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세계로 (4) >
그때는 콘서트가 9부 능선을 넘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
앨범 수록곡부터, 게스트와 함께한 커버곡, 뉴튜브에 올렸던 자작곡까지.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나는 이마를 닦으며 남아있는 내공을 확인했다.
‘일할 조금 넘게 남았나? 이정도면 이십 분 정도 더 부를 수 있겠네.’
아슬아슬했다.
그동안 수련도 꾸준히 하고, 종종 약초들도 사먹어서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프닝에서 무리를 한 게 컸다.
'육합전성이 좀 무리수였나?'
앰프를 비롯한 현대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아 육합전성 비슷한 걸 연출했는데, 야매라도 육합전성은 쉽지 않았다.
대신 내공을 많이 소모한 만큼 사람들을 단번에 몰입시킬 수 있었다.
가성비가 좋지는 않았지만··· 가심비는 최고였다.
'그래도 첫번째 콘서트인데, 이정도는 해야지.'
마침 준비한 곡도 얼마 안 남았으니 사람들을 끝까지 즐겁게 해줘야겠다.
제대로 탕진 한번 해보자.
나는 다음 무대를 떠올렸다.
‘드디어 그 차례인가.’
첫 콘서트에 와준 팬들을 위해 선물.
나를 비롯한 직원들이 두 달을 공들여 준비한 무대.
바로 2집 타이틀곡을 공개할 시간이다.
조각상을 쓰자는 옥수진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심혈을 기울여 무대를 꾸몄다.
이 무대에 동원된 안무팀만 십수 명에, 특수 분장과 화려한 무대 장치까지.
오프닝 무대를 포함해서, 오늘 무대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은 무대가 아닐까 싶다.
뒤에서는 아직 무대가 준비 중이라서, 나는 팬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벌써 마지막이 다가오네요.”
밑에서 아쉽다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콘서트가 끝나가서 아쉽다느니, 100시간만 더 해달라느니, 막무가내로 던지는 애정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아직 팬싸인회도 하지 않은지라 얼굴을 맞대고 팬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채널의 구독자 수나, 내 영상의 조회수로.
그것도 아니면 라이브 방송에서 올라오는 채팅으로만.
나는 그렇게만 팬을 만나왔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더욱 특별했다.
“더 보고싶은 무대가 있어요?”
앵콜 무대를 생각하고 했던 질문이었다.
'둠둠둠'이라던지, h.e.a. 라던지. 오늘 부른 곡 중에 좋은 곡들 많잖아.
하지만 관객석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애교 보여줘!”
“살구송 해주세요. 살구송!!”
방금 살구 어쩌고 한 사람은 내 시청자인 게 분명하다.
‘나는 살구야 너랑 살꾸야’같은 이상한 가사를 가진 노래였는데, 얼마전에 주간 곡소리에서 저걸 락으로 편곡하는 미션이 있었다.
‘살구송을 하느니 검성 새끼랑 맞짱 한번 더 뜨고 말지.’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마침 스탭도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아,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네요.”
우우우우우우!
밑에서 오늘 나온 반응 중 가장 큰 야유가 들렸지만, 이어지는 내 말은 야유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들려드릴 노래는 자정에 공개될 2집 타이틀곡입니다.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들려드리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동시에 반주가 흘러나온다.
한낮의 햇살처럼 느긋한 선율.
처음 공개하는 곡인 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일부러 길게 편곡한 인트로다.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귀에 감겨들다가···.
뚝!
끊겼다.
“???”
당황한 머릿속을 제일 먼저 스쳐지나가는 건,
‘무대사고라고? 또?’
한태영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섰을 때도 이랬는데.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라고 듣기는 했지만, 하필 내 첫 콘서트에서 일어날 줄이야.
어이없는 해프닝에 화가 난다.
그때였다.
치지지지직-
노이즈가 들려온다.
오래된 TV에서나 날법한 소리.
동시에 뒤쪽으로 환한 불빛이 켜진다.
‘이런 진행은 없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
놀라움? 감탄?
문장 부호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난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화면에 나온 건 부모님 두 분이셨다.
