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60화 (60/191)

< 이번에는 OST (3) >

이번 주에는 천마의 <히트메이커> 녹화 일정이 있어서, 미팅은 다음주에 잡혔다.

음악감독은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시가 바쁜데 계속 그쪽에 맞춰주기는 개뿔.”

한번 천마가 싫어지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계속 궁시렁거렸다.

<대한의 검성>이 어떤 작품인데!

넷플렉스에서 편당 20억이 훌쩍 넘는 투자를 받았다.

글로벌 OTT에서 항일운동을 그려내는 작품을 자체제작하는 건 처음이라, 사람들도 관심을 갖는 작품이었다.

대본은 또 어떻고.

드라마 및 영화 업계에서 오래 일한 음악감독도 대본을 읽어봤지만 재미있었다.

사극 특유의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는데, 신민희 작가가 위트있게 풀어내서 밸런스를 잘 잡아냈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국뽕 요소들도 과하지 않아 좋았다.

거기에 사극 전문 김경수 피디가 연출을 맡았으니, 연출 쪽도 문제가 될 게 없다.

‘이건 성공의 냄새가 난다!’

음악감독은 들떴다.

한국 드라마는 세계에서도 잘 팔리는 편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그가 디렉팅한 음악을 들으며 드라마에 몰입할 걸 생각하니 흥분이 됐다.

이번 드라마가 성공하면 커리어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다.

음악감독은 얼마 전 스타덤에 오른 친구를 떠올렸다. 10월쯤에 넷플렉스에서 런칭한 좀비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그게 히트하면서 그 친구 역시 같이 떴다.

음악감독까지 주목받기가 쉽지 않은데, 국내뿐만 아니라 각종 외신에서도 인터뷰를 따러올 때는 얼마나 부럽던지.

그 친구처럼 커리어에 대박작 하나는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음악감독은 <대한의 검성>이 바로 그 대박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음악감독은 엄청나게 공들여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작가에게 받은 대본을 수십 번 읽으면서 작중인물과 상황에 대해 고민했다.

밤을 새우는 건 기본이요, 평소에 같이 일하던 OST 제작회사를 닦달하며 곡 수집을 계속했고, 성에 차지 않으면 직접 곡을 만들기도 했다.

영혼(과 음악팀)을 갈아 넣어서 큰 흐름은 얼추 완성된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 갑자기 천마가 들어오네?

만약 천마가 작곡까지만 하고, 자신이 이후의 편곡과 작사, 프로듀싱을 맡는다면 눈 딱 감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경수 피디는 프로듀싱까지 전부 천마에게 맡길 모양인 듯했다.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지."

심지어 천마가 맡을 부분은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선율이다.

주인공이 악당을 쓸어버리고 표식을 남길 때마다 나오는 하이라이트.

그 부분을 다른 사람이 맡으면, 자신이 생각하던 흐름이 완전히 깨질 수 있다.

OST 음악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음악감독은 아직 천마가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궁금하기는 했다.

‘얼마나 잘하길래 작가가 그렇게 꽂힌 거야?’

작가가 회의에서 <히트메이커> 얘기를 그렇게 해대길래 음악감독은 뉴튜브를 찾아봤다.

‘천마’라고 검색하니 히트메이커보다는 다른 쪽이 많이 나왔다.

1. 둠 챌린지 - 원본 비교 영상

2. <우리집> 양궁

3. 주간곡소리-애니메이션 주제가 발라드 편곡

4. 주간곡소리-판소리 R&B 편곡

“...?”

음악감독은 혼란스러웠다.

작곡가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댄스챌린지 조회수가 천만이 넘고, 양궁 조회수가 수백만을 찍는 거지?

일단 앞의 두 개는 제껴버리고, 세번 째에 나온 주간곡소리부터 클릭했다.

영상은 진지하게 음악을 만든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디지몬스터 주제가를 어떻게 발라드로 바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퉁명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조합이라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십 분은 금방 지나갔고, 음악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

새, 생각보다 괜찮네?

천마의 결과물은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를 넘어서서 좋았다.

솔직히 자신에게 천마와 똑같은 짓거리를 시키면 해낼 자신이 없었다.

음악감독은 소심하게 꿍얼거렸다.

"...젊어서 그런지 센스는 좋네."

음악감독은 조금 더 찾아봤다.

