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세계로 (2) >
마침내 <대한의 검성>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빵빵한 배우와 제작진. 200억에 가까운 블록버스터 급 제작비.
그리고 글로벌 OTT인 넷플렉스에서 구한말 항일운동기를 그린 드라마에 투자했다는 사실까지.
예고편 티저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청했다.
- 마참내!!!
- 와ㄷㄷㄷ이게 드디어 나오네
- 막 검기 날리는거 개에바일 줄 알았는데 괜찮네?
- 이도형 미쳤다 ㄹㅇ 날아다니데
- 존나 멋있다 지렸다
- 제발 빨리 다음달 와라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역시나 화려한 액션씬이었다.
제목에 ‘검성’이라는 단어가 박혀있는 것처럼, 주인공이 펼치는 검술은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허접하게 칼을 휘두르고 되도 않는 와이어 액션만 난무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는데, 액션씬은 의외로 현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쳤다.
2분이 조금 넘는 긴 영상이었지만, 뒤로 흐르는 OST가 장면을 돋보이게 해주면서 누가 봐도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면과 한 몸처럼 붙어있던 노래는, 영상이 모두 끝난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처음에는 화려한 액션씬에만 주목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댓글창에서 노래 얘기만 할 정도였다.
- 대사도 하나 없는데 무슨 말 하는지 알 거 같냐
- 혹시 티저에 나오는 노래 아시는 분 공유좀 해주세요 ㅠㅠ
ㄴ 2222 누가 좀 알려조라
- 근데 노래 진짜 잘 뽑았네
- 이집 OST 잘하네
ㄴ ㄹㅇ맛집인듯
- 그런데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ㄴ 분명 어디서 들었는데 기억이 안남
직장인과 대학원생도 티저 영상을 보았다.
치킨이 식는 것도 잊고 두 사람은 티저 영상을 3번쯤 돌려본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대학원생은 감탄을 거듭했다.
“와 진짜 예고편 티저 잘뽑았다. 나중에 넷플렉스에 뜨면 이건 무조건 본다.”
줄거리가 대충 예상되면서도 기대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예고편 하나만으로 <대한의 검성>을 보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원생 역시 OST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 마지막 씬에서 노래 진짜 좋은데? 누가 부른 거지?”
솔직히 티저 영상을 봤으면 노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드라마를 보면서 OST 때문에 몰입이 된다는 걸 느낀 적은 없었다.
드라마 씬이 메인이고 OST는 그저 보조적인 장치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OST에 맞춰 씬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음악이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금 OST가 나온 마지막 씬만 한 번 더 돌려본 대학원생은 푸념하듯 말했다.
“OST만이라도 먼저 공개해주면 좋겠는데.”
“그러게.”
친구의 말에 직장인은 대충 대답했다.
지금 직장인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직장인이 천마를 바로 떠올리지 못한 건, 노래가 드라마 씬이랑 너무 잘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마치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도형 배우가 직접 불렀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계속 머리를 맴도는 궁금증에 직장인은 기사를 찾아봤다.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대한의 검성>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건 뛰어난 액션씬과, 탄탄한 배우진의 연기력, 프로모션 및 공개 일정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조금 더 파고들자 감독과 작가, 음악감독 같은 제작진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직장인은 원하던 정보를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천마, <대한의 검성>에 전격 참여!]
[천마가 ‘검성’의 노래를 만들다···무림대통합?]
OST를 부른 사람은 바로 천마였다.
직장인은 무릎을 쳤다.
“아, 맞네맞네! 이 노래 천마였네!”
직장인의 외침에 대학원생이 눈을 깜박거렸다.
“엥? 천마라니? 천마가 이거 불렀대?”
조금 전까지만 시큰둥하던 친구가 반응하는 걸 보니, 직장인은 어깨가 으쓱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친구에게 천마를 자랑할 수 있는.
그리고 직장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들은 OST 우리 애가 불렀다고. 작곡, 편곡, 작사, 프로듀싱까지 전부 직접했대.”