원주에 있는 낭만포차를 뒤로 하고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찍으시는 게 쑥스러우신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부모님이 왜 여기에? 이건 또 언제 찍으신 거지? 아니,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거야?’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영상편지가 시작되었다.
- 아들, 곧 생일인데 지금 콘서트 준비하느라 정신 없지?
아, 그래.
생일.
나는 입안에서 그 어색한 단어를 굴려보았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그건 수십 년간, 머릿속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던 기억이었다.
먼지 쌓인 기억의 더미들 속에서, 나는 찾을 수 있었다.
2월 10일.
첫 콘서트를 하는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는 것을.
무림에서는 몇 번 혼자서 조용히 내 생일을 자축하다가, 서른을 넘기고 나서는 그마저도 넘어갔다.
중요한 일이라도 90번쯤 반복되면 시시껄렁해지기 마련이고, 그건 생일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생일보다 중요한 게 많아졌을 때, 나는 그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한창 말을 하신 어머니는 아버지께 마이크를 넘겨드렸다.
- 직원분이 여기까지 왔다가셨다. 네 생일을 팬들과 같이 축하하고 싶다며 영상을 찍으러 왔더구나.
그러고보니 옥수진이랑 강여름이 동시에 휴가를 쓴 적이 있다.
둘이 어딜 놀러 가나 싶었는데, 원주에 내려갔던 거구나.
어쩌면 옥수진이 콘서트 일정을 잡을 때, 내 생일을 기억하고 이렇게 날짜를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찍는데 왜 휴가를 써.’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썼던 연차는 복구해줘야겠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 조금 감동적이긴 했다.
마침 첫콘이 생일과 겹쳐서 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된달까.
-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 생일 축하하고 첫번째 콘서트도 축하한다.
70년 만에 아버지의 축하를 들으니 왠지 충전이 되는 것 같다.
이제 기세를 몰아 콘서트 마지막까지 달리면 된다.
아, 그전에 서프라이즈를 준비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영상 편지를 준비했을 줄이야 고맙···.”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실내를 빼곡하게 채운 불빛.
불꽃을 형상화한 응원봉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멜로디에 맞춰 규칙적으로.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일년에 딱 한번,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던 특별한 멜로디.
팬들은 한목소리로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 사랑하는 천마의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공연장 양쪽에서 무언가가 두둥실 떠올랐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색색의 풍선들.
풍선 끝에 달린 리본에는 종이쪽지가 매달려있다.
뒤쪽에 있는 커다란 팬이 불러낸 바람을 타고, 몽글몽글한 풍선 무리는 천천히 날아온다.
나는 가장 먼저 다가온 풍선에 손을 뻗었다.
조심스런 손길로 묶인 끈을 끌러낸다.
쪽지를 펼치자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꾹꾹 눌러쓴 마음이 보였다.
- 노래해줘서 고마워
내 꿈을 같이 사랑하고 있다는 작은 고백.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수백, 수천 개의 풍선이 나에게로 쏟아지는 광경은,
저항할 틈도 없이 누군가의 마음이 들이닥치는 상황은,
먹먹한 기분이 들게끔 한다.
“.......”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새어 나올 것만 같아서.
그 와중에도 풍선이 데려온 쪽지가 스테이지에 하나둘씩 쌓이고 있었다.
오다가 떨어지는 것들도 있었지만, 팬들은 떨어진 풍선을 주워서 앞으로 앞으로 보낸다.
끊어지지 않고 결국 도달하는 마음을 보니 울컥했다.
나는 팬들을 바라보았다.
십만교도.
무림에서 나는 교도들을 이끌고 보살펴야 했다. 나는 그 직무를 자랑스러워했고 최선을 다해 이루어냈다.
이들 역시 십만교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를 천마라 부르지만.
복종보다는 응원을, 존경보다는 사랑을 보내는 사람들.
그 새로운 관계를 인식하는 순간은 마치 껍질을 한꺼풀 벗는 듯했다.
- 울지마 천마야!
그 말에 눈가를 닦아냈다. 물기가 묻어나오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었나 보다.
