터 정주행을 하지 않아도 됐고, 원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예선보다는 본선 무대가 더 화려하고 재미있다.

방송은 만족스러웠다.

넷플렉스에서 제작비를 두둑하게 쥐여준 모양인지, 신민희가 자주 들어본 사람들이 티비에 나왔다.

특히 매그넘의 칸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기발했다.

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횃불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넣으려고 했던 민중봉기 에피소드에 대한 영감이 마구마구 치솟았다.

‘영감은 엉뚱한 걸 보다가도 찾아온다니까!’

영감님도 찾아왔으니, 이제 티비를 끄고 집필을 시작해야 한다.

시간도 슬슬 늦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집필을 시작하지 않으면 오늘도 작업실에서 밤을 보내야겠지.

하지만 신민희는 쇼파에서 떨어지기 싫었다.

‘다음 무대까지만 볼까?’

대충 어떤 느낌인지만 보고 드라마로 넘어가려던 신민희는 어느새 <히트메이커>에 푹 빠졌다.

그렇게 다음 무대가 다다음 무대로 넘어갔고, 어느덧 최신화 마지막 무대가 나오고 있었다.

천마의 무대였다.

원래 무대 순서와는 달랐지만, 편집하면서 천마의 무대가 엔딩 쪽으로 배치됐다.

Uwhi-whi-whihi-whi

구슬픈 대금 가락을 듣는 순간, 칸에게서 받은 이미지가 싹 날아가 버리고 거기에 새로운 그림이 덧씌워진다.

예스러운 전각 위.

하얀 탈을 쓴 선비가 대금을 연주하는 모습은, <대한의 검성> 주인공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클라이막스에서 별빛을 받으며 내려오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무대는 순식간에 끝났지만 신민희 작가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마지막쯤 메인 빌런과 만났을 때, 저런 식으로 내려오면 좋을 거 같은데!’

아이디어가 샘솟다 못해 쏟아지고 있었다.

'노래도 너무 좋았고.'

방금 들었던 그 음악이 딱 사극풍이라서, 그런 느낌의 노래를 메인테마곡으로 써도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피디님이랑 음악감독님께 말씀드려볼까? 천마는 요즘 핫한 작곡가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때쯤 최신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왔다.

이제 진짜로 집필해야 하지만 신민희는 쇼파에 계속 누워있고 싶었다.

그녀는 ‘내 드라마의 OST를 써줄 사람이니까 한번 알아볼까?’라는 핑계를 대며 뉴튜브 검색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이 천마에게 입덕하는 코스를 따라갔다.

마지막으로 둠 챌린지에서 운룡대팔식을 펼치는 모습까지 본 신민희는 확신했다.

“그래. 이거지!”

다음날 신민희는 바로 메인 피디에게 의견을 전달했고, 메인 피디가 검토해보겠다고 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원고는 어디까지 쓰셨나요?”

“앗!”

“작가님, 군만두만 드시고 싶으세요?”

< 이번에는 OST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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