“진짜? 천마가 그걸 불렀다고?”
대학원생도 천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윤재하가 나왔던 컴백일지에서 팬송을 십 분 만에 후루룩뚝딱 만드는 모습을 봤었으니까.
그때 진짜 신기해서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근데 천마는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지 않아?"
하지만 방금 들은 OST는 대학원생이 알고 있던 천마의 음악과는 달랐다.
국악 풍의 노래.
윤재하의 'DAISY’와도, 랩실에서 아직도 울려 퍼지는 '둠둠둠'과도 전혀 다른 스타일, 다른 장르였다.
보통 국악풍 노래는 묵직해서 손이 안 가는 편인데, 이 노래는 현대적인 전자음악 요소도 섞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벌써 영상을 5번 돌려보았지만 질린다는 느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15초밖에 안 나오는 게 감질이 나서 전곡을 풀로 들어보고 싶다.
"야, 천마는 원래 장르같은 거 안가리고 다 잘해."
대학원생이 관심을 보이자 직장인은 신이 났다. 그녀는 친구에게 아끼고 아끼던 영상을 추천했다.
시작은 이번 OST와 비슷한 ‘눈의 별자리 편곡버전’이다.
“흠흠. 궁금하면 그럼 이것도 볼래?”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담소랑 주간곡소리로 넘어가야지.
당연히 최종 목표는 콘서트에 데려가는 거다.
*
길성진은 결국 <히트메이커>에서 우승을 했다.
우승 상금은 무려 150,000,000원!
심지어 방송사 측에서 세금까지 깔끔하게 내줘서 세후로 1억 5천만 원을 맞춰 주었다!
숨고찾에서 날렸던 금액의 딱 열 배.
금융치료를 받은 길성진은 모든 자신감을 되찾았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해외여행을 보내드렸고, 남고생을 만나서 소고기도 사주었다.
이정도면 펑펑 쓴 것 같았는데도 돈이 남았다.
길성진은 다음으로 돈을 쓸 구석을 생각했다.
“히히. 나도 천마 님처럼 작업실을 새로 구해야지.”
아티스트가 자기만의 작업실을 갖는 건 정말 멋져 보였다!
천마의 작업실에서 멋들어진 장비들로 연습을 할 때부터 길성진도 작업실에 대한 뽕이 차고 있었다.
"개쩌는 작업실에서 개쩌는 곡들을 만드는 거야. 뉴튜브에도 한번 올려볼까? 막 조회수도 백만 회 찍고 그러는 거 아니야?"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다.
길성진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특히 자신을 응원하고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댓글은 가히 중독적이었다.
"오늘은 무슨 댓글이 달렸으려나."
숨고찾 이후에는 온갖 욕을 다 처먹어서 인터넷 어플까지 삭제했었는데,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아, 얼마전에는 그토록 바라는 기자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었다.
길성진은 <히트메이커>에서 우승을 하고,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린 상황이다.
이미 기자들에게 무슨 질문이 나오고, 어떻게 대답할지도 모두 생각해놓았다.
그래서 길성진은 자신감 넘치게 인터뷰에 응했다.
“길성진 씨는 어린 나이에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하셨는데요.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그, 그게 말입니다.”
뭐부터 얘기하지?
갑자기 머리가 굳어온다.
“먼저 음···. 많은 팬분들이랑 천마 님이 응원해주셨고.”
근데 천마 님은 응원이 아니라 구박을 했는데?
“천마 님의 구ㅂ···아니, 트레이닝도 도움이 됐고, 생각해보니까 천마 님이 곡도 많이 써주셨고, 아니 많이라고 하기에는 3곡이긴 했는데 전부 좋아서···.”
인터뷰는 망했다.
길성진은 그때를 생각하며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다행히 인터뷰 영상은 나쁘지 않았다.
편집의 힘이랄까? 바보같이 말을 더듬던 부분은 적당히 잘라줘서 일반인처럼은 보였다.