젠장.
누구랑 비슷한 꼴을 보이게 됐군.
나는 이 감정을 누르고 싶은 마음과,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마음 사이에 갈등하며 새로운 쪽지를 펼쳤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아.
눈물이 쏙 들어간다.
무대나 하자.
그렇게 엔딩 무대가 시작되었다.
*
직장인은 대학원생 친구를 힐끗 보았다.
‘얘 완전 몰입했네. 다행이다.’
직장인은 속으로 안도했다.
처음에 친구가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여서 불안했다.
그런데 오프닝 무대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사람이 돌변하더니, 이후에는 모든 노래를 다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던 애가 저 노래를 어떻게 알지? 그냥 1집 수록곡이었는데.’
직장인은 의아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친구가 좋아하니, 직장인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다.
오늘 콘서트는 직장인이 가본 것 중 단연코 최고였다.
팬과의 소통도 많아서 함께 즐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팬이벤트!
‘진짜 감동적이었지.’
팬클럽에 팬이벤트 공지가 올라왔을 때 직장인도 참여했다.
일부러 일찍 와서 쪽지도 적었는데, 그게 풍선에 매달려 천마에게 전해지는 순간 직장인도 같이 뭉클했다.
그리고 절대로 안 울 것 같은 천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순간, 묘한 뿌듯함이 일었다.
단단한 벽을 뚫고 들어가 그 사이에 자리 한 칸을 차지하고야 만듯한 기분이랄까.
팬이벤트는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천마가 말한 엔딩 무대가 나올 차례였다.
직장인은 들떴다.
“신곡이다. 신곡!”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벌써 2집 앨범이 나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런데 타이틀곡을 첫 콘서트에서 공개한다니!
생각하지도 못한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천마라 그런지 강호의 도리가 뭔지 아는군.’
신곡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순간에 함께하는 건 설레는 일이다.
꼭 아무도 걷지 않은 눈밭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듯이.
잔뜩 들뜬 직장인은 무대를 바라보았다. 풍선을 치우느라 오랫동안 깜깜하던 무대가 어슴푸레하게 밝아진다.
배경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거리였다.
대학생이었을 때, 강의를 째고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며 돌아다녔던 그런 거리.
무대 위에는 어렴풋하게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산책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조명이 완전히 돌아온 순간, 직장인은 무언가 이질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먼저 단순히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인영은, 실제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으로 뒤덮여있었다.
하얀 머리칼, 하얗게 페인팅한 얼굴, 하얀 정장, 하얀 구두.
기괴하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조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정지해있었다.
쇼핑을 하던 채로, 신문을 읽던 채로, 산책을 하던 채로 굳어 있었다.
그걸 알아차릴 때쯤,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 멈춘 시간 속 홀로 나아가
시간에 갇힌 사람들 사이로 천마가 나왔다.
정지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가지고 움직이는 건 천마뿐이었다.
시작은 느린 선율이었다. 흘러가지 않는 세상을 노래하는 것처럼.
- 시간은 빛을 잃고
알고 있던 세상이 사라져도
Live my life live my time
천마는 외로워 보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직장인은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없이 느리던 곡이 변했고 멈춰있던 세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그 변화를 알아차린 건 조각상이 움직였다는 걸 깨달을 때였다.
깊은 잠을 자던 생명체가 깨어나듯이,
- take my life
한 소절마다 천천히 움직이던 사람들은,
- take my time
어느새 천마의 중심으로 다가온다.
빠르게 변주되며 고조되는 멜로디.
천마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그에 맞춰 가사도 빨라진다.
- take my life take my time my life my time life time life time life time···.
짧은 라임이 반복되는 가사는 주문처럼 들린다.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정점에 이르던 순간.
딱
핑거스냅과 함께 조명이 꺼졌다.
“와”
직장인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천마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형광색 선이 그래피티처럼 쫙 뻗어 나간다.
사람들의 몸에 뿌려놓은 야광 도료가 빛났다.
- Time Lapse
속삭임과 함께 기타 리프 멜로디가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천마.
그의 인생에서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 천마의 세계로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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