보아하니 차선우의 히트곡은 꽤 있었다.

둠둠둠, 이거는 최근 들어 식당에 가면 맨날 틀어주는 노래인데 댄스 힙합 쪽이다.

티키티키, 이거도 여름에 꽤 들어봤는데 아이돌 노래였다.

우리 봄, 봄에 드라이브하러 갈 때마다 많이 들었던 노래다.

‘어떤 스타일인지는 알겠네. 듣기 쉬운 멜로디를 트렌디하게 뽑아내는 걸 잘하는군.’

마지막으로는 작가가 그렇게 강조하던 ‘눈의 별자리_국악 편곡 버전’도 들었다. 왜 작가가 반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음악감독은 평가를 살짝 수정했다.

‘확실히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하군. 하지만 조금 더 다듬어야 해. OST는 단순히 대중가요를 찍어내는 것과는 결이 다른 작업이지.’

곡을 잘 뽑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라마에 몰입시키는 게 우선이다.

드라마가 잘 되어야지 OST도 뜨는 법이니까.

“작품과의 호흡, 화합!”

작품과 어우러지며, 각 트랙과의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숲을 만들어내는 것!

이게 음악감독의 신조였다.

그리고 음악감독은 차선우가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천마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재능이 아닌, 시간과 경험만이 알려줄 수 있는 게 분명 있으니까.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이 누그러진 음악감독이 거만하게 중얼거렸다.

"하는 걸 봐서 내가 가르쳐줄 수도 있고."

*

'이거 진짜 재미있네.'

<대한의 검성> 제작진은 작가의 친필사인이 된 대본집을 건네주었다.

나는 밤을 꼴딱 새워서 대본을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다.

이렇게 푹 빠져서 책을 읽어본 건 오랜만이다.

주인공인 척대광은 대한제국의 무관이다.

관직에 있으면서 대한제국이 수탈당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던 그는 항상 울분에 가득 차있다.

이후 일본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고, 조국마저 잡아먹힐 위기가 닥친다.

척대광이 우연히 조상인 척준경의 비급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비급에서 힘을 얻은 척대광은 낮에는 평범한 무관으로, 밤에는 대한제국을 위협하는 적을 제거하는 히어로가 되어 활동한다.

원래도 나는 무협지를 읽는 게 취미였다.

<대한의 검성>을 무협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액션 시대극이라 비슷한 맛이 있다.

특히 주인공이 적을 쓸어버리고 일장기에 오망성 표식을 남겨놓은 장면은 마음에 쏙 든다.

잘 쓰지도 않던 검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괜히 불쑥불쑥 올라온달까.

'무림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는데.'

별호를 알리고 싶어서 전투가 끝난 장소에 표식을 남겨 둔다거나, 상처에 장난질을 해두던 사람들.

그런 게 조금 멋있어 보여서 나도 따라해보고 싶었는데··· 음공은 그런 걸 할만한 게 없더라.

어쨌든.

'마침 내일이 미팅이니까 OST도 미리 손을 대볼까?'

제작진은 내 노래를 어디에 쓸 건지 미리 전달해주었고, 대본을 읽고 나니 그 장면을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주인공이 가진 감정적인 앙금에 집중하면서도,

악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액션을 강조할 수 있는 사운드.

‘그냥 간단히 틀만 잡아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날이 밝았을 때는 완성이 됐다.

.

.

.

그렇게 미팅 시간이 다가왔다.

차선우는 김경수 피디와 먼저 만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아, 오셨군요! 우리 작가님이 그렇게 뵙고 싶어 하셨는데, 오늘 오다가 사고가 나서 늦어지신다네요.”

“이런. 괜찮으신가요?”

“가벼운 접촉사고라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이후 김경수 피디 역시 촬영이 있어서 바로 나갔다.

스탭의 안내를 받아서 회의실로 들어가자 음악감독이 있었다.

음악감독이 힐끔힐끔 훑어보는 눈빛에 차선우가 생각했다.

‘왜 저렇게 변태같이 쳐다보지?’

차선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음악감독 역시 생각했다.

‘되게 어려 보이네. 물론 나도 젊은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듣긴 했지만, 거의 내 아들뻘인데.’

미묘한 기류 속에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한의 검성> 음악 총괄을 맡은 최기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차선우입니다.”