<히트메이커> 제작진도 더이상 악의적으로 편집할 이유가 없었고, 화제가 된 우승자인 만큼 신경을 써준 덕분이었다.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 다음 인터뷰는 ‘데뷔앨범으로 차트 1위를 한 길성진!’...이려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길성진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려면 나도 첫 앨범을 내야지.’
우승 이후 기획사나 레이블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히트메이커>에 참가했던 다른 프로듀서들은 물론이요, 4대 기획사인 어썸뮤직에서도 연락이 왔다.
어썸뮤직은 한태영이 소속된 곳으로 유명한 보컬리스트들이 많이 포진한 기획사였다.
어썸뮤직에서는 만들어놓은 곡을 들려주면서, 이 노래를 길성진 첫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곡은 꽤 괜찮아서 길성진도 조금은 혹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내가 의리가 있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천마 덕분이다.
본선에서 처음 팀을 이뤘던 프로듀서가 갑자기 증발했을 때는 정말 끝장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천마는 짧은 시간 안에 '눈의 별자리' 무대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그때 불렀던 곡은 아직도 차트의 최상단에서 놀고 있다.
천마의 뛰어난 실력을 직접 경험한 길성진은, ‘천마신교 레코즈’에 들어가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형동생 하는 사이라고."
심지어 무대를 준비하며 천마와 호형호제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천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길성진은 굉장히 기뻤다.
“흐흐흐. 이제 날 영입하는 건가?”
길성진은 부푼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형님. 전화받았습니다!"
- 어 그래. 너 혹시 시간 되냐?
"저야 언제나 오케이죠."
길성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계약서에 싸인 하자고 부르는 건가?'
하지만 길성진이 상상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콘서트 하는데 게스트 올래?
대신 다른 제안이 왔다.
*
장충동 모 체육관에서 열리는 첫 콘서트 「Cheon-mazing」
시간은 빠르게 흘러 콘서트 시작 10분 전이 되었다.
나는 스탭의 안내에 따라 정해진 자리에 가서 준비를 했다.
콘서트홀의 맨 꼭대기.
바로 거기에 내가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콘서트장의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자리를 잡는 세션과 분주히 돌아다니는 스탭들. 그리고 최종점검을 하는 직원들까지.
콘서트를 위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하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꽉 찬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벌써 다 찼네’
아침에 와서 봤을 때는 생각보다 넓어서 놀랐다.
3일 동안 이어지는 공연, 1만 5천 석이 전석 매진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때는 숫자로만 봐서 체감이 안 되었나 보다.
10만 명의 교인 앞에 설 때보다, 오천 명의 관객 앞에 서는 게 더 크게 다가온다.
가득 찬 오천 개의 좌석.
오천 명의 사람들.
그들의 손에 들린 수천 개의 응원봉.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림에서의 생각이 난다.
횃불을 들고, 무림을 일통하러 가는 나를 응원해주는 교인들.
그때와 다른 건 그들은 세상을 향해 싸우러 갔지만,
지금은 내 사람들을 나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내 세상은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하기도 할 거고, 호숫가에 배를 타고 누워있는 것처럼 평화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이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목을 풀었다.
내공을 돌려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7시 정각.
시작을 알리는 사인과 함께 첫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이내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원격제어로 응원봉 횃불마저 꺼진다.
- 둠둠둠
그 가운데서 울리는 낮은 고동.
언뜻 들으면 악기처럼 들리는 소리.
하지만 이건 악기 같은 게 아니다.
내 목소리였다. 화성을 겹겹이 쌓아 올려, 이 노래를 온전히 내 목소리로만 채워놓았다.
그건 그 어떤 악기와도 비할 수가 없을테니.
- 둠둠둠
목소리에 깃든 신비한 힘이 사람들의 마음에 사정없이 파고든다.
육합전성을 활용한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
마치 깊은 물에 빠진 것처럼.
목소리가 주는 무게감에 놀라던 사람들은,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한다.
그때 누가 소리쳤다.
“위다!”
수천 쌍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그곳에서, 천마가 내려오고 있었다.
< 천마의 세계로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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