제작진이 차선우에게 어떤 테마곡을 원하는지 전달해주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최기훈 감독과 논의한 후 곡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는 게 오늘 미팅의 목적이다.

최기훈 감독이 물었다.

“대본은 좀 읽어보셨나요?”

“네. 어제 밤새서 읽었습니다. 재미있던데요.”

차선우는 진심으로 말했지만, 최기훈 감독은 ‘미팅 전날 밤 겨우 읽어봤다’라고 받아들였다.

듣기로 차선우는 스케줄이 빡빡한 편이고, 지난주에 <히트메이커> 촬영 때문에 미팅 일정까지 미뤘기 때문에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연구한 최기훈 감독은 불퉁하게 생각했다.

‘그나마 대본이라도 읽어와서 다행이네.’

그래도 예의상 물어봤다.

“대본을 읽으셨으니 곡에 대해 아이디어는 좀 생기셨을까요?”

차선우가 합류하기로 결정난 것도 일주일 전인 데다, 대본도 어젯밤에 읽어봤다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최기훈은 당연히 차선우가 준비되어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잘됐어. 내가 만든 시안을 들려주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지!’

작가가 원해서 끼워주기는 하겠다마는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최기훈 감독은 이 계획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생각난 게 없으면 제가 시안을 몇 가지 만들어···.”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곡은 다 썼습니다.”

“엥? 벌써 완성했다고요?”

“아···. 완성까지는 아니고요.”

아무래도 비장미가 넘치는 웅장한 곡인 만큼 오케스트라 세션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미디로만 찍어내서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차선우는 말을 정정했다.

“오늘 새벽에 틀만 잡았어요.”

그래서 최기훈 감독은 정말 차선우가 ‘틀만 잡은’ 줄 알았다.

“열정적이시네요. 대본을 읽자마자 틀도 잡아놓으시고.”

“영감이 바로 떠올라서요.”

“하하하. 그럴 때가 있죠. 저도 젊을 때는 영감이 팍 떠오르면 밤샘 작업도 했는데, 나이 먹어서는 몸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저도 시안을 몇 개 만들어보기는 했는데, 갓 나온 따끈따끈한 작곡가님 곡부터 먼저 들어볼까요?”

천마의 곡을 먼저 들어본 다음, 완성도 높은 자신의 곡을 들려줌으로써 확실히 비교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흐흐. 그러면 천마도 나의 뛰어남을 알게 되겠지. 그런 후에 몇 수 가르쳐줘야겠다.’

그렇게 차선우의 노래가 먼저 흘러나왔다.

한국의 전통 음악, 전자음악, 오케스트라.

세 가지 구성요소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

상대적인 사운드 패턴은 서로 충돌하면서 점점 상승해나간다. 그 가운데서 주제 모티프가 도드라진다.

클라이맥스에는 ‘워-워-워-워!’ 함성을 지르는 듯한 사운드 샘플이 섞이면서 박진감을 고조시킨다.

최기훈 감독은 입을 떡 벌렸다.

‘뭐야? 틀만 잡았다며?’

솔직히 이 정도면 다 완성된 거나 다름없다.

최기훈 감독은 저도 모르게 몇 번 더 돌려들었다.

사운드 트랙만 들어도 드라마의 씬이 저절로 떠오른다.

검성의 정체를 알아내려 파고드는 세력.

집요한 추격을 뿌리치고, 적의 심장부에 칼을 꽂아 넣을 때까지 이어지는 숨 막히는 긴장감!

치밀하게 곡을 설계해서 감정을 끌어올리는 부분은 기가 막힌다.

보컬이 입혀지고 장면과 결합됐을 때, 어떤 시너지를 불러일으킬지 기대가 될 정도다.

최기훈 감독은 인정했다.

‘작가가 괜히 천마 염불을 외운 게 아니구나. 진짜 대단하네. 이거 오늘 새벽에 쓴 거 맞아?’

솔직히 자신이 만든 시안보다 훨씬 좋다.

천마의 노래를 먼저 듣고, 자신의 것을 나중에 들려주기로 하길 잘한 것 같다.

순서가 바뀌었으면 부끄러워질 뻔했다.

‘내가 만든 건 대충 뭉개고 가야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차선우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 감독님이 쓴 곡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

< 이번에는 OST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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